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IWMMGA Chapter 42

You can change the novel's language to your preferred language at any time, by clicking on the language option at the bottom left.

쾌속 (4)

본 촬영을 위해 촬영 존으로 걸어가던 강우진. 그가 처음 송만우 PD와 외국인이 포함된 VFX 팀의 대화를 들었을 땐.

‘응? 뭔가 문제가 있나? 심각하네.’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안 들으려고 해도 외국인 팀의 대화가 들려왔다. 평생 안 들리던 영어가 아주 스무스하게 들리다 보니.

‘오- 그래 뭔 얘기 중인진 알겠네. 와 근데 진짜 대박인데? 새삼 개신기.’

흥미가 동한 강우진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영어를 들었다. 즐기는 것에 가까웠다. 근데 뭔가 잘 못 전달되는 것 같았다. 아 저건 바로 잡아야 되지 않나?

본인이 박대리역 배우다 보니 신경이 쓰였다.

‘나설까?’

그냥 그게 다였다.

‘어차피 언젠간 영어를 쓰게 될 거니까 일찍해도 괜찮겠지.’

솔직히 기껏 언어 능력을 얻었는데 한 번 사용하고픈 마음도 있긴 했다. 실험이 포함됐다. 그래서 강우진은 나섰다. 타겟은 약간 진중한 VFX 팀의 민머리 외국인. 우진이 술술 영어로 뭔가를 설명하자 민머리 외국인이 놀랐다.

우진은 마지막으로 자기소개를 잊지 않았다.

“아 저는 그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입니다.”

무려 외국인이 내 영어를 이해해? 강우진은 무표정을 일관했지만 속으론 어깨춤을 췄다. 외국인과 이렇게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다니.

이쯤.

“···어?”

“???”

강우진의 등장에 그가 뱉는 유창한 영어에 주변에 몰린 사람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수십 스탭들도 배우들도 모두. 시선이 집중됐지만 우진은 민머리 외국인에게 한 걸음 다가가 영어로 설명을 이었다. 흐름을 탔으므로.

톤은 여전히 낮다.

“세상이 색깔로 변하는 건 배역의 뒤틀린 동심을 표현하기 위해서고 동물이나 사람 등을 생명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저 색깔로 인지하는 겁니다. 물건처럼 가볍게 보는 거죠.”

일말의 더듬거림이 없다. 여기서 더욱 놀란 민머리 외국인이 어렵사리 영어로 물었다.

“···폭죽이 터지는 부분은.”

“잔악성을 동화처럼 연출하는 겁니다. 무엇인가를 살해할 때 목에서 터지는 핏물 등을 어린아이가 본다고 상상해보세요. 터지는 피를 빨간 폭죽으로 작가님은 표현하신 거예요.”

“그렇군요. 기괴스러운 동심.”

“맞아요. 이 배역은 자기만의 세상과 심리가 확고해요. 남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을 가졌습니다.”

“강조돼야겠네요.”

“색에 그라데이션이 들어가면 괜찮겠죠. 눈에 띄고 포인트가 될 거라 생각해요.”

우진의 디자인 지식도 포함됐다. 둘의 대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마치 미국인 두 명이 만담을 펼치는 것처럼 보였고 강우진이나 민머리 외국인은 덤덤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주변은 덤덤하지 않았다.

시작은 눈을 크게 뜬 주변 수십 스탭들이었다.

“뭐야? 우진씨 영어 왜 잘해요? 거의 모국어 수준 아닌가?”

“···좀 멋있는데요. 아니 대존멋. 우진씨 영어 톤 미쳤는데.”

“저건···공부해서 하는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요? 미국에 살았던 건가? 막힘이 없어요 단어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거잖아요.”

“와- 저 무심한 얼굴로 영어를 막 대충 툭툭 뱉는데 발음이 또 좋으니까···치인다.”

쉴새 없이 속닥이는 스탭들. 물론 옆에 선 강우진을 보던 송만우 PD는 작게 헛웃음을 뱉었다.

