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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악’의 마일리 카라 떡밥을 슬슬 던지자? 강우진과 나란히 걷던 송만우 PD의 걸음이 뚝 멈췄다. 강우진도 마찬가지. 둘 다 시선을 맞춘 채 눈빛으로 대화하는 표정. 반면 송만우 PD 주변의 십수 명 스탭들은 뭐지? 싶은 얼굴이었다.
“···일단은.”
몇십 초간 말 없던 송만우 PD가 주변 스탭들에게 지시했다.
“먼저들 들어가 있어 나는 우진씨랑 얘기 좀 할 게 있으니까.”
“옙!”
조연출 포함 여럿이 거대한 물류창고 비슷한 스튜디오로 발길을 돌렸다. 한예정 등의 우진의 팀들 역시 같았다. 어느새 강우진과 송만우 PD 둘만 남았지만 몇십 걸음 떨어진 곳의 보출 인원들이나 스탭들의 시선은 여전히 집중되는 중.
이에.
“우진씨.”
턱수염 송만우 PD가 묵묵한 얼굴인 우진에게 손짓했다. 스튜디오 옆 구석진 곳을 가리킨 것. 보니 촬영용 소품 등이 바닥에 깔린 쪽이었다. 먼저 발길을 뗀 것은 송만우 PD였고 강우진이 뒤를 따랐다. 뭐 이미 ‘이로운 악’ 팀이 마일리 카라 건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녀에 관한 건은 극비였고 진행 상황은 더더욱 그랬다.
듣는 사람이 없는 게 낫긴 했다.
이어.
-스윽.
구석에 도착한 둘 중 회색 집업 후드를 입은 송만우 PD의 표정이 짐짓 진중했다. 그런 그가 대뜸 바로 앞 우진에게 얼굴을 붙였다.
“마일리 카라 떡밥을 던지자는 게- 그러니까 ‘이로운 악’의 그녀 출연을 바로 오픈하자는 얘기?”
가까운데. 콧김까지 느껴지는 거리에 강우진이 고개를 살짝 뒤로 빼면서도 낮게 답했다.
“비슷합니다 PD님이나 넷플렉스 쪽에서 생각해둔 타이밍이 있으십니까?”
“타이밍. 아니 아직 정해둔 건 없어요. 다만 ‘이로운 악’이 파트를 나눠서 가게 됐고 자연스레 1~6화에 해당하는 파트1의 런칭 일자가 상당히 당겨졌어요. 그래서 마일리 카라 쪽 건도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던져야겠다 싶긴 했지.”
“그렇습니까?”
“음 거기다 아무리 입을 막는다고 해도 한계는 있을 거고. 우리 스탭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방콕 쪽 현지 스탭들까지 컨트롤하는 건 힘드니까. 이건 김소향 총괄도 아는 내용입니다.”
강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송만우 PD가 다시 말했다.
“뭐 나야 우진씨하고 마일리 카라가 얘기된 게 있으면 두 분이 슬슬 오픈하는 게 맞다고 하면 거기에 맞춰야지. 근데···내 개인적인 생각을 좀 붙이자면 솔직히 좀 빠른 감이 있어요.”
국내 드라마판에서 수십 년 구른 거물 송만우 PD였다. 그의 판단은 조금 빠르다는 거였다.
“지금 우진씨하고 ‘거머리’가 칸 영화제로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를 뒤집어놨어. 당장 쏟아지는 기사들만 봐도 확실하지. 보니까 저기- 어디냐 프랑스나 헐리웃은 우진씨 기획 기사들도 뜨더만. 지금까지 한국에 우진씨 같은 배우가 있었냐? 전혀 없었지.”
“···”
“그 덕분에 우진씨의 과거 포함 앞으로의 작품들도 폭발적인 조명을 받고있는 거고. 당연히 ‘이로운 악’도 포함. 특히나 우리 거는 넷플렉스가 중심에 예전부터 전세계로 도전하네 뭐네 사발을 풀어놔서 더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어요.”
설명하던 송만우 PD가 작게 웃었다.
