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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 카라가 한국의 작품에 출연해? 모자 쓴 남자 기자의 말에 여자 기자가 파마기 있는 긴 머리를 쓸며 바로 되물었다.
“장난치는 거야?”
남자 기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잠시간 그를 응시하던 여자 기자가 미간을 좁혔다가 픽 웃었다.
“날 웃긴 거라면 성공했어 올해 들어 가장 황당한 농담이네.”
농담 취급. 그럴 만했다. 마일리 카라는 이미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울트라급 스타였다. 심지어 배우 가수 두 영역 모두 말이다. 심지어 최근에 발매한 그녀의 새 앨범은 빌보트차트를 씹어먹는 중. 그만한 영향력을 지닌 슈퍼스타가 대뜸 한국작품에 출연한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모자 쓴 남자 기자는 농담을 되풀이했다.
“아쉽지만 페기 널 웃기려던 건 아니야.”
“그럼 뭐야?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건데? 난 바빠.”
남자 기자가 한 손에 든 태블릿을 들어 그녀에게 건넸다.
“나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왜인지 한국 쪽과 SNS에는 마일리 카라의 소문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거든.”
“···”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여자 기자의 미간이 다시금 구겨졌다. 이어 그녀가 받은 태블릿에 시선을 내렸다. 보니 한국의 기사를 번역한 것과 남자 기자가 SNS에서 가져온 게시물들이 담겨 있었다. 대부분 카라의 팬들이 올린 것들. 한국의 기사 타이틀은 이랬다.
『뜬금없이 터진 ‘이로운 악’ 촬영 사진 속 ‘마일리 카라’! 역시 강우진과의 인연으로 출연 확정?』
남자 기자가 수집한 기사들 대부분이 비슷한 헤드라인이었다. 더군다나 카라의 팬들이 올린 SNS 게시물들에도 기사와 비슷한 내용이 첨가됐다. 다들 말하는 방식은 조금 달랐으나 핵심은 이거였다.
우리 마일리 카라가 한국의 작품에 참여해?
내용들을 훑던 여자 기자가 다시금 파마기 긴 머리를 쓸었다. 이번엔 진지했다. 곧 남자 기자가 설명을 붙였다.
“전부 다 확인한 건 아니지만 한국 쪽 SNS나 커뮤니티에도 이 건으로 시끄러워. 다만 붉어진 지 얼마 안 돼서 헐리웃은 아직 조용하고.”
“···당황스럽네. 갑자기 이런 소문이 도는 이유는 뭐야?”
되물음에 남자 기자가 검지를 들어 여자 기자가 든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 촬영 현장으로 보이는 사진이 출력된다.
“‘이로운 악’라는 한국의 작품 촬영 현장이야 위치는 해외로케로 방콕이었고. 알아보니까 넷플렉스 오리지널로 제작 중인 모양이야. 어쨌든 여기 이 남자 배우가 강우진.”
“강우진- 이번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탄.”
“그래 그의 ‘내년엔 아카데미상을 노리겠다’는 선전포고 비슷한 수상소감을 보고 페기 네가 어이없어했잖아.”
“알아. 칸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그와 관련된 기사가 많이 깔렸고 이미 헐리웃 쪽에도 말이 많지.”
이미 안다는 듯 고개 끄덕인 남자 기자가 검지를 움직였다.
“소문이 퍼진 이유는 이 금발의 여자 때문이야.”
“···확실히 마일리 카라처럼도 보여.”
“이 컷이 유출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은데. 너도 알지? 강우진은 이번에 마일리 카라의 앨범에도 참여했어 과거에 그녀가 한국에 갔을 땐 강우진의 너튜브 채널에 출연했고.”
“이번 칸에도 자주 투샷이 잡혔지.”
“쓸만하지 않아? 저번에 빚진 것도 있고 이 건은 페기 너한테 줄게.”
여자 기자가 다시금 태블릿 속 금발의 여자를 내려봤다. 현재 마일리 카라는 세계적으로 핫했다. 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도 있었지만 역시 빌보드차트를 쓸어 먹은 그녀의 새 앨범 반응이 워낙 폭발적이었다.
즉 지금 마일리 카라의 소식이 매우 잘 팔린다는 뜻.
이내 서 있던 여자 기자가 다시금 의자를 빼내 앉으며 덮었던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곤 책상에 엉덩이를 붙인 옆의 남자 기자에게 다시 물었다.
“강우진 마일리 카라- 아 그 한국작품 제목이 ‘이로운 악’이라고?”
‘이로운 악’이 해외에 번질 징조였다.
이후.
‘이로운 악’의 촬영 세트장이 있는 강우진은 스탠바이 10분 전이었다. 그런 그의 주변에 있는 팀원들은 죄다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한국과 일본 동시에 터지고 있는 반응을 확인하고 있는 것.
“오빠! ‘거머리’ 관객수 78만이요! 78만!!”
“미쳤어! ‘실종의 섬’이 첫날 얼마 나왔더라???”
