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화 등장 (3)
사실 이 대본리딩장에 모인 헐리웃 배우들이 강우진을 보는 시각은 제각각이었다. 호기심 포함 질투나 시샘 또는 의아함도 있었다. 도저히 이해 못 하는 배우도 존재했다.
강우진이 너무도 비정상적인 행보를 보였으니까.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헐리웃에 경험도 없는 한국배우가 날뛰는 광경은 여기 있는 모두에게 다분히 낯설었다. 그런 헐리웃 배우들 전부는 우진을 보며 입을 다문 상태였다.
눈은 커졌고 행동엔 미동이 없다.
“……”
“……”
와중 크리스 하트넷이 바로 옆 강우진을 보다가 옅게 웃었다. 그리곤 되물었다.
“대본리딩이라 적당히?”
딱딱한 얼굴의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간단한 대답에 크리스는 실소가 터졌다. 힘이 좀 빠졌다 싶어서 물었는데 저 대답을 우진은 주변 눈치 안 보고 너무 당당하게 내뱉었으니까.
‘진짜 적당히 했다고 해도 대답을 저리 대놓고 안 하잖아 보통. 작게 말하거나 돌려 말하지. 그런데 이 남자는- 하여간 뭐 하나 평범한 게 없군.’
뭐랄까 첫 만남에서도 그랬지만 크리스에게 강우진은 난생처음 보는 생명체였다. 보면 볼수록 그랬다. 그래서 더욱이 호기심이 관심의 볼륨이 커지는지도 몰랐다. 크리스는 잠시간 강우진을 보다가 작게 웃었다.
“하하 그랬군요. 그래서 오디션 때와 느낌이 좀 달랐던 거야.”
질렸다는 듯 웃는 크리스 하트넷을 응시하는 강우진. 컨셉질 짙은 표정이었지만 속내로는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왜? 뭐? 왜 웃냐 이 존잘 양반? 대본리딩땐 힘을 좀 빼는 게 맞잖어?’
실제로 강우진은 이번 ‘삐에로:빌런의 탄생’ 대본리딩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적당하게 30% 정도의 힘을 뺐다. 아니 대본리딩땐 대부분 그렇게 하잖아? 그렇다고 대충한 건 아니었다. 나름 국가대표의 명찰을 달고 왔으니 확실히 실력을 선보일 땐 보였다. 그런데 이제 쿨함과 강약 조절을 했을 뿐.
‘여기 있는 외국인들을 모두 자지러지게 하는 것도 재밌겠다 싶은데- 너무 필사적이면 도리어 약해 보일 수도 있고.’
우진이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뭐 근데 적당히 했어도 충분히 놀라 자빠진 거 같은디?’
헐리웃 배우들의 커진 눈과 표정이 그랬다. 얼이 빠진 얼굴. 꽤 의도를 가지고 한 거긴 하지만 제대로 먹힌 듯 보였다.
‘티를 어떻게 내나 싶었는데 크리스가 타이밍 좋게 들어와 줬네 땡큐.’
이쪽에서의 첫 출진이니만큼 확고한 이미지 세팅은 필요했다. ‘개썅마이웨이’에다 얼추 거만해 보이면 성공이었다. 하지만 불필요한 허세는 아니었다. 근거 있는 쎈척이었으니까. 딱 이 정도의 심정이었다 강우진이 생각한 의도 말이다. 과거 ‘프로파일러 한량’ 때와 비슷했다.
자기소개와 같다. 저들은 강우진을 처음 보니까.
다만 우진의 의도완 달리 그의 주변으로 뭔가가 증폭됐다. 그 무언가는 크리스 하트넷을 시작으로.
‘그래……이 남자의 성향이 그런 것도 있겠다만 역시 이리 당당히 말을 한 건 여기 모인 배우들에게 명확한 수준 차이를 심어주려 한 거야.’