“고맙지 감사하지. 절을 백 번 해도 모자라요. 이만한 홍보는 돈 주고도 못 하니까. 심지어 마일리 카라 새 앨범으로 우진씨가 또 한 번 해외로 인지도 떡상 중이잖아? 어후- 말하고 보니까 이게 또 어마무시하구만. 그러니까 내 말은.”
“당장은 파급력이 충분하다는 말씀이시겠죠. 여기서 ‘이로운 악’의 카라 떡밥을 던지면 좀 화력이 약해질 것도 같고.”
“엎친데 덮친 건 좋지. 솔직히 마일리 카라가 한국의 작품에 출연해? 이건 터무니없는 이슈가 확실해요. 그래서 더 아까운 거고. 지금 던지는 건 좀 시기상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
대답을 들은 우진이 카라 얘기를 꺼냈다.
“일단 마일리 카라 쪽은 언제든 오픈해도 상관없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요?”
“네. 준비는 해둘 테니 사전에 연락만 달라고 했어요.”
“좋구만.”
“그리고 PD님의 생각에 저도 동의합니다.”
“음?”
고개를 갸웃하는 송만우 PD에게 강우진이 더욱 낮은 목소리를 냈다.
“저는 ‘떡밥’만 던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떡밥’만?”
“예. 이미 홍보력이야 넘치는 게 사실입니다. 그것들을 조금 더 ‘이로운 악’에 당겨오면 좋겠죠.”
베테랑 송만우 PD의 눈빛이 달라졌다. 뭔가 눈치를 챈 듯.
“물길을 터놓자?”
“맞습니다.”
덤덤히 읊조린 우진이 말을 이었다.
“대놓고 오픈하는 게 아니라 긴가민가하게 또는 애매하게 떡밥을 던져두자는 겁니다.”
어느새 미소가 번진 송만우 PD가 턱수염을 쓸었다.
“아- 그러니까 스노우볼을 굴리자는 거구만. 공식발표가 아닌 일부러 말을 세어나가게끔 하는 식의. 예를 들자면- 방콕 해외로케 스틸컷 중에 카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걸 툭 던져두는 거지.”
“나쁘지 않네요.”
“현재 그녀나 우진씨가 시끌시끌하니까 금방 소문이야 퍼지겠고 하지만 우리는 일단 입을 다물고 있는 거지. 빌드업. 바싹 말라야 불을 붙였을 때 빠르게 타니까.”
역시 이 아저씨 거물 맞네. 개떡같이 말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는 송만우 PD였다. 우진이 떠올린 아이디어 그 이상에 판까지 짜버리는 관록. 사실 지금 강우진이 뱉은 건은 그간 꽁지머리 최성건을 곁눈질로 봐오며 배운 것이었다.
그냥 되나 안 되나 던져본 건데 송만우 PD가 덥썩 물었다.
“허허 그렇지. 그렇게 물길 터놓으면 찌라시는 알아서 과도해질 거고 지금 터지는 홍보력들이 유지되는 효과도 있겠어요. 재밌겠는데?”
“그렇습니까?”
“거짓말도 아니야. 우린 티저 사진 던져놓고 뜸만 들인 게 다니까.”
오오오 거리는 속과는 달리 딱딱한 얼굴의 우진이 말을 추가했다.
“지금 분위기면 해외로도 금방 퍼질 겁니다.”
후로.
얘기를 마친 강우진과 송만우 PD는 백여 명 스탭들과 수십 배우들이 포진된 뭔가 일본풍의 세트가 즐비한 창고형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터진 것은 박수였다.
-짝짝짝짝짝!
우진의 등장에 ‘이로운 악’ 백여 명 스탭들이 하던 일을 멈추곤 정신없이 양손을 부딪친 것.
-짝짝짝짝짝짝짝!
환호 극찬 감격 젖은 함성이 웅웅 울려 퍼졌다.
“축하합니다!!”
“저 진심으로 새벽에 잠 안 자고 칸 라이브 봤습니다!!”
“우진씨! 축하드려요!”
“남우주연상 받을 때 내가 다 소름 돋았는데!!”
