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세 (5) >
강우진 얘기로 팽배하던 ‘컬럼비아 스튜디오’의 한 미팅룸 주제가 마일리 카라로 변했다. 삽시간이었다. 간부 한 명이 돌연 얘기를 꺼냈기 때문. 마일리 카라가 한국작품에 출연한다는 게 진짜인 것 같다는.
이에.
“음? 그건 헛소문이라고 결론 난 거 아니었나?”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언론이야 아직 신나게 얘기하곤 있지만 여론은 전혀 믿지 않는 건이었잖아.”
외국인 간부들이 고개를 갸웃했고 얘기를 꺼낸 외국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화면을 돌린 자신의 노트북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 기사는 그저 그런 헛소리치곤 당당해.”
이내 ‘삐에로’ 관련을 얘기하던 간부들 전부가 노트북 앞으로 몰려들었다. 노트북은 여전히 기사를 출력하고 있었다.
『LA TIME/‘마일리 카라’ 한국작품 출연 건은 사실이었다!』
대놓고 확정인 듯 타이틀을 갈겨놨다.
“허- 이게 만약 추측성으로 한 거라면 마일리 카라가 고소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잠깐잠깐 내용을 일단 좀 보자고.”
간부들이 기사의 내용을 훑었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글자들을 읽던 외국인 중 턱에 갈색 수염이 난 외국인 남자가 내용 중 한 부분을 읽었다.
“흥분한 한국의 기자들? 한국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칸의 남자’ 강우진이 ‘이로운 악’에 마일리 카라가 출연한다고 직접 밝혔다?”
“강우진 본인이 직접 얘기한다는 건가? 이거 사실 맞아?”
“일단 사진은 있어.”
“기다려봐 내용을 좀 더 보자고.”
간부 중 한 명이 재차 입으로 내용을 읊었다.
“‘이로운 악’은 넷플렉스 오리지널로 제작되고 있는 한국의 드라마이며 강우진이 주연으로 촬영 중인 작품이다. 그 작품의 방콕 해외로케 촬영 사진이 유출되면서 한국은 물론 헐리웃도 화제였는데 사진 속 찍힌 금발의 여자가 마일리 카라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내내 시끄럽게 이슈가 됐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으나 한국에서 강우진이 마일리 카라의 출연 건을 스스로 확정 지으며···”
기사 내용에는 강우진과 ‘이로운 악’ 마일리 카라가 가득했다. 그리고 확정 내고 있었다. 그녀가 ‘이로운 악’에 출연한다는 것. 사진은 수백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강우진이 박혔다. 아직 헐리웃에 정식 진출하지 않은 한국배우가 이리도 질펀하게 언급된 것은 처음이었다.
어쨌든.
“허- 강우진이 직접 말했다면···”
“마일리 카라는? 그녀도 발표한 건가?”
“아니 카라가 인정했다는 말은 없어.”
“그럼 이 역시 거짓 기사일지도 몰라.”
“글쎄. 강우진이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했겠어?”
“다른 기사들은 없나?”
놀람이 얼굴에 가득한 간부 중 한 명이 노트북을 조작했다. 마일리 카라 관련 다른 기사들을 확인한 것.
“이런 벌써 번지고 있었군.”
비슷한 건의 외신 기사는 이미 퍽 많이 솟고 있었다.
『CNM/한국에 있는 강우진이 직접 밝혔다 “마일리 카라가 내 작품에 출연한 게 맞다”』
전부 출처는 한국 쪽이었다.
한편 뉴욕.
뉴욕 도심에 있는 커다란 방송국. 그런 방송국의 한 드넓은 대기실엔 많은 외국인이 모였고 그중에선 익숙한 금발 여자가 눈에 띈다. 긴 금발을 묶었고 어깨가 드러난 블랙 드레스를 입었다. 풀메이크업의 마일리 카라였다.
곧 있을 미국 유명 토크쇼의 녹화를 기다리고 있는 것.
팀원들과 얘기하던 카라의 시선이 손에 쥔 핸드폰으로 옮겨졌다.
