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콕 (8) >
롱테이크 촬영의 핵심은 호흡이었다. 주연 배우 소품 상대 배우 카메라 오디오 짜인 콘티 등. 하나의 카메라에 담기는 수많은 조건의 호흡이 단 한 번에 어우러지며 꽃을 피워야 한다.
그중 하나라도 삐끗하면 바로 NG.
연출자의 입에서 ‘컷’이 뱉어지면 모조리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한다. 그러니 주연 배우는 물론 상대 배역 등 모든 조건은 짜인 콘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다른 생각은 필요 없다. 오직 정확한 타이밍에 명확한 행동만을 보이면 됐다.
그나마 롱테이크 안에 인물이 한 손에 꼽을 정도라면 난이도는 낮은 편이다.
허나 지금의 ‘이로운 악’ 롱테이크같은 경우 인물만 수십 명이 넘었다. 이리되면 배우나 제작진이나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롱테이크를 놓지 못하는 점은 간단했다.
-탕탕탕탕!!
현실감과 타격감.
“아아아악!!!”
“#**((%*!!”
“우익!!”
거친 고양감과.
-우드득!
박진감.
-탕탕!
스피드한 속도감과 생동감에 있다. 카메라는 주연 배우와 같이 움직인다. 그가 달리면 같이 뛰고 그가 구르면 똑같이 굴곡을 표현한다. 시선. 롱테이크에서 카메라는 주연 배우의 눈과 다르지 않다. 그것이 그 물아일체가 관객들로 하여금 집중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끌어 올린다.
자극과 폭력의 연속성.
무엇보다 롱테이크의 백미는 시간을 잊게 만드는 것에 있다.
10분 이상의 분량은 결코 적지 않지만 전체 내용 중 일부분이다. 하지만 컷 없이 진행되는 긴박한 카메라 워크는 연결을 유지하게 되고 보는 사람에게 짧은 시간에 많은 장면을 때려 박는다. 따라서 체감상 10분은 족히 넘은 것 같지만 막상 시간을 보면 5분도 안 지난 것처럼 느낀다.
1분 안엔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롱테이크의 동력이었다.
거기다 주인공의 기술과 실력이 월등하다면 관객들은 절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폭발적인 폭력적인 자극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그것은 곧 흥분으로 직결된다. 현실성 관객들은 주인공과 같이 반응하고 호흡한다.
-탕탕!
즉 주인공이 처한 극한의 상황은 관객들에게도 해당된다. 현재로 보자면 ‘장연우’. 아니 강우진이 그랬다. 관객들은 아니지만 200여 명의 ‘이로운 악’ 제작진 포함 국적 불문 여러 인물은 강우진의 ‘CQC’에 매료됐으며 그의 폭력에 압도됐다.
한쪽에 몰린 태국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배우 오늘 액션씬이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잘못 들었나?”
사전에 정보를 전해 들은 수십 태국 스탭들은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럴 리가. 저걸 보라고 어딜 봐서 처음이라는 거야? 베테랑 그 이상이잖아.”
“심지어 실력이 월등해. 저 정도면 그냥- 즐기고 있는 것 같아.”
“왜 한국의 배우가 헐리웃 쪽 못지않게 ‘CQC’를 해내는 거지? 리허설 때와는···차원이 달라.”
이 와중에도 폐건물 전체로는 강렬한 총성이 끊이질 않았다. 총구화염이 번쩍였고 탄피가 날아다녔다. 핏물이 여기저기서 튀었다. ‘장연우’ 또는 강우진의 얘기였다.
그는 5층 끝에서 두 번째 방에 들어선 참이었다.
-달각!
얼굴에 핏물이 낭자한 우진이 손에 쥔 AK47 소총의 탄피를 대충 빼냈다. 바닥에 널브러진 몸뚱이들. 죄다 가슴이나 얼굴 그리고 머리통이 박살 났다. 그중 한 놈의 가슴팍에 올려진 소총으로 바꾼 강우진이 허리에 끼운 권총을 꺼냈다. 총알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오.”
얼굴의 핏물을 대충 닦던 우진이 작게 웃었다. 바닥에서 뭔가를 발견한 것. 다음 동선까지는 대략 10초. 지금 우진이 보이는 모습은 원래의 콘티에선 없던 움직임이다. 덕분에 1층 모니터 앞에 앉은 송만우 PD가 미간을 좁혔다.
