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콕 (3) >
한 손에 M4 카빈 소총을 든 ‘장연우’. 아니 강우진이 숲길을 걷고 있다. 군복에 방탄조끼는 그대로지만 귀에 꼈던 무전기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의 걸음은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다. 평범한 속도였다. 마치 산책을 나온 듯한 리듬.
-서벅서벅.
군화에 잡초들이 밟혀 옅은 소음이 퍼졌다. 차가운 바람이 우진의 정면을 때렸다. 냉기가 스며들었다. 순간 무표정인 강우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즐겼으니 됐지.”
눈코입의 감각이 기민해졌다. 어둡지만 익숙해진 전방 숲속 특유의 풀냄새와 겨울 정서의 냄새 서벅서벅 소음과 벌레 따위가 내는 잡소리들. 모든 것이 선명했으며 ‘장연우’의 심정이 더더욱 우진에게 팽배해졌다.
즐펀했던 쾌감이 점차 줄어들었다.
하늘을 올려보는 강우진.
“···”
밝다.
달이 밝다.
잠시간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하늘을 보던 우진이 오른손에 쥔 소총을 내려봤다. 손가락에 딱딱한 것이 굳었다. 건조한 핏물이었다. 본인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 그러고 보니 볼 쪽이나 얼굴 이곳저곳이 까끌했다. 역시 핏물이다.
강우진이 다시 걸었다.
남은 손으로 볼 쪽에 굳은 피를 긁어냈다. 뭔가 공허하다. 직전에 이름도 모를 것들을 죽여서가 아니다. 죄책감? 후회? 그딴 것들은 그에게 존재치 않았다. 그냥 좀 지루했다.
“후우-”
폭력과 살육에 점철된 삶이다. 그러나.
“질려.”
자극이 완연하면 자연스러워진다. 몸이 적응하고 뇌가 자극에 익숙해진다. 결과적으론 재미가 소멸. 텀이 공백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때때로 잡생각도 들었다. 직전에 내 손에 목숨을 잃은 것들의 인생을 떠올려보는 등의.
하찮다.
나나 그들 모두 말이다.
헛생각은 판단을 흐린다. 의미가 없다. 그들이나 우진이나 죽거나 죽일 뿐이다. 약한 자가 심판을 당한 것이요 살아남은 자가 심판자일 뿐이다. 존재하면 그것이 강한 것이다. 하지만 정의로운 심판자는 아니다.
악이다.
살아남은 심판자는 결단코 정의롭지 않고 모두에게 악일 뿐이다. 그저 심판하는 대상을 선택할 뿐. ‘나이스한 개새끼’. 지금의 ‘장연우’ 또는 강우진을 표현하자면 그랬다. 보기엔 평범하지만 내면 심연을 보자면 악랄했다.
하지만 이 병신같은 지루함이 반복되면 심판당하는 쪽은 저들이 아니라 나다.
우진은 자취를 감출 것을 확정했다.
그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사라진다.
-터벅!
어느새 숲을 빠져나온 강우진. 그의 눈에 도로가 보였다. 도로 한쪽 작은 공간엔 허름한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당연히 우진이 준비해둔 것.
-텅!
트럭에 오른 강우진이 소총을 조수석에 툭 하고 던진 뒤 시동을 걸었다. 콜록대던 트럭이 나름 요란한 배기음을 냈다.
이어.
-부우우웅!
1초의 망설임 없이 운전을 시작하는 우진. 트럭의 속도는 점차 빨라졌고 강우진의 시야 역시 초마다 변했다.
컴컴한 도로를 비추던 그의 정면과 온도가 삽시간에 탈바꿈됐다.
수년이 흘렀으니까.
차에 타고 있던 강우진은 북적거리는 시장에 서 있었다.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다. 팔뚝이 따가울 정도였다. 조금씩 우진의 시야가 선명해졌다. 그을린 피부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뒤섞여 움직이고 있었다.
“···”
귀가 찢어질 정도로 외치는 남자 파는 상품의 소개처럼 들리는 여자의 괴성 사람들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자전거나 오토바이 초마다 들리는 경적 우진의 어깨나 팔뚝을 쳐대며 지나치는 수십 사람들.
하지만 이 같은 광경은 강우진에게 낯설게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의 마음은 평온했다.
당연했다.
이 방콕에서 우진은 몇 년째 살고 있었으니까.
땀이 볼을 타고 흘렀다.
보니 강우진의 모습도 퍽 변했다. 턱에 수염이 좀 자랐고 피부 톤도 살짝 탔다. 입은 갈색 셔츠나 청바지 역시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스윽.
담배를 입에 무는 그. 라이터를 손에 든 우진이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진입했다.
“#*()%(*#)%@((@($!!!”
“)(#$%&*#(%%@(*@*!!!”
-빵빵빵!!
계속해서 귀가 쩌렁쩌렁 울렸지만 별수롭지 않게 반응한 강우진은 정신없는 시장 내부를 걸었다. 그러다 시장 중간쯤 있는 한 음료 가게에 도착한 우진이 외부에 깔린 테이블에 앉았다. 다가온 주인에게 영어로 적당히 커피를 시킨 그가 다 치운 담배를 버린 뒤.