“70만쯤!”
“헐!! 8만이나 더 많다고??!”
“‘거머리’로 또 역대 기록 깨지는 건가?!”
“와- 아무리 칸 영화제 홍보력이 있다곤 하지만 평일에 78만···대박.”
“‘낯기생’은? ‘낯기생’ 결과 나왔나?”
안 듣는 척하고 있던 강우진이 근엄하게 끼었다.
“88만.”
스타일리스트 등의 팀원들 흥분이 광분으로 바뀌었다.
“88만!!! 첫날보다 많잖아요! 어?? 근데 오빠 어떻게 알고 있어요?”
“전화 받았어.”
“우와! 88만! 진심 처음보는 수치예요! 일본 언론들 ‘낯기생’ 망한다고 지랄지랄하더니! 꼴 좋다!”
“야야 아무리 그래도 지랄지랄이라니.”
“아니 기사 보니까 좀 빡치더라구요!”
그만큼 ‘낯기생’과 ‘거머리’는 나란히 미친 실적을 내고 있었다. 어제까지는 ‘낯기생’만 기록을 경신했다면 오늘은 두 작품 모두 하늘을 훨훨 날았다. 88만과 78만 관객수는 양국의 기록을 경신하고도 남을 정도.
이때.
“우진씨!! 축하드려요!!”
“어우- 관객수 진짜 대박이던데요??!”
‘이로운 악’ 수십 스탭들이 묵묵한 강우진에게 몰려들어 축하와 극찬을 쏟아냈다. 그중 몇몇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딱 찍었다.
“이런 거 듣도보도 못 했어요 완전! 한국이랑 일본에 주연 맡은 작품이 동시에 걸리는 것도 미쳤는데 심지어 두 영화 모두 관객수 기록경신!”
두 작품의 공통점은 강우진이 주연이라는 점.
한 배우가 두 나라에 영화를 개봉시키고 그 영화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 경우는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이 같은 상황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최초였다. 우진은 양국에 다시 없을 사상 초유의 사건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어 스탭들 전부가 어마무시한 미래를 점쳤다.
“이러다 진짜 두 영화 모두 막 1000만 넘겨버리면 초초초대박이죠?”
“그보다 더하지! 우진씨는 그냥 전설 되는 거야!!”
금세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방방 뛰었다. 강우진만 빼고.
“아니 근데 우진씨! 이만한 핵폭탄을 터트려놓고 왜 그렇게 침착해요?? 너무 잠잠하잖아요!!”
아니었다. 강우진은 진작에 극심한 어깨춤을 췄었다. 물론 몇십 분 전 속으로만. 지금도 내면으로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흐흐 아 입꼬리 새끼 자꾸 올라갈라 하네. 진정해 강우진. 진정하라고.’
그는 죽어라 심장을 식히는 중이었지만 국내 언론은 그렇지 않았다.
『[이슈픽]칸 황금종려상 ‘거머리’ 개봉 첫날 관객수 78만 명···박스오피스 독보적 1위!』
『‘거머리’ 평일에 78만 동원 2000만 관객수 ‘실종의 섬’보다 첫날 성적 높다!』
『‘칸의 남자’ 강우진 이번에도 통했다 ‘거머리’ 개봉 날에만 78만 명이 봤다!』
‘거머리’의 성적이 발표되자마자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이대로면 2000만 넘을 수도” 칸 뒤집은 ‘거머리’ 78만 관객수 올리며 기록경신』
심지어 개봉 둘째 날인 오늘의 예매율 역시 ‘거머리’가 1위. 그렇기에 쏟아지는 기사에는 각종 기대들이 담겨 우후죽순 파생됐다.
『[무비톡]개봉 첫날 78만·흥행 1위·관객들 호평세례 칸 황금종려상 남우주연상 ‘거머리’ 한국에서도 사고치나?』
언론의 분위기는 최고조였지만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분명 대중들은 ‘거머리’에 거는 기대가 어마어마했을 터. 일단 칸 영화제를 휩쓸기도 했고 세계적 거물들이 영화를 극찬했으니까. 영화의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도 큰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거머리’를 본 관객들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아- 대존잼이네 진짜. 한 번 더 봐야겠다.”
“중간에 장르 바뀌는 거 지렸지? 강우진이 표정 싹 바꿀 때.”
“찾아보니까 그거 리플리 증후군이라더만. 아니 근데 강우진 그거 또라이 아니냐? 연기가 무슨- 신들렸어.”
“솔까 심한호 보이지도 않았음.”
“인정 연기로 강우진 이길 배우 없다고 본다 나는.”
걸었던 기대를 웃도는 쾌락을 맛봤으니까.
