< 폭탄 (4) >
칸 영화제. 솔직히 이제 곧 ‘거머리’의 완성품 테스트가 있을 이 순간에도 강우진은 크게 현실감이 있진 않았다. ‘마약상’ ‘실종의 섬’ 등 다른 영화들이야 이쯤 시기엔 언론에 홍보를 뿌려대서 바로 피붙이로 느껴지지만 ‘거머리’는 현재 큰 홍보나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진 않았다.
물론 한국 영화계의 전설인 안가복 감독이나 대배우 심한호 ‘이슈왕’ 강우진 덕에 관심이 증폭되면서 타이밍마다 기사가 쏟아지긴 해도.
『크랭크업 마친 ‘거머리’는 어느 부문에 초청될까?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 발표는 다음 주쯤』
시간이 좀 지나면 칸 영화제에 관한 기사만 종종 터질 뿐 잠잠한 편이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현재 ‘거머리’의 영화사나 배급사가 딱히 홍보를 돌리고 있지 않기 때문. 오직 칸 영화제에만 집중한 결과였다. 당연히 칸 영화제 개막이 임박해지면 미친 듯 기사를 뿌리겠지만 당장은 다른 상업 영화들에 비해 상당히 고요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강우진이 더욱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
“···”
포커페이스가 진한 우진의 머릿속엔 여러 상상이 교차하는 중이었다.
‘칸- 칸이라.’
진중한 척이 아니라 진짜 진지했다. 딱 그거였다. 사람이 재밌는 만화나 기타 컨텐츠를 본 뒤 작품의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것. 최근 강우진은 자주 칸 영화제를 검색해봤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러 기사 사진 너튜브 영상 등등등. 수많은 자료들을 확인했다.
당장 현실감이 없음에도 강우진의 심장이 두쿵대는 건 그 이유에서였다.
‘와- 씨 진짜 이런 날이 오긴 오네. 상상만 하던 게 곧 일어날 거라 생각하니까 개떨림.’
과거 언젠가 칸 영화제에 초청됐던 영화의 한국배우가 칸의 레드카펫을 거니는 사진 칸 영화제 폐막식 또는 시상식에서 해외 수백 넘는 기자들에게 인터뷰하는 영상 헐리웃 포함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인들과의 단체 사진.
그리고.
‘누구더라? 하여튼 한국감독이 칸 시상식에서 트로피 올리는 건 개간지더만.’
수천에 육박하는 세계적 영화인들 앞에서 상을 받는 한국감독. 그런 것들이 그저 상상만이 아닌 곧 자신에게 일어난다면 누군들 떨리지 않을 수 있을까? 살아생전 해외 영화제라면 꿈도 못 꿔본 강우진이기에 더 그랬다.
‘으- 울렁이기 시작했다.’
두려움도 있다. 걱정도 당연히 있다. 첫 경험의 사이즈가 어마무시했으니까. 컨셉질에 집중한다면 어떻게든 지나가겠지만 청룡영화제와 비교해 몇 배는 성대한 칸 영화제는 우진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자리 잡히고 있었다.
이때.
-띵!
그가 탄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층에서 문을 열었다. 잠시 딴생각에 빠졌던 우진의 어깨를 꽁지머리 최성건이 두드렸다.
“가자.”
최성건 역시 강우진보다야 한참 약하지만 살짝 단단한 표정이었다. 우진과 최성건이 도착한 것은 대형 영화사 내부에 있는 소형 스튜디오였다. 스튜디오 앞엔 이미 ‘거머리’의 스탭이 몇몇이 나와 있었고.
“아! 안녕하세요!”
다가오는 강우진을 보자마자 바로 인사했다. 그들에게 적당히 인사한 그. 우진이 바로 스튜디오에 입성했다. 보이는 내부는 지금까지 우진이 경험한 다른 영화 테스트 장소와는 느낌이 달랐다. 여기는 뭐랄까 작은 상영관 같은 모습이었다. 여러 작업 기기들과 정면의 적당히 큰 스크린 최소 50개는 깔린 의자 이미 30% 정도 자리를 채운 관계자들.