“한국에서 기사화된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엄청 빨랐네 강우진이 정한 타이밍과 장소가 딱 좋았다는 생각이 드네.”
옆에 선 덩치 좋은 메인 매니저 조나단이 답했다.
“아무래도 명품브랜드 파티였고 한국 기자들 말고 외국인 관계자들도 많았을 테니까. 덕분에 이쪽 언론들이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겠지.”
외신 기사들을 훑던 마일리 카라가 긴 다리를 꼬며 옅게 웃었다.
“이렇게 전략적인 언플도 나름대로 재밌는데?”
“흔한 일은 아니야. 이 건 이전에 적당한 설계와 이슈들이 섞여서 적절하게 폭발한 거지.”
“여하튼 지금 한국과 일본에선 강우진이 출연한 영화가 개봉 중이잖아.”
“그렇게 들었어.”
“이미 잘 되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거로 더 손님을 끌 것 같은데?”
“그것도 노림수 중 하나였겠지.”
카라가 옆 의자에 걸쳐진 재킷을 입으며 다시 말했다.
“우리 쪽도 언플에 동참할 거지?”
이미 핸드폰을 귀에 붙인 조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이 건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니까.”
빌보드차트를 휩쓰는 카라의 새 앨범 포함 여러 부분에서 이슈적인 힘을 발휘할 거란 얘기였다. 곧 카라가 강우진에게 DM을 보냈다. 내용은 ‘환상적인 인터뷰였어요.’로 시작해 간단했고 전송을 마친 그녀가 이번에는 자신의 SNS로 넘어가 새 게시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내 차례네.”
강우진을 이어 장작을 추가할 셈이었다.
이후.
명품브랜드 행사를 마친 강우진은 무심하게 밴에 오르긴 했지만 내면으로는 꽤 피로감이 몰려드는 중이었다.
‘어우- 씨. 정신없네 진짜!’
행사 내내 그리고 끝난 뒤에도 수많은 질문들을 받아야 했으니까. 수백 기자들은 물론 참석한 연예인들 등등에게 말이다. 대부분이 당연하겠지만 마일리 카라 관련이었다. 어쨌든 그를 태운 밴은 다음 스케줄을 위해 출발했고 컨셉질 짙은 강우진을 제외한 그의 십수 명 팀들은 난리법석이었다.
“오빠! 파급력 미쳤어요!!”
“봐봐요!! 벌써 외신에서 기사 돌리고 있다니까요??!”
행사에서 강우진이 폭탄선언을 할 거란 걸 이미 알고 있던 이들이었고 그 뒤로 국내는 물론 해외쪽까지 모니터링을 돌리고 있었기에 흥분하는 게 당연지사.
“아! 마일리 카라가 인스타에 글 올렸다!”
“타이밍 대박! 말 맞추신 거예요 이거??”
방방 뛰는 팀원들을 애써 무시한 강우진은 조용히 핸드폰을 들었다. 일단 마일리 카라가 업로드한 SNS 글부터 확인.
‘개빨리 올렸네? 저짝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던 건가??’
그녀가 올린 게시글은 대충 ‘이로운 악’에 출연한 건 맞고 그간 사정이 있어 말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강우진과의 작업은 행복했다 등의 소감도 섞였다. 카라가 올린 게시글엔 이미 핵폭탄이 터진 상태였다. 반쯤 미친 팬들이 우르르르 달려들고 있던 것.
‘워- 댓글 수 뭐냐?? 돌았네.’
세계 각종 언어가 어마무시하게 넘실대고 있었다. 잠시잠깐 구경하던 우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이번엔 외신 기사들을 확인한다.
『LA TIME/‘마일리 카라’ 한국작품 출연 건은 사실이었다!』
과연 마일리 카라라는 이름은 헐리웃 포함 해외를 흔들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카라가 가진 큼지막한 영향력 세계로 초대박 난 그녀의 새 앨범 칸 영화제 등의 이슈 외로 여러 건들이 작용한 결과. 허나 역시 반전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더 눈길을 끄는 법이니까.
