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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MMGA Chapter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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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써라. 웃어라. 그런데 무엇을 위해 웃어야 하지? 진정한 것이 어디에 있는지 잊었다. 나는 누구이며 지금 짓고 있는 표정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가짜다.

하지만 진짜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백 번 가면을 갈아 끼우니까.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며 환영이다. 본뜻이 희미해진 거짓을 발해야지 속할 수 있다. 등지지 않는다. 세상이 말이다. 질서에 짓눌려진 사회는 환상적이진 않지만 황망하지도 않다. 그러나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낭만은 없고 난장판만이 존재한다.

아아- 지겹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나를 툭툭 건드리는가? 스스로를 묵인하는 지금이 미치도록 황망하다. 이게 내 본심일까? 나의 본연의 심정은 어디쯤 존재하는가. 너무도 까마득하기에 형체도 냄새도 없어져 버렸다.

은은한 괄시는 기분을 상하게 하지만 무시한다.

잠잠한 핍박은 만연하지만 받아들인다.

정적인 차별은 도를 넘지만 귀를 닫는다.

과도한 편견은 반복되지만 적응한다.

뾰족한 멸시는 아프지만 참는다.

···아 이게 뭐지?

엿이나 먹으라지.

이게 끔찍한 광대가 태어난 이유다.

그래 그게 나다.

·

·

·

·

이미 몇 시간 동안 ‘삐에로’의 시나리오를 독파한 안가복 감독. 그런 그가 전율의 잔향 때문인지 방금 봤던 ‘삐에로’의 시놉을 내리며 헛웃음을 뱉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아니 대단하다고 말해야 하나.”

얼마나 재밌는지 잠시 훑으려 했던 안가복 감독은 앉은 자리서 시나리오를 전부 완독해버렸다. 정신을 빼앗겼다. ‘삐에로’를 보는 내내 안가복 감독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나 코앞에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시나리오 ‘삐에로’ 속 주인공 광대는 ‘보통’을 넘는 괴물로 변질되지만 사회가 또는 세상이 보는 그는 괴물이 아닌 벌레였다. 빌런의 각성을 빙자한 난세 속 히어로의 탄생이었다.

변곡과 변주.

지금 안가복 감독은.

‘대체 몇 개의 감정을 보여야 하며 또 감춰야 하나? 수많은 가면은 또 어떻고. 이걸 강우진 그놈이 한다면-’

시나리오 ‘삐에로’를 읽은 그는 강우진의 생각이 절실했지만 반대로 우진이 만약 이걸 깐다고 해도 욕심과 욕망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만큼 ‘삐에로’가 마음에 든 안가복 감독이었다. 특히 이 작품의 웃음기 섞인 어둠이 말이다.

독특한 명암이었고 독한 현실이 절절했다.

다만.

“···이 작품을 내가 요리할 수 있겠는가.”

시나리오에 반한 것과 시나리오를 연출하는 건 전혀 딴 얘기였다. 안가복 감독은 순간 불안함이 엄습했다. 이 막중한 작품을 본인이 손을 댈 수 있겠나 싶어서였다. 영물이며 노장인 그로서도 함부로 추측할 수 있을 정도.

그러다 안가복 감독은 100번째 영화 만에 ‘황금종려상’을 탄 본인과는 달리.

“강우진 그 아이가 보면 콧방귀를 끼겠군.”

단 2년 만에 칸의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우진을 재차 상기했다. 그래 내가 못 한다면 다른 훌륭한 감독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이건 강우진 그 괴물 놈이 해야지 빛을 발하겠지. 그저 이 작품의 전달자가 될지 감독이 될지는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자.

-팔락.

안가복 감독이 다시금 ‘삐에로’ 시나리오의 첫 장을 펼쳤다. 리딩 포함 분석까지 들어갈 참이었으니까.

참고로.

-팔락.

오늘부터 안가복 감독은 며칠간 LA에 머물 터였다.

며칠 뒤 11월 4일. LA.

오후쯤. 헐리웃의 중심지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놀이동산. 아니 헐리웃 ‘빅 파이브’라 일컫는 배급·영화사 ‘컬럼비아 스튜디오’. Stage라 적힌 세트장만 30개가 훌쩍 넘는 데다 여러 컨셉의 촬영장이 구성된 곳. 지금 현재도 촬영이 없는 구간엔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런 ‘컬럼비아 스튜디오’ 내부의 메인 건물엔 지금 순간에도 여러 영화 제작 기획 관련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헐리웃에서도 워낙 거대 배급·영화사라 당연했다.

물론 ‘삐에로’도 마찬가지.

