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깐느 (3) >
태어나 처음 프랑스에 와본 강우진. 니스 공항의 입국장에 들어선 그의 얼굴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
컨셉질이다. 하지만 진짜 알맹이 강우진은 덤덤한 게 아니었다. 잔뜩 얼어붙었다.
왜?
-파바바바바박!!
입국장 문이 열리자마자 번개가 쳤으니까. 기자들이 몰렸다는 건 들었지만 세계 각국의 그들이 막상 눈앞에 있으니 강우진의 심장이 급작스레 뛴 것. 심지어 수백 명.
‘미 미친!! 졸라 신기하네!’
여러 인종의 기자들은 강우진을 미친 듯 찍어댔다. 그가 명확히 누구인지 모르는 게 반이겠지만 일단 찍고 본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쨌든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이 정도의 기자들을 못 본건 아니지만 타국 기자들이 이렇게 섞인 건 처음이었다. 우진은 약간 이세계에 넘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나를 왜 찍는 거냐?? 날 모를 텐데?’
긴장감이 솟은 우진의 발이 굳었다. 저도 모르게 입국장 초입에서 발을 멈췄고 강우진의 뒤를 따르던 꽁지머리 최성건이나 팀원들 그리고 가드들도 발이 멎었다. 최성건이 우진에게 붙어 속삭였다.
“왜? 포토타임? 오케이 근데 가능하면 짧게 하자.”
뭔 소리 십니까? 명백한 오해였다. 우진의 몸은 압박감에 진짜 굳은 거였다. 그래도 최성건 덕에 강우진의 정신이 나름 맑아졌다. 곧 포커페이스를 짙게 만든 그가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스윽.
수백 기자들을 향해 손을 올렸다. 세상 뻔뻔했다. 하지만 그의 진짜를 모른다면 상당히 무던하게 보였을 터. 이때 외신 기자들 사이 한국 기자들이 외쳤다.
“우진씨!! 우진씨!!!”
“안녕하세요!! 강우진씨!! 이쪽 좀 봐주세요!”
“손하트!! 손하트 가능하십니까?!!”
“국내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우진씨!! 첫 칸 영화제 진출인데! 기분이 어떠세요!!”
꽤 많아 보였다. 얼추 30명? 덩치 큰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외치는 중. 그런 그들이 짠했는지 어쨌는지 우진이 손하트를 보였다. 물론 매우 근엄하게.
구경꾼들이 더 몰린다. 이탈했던 기자들도 마찬가지.
외부에 있던 각국의 방송팀들도 속속 공항으로 들어왔다. 정신이 없다. 니스 공항은 한 마디로 사람들로 꽉 찼다. 멀리서 보면 개미 떼와 다르지 않았다. 곧 최성건이 우진의 등을 슬쩍 밀며 말했다.
“움직이자.”
고개 끄덕인 강우진이 발을 뗐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읊조렸다.
‘뭐냐 여기. 꿈인가? 현실감이 없다고. 대가리 터지것네.’
쎈척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약간 벅찼다. 그렇게 우진은 가드들이 가까스로 만드는 길을 따라 어렵사리 공항을 빠져나왔다. 공항 외부에 있던 수많은 관광객들이 핸드폰으로 우진을 찍어댄다. 어쨌든 강우진은 최성건의 안내에 따라 준비된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올 뻔했다.
차 문이 닫히자마자 우진이 포함된 승합차 두 대가 빠르게 바퀴를 굴렸다. 창밖은 대략 5분 넘게도 몰린 사람들이 보였다. 10분 넘게 달린 뒤에야 약간 한산한 도로가 나타날 정도.
이때야 강우진은 실감했다.
‘와- 지리네 진짜.’
자신이 칸 영화제에 발을 들였다는 것을.
이후.
니스 공항부터 칸까지는 차로 대략 1시간 거리였다. 곧 칸에 도착할 강우진. 후드집업을 입은 계속해서 창밖을 내다보는 그의 표정은 딱히 변화가 없었다. 시니컬함이 가득했다. 허나 지금 그의 머릿속은 감격 그 자체였다.
‘와- 진짜···아니 와-’
연신 감탄사가 나왔다. 이유야 심플했다. 칸으로 가는 동안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었으니까. 끝없이 깔린 바다 저 멀리 보이는 섬 그림 같은 해변 중간중간 보이는 영화 같은 마을들 외의 다수.
같은 세상이 아닌 것 같았다.
‘뭐냐고 여기 대체!’
컨셉질이 없었다면 진작에 호들갑을 떨고도 남았을 지경. 배우를 하며 LA나 일본 방콕 베트남까지 나가봤지만 이곳이 제일 충격이었다.
덕분에 강우진은 창밖에 둔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1분 1초가 아깝달까?
와중 우진은 본능적으로 각인된 능력 중 하나를 복기하고 있었다. 뭐겠는가? 여러 언어 중 ‘불어’였다. ‘불어’의 본고장에 왔으니 어디선가 급작스레 쓸 일이 있을 터였다.
이때.
“우진아.”
