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조커 (8)
등장한 강우진이 최성건의 옆에 섰다· 당연히 안가복 감독부터 프로듀서 노라 포스터 외국인 키스탭들의 시선은 그에게 고정· 하지만 우진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고 시니컬한 음성을 다시 뱉었다· 강우진의 눈은 노라에게 닿은 채였다·
“스포라고 볼 순 있겠지만 ‘조커(Joker)’의 모든 걸 보이는 것도 아니죠· 물론 잘못 연출하면 기대감이 식을 수는 있으나 나는 그럴 것 같진 않아요· 무대가 무대인 만큼 기대감은 오히려 증폭될 거라 봅니다·”
“······”
강우진을 가만- 히 보던 인상이 센 느낌의 노라가입을 열었다·
“하지만 우진씨 무언가를 행하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는 법이에요· 높든 적든 실패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굳이 보통을 벗어날 이유는 없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즉 괜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얘기였다·
“우진씨가 ‘에미상’에 ‘조커(Joker)’로 가면 분명 큰 이슈는 되겠지만 그 뒤로는 예측하기가 힘들어요· 프로듀서로서는 반대입니다·”
강한 의견을 피력하는 노라· 허나 강우진도 물러서진 않았다·
‘겁나 세게 나오네? 솔까 반대하면 걍 안 할라고 했는데 저렇게 나오니까 뭔가 오기가 생겨· 말싸움하면 또 나지·’
알맹이 강우진은 배우로서가 아닌 인생의 대부분으로 산 관객의 입장에서 답했다·
“틀린 소리는 아닙니다· 다만 ‘삐에로:빌런의 탄생’은 너무 감추고 있어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알렸지만 정보는 없고 ‘삐에로:빌런의 탄생’ 역시 서막이라곤 하지만 제목과 배우 오픈 뒤론 아무곳도 없죠·”
“······”
“노라· ‘야수와 미녀’가 ‘삐에로:빌런의 탄생’보다 좀 더 크게 화제가 됐던 건 대중들로 하여금 상상할 정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가복 감독이 천천히 끄덕였고 우진이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해 떠들어댈 주제가 많아요 하지만 ‘삐에로:빌런의 탄생’은 적어요·”
막상 물꼬를 트니 뭐가 술술 나오는 강우진이었다· 사실 처음은 그저 재미가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말하는 도중 우진은 스스로를 칭찬할 정도였다· 기특하다 강우진·
이쯤 내내 듣고 있던 안가복 감독이 끼었다·
“감추고 그러는 건 옛날 맛이야· 분장은 빼고 의상과 헤어 정도라면 스포가 아니라 떡밥 정도니 적당하지 싶은데·”
작게 한숨을 내쉬는 노라의 기세가 조금 꺾였고·
“······이건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닙니다· 여기서 결정할 것은 더더욱 힘들구요· 영화사 자체가 허락을 해줘야 가능합니다·”
안가복 감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알아요 그러니 영화사 측에 한 번 얘기를 해봐요· 컬럼비아에서 거절하든 허락하든 그게 깔끔한 거니까·”
“후···알았어요·”
“하지만 영화사 높으신 분들도 이 홍보력을 예측할 겁니다·”
“글쎄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목숨을 걸었으니 도박을 할 거 같진 않네요 전· 어쨌든 이건 ‘컬럼비아 스튜디오’가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읊조린 노라가 핸드폰을 꺼내며 잠시 자리에서 이탈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안가복 감독이 강우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에미상’에서 ‘조커(Joker)’의 의상과 함께 ‘삐에로:빌런의 탄생’의 핵심 내용을 알리려는 게지? ‘헨리 고든’과 ‘조커(Joker)’의 모습· 그걸 자네 자체가 티저가 되어 선보이고 싶은 거지·”
“······”
무던하게 침묵하던 강우진의 속내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핵심 내용이 뭐? 뭔 소리지 이 영물 할아버지·’
이때 통화하던 노라가 다시 돌아왔다·
“영화사에서 내일 아침 미팅을 하자고 하네요 감독님도 참석하세요·”
곧 그녀가 강우진과 시선을 맞췄다·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결론이 나오면 연락드리죠·”
다음 날 뉴욕·
한 메이저 방송사 건물 내의 있는 꽤 커다란 녹화 세트장· 여러 외국인 스탭들과 카메라들이 집중하는 무대 쪽엔 책상 하나와 1인 소파가 놓인 상태였다· 소파엔 정장을 자려 입은 다리 꼰 채 무심한 얼굴인 강우진이 보였다·
그가 여기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과거 미국 3대 토크쇼 중 1등인 ‘제이미 쇼’에 출연했었던 그였고 오늘은 ‘제이미 쇼’와 버금가는 인기의 다른 토크쇼 프로를 녹화 중인 것· 이름은 ‘투나잇 쇼’· 이 토크쇼 역시 퍽 오래된 역사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다·
사실 현재 우진에게 ‘투나잇 쇼’만 섭외가 들어온 건 아니었다·
미국에 있는 모든 토크쇼에서 러브콜이 들어오는 중· 강우진은 헐리웃에서 가장 핫한 남자니까· 다만 우진의 바쁜 촬영 일정상 모든 섭외를 응할 순 없고 이렇게 가까스로 시간이 맞는 프로만 출연하는 중이었다·
‘투나잇 쇼’ 역시 ‘제이미 쇼’와 포맷은 비슷하지만 중간에 예능적인 게임을 하는 코너가 있다·
뭐가됐든 정장 입은 강우진의 녹화는 이미 30분이 넘었다· 대체로 인터뷰 형식의 느낌· 상대는 미국 전체로도 유명한 안경 쓴 MC 사회자였다·
“하하 그렇군요· 그럼 ‘야수와 미녀’ 얘기는 이 정도쯤 하고- 다음은 ‘프라임타임 에미상’으로 대화를 나눠볼까요?”