메인 건물의 한 대형 미팅룸에 익숙한 또는 낯선 외국인들이 모여있다. ㅁ자형 책상에 둘러앉았다. 얼추 열댓 명은 될까? 그중에서도 눈에 익은 외국인은 총 4명. 민머리에 안경을 쓴 남자 등 최근 안가복 감독과 미팅을 했던 ‘컬럼비아 스튜디오’ 간부들이었다.

전체적 미팅은 이미 끝물인지 모인 인물들은 진지한 대화보다는 가벼운 말들이 오가는 상황.

“그런데 안가복 감독 연락은 아직인가?”

간부 중 배가 불뚝 나온 남자가 안가복 감독 얘기를 꺼냈다. 가까이 앉은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배 나온 간부가 팔짱 끼며 콧바람을 뱉었다.

“흠- 생각보다 결정이 오래 걸리는군.”

다른 외국인 간부가 말을 보탰다.

“고민이 되기야 하겠지. 언어는 물론 헐리웃과 한국의 영화 제작 시스템은 전혀 다르니까. 분명 쉽게 결정할 사안은 아니야. ‘거머리’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하지만 너무 오래 걸리면 우리로서는 차선도 거론해둬야 해. 시간은 비싸니까.”

“물론이지. 다만 약속한 기간이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삐에로’의 시나리오는 전부 읽었으려나?”

“바로 읽어본다고 했으니 아마도.”

이때 이들 주변에 앉은 안가복 감독과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눴던 민머리 외국인이 턱을 쓸었다.

“이 작품은 꼭 안가복 감독이 맡았으면 좋겠어. 그가 거절한다면 상당히 아쉬울 거야.”

사실 영화 ‘삐에로’의 감독 기용 건은 영화사는 물론 총괄 프로듀서 등까지 모두 얘기가 된 상태였다. 안가복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것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뭐 누군가 불만이 있다고 할지라도 별 상관은 없었다. 애초 헐리웃의 제작 시스템은 철저히 분업화 돼 있으니까.

배급·영화사가 감독을 결정하면 그것으로 끝.

프로듀서와 상의를 거치긴 하지만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감독의 기용에 그다지 불만을 표출하진 않는다. 신경을 안 쓴다는 게 맞을까? 어쨌든 안가복 감독의 얘기가 오가던 중 배 나온 간부가 주제를 바꿨다.

“안가복 감독이 강우진의 얘기를 꺼냈었지? 아무래도 그를 영화에 포함시키고 싶은 듯한 눈치였어.”

“이해는 돼 안가복 감독과 강우진이 합심해서 이번 칸의 이슈를 만들어냈잖아. 뭣보다 ‘거머리’에선 강우진이 핵심이기도 하고.”

“음- ‘거머리’의 강우진 연기는···황당할 만큼 사실적이고 환상적이었지.”

“우리야 스크린으로 그 연기를 봤지만 안가복 감독은 코앞에서 봤을 거잖아. 반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주제가 강우진으로 바뀌었고 민머리 외국인이 끼었다.

“그만한 괴물 같은 연기를 완성하기까지는 우리는 상상 못 할 고통이 따랐을 거야.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자하고 죽기 전까지 분석했겠지. 아니고선 그런 메소드를 넘나드는 마치 배역이 현실로 나온듯한 연기는 불가능해.”

“동감이야. ‘거머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녹였을지 추측도 안 돼. 아마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면 전부 쏟았겠지. 아니 전부를 들이부었을지도.”

“다만 이번엔 ‘거머리’와 사정이 달라. 안가복 감독이 강우진을 선택하고 얼만큼의 시간을 줬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삐에로’는 한정된 시간 안에 캐릭터를 짜고 만들어서 모두에게 보여야 해. 캐스팅보드에 오른 모든 배우가 같지.”

오디션 또는 스크린 테스트를 말하는 것.

“모든 배우에게 공평한 시간이 부여되고 그 안에 배우 나름의 최선을 완성해 보이는 작업. 그것이 ‘거머리’와 ‘삐에로’의 차이점. 물론 강우진의 가치는 높지만 그 차이점이 우려되기도 해.”

“그는 이미 우리의 캐스팅보드에 추가돼 있긴 하지만 조금은 위험성이 존재하지. 헐리웃이 첫 경험인 것도 걸리고.”

“가뜩이나 배우들 간의 전쟁이 펼쳐질 텐데 ‘거머리’완 달리 한정된 시간에 긴장까지 끼면 흔들릴 가능성도 있겠어.”

강우진의 평가는 박하지도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과 마일리 카라 관련 등등으로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우진에게 헐리웃이 생소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헐리웃은 강우진을 경험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헐리웃이 배우들을 기용할 땐 원래도 퍽 빡빡하게 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그렇다 해도 강우진이 흥미로운 배우임은 틀림없지.”

강우진의 헐리웃 인지도가 과거완 달리 수많은 헐리웃 배우들과 같이 거론될 정도로 치솟았다는 점. 그렇게 몇십 분간 대화를 이어가던 이들이 슬슬 자리서 일어났다. 꽤 길었던 미팅을 정리하려는 모양.

