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콕 (5) >
글로벌 슈퍼스타 마일리 카라가 이 태국 방콕에 있을 리가 없다. 분명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게 빤했다. 최근 새 앨범 작업으로 바쁘던 그녀가 뜬금 왜 방콕에 있겠는가? 거인인 조셉 펠튼이나 외국인 무리 전부의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조셉이나 메건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은 배급·영화사 ‘유니버설 무비스’의 간부인 배 나온 남자를 진정시켰다.
“하하하 마일리 카라라니? 느닷없네요. 여기 방콕입니다 방콕.”
“그러게요. 비행기 탄 시간이 너무 길었어요? 아무래도 빨리 들어가 쉬어야겠는데.”
“헛것이라도 본 겁니까?”
“어디? 어디에 마일리가 있어요?”
조셉과 무리들은 농담 식으로 말했으나 배 나온 간부는 웃음기 없이 미간을 좁혔다.
“아니- 분명. 저 여자.”
이내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조셉과 모두의 시선이 따라갔다. 허나 아쉽게도 배 나온 간부가 봤던 여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진짜 어디 안 좋으신 겁니까?”
“체크인 빨리 진행하죠 진심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괜찮아요?”
농담에서 진지한 걱정으로 변했다. 갈색 단발의 메건이 간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단 소파에 앉아요 침착하고.”
“···아 그래요.”
“갑자기 마일리 카라라니 무슨 얘깁니까?”
“방금 지나간 금발 여자- 분위기가 그녀 같았어요. 말이 안 되긴 하다만.”
“마일리를 캐스팅하고 싶다는 염원이 너무 셌던 모양이네요. 피곤하시기도 할 테고.”
배 나온 간부가 메건 스톤의 얼굴을 올려봤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리곤 엄지와 검지로 자신의 눈을 꾹꾹 눌렀다.
“후-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마일리 카라라니···”
그가 자신이 본 것이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오랜 비행시간이 있었고 시차도 문제였다. 거기다 마일리 카라 정도의 탑급이라면 헐리웃 영화사 어디라도 군침을 흘린다. 빌어서라도 캐스팅할 판. 그 정도면 싸게 먹히는 편. 곧 배 나온 간부 주변의 팀 인원들이 끼었다.
“그래도 조금 설레긴 했네요 마일리 카라 이름을 들어서.”
“하하. 마일리 카라 캐스팅하기 어렵기로 소문났죠. 지금은 아마 새 앨범 작업으로 바쁘지 않나?”
“그렇지. 한창 바쁠 거야.”
“마일리가 방콕에 떴으면 여기나 헐리웃이나 시끄러웠을 겁니다.”
배 나온 간부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미안해요 난 좀 쉬지.”
대답은 메건이 빨랐다.
“그래요. 체크인 최대한 빨리 진행할게요.”
이때였다.
“조셉.”
뒤쪽 호텔의 거대한 로비에서 누군가 조셉 펠튼을 불렀다. 영어였고 남자 목소리. 거인 조셉 포함 모두가 고개를 돌렸고 로비에선 코가 큰 외국인 남자가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이로운 악’의 스턴트 팀 리더 에단 스미스였다.
조셉이나 메건 외의 모두가 바로 반응했다.
“오 에단.”
에단이 ‘이로운 악’에서 스턴트 코디네이터를 맡은 건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다가온 에단이 조셉부터 시작해 메건을 이어 여럿에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특이한 건 에단과 같이 온 게 팀원이 아닌 한국인들이라는 것. 에단에겐 총 3명의 한국인이 함께였다.
소개는 당연히 에단이 했다.
“이분들은 ‘이로운 악’의 제작 스탭입니다.”
같이 온 한국인들은 ‘이로운 악’의 제작진이었다. 통역도 포함.
조셉과 메건 그리고 외국인 무리는 ‘이로운 악’의 촬영을 보러 온 것. 이미 사전에 적당한 얘기가 오가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다시금 스케줄 등을 공유해야 했다. 물론 송만우 PD의 배려였다. ‘이로운 악’ 스탭들은 잠시간 촬영에 간단한 정보를 알렸고 약 5분 정도 뒤에 조셉의 팀 전부에게 종이들을 나눴다.
비밀유지 서약서였다.
촬영과 현장에 관련한 모든 것을 함구하라는 내용. 비밀유지 서약서를 받자마자 조셉은 생각했다.