‘뭐야 뭘 본 거지?’
강우진이 바닥에서 연기 나는 것을 주웠다. 타고 있는 담배였다. 조직원 중 하나가 피우던 것. 다음 동선까지 5초. 우진이 거의 다 탄 담배를 길쭉하게 빨았다.
“후우-”
자욱한 연기가 깨진 창문으로 들이치는 햇볕에 선명하게 보였다. 그림이 뽑혔다. 지척에서 들리는 조직원들의 괴성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 핏물로 샤워를 한 강우진 벌겋게 물든 회색 반팔 그에 비해 여유로운 담배 연기. 카메라를 어깨에 멘 촬영 감독은 본능적으로.
-스으.
두 걸음 움직여 옅은 미소의 강우진 얼굴을 조금 당겨 잡았다.
모니터를 보던 턱수염 송만우 PD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여유? 이 긴박한 상황에 저런 완급조절을 생각할 수가 있나 보통? 느긋함을 아득히 뛰어넘는 행동. 짜인 콘티에서 벗어나면 문제였다. 하지만 다음 동선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별수롭지 않다.
뭣보다.
‘···저 행동 하나로 날숨을 부여했어 미쳤다고 밖엔 못 보겠군.’
지금까지의 약 5분간은 들숨이었다. 한마디로 긴장감. 우진은 팽팽한 긴박감을 저 행동 하나로 가벼이 풀어냈다. 찰나의 휴식을 선사한 것. 여기서 송만우 PD는 또 다른 것을 발견했다.
‘연기가 아니야 진정으로 살육을 즐기고 있다.’
강우진이 지금 놀고 있다는 것을.
‘환희와 광기. 그리고 만족감. 저 사이에 감정까지 표현할 느긋함. 새삼 느낀다 저 물건은 괴물이야.’
최나나 작가가 쓴 ‘장연우’를 강우진이 더욱이 발전시켰다. 하지만 거물인 송만우 PD마저도 눈치 못 챈 게 있었다. 그는 ‘프로파일러 한량’의 연출자였다. 그럼에도 ‘박대리’를 알아채지 못한다. 강우진이 보이는 ‘배역합성’은 그만큼 정교했다.
이때.
“$@&@*$@$(*!!!”
괴랄한 외침과 함께 우진이 있는 방의 나무문이 벌컥 열렸다. 들이닥친 것은 복면 쓴 조직원 둘. 다만 입에 담배를 문 강우진은 이미 AK47 소총을 견착하고 있었다. 카메라 정해진 타이밍에 우진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이어 총성 다섯 번.
“억!!”
“으익!”
관자놀이. 심장. 놈들의 몸에서 밖으로 핏물이 폭발했다. 우진이 담배를 퉤! 하고 뱉었다. 몸을 조금 웅크렸다. 견착한 총에서 화약 냄새가 풍긴다. 고함이 들렸다.
“아아아악!!”
뒤쪽. 숨어 있던 조직원이 달려들었다. 길쭉한 칼을 우진의 뒤통수에 휘둘렀다. 강우진은 판단했다.
‘늦다.’
몸을 돌려 격발하는 건 어렵다. 그가 훅하고 누웠다. 길쭉한 칼이 머리통 위 허공을 갈랐다. 칼 든 조직원이 누운 우진에게 바로 붙었다. 칼을 내려찍는다. 기세가 좋다.
-팍!
AK47 소총 몸통으로 칼을 막는 강우진.
놈의 배를 찼다. 휭하니 날아간다. 하지만.
“으으으아악!”
옆에서 두 놈이 더 추가됐다. 둘 다 칼을 들었다. 이번에도 AK47 소총으로 칼을 막았다. 하지만 두 번째 놈의 칼질에 우진이 총을 놓으며 몸을 굴렸다. 카앙 소리가 나며 칼이 바닥을 찍었다. 강우진이 빠르게 일어났다. 눈알을 굴렸다. 바로 옆 식탁에 나무젓가락이 보인다.
-훅!!
길쭉한 칼이 날아든다. 우진이 옆으로 피했다. 바로 집는 나무젓가락. 놈에게 강우진이 붙었다. 옆구리에 무릎 한 방. 크읍 소리가 들렸다. 젓가락은 눈알에 박혔다. 크읍이 비명으로 변했다.
“끼아아악!!”
힘 풀린 놈의 다리에 강하게 로우킥. 휭 하고 돌아 엎어진다. 다시 힘찬 고함이 들렸다.