그들 모두는 강우진을 보자마자 인사하기 바빴다.
그리고.
“왔구만.”
관계자들 사이에서 불쑥 나온 짧은 흰 머리에 주름이 가득한 안가복 감독. 웃음에 약간 힘을 빠졌으나 눈빛은 빛나는 그의 손을 잡은 우진은 새삼.
‘어우 이 할배. 아니 감독님 처음보다 많이 늙으셨네.’
안가복 감독의 고생이 느껴졌다. 아마 이 ‘거머리’의 완성을 위해 잠을 반납하는 건 물론 거의 생명을 갈아 넣지 않았을까? 어쨌든 악수를 마친 안가복 감독이 우진을 앞쪽으로 안내했다. 기기 주변 책상에 플라스틱 판에 붙은 익숙한 포스터가 보였다.
“어제 결정했네.”
“그렇습니까?”
“그래요 칸에는 이 포스터로 넘길 거야.”
순간 빠져있던 최성건이 궁금한지 우진의 등 뒤로 붙었다. 우진과 최성건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붙였다. 칸에 정식으로 전송할 ‘거머리’의 공식 포스터를 보는 것.
‘미친 내가 너무 크게 나왔어 이건.’
포스터 안의 많은 지분이 강우진이었다. 아니 ‘박하성’. 끝으로 갈수록 리플리 증후군에 절여지는 ‘박하성’의 전신. 그는 한 가족사진을 보고 있다. 윤정배 회장과 오희령 등의 재벌집 가족사진. 그 액자의 유리에 비춘 ‘박하성’의 얼굴은 소름 돋게 웃고 있었지만 정작 가족사진을 든 ‘박하성’의 진짜 얼굴엔 웃음기 따윈 없었다.
이 역시 리플리 증후군을 암시하는 것.
이어 포스터 하단에 크게 박힌 대략 연기 같은 연출의 타이틀.
-‘거머리’
즉 강우진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이 포스터가 칸 영화제에 떡하니 걸리게 된다는 뜻. 이에 우진의 심장이 다시금 고동쳤다. 이를 알 턱이 없던 최성건은 우진의 옆구리를 툭 치며 작게 속삭였다. 미소는 덤.
“크- 포스터 죽이게 뽑혔다 저걸 칸에 오는 난다긴다하는 영화인들이 본다는 거 아니냐. 어후 진정이 안 되는구만.”
좀 전까지 두근대는 우진 역시 동감이었다. 허나 애써 침착한 그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때였다.
“심한호 선배님 오셨습니다!”
뒤쪽에서 스탭의 외침이 퍼졌다. 범을 연상케 하는 대배우 심한호가 도착했으니까. ‘거머리’ 촬영 이후 처음보는 탓에 강우진이 그에게 깎듯하게 90도 인사를 박았다. 심한호는 촬영 탓에 짧게 잘랐던 머리가 조금 자란 상태였다. 심지어 수염도 많이 자랐다. 거치 마초의 면모가 다시금 풍성해진 느낌.
심한호가 강우진의 인사를 받은 뒤.
-스윽.
우진의 앞에 있는 ‘거머리’ 공식 포스터를 발견했다. 잠시간 묵묵하게 포스터를 바라보던 그가 중후한 목소리를 냈다.
“잘 뽑혔어.”
뒤로 배우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희령은 물론 진재준과 한소진까지. 추가로 조연배우들 몇몇. 얼추 배우들과 올 사람들이 다 모였을 쯤 한창 웅성대던 스튜디오 전체로 안가복 감독이 선언했다.
“시작하지.”
곧 불이 꺼지고 정면에 영상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후우.”]
바람 부는 소리와 함께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퍼지는 연기와 함께 앵글은 천천히 뒤로. 거뭇하던 화면에 점차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동시에 익숙한 나레이션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젠 모르겠어요 내가 누군지.”]
이쯤 스크린엔 쪼그려 앉아 담배 피우는 한 남자의 얼굴이 커다랗게 박힌 상태였다.
-[“누구로서 존재하는 건지. 길을 잃었어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내가 맞을까요? 그저 상황에 맞춰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건 아닐까요?”]