모인 수십 헐리웃 배우들 사이로 삽시간에 번졌다.
‘적당히? 지금까지 보인 연기가 전부 최대치가 아니란 소리? 말이 돼? 근데 진짜라면- 우리들에게 격차를 알려준 것?’
‘…뭐지. 이 상황에 허세를 보일 리는 없어. 크리스의 반응도 이상하고. 그가 본 강우진의 진짜가 남아 있다는 얘긴가? 강우진이 지금껏 연기를 설렁설렁했다고? 대체 왜? 설마…짓누르려는 속셈?’
‘세상에 그럼 내가 받은 충격은 어떻게 되는 거야? 고작 적당히 한 연기에 내가 입을 쩍 벌린 게 되잖아. 나뿐이 아닌 여기 있는 모두가 같을 거고. 위압인가? 그 누구도 찍소리 못하게 하기 위한?’
‘방금 것들도 대단했다고! 근데 진짜가 따로 있다고??! 이런!! 대놓고 우릴 찍어 누르려는 건가?!’
착각과 오해였다. 자기들 멋대로 판단했고 나온 답을 한없이 증폭시킨다. 첫째 충격은 지금껏 우진이 보인 여기 리딩장의 모두를 홀리게 한 미친 연기가 고작 ‘적당히’라는 것. 둘째는 진짜를 숨기고 대강한 연기로 모두의 혼을 빼게 만들었다는 것.
그것들을 이 거물이 모인 리딩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행했다?
‘배포가 무슨……아니 그냥 미친놈일 뿐인가?’
왜인지 리딩장의 긴장감이 수 배는 늘어났다. 헐리웃 배우들은 시니컬한 우진의 얼굴을 빤- 히 보며 각자의 생각을 넓혔고 어느새 시나리오에 시선을 내린 강우진은 컨셉질을 단단히 유지했다.
‘얼굴 뚫리겄다 이것들아.’
이를 보던 외국인 기자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고.
“뭐야? 내가 본 강우진 연기가 100%가 아니었다고?”
“그렇게 얘기했잖아 본인이 방금. 적당히 했다고.”
“말이 돼? 나는 소름까지 돋았었다고. 그게 적당히라니- 장난이었겠지.”
“아니. 크리스가 먼저 물었어 그는 오디션 때의 강우진 연기를 직접 봤을 거야. 100%가 아닐 게 분명해.”
“……강우진은 의도하고 이런 퍼포먼스를 벌인 거군. 전부의 시선에 확신이 부족해서 그랬나?”
관계자들부터 헐리웃 배우들의 팀원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모인 게 백여 명쯤 되다 보니 금세 부산스러워졌다. 허나 ‘삐에로’의 총괄 프로듀서 ‘컬럼비아 스튜디오’ 간부 몇몇은 딱히 큰 리액션이 없었다.
그들은 오디션 때 강우진의 진짜 연기를 봤으니까.
대본리딩이 시작되고 우진이 힘을 뺐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 곧 주름진 입가에 미소를 띠는 안가복 감독.
‘‘거머리’ 때가 기억나.’
이미 강우진에 관해선 절절하게 경험해봤던 그였다. 그 역시 과거엔 우진의 힘을 뺀 ‘적당한’ 연기를 보고 감동을 했었다.
‘하지만 실제 첫 촬영이 들어갔을 때 ‘진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지. 설마하니 그보다 더 대단한 게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잠시간 우진을 보던 안가복 감독의 시선이 움직였다. 괴물 강우진을 처음 겪은 헐리웃 배우들부터 그들의 스탭들 키스탭 기자들 등등. 모두의 얼굴이 퍽 볼만했다.
‘추가 핵폭탄 하나 더 터트려볼까?’
이 분위기가 고조된다고 하여 안가복 감독에겐 나쁠 것이 없었다. ‘거머리’를 찍을 때도 우진은 심한호 캐릭터 포함 전체 연기 기준점을 입각시켰다. 결과적으론 배우들 연기 퀄리티가 전체적으로 올랐다.