[「거머리」/ 2021년 10월 27일 개봉]
[평점 9.5]
[관람객·네티즌 감상평/ 1988명 참여]
-시나리오 연출 배우 싹다 좋았다…소름끼치게…./ r****
-저택에 들어선 강우진이 표정을 달리하는 순간 장르가 바뀐다/ t****
-리플리 증후군. 요즘 인스타 때문에 사람들이 거진 가지고 있다 허구를 진실로 믿는? 여튼 강우진 연기 진짜 잘하더라/ f****
-왜 칸이 이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줬는지 왜 강우진에게 남우주연상을 줬는지 절절하게 이해간다/ h****
-은근 기분이 나쁜 영화…./ 4****
-말이 필요없는 영화고 요즘 시대에 모두 꼭 한 번은 봐야 한다 그리고 강우진은 이제 국내 명실상부 연기력 1등 배우임/ a****
-여운이 남고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인스타를 지웠다/ d****
-이 영화는 리플리증후군으로 현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은 거임 안가복 감독은 천재다/ 6****
-ㅋㅋㅋㅋㅋㅁㅊ강우진은 그냥 진짜 리플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거 아니냐ㅋㅋㅋㅋㅋ/ b****
-왜케 극찬일색임?? 내 눈엔 걍 ㅂㅅ 한 명이 집안 풍비박산 내는 거로만 보이는데/ c****
-강우진 연기 때문에 몇 번이나 팬티 갈아입었다…혼자서 캐리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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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거머리’와 ‘낯기생’의 현지 반응은 서로 극명하게 갈리는 그림이었다. ‘거머리’는 전부터 그리고 개봉과 함께 환영받는 중이지만 ‘낯기생’은 제작부터 지금까지도 욕을 들어먹고 있으니까.
하지만 ‘낯기생’은 원성이 커질수록 비판과 욕설이 난무할수록 더 흥행의 몸집을 불렸다.
『85만+88만! 이틀 만에 173만 돌파한 「낯기생」 개봉 셋째 날인 오늘도 예매율 부동의 1위!』
『논란과 원성이 도리어 힘이 되고 있다? 「낯기생」 혹평이 가득하지만 묵묵히 기록경신 중』
그럴수록 강우진의 언급은 미친 듯이 불어났다. 양국의 연예계 배우 감독 대중들 언론 외의 다수. 두 나라를 발칵 뒤집은 상태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뉴욕 대형 언론사 기사의 헤드라인 “아카데미상에 선전포고한 강우진 그가 준비하는 작품 ‘이로운 악’에 마일리 카라가 보인다”』
어쩌면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며칠 뒤 31일 일요일. LA.
한국이나 일본이나 영화판이 야단법석이다만 LA는 나름 점잖은 편이었다. 그런 LA에 속한 작거나 큰 수많은 영화·배급사 중 다섯 손가락에 드는 영화·배급사의 중형 미팅룸에 낯익은 늙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ㄷ자형 책상 중간에 앉은 노장의 아우라를 풍기는 그.
“···”
말없이 창밖의 LA 풍경을 바라보는 짧은 흰 머리에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 여전한 영물 안가복 감독이었다. 물론 그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안가복 감독이 속한 매니지의 대표와 간부들 몇몇 그리고 통역도 함께였다. 안가복 감독 포함 5명. 모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그렇다면 왜 안가복 감독이 한국이 아닌 LA에 있는가?
그것도 ‘거머리’가 국내 개봉을 한 이 시점에 말이다. 묘한 타이밍이었다. 보통이라면 ‘거머리’가 한국에 개봉했으니 홍보나 마케팅을 위해 안가복 감독도 여기저기 얼굴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헐리웃에 있다.
이때.
“감독님.”
약간 뚱뚱한 매니지 대표가 옆에 앉은 안가복 감독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표정을 보니 흥분했지만 억지로 누르는 느낌.
“‘거머리’ 어제인 토요일 성적 방금 발표 났습니다. 121만 개봉 4일 차 종합 400만 관객 넘겼습니다. ‘실종의 섬’보다 빠릅니다.”
“음.”
짧게 침음 뱉던 안가복 감독이 되물었다.
“‘낯기생’ 쪽은 어떤가.”
“그쪽은 저희보다 더 파죽지세로.”
이때.
-덜컥!
닫혀 있던 미팅룸의 문이 열리며 매니지 대표의 말을 끊었다. 곧 생긴 것이 제각각인 외국인들이 안으로 줄줄 입장했다. 총 4명. 외국인들이 들어서자 대화를 끊은 안가복 감독 포함 전부가 일어나 악수와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영광입니다 안가복 감독님. 칸 영화제에서의 ‘황금종려상’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칸의 정통을 꺾고 수상하시는 모습 정말 대단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약 10분 뒤.
-스윽.
적당한 인사와 대화를 나누던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이어 안가복 감독의 건너편에 앉은 외국인 무리 중 민머리에 안경을 쓴 대충 60대는 돼보이는 외국인 남자가 안가복 감독에게 영어로 말했다. 진심이 팍팍 묻어난 말투.
“감독님 당신에게 우리 영화의 메가폰을 맡기고 싶습니다.”
헐리웃 영화의 감독 제의였다.< 연쇄 (9)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