‘그래 이럴 줄 알았지. 확실하네 해외파. 네이티브한 발음부터 그냥 재미교포 수준이야 아니 그 이상.’

류정민 홍혜연 등의 배우들도 조용하진 않았다.

“···저 봐봐. 역시 해외에 있던 거 빼박이네.”

“뭐여? 혜연이 넌 뭘 알고 있었냐??”

“아니.”

“아- 초반에 우진씨 해외파라고 소문 돌았잖아. 그 얘기 아닌가? 여튼 진짜 양파 같은 친구네. 까도까도 뭐가 계속 나와.”

“워- 아니면 데뷔 전부터 헐리웃 노리고 연습한 건가?”

“오빠 저 정도 실력이 몇 년 찍 공부해서 나올 것 같아요? 최소 십수 년은 됐겠구만. 해외에 살았던 것 같아요. 외국인이랑 만담을 펼치잖아요 저거 봐.”

우진과 민머리 외국인은 여전히 평온히 대화를 이어가지만 그들의 주변인들은 점점 더 흥분과 오해가 짙어졌다. 뭣보다 화색을 띤 것은 몇 걸음 떨어진 곳의 꽁지머리 최성건 대표였다.

‘미친···해외에 있었다는 게 영어권이었구만. 저걸 왜 숨겼던 거지. 아니 그냥 딱히 안 한 건가? 그럼 일본어는? 일본 쪽 시나리오는 왜 찾으라고 한 건데. 설마- 영어 일본어 둘 다 할 줄 아나??’

소속 배우인 신인 배우의 영어 실력이 모국어 수준이다. 어떤 대표가 싫어할까. 대신 강우진의 정체는 더욱 미궁으로 빠졌다.

“어쨌든 지금 헐리웃 가져다 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야.”

이때 전율을 느끼는 최성건 양쪽으로 강우진의 매니저 팀이 붙었다. 로드 장수환과 스타일리스트 한예정이었다.

“뭡니까 대표님!! 우진 형님 미국인이었습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요. 어쨌든 영어는 아예 못 하는 탑들도 수두룩한데 우진 오빠 완전 사기캐네요?”

그러거나 말거나 강우진의 시니컬한 영어는 이어졌다.

“살의를 느끼면 세상이 색깔로 변한다. 당신의 말이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돼요.”

“오! 고마워요 이미지에 큰 도움이 됐어요.”

주변의 오해들이야 아랑곳없이 강우진은 속으로 순수하게 기뻐했고.

‘이게 되네? 아니 당연히 되지. 내가 외국인이랑 대화하는 날이 올 줄이야. 짜릿해 겁나 신기하다고.’

꽤 떨어진 곳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마스크 쓴 푸근한 남자. 이미 숙주 송만우 PD에게 착각을 전염 당한 오늘 우진에게 중요한 볼일이 있어 숨어들어온 권기택 감독이었다.

‘송 PD 말이 맞았군. 해외 출신이라더니. 참 알면 알수록 묘한 아이야.’

착각에 전염된 개체수가 단박에 늘어났다.

수십 분 뒤.

현장 검증 씬을 위해 인형이 놓은 촬영존에 수십 경찰들 기자들 구경꾼들이 모였다. 물론 전부 보조출연이었다. 얼추 30명은 넘어 보인다. 그중 반쯤은 표정이 단단했다. 배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머지는 아르바이트로 나온 인원들.

그들은 남녀 할 것 없이 가볍게 쑥덕대기 바빴다. 조금씩 다가오는 ‘박대리’ 역을 맡은 배우를 보며. 즉 강우진이었다.

“저 배우 아까 보니까 영어를 무슨 원어민 수준으로 하더라고요?”

“맞아요 저도 봤어요. 재미교포 같은 건가?”

“그런가 봐요. 처음 본 얼굴인데 신인 배운가?”

그러거나 말거나 수갑을 찬 강우진은.

“···”

무심하게 걸어올 뿐이었다. 그런 그가 수많은 인파 속으로 섞여들었다. 곧 베이비펌 류정민과.