묵묵한 강우진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원하던 그림이 연출되고 있었으니까. 외신은 친히 ‘이로운 악’의 소개를 해주고 있었다.
‘내 이름도 이름인데 ‘이로운 악’ 겁내 언급되네. 설계 지렸다.’
칸을 뒤집고 아카데미상에 선전포고한 강우진이 찍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의 넷플렉스에서 제작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만 공개되는 것이 아닌 세계를 노리고 있다 등등등. 공짜로 글로벌하게 홍보되고 ‘이로운 악’.
물론 강우진의 이름도 마찬가지.
해외가 이 지경인데 국내는 어떻겠는가? 강우진이 명품브랜드 행사를 진행하고 있을 무렵부터 포털사이트들을 점령하는 중이었다.
『[속보]헐리웃 슈퍼스타 ‘마일리 카라’ ‘이로운 악’ 출연하는 것 맞다···강우진이 직접 인정!』
『명품브랜드 행사 참석한 강우진 “마일리 카라 ‘이로운 악’ 출연 맞고 촬영분은 이미 끝났다”』
『마일리 카라가 진짜 ‘이로운 악’에? 덤덤히 인정하는 강우진/ 사진』
현장에서 강우진을 직접 봤던 수백 기자들은 물론이며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크고 작은 언론사들이 미친 듯이 달려드는 모양새.
“이거 뭐야?!! 진짜였어??!”
“내용 보니까- 강우진이 직접 인정한 모양인데요???!”
“에이 씨!! 강우진 이거는 어째 조용한 날이 없냐!! 뭐 하고 있어!! 다른 기사 내용 적당히 긁어서 던져!”
“알겠습니다!”
기사가 광적인 속력으로 퍼지니 많은 이들이 내용을 확인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방송국 영화사 제작사 엔터 외의 연예계 전체가 단에 어그로가 끌렸고.
“이야- 이거 찌라시가 아니었어? 그 마일리 카라를 진짜 잡았다고?”
“대체 어떻게 섭외한 거야 이거···몸값만 어마어마할 텐데.”
“넷플렉스가 나선 건가? 근데 본사도 아니고 넷플렉스 코리아가 무슨 힘이 있다고.”
“강우진이 엮였잖아? 칸에서 마일리 카라랑 강우진이랑 친해 보이더만? 둘이 뭐 있는 거 아니여?”
“···같이 앨범 작업하면서 쇼부봤을 지도. 뭐가 됐든 그 마일리 카라라고? ‘이로운 악’에 관심 대폭발하겄는디? 국내든 해외든.”
여론. 즉 대중들의 열광은 드세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헐- 이거 봄? 마일리 카라가 ‘이로운 악’에 출연하는 거 찐이라는데?”
“또 속냐? 구라야 그거.”
“아니아니 강우진이 직접 말했다고 함.”
“엥?? 강우진이? 봐봐. 워- 미친?? 지리네? 진심 마일리 카라가 ‘이로운 악’에 나온다고??”
“카라가 인스타에 글도 올렸네! 인정한다고!”
늦은 아침쯤에 던져진 폭죽의 잔해는 같은 날 오후쯤엔 온 천지에 가득했다. 기사 SNS 너튜브 라디오 블로그 커뮤니티.
-속보)마일리 카라가 이로운 악에 출연하는 거 사실이라고 함. news
-강우진 마일리 카라 근황. jpg
-강우진이 당당히 인정한 뒤 외신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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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듣도보도 못한 사건이었기에 대중들의 광분은 이상하지 않았다. 칸에서 전설을 쓴 뒤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터진 최초의 사태. 여기엔 이번에도 강우진이 주연이었다.
-(링크)왘ㅋㅋㅋㅋㅋㅋㅋㅈㄴ신기하넼ㅋㅋㅋㅋ
-헐리웃 배우가 한국작품 찍는 거 처음아님???
-↑맞음 심지어 마일리 카라는 헐리웃에서도 씹1티어임
-살다살다 헐리웃 개울트라급 배우가 한국작품에 출연하는 날이 오네…..