이어 안가복 감독이.
-스윽.
턱을 쓸면서도 바로 앞 강우진을 불렀다. 그리곤 영어로 물었다.
“이번에도 ‘삐에로:빌런의 탄생’에서 ‘헨리 고든’역 말고도 다른 역들 모두 연기가 가능한가?”
크리스와 헐리웃 배우들 포함 안가복 감독을 제외한 리딩장의 외국인 백여 명 모두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건 또 뭔 소리야? 따위의 느낌.
하지만 강우진의 낮은 톤 영어는 매우 심플했다.
“문제없습니다.”
잠시간의 충격이 모두를 잡아먹었지만 ‘삐에로:빌런의 탄생’의 대본리딩은 속행. 허나 모두의 얼빠진 상태는 지속됐다. 호기심이 동한 크리스 하트넷이 자신의 배역을 강우진에게 내놨으니까.
“정말 다른 역도 가능한 거면 내 배역을 보고 싶은데.”
안가복 감독과 총괄 프로듀서의 허락은 금방 떨어졌다. 이어 강우진은 또 한 번 리딩장을 뒤집었다. 딱히 준비하는 시간 없이 바로 크리스의 배역을 보였으니까. 그것을 보는 크리스는 자신이 목도하고 있는 괴물의 격을.
‘이건 연기를 잘한다는 수준을 아득히 넘잖아- 뭐냐고. 신?’
같은 모양새를 하고는 있지만 알맹이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렇게 충격과 공포가 점철된 대본리딩은 늦은 오후가 돼서야 모두 끝났다. 몰린 배우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강우진에게 달라붙어 질문 세례를 하거나 꽁지 빠지게 리딩장을 벗어나 도망치거나.
어느 쪽이 됐든 강우진에겐 하등 관련이 없었다.
‘응 만족.’
리딩에 참석한 기자들도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다만 그들은 도망친 건 아니었다. 오늘 본인이 본 것들을 최대한 빨리 ‘컬럼비아 스튜디오’가 허락해준 범위 안에서 기사화하고 싶은 마음에 다급했을 뿐.
‘삐에로:빌런의 탄생’ 대본리딩 관련 기사가 헐리웃에 깔리기 시작한 건 몇십 분 뒤였고.
『CNM/대본리딩 마친 ‘삐에로:빌런의 탄생’ 리딩장에 등장한 강우진은 괴물이었다!』
『LA TIME/‘삐에로:빌런의 탄생’ 대본리딩에서 강우진은 모두를 얼어붙게 했다 그는 헐리웃을 가볍게 점령할 것』
대부분 기사의 헤드라인엔 강우진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박혔다. 이를 승합차로 이동 중인 강우진이 확인했다. 겉으로야 담담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미소를 짓는 그.
‘크크 뭘 또 이렇게 빨아줘.’
강우진은 몇 분간 외신 기사들을 확인하다가 한국 쪽 언론을 훑었다.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이슈가 아직 뜨거운 데다.
-강우진은 전설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에미상 10개 부문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진짜 살다살다 이런 일을 현실에서 볼 줄이야
-이로운 악 처음 공개됐을 땐 이렇게까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외국에서 이렇게 인기가 터질 줄이야….뭔가 감동적이다
-ㅠㅠㅠㅜㅜㅠㅜ송만우 강우진님 한국을 빛내 감사합니다ㅠㅠㅠ
-진짜 볼 때마다 자랑스럽다!! 아직 후보에 오른 게 다지만 그래도 이미 레전드 찍음! 이러다 상까지 타면 진심 핵 터지는 거고
-이게 ㅈㄴ대단한 게 에미상 자체도 굉장한 벽이었는데 미드 미묘한 이야기2가 초대박이 났는데 그걸 이로운 악이 누른거라 오지는 거임
-강우진은 진심 한국 문화의 보물임
헐리웃 ‘빅파이브’ 중 3곳을 먹은 강우진의 떡밥을 국내 언론이 흘릴 리 없었다.