타이틀이 뜨기도 전 ‘거머리’의 시작은 강우진부터였다.
한편 같은 시각. DM 프로덕션.
강우진이 한창 완성된 ‘거머리’의 테스트를 진행하는 와중 ‘이로운 악’의 제작을 맡은 DM 프로덕션 역시 바빴다. 지금은 대형 회의실에 모여 거의 마지막 차의 제작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다음은 세트 저번에 내가 말한 문제점들 전부 수정됐나?”
“예 PD님.”
턱수염 송만우 PD가 총괄이 되어 진행되는 제작 회의는 대체로 점검하는 분위기였다. 거의 대부분 안건은 완료된 상태였고 송만우 PD가 확인하며 리스트를 지우는 느낌.
실제로 ‘이로운 악’의 프리 프로덕션은 거의 끝난 상태였으니까.
여전히 극비인 마일리 카라 건을 빼면 후반부에 합류한 에단 스미스의 ‘CQC’ 콘티도 완성됐고 해외로케 관련도 전체 스케줄도 배우들의 정돈도 전체적인 자금의 흐름까지도. 모든 것이 끝난 상태였다.
이제 남은 것은 마무리 검사와 일정을 확정 짓는 것.
그 일정에 관한 건은 당연히 턱수염 송만우 PD의 입에서 뱉어졌다.
“···후 오케이. 그럼 대본리딩은 14일 첫 촬영은 20일.”
오늘은 8일이었다. 즉 ‘이로운 악’의 대본리딩과 첫 촬영이 대략 2주 안에 스타트된다는 뜻. 당연히 강우진 포함 배우들의 스케줄을 모두 상정한 결과였다.
거기다.
“해외로케에서 크랭크업하는 거니 방콕 쪽 문제없도록 확실히 체크하고.”
‘이로운 악’의 첫 촬영은 태국 방콕인 해외로케부터였다.
며칠 뒤 11일. LA.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LA의 꽉 막힌 도로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인도에도 인파들의 흐름이 어마어마했다. 수많은 차들로 넘쳐나는 도로엔 빵빵대는 경적소리가 끝이질 않았다.
그 사이 눈에 띄는 대형 승합차 두 대.
이유야 간단했다.
-찰칵 찰칵!
나란히 멈춘 대형 승합차 주변의 차 안 외국인들이 연신 승합차를 찍어대고 있었으니까. 최소 다섯 대는 족히 넘어 보였다. LA에선 흔히 보이는 무려 관광 코스로도 이용되는 파파라치들이었다. 당연했다.
그들이 찍는 커다란 승합차 두 대는 마일리 카라의 차였으니까.
두 승합차 중 카라가 탄 것은 앞쪽 차였다. 내부를 보니 금발을 늘어트린 마일리 카라는 다리 꼰 채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태블릿엔 커다란 LA 쪽 집들이 출력되는 중. 이어 오늘도 역시 차가움이 공존하는 얼굴인 카라가.
-스윽.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자신의 메인 매니저 조나단에게 말했다.
“강우진이 이 집을 선택했다고?”
덩치 좋은 조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카라가 읊조렸다.
“좋네 우리 집이랑도 가깝고.”
“뭐? 카라 뭐라고 했어?”
“아니야. 강우진이 선택한 집으로 준비해줘. 그에게 선물하는 타이밍은 내가 정할 거야.”
“알았어.”
대답이 들림과 동시에 꽉 막혔던 도로가 조금 풀렸는지 승합차가 슬슬 움직였고 카라에게 태블릿을 돌려받은 조나단이 주제를 바꿨다.
“그리고 카라 올해에도 칸에서 초청장이 왔어.”
“그래?”
“음. 갈 건지 말 건지 결정해. 작년엔 안 갔었잖아? 올해도 같은 마음?”
꼰 다리 방향을 바꾼 카라가.
‘···올해 칸엔 강우진이 가는데.’
금발을 쓸어넘기면서도 팔짱 꼈다.
“올해는 가볼까?”
“오- 그래? 이유가 뭐야.”
“강우진의 영화가 궁금해.”