“예·”
“어어? 혹시 좀 지루하십니까? 표정이 어째 심각한데·”
어 솔직히 좀 그래· 속으로 고개를 끄덕인 강우진이었지만·
‘‘제이미 쇼’도 그랬는데 이것도 그닥 노잼· 역시 나랑 토크쇼는 좀 안 맞어·’
겉으로는 차분하며 의연했다· 냉랭함은 보너스·
“제 평소 모습이 그렇습니다·”
“흠- 혹시 재미없으면 말씀하세요 바로 중단하겠습니다·”
“예· 재미없습니다·”
강우진이 소파에서 스륵 일어났다· 약간 당황한 안경 쓴 MC가 다급하게 훅 우진을 붙잡았다·
“자 잠깐만요! 이렇게 바로??!”
그의 흥분한 영어에 우진은 무심한 얼굴로 다시 소파에 앉았다·
“농담입니다·”
“······무슨 농담을 그렇게 진심으로 해요?”
“뭐든지 그런 편입니다·”
살짝 술렁이던 제작진들이 안도의 숨을 뱉었고 안경 쓴 MC도 허탈한 웃음과 함께 질문했다·
“놀랐잖아요 의외의 모습이 있으시네· 일단 축하부터 드려야겠네요·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거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이로운 악’은 ‘에미상’에 10개 부문 후보에도 올랐죠? 대단합니다·”
“······”
“칸에서도 남우주연상 수상· 한국의 영화제들도 휩쓸었다고 들었어요· 그런 다음에 바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이라니 아무리 봐도 3년 차에 절대 해낼 수 없는 것들인데- 그야말로 인생이 영화군요·”
잠시간 MC는 카메라를 보며 ‘이로운 악’의 미친 행보 ‘에미상’ 관련 이슈들을 읊었다· 그리곤 다시 강우진에게 시선을 맞췄다·
“‘에미상’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의 다른 후보 배우들은 알고 계시죠?”
당연히 우진도 알고 있었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듣자마자 바로 확인했었으니까·
‘나야 얼굴만 아는 정도였는데 주변에선 난리였지· 경쟁 후보들이 개지리는 헐리웃 배우들이라고·’
잠시 과거를 상기하던 우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굉장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영화든 드라마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들이니까· 다들 경력이 10년에서 15년 이상입니다· 그중에서 우진씨만 3년 차죠·”
강우진의 경력이 3년 차인 게 신기한지 안경 쓴 MC는 계속 3년을 강조했다· 이어 그가 주제를 바꿔 다른 것을 물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솔직하게 묻고 싶군요· 에미상’의 남우주연상 결과가 어떨까요· 다른 후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퍽 예민한 질문일 순 있으나 미국의 유명 토크쇼들은 이러한 물음들을 대수롭지 않게 뱉는 거로 유명했다· 위트있게 넘어가도 되고 진지하게 받아쳐도 된다· 컨셉질 짙은 강우진은 일단 좀 고민했다· 물론 속으로·
‘이 안경 쓴 아자씨 뭔가 자극을 원하는 거냐? 흠- 걍 쌩까거나 무난한 건 잘 모르겠다 말하는 건디· 그건 좀 약해 보이지?’
이미 우진은 헐리웃에서 거만한 괴물 배우의 이미지가 강렬했다· ‘노빠꾸’에 ‘개썅마이웨이’인 것도· 즉 컨셉질이 헐리웃과 세계적으로 퍼지는 중· 그러니 나름 재밌는 답변을 내놔야 했다·
‘적당히 무게를 지키면서 포부도 섞는 정도· 해볼 만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직진한다? 이런 걸 좀 간결하고 간지나게 바꿔 말할 게 뭐 없나?’