‘영어 관련해서···물어볼까? 아니 과거에 무슨 사정이 있었다고 했으니까 좀 그런가? 표정 보아하니 감정 잡고있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를 묶은 홍혜연 등.

‘궁금해! 궁금해! 하- 뭔 사정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해외 어디서 살았는지 정도는 물어봐도 되려나? 오반가?’

씬을 준비하던 배우들이 강우진을 힐끔댔다. 하지만 우진의 포커페이스가 너무 진했다. 다만 강우진은 속으로 흐흐흐 거리고 있었다.

‘나이스하다 나이스해. 아- 일본어는 어디서 써보지?’

이때.

“우진씨.”

평소 호탕한 느낌의 장태산이 강우진에게 대뜸 물었다. 착각 섞인 속사정을 몰랐으니까.

“미국에 살았어요? 영어를 엄청 잘하더라고?”

동시에.

“오빠!”

미간 좁힌 홍혜연이 그의 입을 막으며 뒤로 당겼다.

“사람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건데 아 좀 눈치 챙겨요.”

“어?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물어보면 안 되는 거냐?”

“쉿쉿.”

이때 수십 스탭들이 몰린 뒤쪽에서 송만우 PD가 외쳤다.

“스탠바이!!”

이제 촬영을 시작하겠다는 사인. 덕분에 여러 카메라들이나 조명 등이 제자리를 잡았고 수갑 찬 우진 역시 영어 관련 생각을 지워내고 시선을 내렸다. 사람 형태의 인형이 보인다.

‘후- 역시 좀 껄끄러워’

불편한 씬이었다.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당도하니 엿같았다.

물론 미리 대본도 읽었고 몇 번이나 상상했었다. 그런 뒤에 결심 아공간에 진입해 리딩(경험)했다. 경험을 끝난 뒤에 강우진은 구역질해댔었다. 연기지만 역시나 생생했고 연기여야 했지만 확실히 각인됐다.

살인. 강우진은 대본 속 세상에서 살인했다.

심지어 아공간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리딩(경험)을 반복했다. 당연히 강우진이 아닌 박대리의 인생이지만 그것을 가지는 강우진이 한 것과 다른 바 없다. 연기다. 연기일 뿐이다. 하지만 강우진은 사람을 죽였다. 그것은 아공간의 세계지만 현실이며 실제였다.

강우진은 죽어도 봤고 죽음을 목격했으며 죽여도 봤다.

고작 두 작품을 진행함에도 강우진은 죽음의 모든 것을 가졌다. 그래 다른 배우들이라면 분석하고 캐릭터를 조형하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가 동반되겠지. 강우진도 어렴풋 알고 있었다.

‘결코 좋은 것만을 경험할 순 없을 거야 앞으론.’

아공간이 무시무시한 능력을 갖춘 것과는 반대로 우진에겐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할 수많은 것들을 이겨내야 했다. 경이로운 것도 있겠지만 지옥 같을 수도 있다. 이것이 어찌보면 아공간의 제대로 된 페널티라고 볼 수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우연찮게 시작한 컨셉질이나 착각들이 은근 도움이 됐던 것 같네.’

남들의 오해와 착각들이 대본 속 배역이 아닌 강우진의 자아를 선명하게 강조해줬고 쎈척과 허세가 가미된 컨셉질이 순간순간 너는 여기 있다며 외쳐줬다.

둘 다 든든한 방패막이가 돼 준 것.

강우진을 강우진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건 어처구니없게도 착각과 컨셉질이었다. 자신을 자꾸 돌아보게 한 것도 그 두 가지였다. 우진은 새삼 어이없다는 듯 속으로 웃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더욱 아끼기로 했다.

‘뭐 어쩌라고? 내가 경험하는 것들은 그저 소유물일 뿐이다.’

이 순간.

-탁!

스탭이 씬 넘버를 외친 후 슬레이트를 쳤고 확성기를 통해 송만우 PD의 사인이 던져졌다.

“하이- 액션!”

동시에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기자들이 미친 듯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려댄다. 그들의 타겟은 당연히 박대리. 구경꾼들은 박대리에게 욕을 쏟아낸다.