그때였다.

“음?”

멈칫한 민머리에 안경 낀 간부가 멈칫했다. 핸드폰이 벨소리를 뱉었으니까. 이어 잠시간 통화를 이어가던 그가 돌연 미소를 지었고 핸드폰을 내린 민머리 간부가 주변 인물들에게 확정적으로 말했다.

“안가복 감독이 ‘삐에로’를 맡겠다는군.”

한편 한국.

오후인 LA와는 반대로 한국은 아침이었다. 대충 9시쯤. 강우진은 서울의 커다란 촬영 스튜디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여러 카메라와 조명 수십 스탭들이 모인 뒤쪽 벽면에 넷플렉스 로고와 ‘이로운 악’의 타이틀이 박힌 앞쪽에 혼자 앉은 강우진.

의상은 네이비 정장에 헤어와 메이크업은 풀세팅.

모든 카메라와 스탭들이 강우진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우진은 지금 ‘이로운 악’의 홍보·마케팅을 위한 소개 영상 촬영 직전이니까. 티저나 예고편 전에 나갈 영상들이니 미리 찍어두는 것이 맞다. 예정된 스케줄은 강우진 솔로로 하나 ‘이로운 악’의 주·조연 배우들이 전부 나오는 게 하나.

이렇게 두 가지 컨셉이 존재했다.

현재 이 스튜디오에 배우가 강우진만 보이는 걸 보면 솔로 컷을 위한 촬영인 듯 보였다. 촬영존 중앙 소품 의자에 앉은 우진의 주변엔 여러 스탭이 붙어 메이크업 수정 중.

“···”

당연히 강우진은 근엄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만 내면으로는 컨셉질과는 동떨어진 생각이 팽배했다.

‘씨 갑자기 떡볶이가 땡기냐. 순대도. 떡볶이 국물에 순대 푹 찍어서 소주 한 잔 갈기면 크-’

뭐 당연하겠지만 살인적인 스케줄로 인해 강우진은 끼니를 거르는 날이 많아졌다. 최대한 스탭들이 챙겨주긴 하지만 정신이 없다 보면 까먹는 일도 수두룩. 그래도 이렇게 뭔가 먹고 싶은 게 번뜩 떠오르는 날이면 무조건 먹어야 했다.

이때 턱수염 남자가 다가왔다.

-스윽.

모자를 푹 눌러쓴 스튜디오 전체를 핸들링하던 송만우 PD였다. 그가 붙자 우진의 메이크업을 수정하던 스탭들이 빠졌다. 이어 촬영 콘티를 우진에게 보인 송만우 PD가 간단히 설명하다가.

“점심부터 바로 ‘이로운 악’ 촬영 넘어가야 하니 이 촬영에 너무 힘 뺄 필요는 없어요. 적당적당히 정해진 대사만 쳐줘요. 나머진 편집으로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PD님. 평소대로 할게요.”

돌연 목소리를 죽이는 송만우 PD.

“것보다 우진씨. 그- 마일리 카라 건은 언제 오픈할 생각이지? 아침에 보니까 해외 쪽 외신들이나 여론들 사이로도 소문이 무성해졌고 국내는 뭐 이미 어뷰징 기사까지 쏟아지던데. 제대로 달궈지긴 했어요. 이 이상 불길을 키우면 냄비가 타겠던데.”

더 후킹을 벌이면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거란 얘기. 곧 강우진이 무심한 얼굴로 답했다.

“안 그래도 오픈할 타이밍이긴 했습니다.”

이로부터 몇 시간 뒤.

어느새 강우진은 서울에서 경기도 연천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이로운 악’의 초대형 세트 단지. 물론 촬영 직전이었고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든 강우진이.

-스으.

‘장연우’를 끌어올렸다. 스탭들이 새삼 놀랐다.

“우진씨 촬영 직전 모습은 볼 때마다 좀 소름 돋지 않아요?”

“맞아. 평소엔 덤덤하다가 카메라만 붙이면 무슨 번개 치듯 확 사람이 바뀌니까.”

“뭔가 ‘프로파일러 한량’ 때보다 더 진해졌어요. 감정 스위치도 더 빨라졌고. 그때도 어처구니없긴 했는데 요즘 우진씨 보면 진짜···그냥 ‘장연우’가 현실에 살고있는 거 같아요.”

삽시간이란 말도 부족할 지경. 동화되는 과정이 전보다 더 짧아졌지만 농도는 짙어졌다. 더군다나 ‘배역의 자유도’가 첨가되며 수 배는 유연해진다.

“하이- 액션!!”

‘삐에로’라고 다르지 않을 터였다.< 연쇄 (1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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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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