잔잔한 카리스마를 원했다· 길게 생각하면야 좋은 답이 떠오를지 모른다만 시간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머리를 굴리던 우진은 대강 떠오른 것으로 결정지었다· 약간 귀찮음이 피어오른 것도 있었다·
-스윽·
꼰 다리 방향을 바꾼 강우진이 MC에게 낮은 톤의 영어로 답했다·
“주변을 둘러볼 생각은 없습니다·”
오케이 이 정도면 뭐 포부랑 욕심 같은 것도 넣었다· 그러면서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겠다는 뜻도 내포됐다· 묵묵한 강우진은 만족했다·
‘좀 급하게 답한 건데 나름 괜찮은 듯?’
약 두 시간 뒤·
‘투나잇 쇼’의 녹화가 끝났다· MC나 외국인 제작진들에게 인사를 마친 강우진이 녹화장을 빠져나갔다· 이어 안경 쓴 MC가 제작진들이 모인 곳에 붙어 읊조렸다· 시선은 방금 우진이 나간 문 쪽이었다·
“저 배우 소문으로 듣긴 했는데 상당한 거만함과 포스를 동시에 지녔군·”
“그러게요· 생각보다 여유가 넘쳐서 놀랐어요· 저 정도쯤 되니까 지금 헐리웃을 뒤집어 놓는 거겠죠·”
“그래도 좀 자신감이 과하달까?”
팔짱 낀 MC가 강우진의 대답 중 하나를 떠올렸고·
“흠 ‘주변을 둘러볼 생각은 없습니다’라는 건-”
강우진의 진심과는 전혀 다른 뜻을 뱉었다·
“다른 후보 배우들은 전혀 신경도 안 쓰인다는 거잖아?”
며칠 후 28일 아침 강우진의 LA 집·
강우진이 2층 방의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머리가 산발된 그가 컨셉질 없는 순수한 모습으로 하품을 쩍- 했다· 뒤로 시간을 확인·
“오늘 ‘삐에로:빌런의 탄생’ 스탠바이가 점심쯤이랬나? 아침에 너튜브 촬영 있고·”
오늘 스케줄을 상기하던 우진이 침대서 일어났다· 컨셉질 없이 알맹이 강우진 순수의 모습으로 기지개를 쭉 켜는 그·
“아윽!!”
곧 1층 주방으로 내려가 여유롭게 커피를 내린 우진이 거실 소파 쪽으로 걸었다· 넓은 창문의 커텐을 친 우진이 한 손에 든 커피를 홀짝 마셨고 동시에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느꼈다·
“겁나 어색해 벌써 3주짼데 말이지-”
잠시간 창밖 LA의 풍경을 감상하던 강우진이 가까운 소파에 푹 앉았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출근하기 전 이것저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스윽·
가장 먼저 본 것은 쌓인 연락들· DM부터 시작해 메시지나 메일 등을 확인한 그가 톡으로 진입했다· 톡 역시 쌓일 대로 쌓였다·
그중에서·
“보자-”
금방 만날 최성건의 톡을 가장 먼저 터치했다· 총 3개의 톡· 내용엔 왜인지 기사 링크가 포함이었다· 바로 기사부터 누르는 강우진· 화면에 출력되는 것은 헐리웃 유명 언론사의 기사였고·
동시에·
“이런 미친·”
그가 미간을 좁혔다· 이유야 간단했다·
『LA TIME/‘투나잇 쇼’ 출연 강우진 “‘에미상’ 다른 후보들 안중에도 없다” 선언』
-[‘투나잇 쇼’에 강우진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헐리웃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남자인 그는 ‘에미상’이 포함된 질문에 에미상 다른 후보 배우들은 안중에도 없음을 피력했다······]
기사를 정독하던 강우진이 진심으로 읊조렸다· 황당이 섞였다·
“아오- 씨 이게 다 뭔 쌉소린데·”
이 순간·
-우우웅 우우우웅·
손에 들린 핸드폰이 긴 진동을 뱉었다· 전화였다· 핸드폰 화면에 출력되는 상대는 안가복 감독이었다· 꽤 이른 시간이라 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목을 가다듬었다· 약간의 흥분이 있었으나 침착하게 가라앉혀야 했으니까· 그리곤 핸드폰을 귀에 붙인 그가 입을 열었다· 세상 낮은 톤의 음성이 나왔다·
“예 감독님·”
핸드폰 너머 안가복 감독이 웃음 섞인 투로 답했다·
“기사 봤네 또 한 건 했더군·”
“···딱히·”
“허허 이쪽 기자들이 자네를 좋아하겠어· 이렇게 이슈를 하루걸러 만들어주니 말이야·
”······“
우진은 겉으로나 속으로나 침묵했다· 그 틈에 안가복 감독이 주제를 바꿨다·
“방금 ‘컬럼비아 스튜디오’가 결정을 내렸네 자네 ‘에미상’ 의상 말이야·”
아니 어떠한 확정이었다·
“‘조커(Joker)’가 ‘에미상’ 레드카펫을 밟는 걸 볼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