“쯧 오면서 사둘 걸 그랬나.”
하나 남은 담배를 입에 재차 물었다. 다만 이번엔 라이터가 문제였다. 칙칙 소음만 날 뿐 라이터가 불을 뿜지 않았다. 혀를 찬 강우진이 라이터를 흔들 때였다.
-스윽.
뜬금 우진의 오른 귀 쪽으로 손이 쑥 나왔다. 본능적으로 손을 잡아 꺾으려던 강우진. 그런 그에게 점잖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에다 영어였다.
“J(제이) 침착해.”
낯설지 않은 톤과 음성이었다. 멈칫한 강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딱 붙는 회색 탱크톱에 선글라스를 낀 외국인 여자가 서 있었다. 머리를 금발을 돌돌 말아 올렸다. 그녀가 우진에게 잡힌 자신의 손을 턱짓했다.
“불이 필요한 거지?”
여자의 손엔 네모난 은색 라이터가 들려있었다. 픽 웃은 우진이 라이터를 집어선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곤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됐어 이제 꺼져.”
금발의 여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라이터를 줘야 가지.”
“내 거잖아 이거. 너한테 맡겨 뒀던 거고.”
선글라스를 벗은 여자가 우진의 반대편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너무 꽁꽁 숨어 있어서 찾는 게 오래 걸렸어.”
그녀는 ‘장연우’ 또는 강우진의 과거 동료였다.
“L(엘) 날 어떻게 찾았지?”
“사람 찾는 거야 내 전문이니까. 데스크가 내 주 임무였어 잊은 거야? 물론 J(제이) 널 찾는 건 상당히 어려웠지만.”
담배 연기를 후- 하고 뱉던 우진이 등을 의자에 기대며 답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날 왜 찾았어.”
“제이 이만하면 많이 놀았잖아. 내 팀에 들어와 네가 없어진 뒤에 내가 따로 팀을 만들었어.”
“뭘 하는 팀인데.”
“뭐든. 의뢰를 받고 돈이 입금되면 뭐든 해.”
“팀 인원은.”
“직접 확인해.”
“싫어 좀 더 놀 거야.”
하품하는 강우진의 발을 금발 여자가 찼다.
“너 같은 쓰레기는 필요 없어 네 실력이 필요할 뿐이야. 이런 시장통에서 썩히기는 아까우니까. 용병이 돼.”
“실력도 쓰레기가 됐겠지.”
“좋아 그럼.”
말을 잠시 멈춘 여자가 벗은 선글라스를 다시금 쓰며 의자서 일어났다.
“여기 방콕에서 일 하나만 해보고 결정하는 건 어때.”
“뭔데.”
“여자애 하나 구출하는 거야 쉽지?”
“여자애?”
“응.”
엘이라 불린 금발 여자가 새 담뱃갑을 우진에게 내밀며 비죽 웃었다.
“여기 마약왕의 딸 납치됐거든.”
후로.
퍽 길었던 ‘장연우’의 인생을 살던 강우진이 다시금 하늘 위의 비행기로 돌아왔다. 즉 현실로 복귀했다는 뜻. ‘장연우’로서 수년 이상을 살았지만 현실의 비행기 쪽은 몇 초 정도가 흘렀을 뿐. 거기다 분명 직전의 세상에선 수많은 폭발과 총격이 터져댔었는데.
“···”
비행기 안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평온하기 그지없다. 대부분의 인원이 잠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자리 최성건 최나나 작가 등등. 유일하게 턱수염 송만우 PD만 대본을 보고 있었다. 삽시간에 ‘장연우’의 냄새가 빠진 우진이 속으로 약간 황당하게 웃었다.
‘이 온도 차만큼은 진짜 적응이 안 되네.’
각인된 배역의 세상과 강우진의 세상은 공존하면서도 판이했다. 매번 겪는 일이었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극명하면 어이가 없는 게 당연했다.
어쨌든.
-스윽.
강우진이 손에 쥐어진 ‘이로운 악’의 1화 대본에 시선을 내렸다. 아공간에 재차 진입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팔락.
대본을 읽기 위해. 아니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배역합성’이나 ‘배역의 자유도’ 등을 습득한 뒤 생긴 강우진의 루틴이었다. 조금 더 선명하게 더욱이 폭발적으로 생각보다 더 생동감 넘치게. 어느새 강우진은 배우로서의 자세가 딴딴히 잡혀가고 있었고.
‘장연우가 진짜 이럴라나? 걍 노빠꾸로 지를 거 같은데.’
대본 속이 아닌 현실에 뛰쳐나와 날뛸 ‘장연우’ 역시 명확해지는 중이었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몇 시간.
어느새 우진이 탄 비행기는 방콕의 ‘수완나품 국제공항’에 착륙하는 중이었다. 대본 분석부터 아공간에서의 휴식까지 끝낸 진작에 컨셉질을 뒤집어쓴 강우진이 시선을 창밖에 던졌다.
방콕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신기함은 없었다. 뭔가 비슷한 광경이 떠올랐으니까.