-이로운악 졸라 기대되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기대되는 것도 있는데….마일리 카라한테 몸값 얼마 줬을지 개궁금
-그면 그 유출된 사진이 카라가 맞는거네?? 어케 숨겼냐 진심ㅋㅋㅋㅋㅋㅋㅋ
-강우진이랑 카라랑 쌉절친인듯ㅋㅋㅋㅋ칸에서도 같이 행진했고 앨범도 같이 작업함 이번에도 비슷한 루트 아닐까?
-댓글 중에 별일아니라는 듯 말하는 새끼가 있는데 이거 개지리는 거 맞음 카라급 글로벌 슈퍼스타가 뭐가 아쉬워서 한국 걸 찍음??
-카라 합류만으로도 이론악은 해외 인지도 개씹떡쌍
한창 이슈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던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로운 악’ 측이 입장하나를 발표했다.
『[공식]넷플렉스 코리아 측 “‘이로운 악’ 파트1 2로 나눠서 공개한다···파트1은 이르면 내년 초 공개될 듯』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다음 날 11월 12일 금요일.
장소는 bw 엔터. 한창 강우진과 ‘이로운 악’ 마일리 카라로 국내가 요동치고 있는 이른 아침. bw 엔터의 회의실에는 꽁지머리 최성건을 비롯한 여러 팀장 이상급의 인물들이 모여 미팅 중이었다. 아직 출근 시간은 아니었으나 긴급회의가 걸린 것. 가뜩이나 최근 bw 엔터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상태였지만 무조건 모여야 했다.
강우진 관련 회의였으니까.
‘낯기생’과 ‘거머리’ ‘이로운 악’ 헐리웃 진출 관련 코 앞인 연말 등등. 이 밖에도 우진과 섞인 핵심 스케줄들은 차고 넘쳤다. 그러니 긴급회의를 소집할 수밖에.
8시 이전에 시작된 회의는 9시 30분이 넘어서야 정리됐고 회의실에서 우르르 나온 팀장급 직원들은 어느새 출근한 팀원들을 호출하곤 각자 흩어졌다.
제일 끝에 나오는 최성건.
bw 엔터 전체는 왁자지껄 그 이상이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어딘가와 통화하는 수십 직원들 끝없이 들리는 키보드 치는 소리 다급하게 소통하는 직원들. 잠시간 도떼기시장을 연상케 하는 bw 엔터를 바라보던 최성건이.
‘나도 슬슬 움직여야지 멍 때릴 시간이 어딨나.’
일단 대표실로 움직였다. 적당히 채비하고 몇 군데 기업들과의 미팅 후 경기도 연천에 있을 강우진에게 붙어야 했다.
-스윽.
그런 그가 대표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대표님!!”
뒤쪽으로 다급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해외파트팀의 남자 팀장이 달려오고 있었고 다가온 팀장이 챙겨온 태블릿을 최성건에게 보였다.
“‘컬럼비아 스튜디오’ 쪽에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삐에로’ 관련 헐리웃의 공룡 영화사 ‘컬럼비아 스튜디오’가 움직였다. 최대한 빨리 강우진과 만남을 원한다는 것. 전달은 안가복 감독이 했겠지만 여기서부터는 ‘컬럼비아 스튜디오’와 bw 엔터가 따로 소통해야 했다.
이때.
“그리고 대표님. 시나리오가 들어왔습니다.”
“시나리오? 아- ‘삐에로?’ ‘컬럼비아 스튜디오’가 다시 보냈나?”
“아니요 그게 아니라.”
해외파트팀 팀장의 표정이 퍽 진중해졌고.
“헐리웃 다른 영화사에서 보내왔습니다. ‘월드 디즈니 픽쳐스’에서요.”
“아- ‘월드 디즈니 픽쳐스’? 어어 이거 또 대단한 곳에서···”
대수롭지 않게 답하던 최성건이 순간 멈칫하며 두 눈을 끔뻑였다.
“···자 잠깐만. 어디라고???”< 위세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