“나중에 칸 트로피 한 번 보여주세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지만 우진은 최대한 컨셉질을 유지하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이어 배우들이 몰려들었다. 애써 무심한 척하는 화린 포함.
“이미 연락하기도 했지만 진짜 축하해요. 라이브 볼 때 무슨 영화 보는 느낌이었는데.”
“감사합니다.”
‘우리네 식탁’에서 첫 인연을 맺은 공룡상의 하강수.
“대박이야 대박. ‘우리네 식탁’ 단톡방도 터졌던 거 알죠?”
그리고 ‘이로운 악’의 주·조연급과 조·단역급의 배우들까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강우진에게 축하를 전했다. 뭐 속으로 방방 뛰는 화린처럼 진심이 가득한 배우들이 있는 반면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배우들도 있었다.
강우진에겐 딱히 상관없었지만.
그렇게 현장은 약 30분 정도 왁자지껄했고 얼추 진정된 다음에야 백여 명 스탭들과 배우들이 촬영 준비에 돌입했다. 우진도 마찬가지. 의상과 메이크업을 위해 여러 스탭들이 그에게 붙었고 얼굴을 내어준 강우진은 무심한 얼굴로 드넓은 세트장을 눈으로 훑었다.
‘듣기야 했는데 더럽게 크네.’
방콕 이후 강우진이 ‘이로운 악’ 촬영터에 온 것은 처음. 특히 이 초초초대형 세트 단지는 혀를 내두를 규모였다.
‘이만한 세트 창고가 총 6개라고??’
지금 우진이 보는 세트장의 모습은 얼추 물류창고 사이즈의 두 배. 반은 일본풍의 가옥이나 건물이 세팅됐고 반은 국내의 가상 공간을 지어둔 상태였다. 그런 세트 창고가 6개나 더 있었다. 여기에 상황에 따른 야외 촬영 등까지 추가.
‘아우- 씨 뭔가 고향에 돌아온 느낌.’
어쨌든 강우진은 이 순간부터 한동안 ‘거머리’의 ‘박하성’을 벗겨내고 ‘이로운 악’의 ‘장연우’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했다. 스케줄은 지옥 이상이겠지. ‘이로운 악’ 촬영 기존에 있던 일정들 밀린 것들 거기에 칸 영화제 관련 파생된 또는 파생될 스케줄도 넘쳤다.
물론 송만우 PD도 뼈를 갈아야 했다.
촬영과 편집을 병행하며 원하는 런칭 날짜에 ‘이로운 악’ 파트1을 오픈해야 했으니까. 어쩌면 ‘거머리’의 안가복 감독보다 강도는 더 셀지 몰랐다.
이때.
“오케이! 리허설 가봅시다!”
준비를 마친 강우진에게 송만우 PD가 외쳤다.
“우진씨 스탠바이!!”
‘이로운 악’이 속력을 높인다.
이어 이른 다음 날.
강우진이 경기도 연천 ‘이로운 악’의 초대형 단지에 도착했을 즈음 언론에서는 새로운 소식을 속속 터트리고 있었다.
『[이슈픽]‘칸 영화제’로 전설 남긴 ‘강우진’과 ‘안가복 감독’ 프랑스와 헐리웃 등 해외 방송 섭외 봇물 터진다』
『해외 뉴스에도 등장한 강우진/ 사진』
한국이나 해외나 들썩이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듯 수많은 이슈가 매시간 대중들을 자극했다.
『[단독]단숨에 ‘글로벌 스타’로 오른 강우진···명품 브랜드 ‘샤낼’ 엠버서더 된다』
『‘샤낼’ 새 앰버서더로 ‘칸의 남자’ 강우진 발탁』
그리고 새 앨범을 공개한 지 약 5일째 되는 마일리 카라 쪽 폭발력은 매일이 경신이었다.
『[이슈톡]‘강우진’과 함께한 마일리 카라의 새 앨범 사흘 만에 판매 100만장 돌파!』
『마일리 카라 새 앨범···‘하루 최다 스트리밍 앨범’ 신기록 강우진 너튜브 구독자와 SNS 팔로워 수 폭증』
빌보드차트 순위가 교체되기까지 며칠 남은 상황 마일리 카라의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alcoholism(feat. WooJin)】|Miley Cara
-조회수 2억회
2억회를 뚫어버렸다.