『‘삐에로:빌런의 탄생’ 대본리딩 마친 강우진 외신은 극찬 “강우진은 괴물이었다” 어땠길래?』
진작에 펑펑 터지고 있었다. 이후 며칠간 강우진은 간단하게 헐리웃 스케줄을 소화했다. 일단 크리스 하트넷이 ‘강우진 부캐’ 채널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조금은 급하게 정해진 일정이었지만 무리 없이 촬영이 마무리됐고 우진은 ‘월드 디즈니 픽쳐스’와 ‘유니버설 무비스’를 돌았다.
미팅 그리고 여러 언론사나 잡지사들 인터뷰의 연속.
짧은 기간이지만 나름 행사나 파티에도 꽤 참석했다.
『[스타톡]해외 명품브랜드 파트에 참석한 강우진 헐리웃 슈퍼스타들과 인증샷/ 사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강우진이 다시금 한국에 복귀한 건 한주가 지난 뒤였다. 돌아온 강우진은 이번엔 쉬는 타임 없이 바로 스케줄을 쳐냈다. ‘이로운 악’ 파트2의 촬영부터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일정들.
『복귀해 ‘이로운 악’ 파트2 촬영 돌입한 강우진 해외로 ‘야수와 미녀’ 악플은 여전…대본리딩 언제?』
『세계가 주목하는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 강우진…에미상 측 “곧 명확한 시상식 날짜 발표할 것”』
다시금 며칠이 흐르는 건 삽시간이었다.
5월 27일이 밝았다. 어느새 5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한 해의 반이 지나간 것. 이쯤 강우진은 경기도 연천의 ‘이로운 악’ 파트2 촬영이 한창이었다.
“자- 우진씨 바스트 잡고!! 액션!!”
참고로 ‘이로운 악’ 파트2의 촬영은 막바지였다. 강우진이 워낙에 NG 없는 배우로 유명했고 ‘에미상’ 이슈로 기세가 오른 송만우 PD 역시 텐션은 최고치. 제작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미친 속도를 이어간다면.
“우리 크랭크업 다음 달 초라면서요?”
“와- 벌써 다음 달? 파트2 촬영 시작한 게 어제 같은데! 시간 겁나 빠르네.”
“6월쯤 촬영 끝나면 후반 작업이고 뭐고 해서 한- 9월쯤 넷플에 오픈되는 건가?”
“얼추 그런가 봐요. 파트1 국내나 해외나 초초초대박이 났는데 최대한 빨리 걸어야죠.”
“그럼 ‘에미상’ 끝난 다음이 되겠네요 하……‘에미상’에서 상 하나라도 받고 파트2 런칭하면 진짜 완전 딱인데.”
‘이로운 악’ 파트2는 6월에 크랭크업을 올린 후 9월엔 정식 런칭이었다. 이어 이날 밤 퍽 가열찬 촬영을 잇던 세트장 전체로 송만우 PD의 마지막 사인이 터졌고.
“커어엇!! OOOOK!! 우진씨 나이스!!”
송만우 PD와 내일 촬영 관련 대화를 마친 강우진이 자리로 돌아왔다. 격렬했던 촬영을 증명하듯 그가 입은 의상인 정장은 여기저기 찢겼고 얼굴엔 상처 외의 분장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의 진한 포커페이스는 변함이 없었고.
-스윽.
의자에 돌아온 강우진에게 기다리고 있던 꽁지머리 최성건이.
“우진아.”
“예 대표님.”
비죽 웃음을 보였다.
“1시간 전에 연락받았는데- ‘삐에로:빌런의 탄생’ 첫 촬영날 확정됐단다.”
기대의 미소였다.
“6월 둘째 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