‘철통 보안이구만.’
하지만 이상하게 보진 않았다. 헐리웃에서도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니까. 작품 촬영에 관한 비밀이 밖으로 새어나갈 경우 그 정보가 어떤 것이든 간에 작품에 피해를 끼치게 된다. 홍보 마케팅 적으로는 물론 향후 작품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상당히 무거운 문제였다.
그러니 행여 비밀 서약을 어길 경우 당사자에겐 퍽 커다란 위약금이 발생 된다. 지금 조셉이나 모두가 받은 서약서 역시 같은 성격이었다. 강우진을 아는 메건도 이해했다.
‘하긴 헐리웃 쪽 스턴트 팀까지 섭외할 정도였으니···강우진의 액션이나 CQC 등에 상당히 힘을 줬을 거고 핵심 연출들도 많을 거야.’
다만 조셉 쪽의 팀원들이나 스턴트 팀들 ‘유니버설 무비스’의 간부 몇몇은.
‘이렇게까지 한다고? 왜지.’
‘상당히 철저해 이유가 있는 건가?’
‘드라마 촬영에 서약서를 쓴다라- 약간 유난처럼 보이기도 하고.’
약간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한편 같은 호텔의 스위트룸.
드넓은 룸의 거실 소파에 금발의 여자가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다. 마일리 카라였다. 그녀의 앞 탁자엔 직전까지 썼던 모자와 마스크가 놓여있었고 건너편 자리의 매니저 조나단에게 카라가 말했다.
“봤어? 로비에 조셉 펠튼이 있었어.”
카라 특유의 약간 냉정한 말에 조나단이 약간 놀랐다.
“뭐? 조셉이?”
“응. 정확하진 않지만 익숙한 얼굴들이 많던데? ‘유니버설 무비스’ 쪽 사람들도 보였고.”
“허- 영화 준비 중인 게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장소헌팅 치고는 규모가 작아. 다른 이유 때문이겠지.”
“어떤···설마 ‘이로운 악’?”
“조셉이 핸들링했다면 충분히 가능해. 그도 강우진에게 빠져 있으니까.”
“강우진을 보러 조셉이 방콕까지 왔다? 말이 안 되잖아. 강우진은 헐리웃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어깨를 으쓱인 카라가 작게 웃었다.
“글쎄 촬영 날에 보면 알게 되겠지. 그런데 만약 그들이 강우진을 보러 온 거라면-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네.”
강우진의 연기도 연기겠지만 그의 액션 또는 CQC 거기에 마일리 카라가 포함된 촬영들을 조셉 포함 무리들이 본다면 어떤 반응일까? 카라 본인도 기대치가 최대라 그런지 퍽 흥미가 솟았다.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강우진에게 사 준 LA 쪽의 집 그가 사용하는 게 생각보다 빠를지도 모르겠네.”
“음?”
“점점 헐리웃 쪽 인물들에게 강우진이 각인되고 있잖아?”
이어 카라가 돌연 대화 주제를 바꿨다.
“어쨌든 조나단 조셉이 지금 굴리고 있는 영화 말이야. 확인 좀 해줘 어떤 느낌인가.”
다음 날 이른 아침.
20일이 밝자마자 강우진은 ‘이로운 악’ 전체 팀들과 섞여 호텔을 나섰다. 오늘도 역시 방콕의 햇볕은 뜨겁다. 사이에 송만우 PD가 강우진에게 설명했다.
“오늘은 거의 리허설이나 점검 연습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기 태국 현지 단역들하고 액션 합도 맞춰봐야 하고 카체이스나 폭발 씬들도 있어서 점검은 여러 번 해도 부족하지 않아요.”
이들의 첫 목적지는 방콕 시내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한 마을이었다. 꽤 규모가 크지만 살고있는 태국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여긴 아침에 보니까 분위기가 또 다르네. 이국적이긴 한데 뭔가 느낌이 남미 같달까?’
과거엔 퍽 흥했던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조용했다. 그렇기에 비어있는 건물이나 폐공장 폐건물이 많다. 하지만 많은 건물. 즉 시가지도 잘 형성돼있어서 그림이 나쁘지 않았다. 이 마을에서 많은 촬영이 있을 예정이었다. 롱테이크 카체이스 폭발 총격전 등등.
당연히 진작에 섭외는 끝난 상태였다.
태국은 영화산업 인프라가 잘 구축된 편.