바로 옆에 앉은 방금 꽁지머리를 다시 묶은 최성건이 검지로 앞쪽을 가리켰다.
“칸에 들어간다.”
칸 영화제가 성대히 열릴 장소에 도착했다는 뜻. 정면을 보니 퍽 커다란 도시의 초입이 보였다. 바다와 해변이 둘러싼 촘촘하게 박힌 건물들 그 건물들과 도로엔 차와 사람들이 그득했다. 순간 강우진은 어린이날 때의 놀이동산을 떠올렸다.
‘와- 씨바! 공항 쪽은 약과였네??! 갈 수는 있냐 이거??!’
오늘 오후에 개막할 칸 영화제 덕분에 도시 칸은 이미 포화였다. 차가 심하게 막힌다. 아니 기어간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그래도 강우진은 심심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볼 게 많았으니까.
지금 이 도시는 그야말로 칸 영화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약 1시간 뒤쯤.
“아! 저기저기!!”
작년에 칸을 와본 스타일리스트 한 명이 외쳤다.
“저기가 칸 영화제 열리는 거기예요!! 아! 이름 뭐더라?!”
대답은 옅은 미소를 지은 최성건이 대신했다.
“팔레 데 페스티발.”
“맞다! 거기!”
매년 칸 영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팔레 데 페스티발’.
여긴 어마무시한 규모의 회장이었다. 입구 정면엔 초대형 광고판이 달렸고 전체적으로는 유리로 뒤덮였다. 큰 홀이 3개 중간 사이즈가 6개쯤 작은 홀은 20개 넘게 분포된 6층짜리 건물. 참고로 이 ‘팔레 데 페스티발’ 건물 앞으로 대형 레드카펫이 깔리게 되고 칸 영화제의 개막식과 폐막·시상식이 열린다.
거기다 이 ‘팔레 데 페스티발’ 내부 대형 뤼미에르 극장에서 ‘경쟁부문’의 20개 영화가 상영된다.
그런 ‘팔레 데 페스티발’ 주변은 얼추 봐도 수천 명 되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워- 돌았네.’
칸 영화제의 메인이니 당연히 관광객들이 반 이상이었다. 모두들 ‘팔레 데 페스티발’을 뒤로 두고 사진 찍기 바빴다. 나머지는 칸 영화제 측의 인원들이었다. 뭐랄까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랄까? 오늘 오후 개막할 칸 영화제 관련인 게 당연했고 해변가 쪽으로도 야외 상영관이 설치되고 있었다.
기자와 방송팀은 촬영하기 바빴고 곳곳에선 인터뷰하는 관광객들도 많다.
‘팔레 데 페스티발’ 앞쪽으론 철로 된 펜스가 입구서부터 수 미터 박혔고 그 중간에 넓은 레드카펫이 깔리고 있었다.
그곳을 찍은 최성건이 강우진에게 말했다.
“저기다. 개막식 시작되면 우진이 네가 걸을 곳.”
최성건의 양쪽 입꼬리는 귀에 걸려 있었다.
“그때 되면 최소 수 만 명이 몰릴 거다.”
이 시각.
해외 쪽엔 어마무시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억이 넘는 팔로워의 세계적 스타 마일리 카라의 SNS였다.
그녀가 정해진 시간에 새 게시물을 업로드했다.
-[여러분! 드디어 새 앨범의 타이틀곡 뮤직비디오 티저가 공개됐어요! 너튜브 채널에 가면 볼 수 있고 이번 새 앨범의 공식 오픈은 10월 12일에···]
이번 새 앨범의 자켓사진이 첨부된 게시글엔 앨범의 공식 오픈일이 포함됐다. 강우진이 참여한 카라의 새 앨범 오픈은 10월 12일. 열흘 정도 남은 상황. 뭐가 됐든 이 게시글엔 삽시간에 무시무시한 양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렸다.
초마다 갱신됐다. 이 정도면 포격에 가까웠다.
전세계적으로 팔로워만 억을 가뿐히 넘을 정도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재밌는 건 여러 국가 언어인 댓글들에서 종종 ‘강우진’의 이름이 보인다는 것. 카라의 새 앨범 작업에 한국 배우가 참여했다는 건 이미 카라의 수많은 팬들 사이에서는 퍽 화제였으니까.
이쯤 카라의 너튜브 채널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직전에 업로드된 뮤비 티저의 조회수는 진작에 수십만 뷰를 넘어서고 있었으니. 이대로면 몇십 분 안에 100만 뷰는 가뿐할 게 빤했다.
뮤비 티저의 러닝타임은 15초.
초반 카라의 새 앨범 타이틀이 등장한 뒤 타이틀곡의 훅이 아주 짧게 들렸고 각종 의상을 입은 카라 역시 등장했다. 그리고 티저의 끝부분에 급작스레 피아노 선율이 재생됐다.
-♬♪
이어 피아노에 앉은 한국 배우. 즉 강우진의 모습이 대략 2초쯤. 무척이나 순식간이었지만 한국의 배우들 통틀어 강우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그도 그럴 게 카라쯤 되는 아티스트의 앨범에 참여할 정도의 능력들을 지닌 배우가 있을 턱이 없으니까.