“···너 그에게 너무 친절한 거 아닌가. 물론 큰 도움을 받긴 했지만. 묘하게 거슬리는데.”
어깨를 으쓱인 카라가 별수롭지 않게 답했다.
“당연히 강우진 때문만은 아니야. 작년엔 안 갔으면 올해는 가봐도 괜찮잖아? 최근 앨범 작업으로 헐리웃 쪽엔 얼굴을 내민 적이 없으니까.”
“그렇지. 가서 네가 레드카펫만 조금 밟아도 금방 시끄러워질 거야.”
“그리고 올해 칸에선 왜인지.”
잠시 말을 멈춘 카라가 강우진을 떠올리면서도 작게 웃었다.
“큰 사건이 터질 것 같아서. 그런 건 직접 보는 게 짜릿하니까.”
고개를 갸웃한 조나단이 대충 알겠다는 식으로 한숨을 뱉었고.
“알았어 그럼 올해 칸에 참석하는 거로 스케줄 수정할게. 그런데 길게 빼진 못 할거야.”
“상관없어. 칸 일정 중에 하루와 폐막식만 보면 되니까.”
“오케이 이틀 정도.”
그렇게 몇십 분 뒤 카라가 탄 승합차는 LA 도심에 있는 커다란 빌딩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이 웅장한 빌딩이 바로 마일리 카라의 에이전시였다. 곧 조나단 포함 팀들과 내린 카라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뭔가 이미 약속이 잡혀 있는 듯 그녀의 움직임에는 고민이 없어 보였고.
-띠링!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카라가 조나단의 안내를 받아 복도를 걸었다. 스치는 많은 외국인 직원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해댔다. 이 에이전시의 간판스타인 카라였으니 당연했고 어느새 그녀는 한 회의실의 유리문 앞에 도착했다.
마일리 카라가 조나단에게 물었다.
“여기?”
“응.”
고개 끄덕인 카라가 자신의 금발과 재킷을 정돈했다. 그리곤 옆에 선 조나단에게 다시금 시선을 맞췄다.
“나 어때?”
조나단은 딱히 대답 없이 엄지를 보였다. 작게 픽 웃은 카라가 유리문을 열었다. 곧 회의실 내부와 함께 ㄷ자형 책상에 앉은 인원들이 카라의 눈에 보였다. 총 4명이었고 전부 동양인이었다. 그중 턱수염이 눈에 띄는 남자가 마일리 카라에게 가장 먼저 인사했다. 물론 영어로. 목소리에 힘이 가득했다.
“안녕하세요 마일리. 제가 송만우입니다.”
남자는 송만우 PD였다.
한편 한국.
LA는 아침이었지만 한국은 늦은 밤이었다. 그럼에도 강우진은 퇴근을 못 하고 있었다. 현재 그는 녹음 스튜디오에 있었다. 최근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강우진 부캐’ 채널 관련 녹음이 있어서였다.
우진이 선 곳은 부스 안.
표정은 근엄하기 짝이 없었으나.
‘어으 씨. 졸라 피곤하네. 아공간 한 번 드가야 되나?’
내면으로는 툴툴대고 있었다. 이때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그의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힌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표정 변화 없이 강우진은 핸드폰을 꺼냈다. 상대는 묘하게도 제작발표회 이후 다시금 편집에 돌입한 그마저도 막바지일 게 확실한 ‘낯기생’의 쿄타로 감독이었다.
뭐지? 싶었던 우진이 전화를 받으며 일본어를 뱉었고.
“네 감독님.”
핸드폰 넘어 쿄타로 감독의 약간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진씨. 밤늦게 미안해요 가장 먼저 알리고 싶어서.”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편집은 9월 안에 문제없이 완료될 거라 ‘낯기생’은 일본에 10월 말쯤 개봉할 겁니다. 이미 작업은 시작했어요.”
“그렇습니까?”
되물은 강우진이 질문을 추가했다.
“그럼 한국 개봉은.”
쿄타로 감독의 대답은 빨랐다.
“11월 중순쯤이 되겠지.
올해 하반기 달마다 투하될 폭탄들이 장전되기 시작했다.< 폭탄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