“아아아아악!!”
두 번째 놈이 칼을 머리 위로 들고 우진에게 달린다. 강우진이 웃었다. 카메라 셋을 한 번에 담게끔 뒷걸음질. 우진의 손이 허리에 간다. 글록17 권총을 재빨리 꺼내 양손으로 파지.
-탕탕!!
총알 두 개가 놈의 목과 얼굴을 뚫었다. 인형처럼 쓰러졌다. 끄으윽 소리. 눈알에 젓가락 박힌 놈이 신음한다. 강우진이 그를 넘어갔다. 물론.
-탕!
머리통을 가볍게 박살 내면서.
“후우- 후훕.”
강우진의 호흡이 약간 거칠다. 밖엔 아직도 조직원이 많을 것이다. 무기는 많을수록 좋다. 우진이 글록17 총알을 확인했다. 부족했다. 바닥에 AK47 소총과 짧은 칼을 챙겼다. 문 앞으로 걷는 그. 카메라가 따른다.
여기서부터는 제대로 총격전이었다.
문 옆에 붙은 우진이 밖을 살짝 살폈다. 세 놈이 우다다 달려온다. 발치에 보이는 반쯤 깨진 화분. 와장창. 달려오는 세 놈의 시선이 잠시잠깐 복도에 깨진 화분에 닿았다. 강우진이 던진 것.
이 순간.
-타다다탕! 탕탕!
AK47을 견착한 우진이 놈들의 가슴과 머리통을 차례로 터트렸다. 계단 손잡이에 핏물이 튄다. 고함이 들렸다. 건너편 복도였다. 모자 쓴 두 놈이 총질했다. 두두두하며 총알이 벽에 박혔다. 우진이 계단 쪽으로 굴렀다. 카메라가 흔들거리며 그를 쫓았다.
4층. 우진의 AK47 총구가 위를 향했다. 다섯 발.
얼굴과 몸통이 터진 두 놈이 차례로 1층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파바박 파편이 튀었다. 방금 계단을 오른 놈들이 쏜 총알이 옆 벽면에 박혔다. 강우진이 총을 들어 두 발을 쐈다.
-탕탕!
첫 놈이 뇌수가 폭발하며 엎어졌다. 그러나 셋이 더 있다. 두다다닥 소음과 함께 총알이 빗발쳤다. 우진이 한 번 구른 뒤 가까운 방에 뛰었다.
“$(*&$@*(@&(*!!”
놈들이 괴성을 지르며 쫓으려 했다. 하지만.
-훅!
강우진이 다시 나왔다. 누운 채 얼굴과 총구만 내밀어 격발. 최소 여섯 발 이상 총격음이 울렸다. 핏물이 낭자한다. 달려오던 놈들의 사지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다. 우르르 쓰러진다. 우진이 눈알을 굴렸다. 바로 앞 시체 허리에 둥그런 게 보였다.
수류탄.
곧장 집은 그가 계단 쪽으로 휙 던졌다. 후발로 뛰어오르던 놈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수류탄! 수류탄!!”
짧은 순간 강우진이 다시 총을 갈겼다. 총알이 몇몇 놈의 머리를 박살냈다. 동시에.
-콰아앙!!
수류탄이 터졌다. 머리통 손과 발 몸통 등이 허공을 날았다. 잠시 조용해졌다. 저 아래 1층에서 목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멀다. 강우진이 몸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총의 총알을 확인. 그리곤 방을 둘러봤다.
“음?”
어린아이들 다섯 정도가 기절해 있었다. 여자 한 명 남자 넷. 가까운 여자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보는 강우진. 여자애는 익숙한 얼굴이다. 이번에 대규모 오디션으로 ‘이로운 악’에 합류한 임해은.
어쨌든 카메라는 우진의 모습을 클로즈업. 눈에 연민은 없다. 그저 물건을 보는 듯하다.
“아닌데.”
그가 찾는 마약왕의 딸이 아니라는 뜻. 하지만 정보는 입력했다. 4층 계단 앞 첫 방에 어린아이 다섯. 정리되면 구출해야 할지 모른다. 이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본인에게 필요했다. 여기에 갇혀 있었다면.
‘양질의 정보를 캘 수 있을지도.’