여러 언어로 된 댓글이 우다다다 달렸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카라 팬들은 자연스레 강우진의 너튜브 채널이나 SNS로 움직였다. 덕분에 강우진이 가진 것들의 수치가 속된말로 떡상한다.
상상 초월이었다.
한편 하늘을 나는 한 비행기 안.
이 비행기의 목적지는 한국이었다. 한국행 비행기 안엔 ‘이로운 악’ 팀이 가득 찬 상태. 다크서클이 자욱한 송만우 PD는 물론이며 최나나 작가나 김소향 총괄디렉터 외의 백여 명 넘는 스탭들. ‘이로운 악’의 해외로케 일정을 마치고 복귀하는 중.
반쯤은 잠에 빠졌고 반은 대화의 꽃을 피운다.
“후- 시간 진짜 금방 갔네요 방콕 촬영이 이렇게 훅 끝날 줄은.”
“촬영 기간 내내 자극이 미친 수준이라 그런 거겠죠? 마일···아니 ‘그녀’ 등장부터 우진씨의 롱테이크 등등.”
“아 근데 진짜 우진씨 액션씬들은- 죽여줬어요 완전.”
“‘그녀’랑 합도 엄청 잘 맞았죠??”
스탭들의 대화에선 강우진이 핵심이었다. 이쯤 동그란 안경을 추켜 올린 최나나 작가가 옆좌석 턱수염 송만우 PD에게 물었다.
“PD님 우진씨는 지금쯤 칸을 휘젓고 계시겠죠?”
피곤한 눈으로 대본을 보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아마도. 뭐 정신없겠지.”
“···어후 엄청 피곤하시겠다. 막 촬영 끝내자마자 가셨잖아요.”
“개막날 시간에 맞춰야 하니 당연하죠. 세계적 축젠데 늦으면 쓰나.”
읊조린 송만우 PD가 돌연 강우진의 첫 만남을 상기했다. 우진이 연예계에 첫발을 들인 것을 가장 최초로 발견한 연출자가 송만우 PD였다. 그는 새삼 강우진의 현 상황이 황당했다.
“‘슈퍼액터’ 예선날이 어제 같은데 그날 봤던 거만한 괴물이 이젠 진짜 거만해도 문제없을 곳에 갔어. 세계적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러.”
최나나 작가가 팔뚝을 쓸었다.
“으- 소름.”
그녀를 보곤 픽 웃은 송만우 PD가 주제를 바꿨고.
“‘장연우’가 잠시 빠졌지만 우린 우리 대로 촬영 속도를 높여야지. 그리고 총괄디렉터님.”
“음? 네?”
옆옆에 앉은 한창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내던 김소향을 송만우 PD가 불렀다.
“우리 ‘이로운 악’ 말입니다 반으로 쪼개서 오픈하는 게 가능합니까?”
“···반으로 쪼갠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
“말 그대로 2분기로 나눠보면 어떻겠냐는 거죠. 12화를 6화 6화로 총 2분기로 텀을 두고 오픈하는 겁니다.”
“아.”
“시즌1 2같은 개념이랑은 달라요.”
보던 대본을 덮은 그가 설명을 이었다.
“지금 ‘이로운 악’의 조건들 등은 초반과 달라진 게 많아요. 액션씬이라든가 ‘CQC’ 대본 그리고 ‘그녀’의 합류까지.”
“그렇죠.”
“사전제작인 건 어차피 디폴트고. 제 생각에는 12화를 한 번에 가기보다는 앞선 1~ 6화의 촬영과 편집을 최대한 빠르게 집중해서 진행 후 오픈하는 게 이득이지 싶어요. 나머지 2분기라 볼 수 있는 7~ 12화는 1분기의 출진 완료가 됐을 때 촬영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음- 1~ 6화를 한 방에 푸는 건 똑같고요?”
“네. 거기다 ‘그녀’의 극비를 오래 지키는 건 사실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어디선가 샙니다 분명.”
넷플렉스 코리아의 김소향 총괄디렉터가 답했다.
“그러니까 PD님 말씀의 핵심은- ‘이로운 악’의 예정 공개일. 그러니까 런칭 일정을 당기자는 게 맞죠?”
“정답.”
“뒤쪽 반을 날린다. 아니지 킵하고 1~ 6화부터 먼저 간다는 거니까- 일정은 꽤 앞으로 당겨지겠는데요? 아니 상당히.”
턱수염 송만우 PD가 엄지와 검지로 주먹 하나 정도의 간격을 만들었다. 그리곤 그것을 반으로 줄였다.
“맞아요. 간단한 계산만으로는 전체 일정에서 반은 날아갑니다.”
반이라? 런칭까지 소요될 기간이 매우 축소된다? 급작스런 송만우 PD의 제안에 김소향이 턱을 쓸다가 미소지었다.
“···솔깃한데요?”< 깐느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