“쓰레기 새끼야!! 나가 죽어라!!”

“기생충같은 새끼!!”

“죽어!! 죽어버려!!”

“사형시켜라!!”

하지만.

“···”

수갑 찬 박대리는 그저 그들을 덤덤히 훑는다. 아니 웃고 있나? 그의 입꼬리가 약간씩 움찔했다. 그러다 참지 못했는지.

“푸흡.”

옅은 웃음을 뱉어버렸다. 일종의 무시였다. 그러자 구경꾼들은 더더욱 발광했고 플래시 세례는 몇 배나 증폭됐다. 이때 홍혜연. 아니 악바리 형사 정연희가 박대리의 등을 밀쳤다.

“개짓거리하지 말고 똑바로 해.”

박대리가 고개를 뒤로 돌려 정연희를 본다. 습습하며 냄새를 맡았다.

“좋은 냄새 나요 형사님.”

“···뭐?”

“땀 냄새. 옷도 어제랑 같고. 집에 못 들어가셨나요?”

“입 다물어. 하던 거나 똑바로 해.”

“네 잘할게요.”

생기 도는 박대리의 눈은 기괴하고 공허하지만 그의 입은 작은 미소를 만들어냈다. 마치 얼굴에서 입만 따로 노는 듯한 표정이었다. 곧 박대리는 발치에 놓인 붉은 노끈을 들었다.

-스윽.

천천히 천천히 박대리가 발길을 옮긴다. 바닥에 널브러진 인형을 향해. 이어 가볍게 인형을 발로 찬 박대리가 픽 웃었다.

“조악하네.”

뒤로 덤덤히 행한다. 과거 자신이 자행한 살인을. 인형의 목에 노끈을 돌려 뒤에서 힘을 준다. 과하진 않다. 부드럽다. 그러면서도 박대리의 눈은 앞쪽에 팔짱 낀 유지형을 본다. 박대리가 고개를 약간 꺾었다.

인형의 목에 두른 노끈에 힘을 주지만 타켓은 유지형이었다.

박대리의 온 신경이 유지형에게 던져지니 유지형은 자신의 목이 졸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괜찮다. 저건 박대리의 가벼운 장난이다. 유지형은 작게 미소지으며 박대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때.

-팍!

너무 힘준 탓인지 박대리가 힘주던 노끈이 툭! 하고 끊어졌고 박대리가 뒤에서 안았던 인형 얼굴에 볼을 가져다 댔다. 스윽스윽 볼을 쓸어댄다. 바로 어깨를 작게 으쓱이는 박대리. 시선은 유지형에게 붙었다.

“살았어요 이런 약한 거로는 사람 안 죽어. 새 거 줘요.”

이대로 약 10초간 정적.

그 정적을 깬 것은.

“오오오오케이!!!”

송만우 PD였다.

“굳굳! 좋았어요! 야- 이거 일단 킵하고 그 감정 이어서 바로 실제 컷 가봅시다!”

그의 말이 끝나자 촬영 존에 몰렸던 수십 보조출연자들과 배우들이 쭉 빠졌다. 인형이나 여러 소품도 치워진다. 조명도 몇 개 빠졌다. 스탭들은 신속히 움직였다. 강우진의 손에 채워졌던 수갑도 풀어졌다. 물론 의상도 교체됐다.

강우진은 목 끝까지 지퍼를 채운 검은 바람막이에 모자를 썼다.

어느새 방금의 촬영존엔 인적이 없고 약간 어두컴컴해졌다. 스산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거기에 머리를 파마한 50대 여자가 들어섰다. 단역 배우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스윽.

덤덤한 강우진이 섰다. 이번엔 재연했던 살인의 실제 컷을 찍을 차례. 이어 강우진이 여자 단역 배우의 귓가에 낮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네?”

“아니 좀 과한 씬이니까.”

“아아 괜찮아요. 연기니까. 배우님이 뭐가 죄송해요.”

“제대로 해서 한 번에 갈게요.”