따라서 헐리웃 쪽에서도 태국은 곧잘 이용되는 국가였다. 인프라가 좋기에 현지 업체도 많고 각종 장비 촬영 허가 정부 협조 등이 유연했다. 워낙 영화 촬영이 자주 있는 편이라 체계가 잘 잡혀 있다는 얘기.
어쨌든 강우진과 송만우 PD 외의 ‘이로운 악’팀은 마을 외곽의 커다란 폐공장에 모였다.
‘이로운 악’ 전체 스탭만 약 백여 명.
이미 대규모에 속하지만 폐공장 앞의 큰 공터에는 태국 현지인들이 약 50명 정도 모여 있었다. 우진은 이미 그들에 관해 들은 바가 있었다.
‘아- 저 사람들이 태국 쪽 스탭??’
해외로케 촬영은 오로지 국내 팀들만 가지고 굴릴 수가 없다. 해외 현지의 스탭이나 관계자들이 필수였다. 저 50명 넘는 태국 현지인들 역시 ‘이로운 악’팀이 섭외한 인원들이었다. 촬영팀에 속하는 사람이 약 반이고 반은 단역 배우들. 인프라가 잘 잡힌 태국이기에 배우 캐스팅도 어렵지 않다.
거기다 촬영 경력이 두터운 위주로 뽑았다.
어차피 대부분이 강우진. 아니 ‘장연우’에게 사살당할 인물들이나 생동감이 핵심이니까. 뭐가 됐든 태국 현지 스탭이나 단역 배우들에게도 비밀유지 서약서를 다 받은 송만우 PD였다. 참고로 ‘이로운 악’의 백여 명 스탭들도 마찬가지.
결과적으로 이 폐공장 공터엔 어마무시한 인파가 몰렸다.
얼추 200명은 거뜬하지 않을까?
곧.
“시작해볼까?”
송만우 PD의 신호에 따라 백여 명 스탭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리허설을 위한 준비지만 허투루 할 순 없다. 촬영팀은 각종 카메라를 내렸고 조명팀이나 소품팀 등도 같았다. 메이킹팀은 진작에 폐공장 주변과 대규모 촬영팀을 찍고 있었다.
여러 팀들이 공터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공터는 단숨에 무시무시한 인원들의 고함소리가 가득해졌다.
와중 강우진은.
“잘 부탁합니다.”
50여 명의 태국 현지 스탭과 배우들에게 인사 중이었다. 물론 영어로 뱉은 것이었고 현지 배우들 전체는 우진을 상당히 신기한 눈을 봤다.
당연했다. 그는 태국에서 이미 꽤 유명했으니까.
강우진은 연신 덤덤했다. 하지만 내면으로는 그 역시 이 많은 태국 현지인들이 새로웠다.
‘와- 씨 이만한 외국인들이랑 촬영하는 건 처음 아닌가? 심지어 액션이고. 뭔가 떨리네.’
이를 알 턱이 없던 송만우 PD는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도 지시를 내렸다. 태국 현지 스탭 배우들에게 준비하라 던진 것. 그들 역시 일사불란하게 뛴다. 이쯤 의상 분장팀이 송만우 PD 옆의 강우진에게 달려왔다.
메이크업과 의상 교체를 위한 것.
몇십 분 뒤 강우진이 탈바꿈됐다.
헤진 흰색 셔츠에 청바지 전체적인 피부톤도 약간 짙어졌다. 흑발 머리도 부스스하게 변했다. 방콕에 숨어든 ‘장연우’를 그대로 구현했다. 우진은 스탭이 보여주는 거울을 보며 속으로 엄지를 세웠다.
‘오- 대박.’
본인이 직접 살았던 ‘장연우’와 거의 흡사했으니. 이는 강우진만이 아닌 그를 꽤 멀리서 지켜보는 다른 인물에게도 같았다. 사파리 모자를 쓴 최나나 작가 김소향 총괄디렉터 꽁지머리 최성건 외의 몇몇.
“와- 완전 내가 생각했던 ‘장연우’랑 똑같아요! 싱크로율이 무슨···하 어떻게 진짜 떨린다.”
“작가님 애초 ‘장연우’를 우진씨 두고 썼던 거 아니었어요?”
“그 그렇긴 한데 막상 보니까 더 똑같달까?”
“하하하 우리 우진이 마스크가 범용성이 뛰어나죠.”
“아! 우진씨 총 들었다!”