약속이라도 한 듯 카메라가 천천히 방을 나와 복도로 이동. 뒤이어 AK47을 견착 한 강우진이 슬쩍 복도를 확인했다. 2층쯤에 달려오는 놈들이 보인다.
-탕탕탕!!
첫 놈의 손가락과 어깨가 찢겼다.
“끼아아아악!!”
뒤따르던 놈들이 멈칫했다. 시간을 벌었다. 우진이 총을 갈기며 뛰었다. 지금까지 약 9분. 10분 넘는 롱케이트 씬은 이제 카체이스와 폭발 등이 남았다.
이때였다.
-우두두두!
2층에 있던 조직원들. 즉 태국 배우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사전에 합의된 움직임이 아니었다. 한 명이 스텝이 꼬여 넘어졌고 그 뒤로 다들 걸려 쓰러진 것.
곧 송만우 PD가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컷!! NG!”
NG였다. 동시에 송만우 PD 주변의 수십 스탭들이 달렸다. NG가 났으니 이 컷을 못 쓴다. 재촬영을 위해 세팅을 새로이 해야 했으니까. 자리서 일어난 턱수염 송만우 PD는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아깝다.’
하지만 이 역시 상정한 일. 롱테이크는 반복의 작업이다. 1분을 찍고 NG 2분을 찍고 NG 3분을 찍고 NG. 계속된 재촬영. 이게 연습이 되며 질 높은 컷이 뽑히는 것.
애초 단 한 번의 문제 없이 8분 이상 끌어온 게 기적에 가까웠다.
‘이건 우진씨가 멱살 잡고 끌고 온 거야.’
태국 배우들과의 호흡도 괜찮았지만 역시 남주인 강우진의 기술과 능력이 가히 예상을 훌쩍 넘었기에 가능했다. 이어 시체처럼 쓰러졌던 여러 태국 배우들이 일어났고 달려 들어간 수십 스탭들이 소품들을 챙겼다. 분장팀은 강우진에게 붙었다.
우진은 덤덤했다.
“···”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그 모습이 태국 배우들에겐 퍽 신기하게 보였다.
“숨 한 번 헐떡이는 게 없는데?”
“8분 이상을 혼자 날뛰었는데 힘든 기색이 없는 게 말이 되나?”
“그보다 강우진의 움직임들 봤어? 구경하다가 타이밍 놓칠 뻔했어.”
“퀄이 거의 헐리웃 급이야.”
틀렸다. 강우진은 지금 흥분한 상태였다.
‘와- 미친! 개재밌네 이거!! 아드레날린 개 뿜어져 나온다! 아아 안 돼. 진정해라 이러다 컨셉질 풀린다고.’
과연 첫 액션에 롱테이크는 강우진에게도 신선함을 부여했다.
‘졸라 긴박해. 빨리 또 하고 싶은데.’
그런 우진을 올려다보는 송만우 PD 근방의 거인 조셉과 메건. 둘의 얼굴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딱히 서로 말하진 않았지만 같은 마음이었고.
‘하하 세상에! 저 정도면 헐리웃에서도 바로 먹힌다! 아니 헐리웃 배우 중에서도 저만한 레벨을 가진 건 손에 꼽아!’
‘‘라스트 킬3’ 때의 무술은 애들 장난이었잖아??! 뭐야 대체 저 배우는! 얼마나 거대한 거냐고!’
둘의 주변의 외국인 무리. 즉 조셉이 데려온 스턴트 팀 헐리웃의 ‘유니버설 무비스’ 간부들은 혼이 빠진 얼굴이었다. 미동도 없다. 내가 본 게 현실이 맞나? 그러다 간부 중 배 나온 남자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며 몇 분이었지 지금?”
대답은 거인 조셉이 빨랐다.
“8분 남짓.”
“···8분을 단 하나의 NG 없이 쭉 진행했다고? 가능한 거였나 저게.”
“저 남자는 언제나 상식을 파괴하죠.”
배 나온 남자가 느릿하게 고개를 올려 강우진을 봤다.
“어 어떻게 가능한 거야 그런 게.”
바로 대답이 들렸다. 조셉이 아니었다. 언제 붙었는지 코가 큰 외국인이 실실 웃고 있었다. ‘이로운 악’의 스턴트 코디네이터 에단 스미스였다.
“강우진 그는 특수부대 출신이니까요.”
순간 배 나온 ‘유니버설 무비스’의 간부의 눈이 훅 커졌다.
“트 특수부대?”< 방콕 (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