‘어째 다낭이랑 비스무리하네.’
베트남 다낭을 말하는 것. 다른 점도 있긴 했다. ‘실종의 섬’ 해외로케로 갔던 다낭은 휴양지 느낌이라면 이번의 방콕은 도시의 느낌이 강했다. 뭐가 됐든 명확히 비슷한 점이라면.
‘벌써 더워 아오 씨.’
무더울 거라는 점. 한창 강우진이 창밖을 보며 컨셉질로 가려진 투정을 속으로 읊조릴 때쯤 그의 주변 좌석들은 매우 부산스러웠다. 익숙한 인물들. 턱수염 송만우 PD나 김소향 총괄디렉터 최나나 작가 스턴트 팀인 에단 스미스 등의 키스탭들 외의 다수.
이유야 간단했다.
“혼잡할 거 같으니까! 초반에 안내한 것처럼 차례로!! 계획대로 입국장으로 움직이면 됩니다!”
“오케이!!”
“그리고 각 팀별로 내리자마자 짐이랑 장비들 체크 확실히 하셔야 돼요!”
“어후- 이제 시작이구만!”
강우진 포함 이 비행기에 탄 대부분의 인원이 ‘이로운 악’의 촬영팀이었으니까. 당연히 해외로케 촬영을 위한 것. 19일인 오늘은 사전 점검과 적당한 적응으로 보낼 예정이고 20일인 내일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하게 된다.
따라서 모두는 흥분과 함께 예민했다.
이후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한 후 거의 백여 명 되는 ‘이로운 악’ 팀 전부가 우르르 움직였다. 배우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귀염상에 음침한 임해은이나 조연급 몇몇.
물론 메인은.
“우진씨!! 이쪽입니다!! 가드들과 같이 움직이세요!”
강우진이었다. 그의 주변엔 최성건과 팀원들이 붙었고 그 보다 두 배 넘는 가드들이 둘러싼 형태였다. 입국장으로 향하는 ‘이로운 악’팀의 행진은 수많은 인파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였으니까.
나름 나눠서 움직이긴 했다.
배우팀 배우들의 스탭팀 ‘이로운 악’의 제작진 등. 한 번에 행동하면 너무도 혼잡할 테니 사고 날 위험이 컸다. ‘이로운 악’ 팀은 ‘수완나품 국제공항’의 입국장으로 서서히 걸었다.
강우진도 행진 흐름에 맞췄다. 딱딱한 표정엔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뭔가- 묘하게 떨리는데? 촬영 임박해서 그런가??’
내면으로는 점차 심장박동이 격해지는 중이었다. 그럴수록 냉철함을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와중 그의 주변 배우들 즉 이번 해외로케 촬영에 합격한 조·단역 배우들이 강우진과 주변을 둘러보며 수군댔다.
“가드- 좀 많지 않아요?”
“그러니까요. 시선 엄청 받는데.”
“강우진님 때문이겠죠.”
“일본에서야 우진님이 대박인 건 아는데···태국에서도 먹혀요? 들은 적 없는데.”
“글쎄요. 일단 우리 때문은 100% 아니니까 무조건 우진님 때문이겠죠. 뭐 혹시 모를 사고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예방 차원이겠죠. 근데 가드들이 좀 과하게 많긴 하네.”
그들로서는 처음 겪는 취급이었으니까.
“그래도···어깨 뽕 좀 올라가지 않아요? 우리가 우진님 아니면 언제 이런 거 경험해보겠어요.”
“인정. 사진도 엄청 찍었어요 저.”
“예방이든 뭐든 완전 기분 째지긴 해요. 어후- 확실히 사는 세상이 다르구나 싶은 느낌?”
“우리는 언제쯤 저런 그림 볼 수 있으려나.”
“강우진님이 2년 만에 하셨으니까- 우리도 불가능하진···아니다 불가능하겠다.”
“여튼 좋은 구경 하네요.”
이윽고.
-스르륵.
가드들이 앞선 강우진이 중심이 된 배우팀 무리가 ‘수완나품 국제공항’ 입국장에 들어섰다.
동시에 터지는 눈이 멀 정도의 플래시 세례.
-파바바바박!
-파바바바바박!!
이내 강우진을 제외한 배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
“우왁!”
“와···미친!!”
“뭐 뭐야?!!”
“까 깜짝이야!!”
이유야 간단했다.
입국장 앞엔 어마무시한 인파가 몰려든 상태였으니까.
“%&)*%#**%&*)%*)강우진!!”
“@$*&$(*%*(강우진!! 강우진!!”
태국 기자들 포함 수백 인파가 오직 강우진을 외치고 있었다. 귀가 뜯어질 정도의 무시무시한 데시벨. 과한 괴성이라 알아듣긴 힘들어도 강우진 이름은 잘 들렸다.
“꺄아악!! 강우진!”
“우진!!@()@$*)$(@!!”
퍽 예상 밖이었다. 이를 목도한 강우진의 얼굴은.
“···”
다분히 덤덤했다.
‘미친??!’
물론 겉으로만.< 방콕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