실제 강우진은 방금 스탭에게 총기를 건네받았다. M4 카빈. 극 중 ‘장연우’가 자주 쓰는 소총. 곧 강우진 주변으로 송만우 PD나 무술 감독 스턴트 팀인 에단 스미스 등이 모였다. 태국 현지 스탭도 두 명 포함됐다. 그중 송만우 PD가 우진에게 손짓했다.
“우진씨 편하게 쏴봐요.”
덤덤히 끄덕인 우진이 상당히 자연스레 M4 카빈을 견착하며 전방에 총을 갈겼다.
-탕탕탕탕!
순간 백여 명 스탭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강우진에게 시선 고정. 격발음도 어마어마하게 컸으니까. M4 카빈에서 총구화염이 뿜어지며 탄피도 튀어나왔다. 반동도 격하다. 그야말로 진짜 총과 다르지 않다. 직접 사격한 강우진이 놀랄 정도였다. 당연히 속으로만.
‘워- 퀄 뭐냐??!!’
‘이로운 악’팀은 총기들 역시 거의 실제와 다름없게 준비했다. 핵심 중 핵심이니까. 촬영용이라 총알은 쏴지지 않지만 실제와 다름없는 불꽃과 탄피 배출 등으로 진짜와 거의 흡사한 모습을 완성했다. 진짜 총과 비교하면 당연히 약한 편이나 이 정도면 다분히 실제와 혼동될 정도.
사용할 여러 소품 총기들은 사전에 태국 현지 전문가와 협의해 준비한 것들이었다.
CG를 최소화하겠다는 송만우 PD의 굳은 의지.
이쯤.
-끼익!
폐공장 공터에서 꽤 떨어진 ‘이로운 악’ 팀들의 여러 차가 주차된 곳에 승합차 두 대가 섰다. 차에선 외국인들이 내렸다. 조셉과 메건 ‘유니버설 무비스’의 간부들 포함된 20명 남짓한 무리.
이들은 내리자마자 촬영터의 규모에 놀랐다.
“오우! 스탭들이 상당한데요?”
“그러게. 200명은 넘어 보여.”
“저들의 스탭도 많은데 저기 봐 태국 현지 스탭들도 합친 모양이야.”
“생각보다 촬영 규모가 엄청나군. 작품 사이즈가 큰 건가?”
동시에 다시금 묵직한 총성이 울렸다.
-탕탕탕탕!!
강우진이 재차 쏜 것. 하지만 조셉과 외국인 무리는 처음 들었기에 두 눈을 크게 떴고.
“와우 총격전이 있는 모양인데요??”
“총기 준비도 수준급으로 한 것 같아.”
“총 쏘는 남자를 봐 자세부터 이미 전문간데? 저런 인물들도 섭외했나 보군.”
“당연히 전문가 섭외는 필수지.”
“아니.”
거인 조셉이 비죽 웃으며 읊조렸다.
“저 남자는 배웁니다.”
“···배우라니??”
이 순간.
“배우 맞아요.”
옆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침투했다. 역시 영어였다. 이내 조셉부터 모두가 고개를 휙 돌렸다. 금발에 선글라스 낀 여자가 열댓 명 되는 인원들과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가까울수록 조셉부터 메건 외의 무리 모두의 눈이 훅 확장됐다.
“세 세상에.”
반면 대수롭지 않게 다가온 금발 여자. 아니 마일리 카라는 외국인 무리들 바로 앞에 멈춰서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저 남자 배우 맞아요.”
모두가 귀신이라도 본 듯 입을 쩍 벌렸다. ‘유니버설 무비스’의 간부 중 배 나온 남자가 제일 먼저 반응했고.
“역시!! 내가 어제 본 게 맞았어!”
갈색 단발의 메건이 카라에게 어렵사리 물었다.
“···마일리 당신이 여긴 왜.”
카라는 선글라스 든 손으로 촬영터 안 강우진을 가리켰다.
“당연히 촬영하러 왔죠.”
“촤 촬영??!”
“네. 뭐 100% 저 배우 때문에 온 거긴 해요.”
순간 모두의 시선이 강우진에게 박혔다.
그리고.
“저기 저 금발 여자요.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어요?”
‘이로운 악’의 현장의 스탭들 몇몇이.
“어? 어디?”
“저기 주차장 쪽에.”
카라 쪽을 알아차렸다.< 방콕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