“고마워요.”

여자 단역 배우는 마음을 먹었다. 그쯤.

“하이- 액션!”

송만우 PD의 사인이 던져졌고 대뜸 박대리가 파마한 여자의 뒷머리를 싸잡았다. 그리고 끌어당겼다. 여자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다.

“꺄아악!”

그 비명에 박대리가 하늘을 보며 입을 벌렸다.

“하아-”

욕정과 욕망이 실현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오르가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환희 희열 전율 단어가 어쨌든 그의 입가엔 연습 된 것이 아닌 진짜 미소가 번졌다.

그런 박대리가 머리채 잡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좋아요 아줌마. 좋아요.”

“사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글쎄. 아줌마 오늘 죽을걸?”

박대리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쾌감에 못 이겨 경련이 일어난 것이었다. 못 참겠다 이걸 어떻게 끊어? 중독. 박대리는 담배도 술도 안 하는 남자였다. 그러나 살인에 중독됐다.

그러한 표현이 지금 박대리의 얼굴에 가득했다.

흥분이 고조된다. 짙은 눈동자가 확장되며 숨이 가빠진다. 비죽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이쯤 메인 카메라가 여자와 그녀의 뒤에 선 박대리를 클로즈업으로 바짝 당긴다. 현장감을 위해 약간 흔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대리는 아랑곳없이.

-훅!

여자를 바닥에 꽂았다. 카메라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살려달라는 필사적 메시지였다.

“크흑! 하 하지마! 살려줘! 살려줘!!”

하지만 박대리는 바람막이 주머니서 빨간 노끈을 꺼냈다. 그것을 여자의 목에 감았다.

천천히 느지막하게. 여자가 충분한 위기를 느낄 시간을 준다.

카메라 노끈을 묶는 박대리의 옆모습으로 이동했다. 기뻐하고 있다. 박대리는 선물을 눈앞에 둔 아이 같았다. 현재의 환경과 상황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표정이었다. 그 간극이 만들어낸 기괴함은 말로서 표현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세상에.”

박대리를 모니터로 보던 홍혜연이 입을 막았다.

‘살인이잖아? 왜 진짜 해본 것처럼.’

감탄이 아니었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류정민은 작게 어금니를 물었다.

‘내가 한다면···아니 난 아마 저렇게는 힘들 거야. 무섭다 무서울 정도의 몰입.’

배우들 전원은 박대리를 보며 딱히 감상을 뱉지 못했다. 그저 대단했다. 같은 연기자로서 지금 보는 광경은 실제와 진배없었으니까.

그리고 송만우 PD는 모니터에 얼굴을 박은 채 미동도 없다. 대신에 욕을 뱉었다.

“시발···그렇지.”

입맛도 다셨다. 연출자로서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기에. 모였던 보조출연자들이나 스탭들의 얼굴엔 죄다 충격이 서렸다. 입을 작게 벌리거나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는 이도 있었다.

잔악했으니까.

하지만 박대리의 쾌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노끈으로 목을 묶은 여자를 질질 끌었다.

-지익 지익.

마치 반려동물을 산책시키는 듯한 얼굴이었다. 계속되는 여자의 비명.

“꺄아악! 크흑! 숨! 숨 막혀!”

그럴수록 걸음걸이가 가벼워지는 박대리.

이때.

-스윽.

카메라가 박대리의 정면 얼굴을 바짝 당겨 담았고 박대리가 몸을 숙여 바닥에서 발광하는 여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가 돌연 무표정으로 변했다.

“좀 더. 비명이 좀 더 컸으면 좋겠어요. 좀 덜 꼴리거든?”

박대리와 눈을 맞춘 여자가 손과 발을 부르르 떨었다.

“···아.”

연기가 아니었다.

────────────────────────────────────

────────────────────────────────────

If you have any questions, request of novel and/or found missing chapters, please do not hesitate to contact us.
If you like our website, please consider making a donation:
Buy Me a Coffee at ko-fi.com or paypal
IWMMGA

IWMMGA

Score 9.5
Status: Ongo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