며칠 뒤 18일 월요일.
시간은 이른 아침 7시쯤. 삼성역 부근의 있는 최근 국내 그 어떤 엔터보다 미친 듯이 바빠진 bw 엔터에서 강우진을 찾을 수 있었다.
-스윽.
출근 시간 전이라 텅 비어있는 사무실에 들어서는 강우진. 모자에 후드를 입은 그는 장수환 등의 팀 인원들과 함께였고 이미 들은 바가 있는지 우진은 곧장 대표실로 움직였다. 대표실 책상엔 꽁지머리 최성건이 하품을 쩍- 하고 있었고.
“어어어 왔냐??”
들어선 우진을 발견한 그가 벌떡 일어났다. 회사에서 밤을 샜는지 어쨌는지 뭔가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우진이 낮게 물었다.
“여기서 주무셨습니까?”
“아-”
말을 늘리던 그가 꽁지머리를 재차 묶으면서도 웃었다.
“어제 회의도 좀 길었고 처리할 것도 이래저래 많았거든. 집에 갈 시간에 그냥 여기서 자는 게 훨씬 이득이다.”
“그렇습니까?”
“걱정마 임마 나한텐 지옥보단 천국이니까. 그나저나 일단 앉아. 시간 얼마나 있지?”
‘이로운 악’의 세트장 출발까지 얼마나 남았냐는 물음.
“30분 정도.”
“오케이 그럼 일단 중요한 건 몇 개만 바로 얘기하자.”
바삐 움직이던 최성건이 책상에 올려둔 종이뭉치들을 들어선 책상에 묵묵히 앉은 강우진의 앞에 내려놨다. 대충 봐도 5부는 넘어 보였고 최성건의 손에서 전달됐다는 건 이 종이뭉치들이 대본이나 시나리오라는 걸 시사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대본하고 시나리오다.”
최성건이 우진에게 대본 시나리오를 넘기는 건 퍽 간만이었다. 당연히 강우진에겐 국내 대본 시나리오가 끝없이 몰리지만 대부분 컷이었다. 애초 소화할 수도 없거니와 우진이 얘기한 것도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강우진은 약간 의아했고.
‘뭐지? 갑자기.’
건너편에 하품하며 앉은 최성건에게 강우진이 물었다.
“이걸 갑자기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비죽 웃는 최성건이 읽어보라는 듯 손짓했다.
“일단 읽어 봐.”
“···”
잠시간 최성건을 응시하던 우진이 쌓인 대본 시나리오 중 제일 위의 것을 집어 첫 장을 펼쳤다. 금방 다른 점을 캐치했다.
‘아 이거.’
종이뭉치엔 한글이 아닌 불어가 적혀 있었다. 곧 최성건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끼었다.
“국내 아니고 해외 쪽에서 들어온 대본이랑 시나리오다. 칸 끝난 게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난리야 아주. 문의는 100건 이 넘었고 밑도 끝도 없이 대본 시나리오 보낸 게 그 5부다. 프랑스 쪽이 2개 헐리웃 쪽 영화 2개에 미드 1개.”
해외에서의 입질이 시작됐다는 얘기였다.
순간 급격한 신기함을 느낀 강우진이었지만 가까스로 냉정함을 유지했다.
“···”
이어 최성건이 다시 말했다.
“원문으로 된 게 편하지? 한 번 훑어봐.”
강우진의 영어 불어 실력을 아는 최성건이었기에 대본·시나리오는 한글 번역이 안 된 원본이었다. 우진이 말없이 대본 시나리오들의 표지를 확인했다.
그러다.
‘음?’
우진이 세 번째 종이뭉치에서 멈췄다. 헐리웃 쪽 시나리오. 영어로 된 타이틀 때문이었고 낯익기도 했다.
-‘쥬라기 랜드4’
무심함이 짙은 강우진이 속으로는 흥분했다.
‘아니 시발? 공룡은 못 참지.’< 연쇄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