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야수 (3)
7일·
강우진은 승합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목적지는 ‘삐에로:빌런의 탄생’ 촬영장·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일상이었지만 오늘 그의 승합차 안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뭐랄까 우진의 스타일리스트 등 팀원들이 호들갑인 것·
“헐! 대박대박! 이게 왜 지금 터진 거지??!”
“그니까! 완전 잊고 있었는데! 근데 기사 엄청 나오고 있어요!”
“와- 막상 보니까 그때 생각난다! 진짜 살벌했었는데! 이거 봐요 사진도 있어!”
“사진? 그때 사진도 찍혔었나??”
“영상도 있나 봐요 영상!”
최성건도 나름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 승합차에 탄 모두가 같았다· 죄다 핸드폰을 보며 흥분해댄다· 물론 강우진도 핸드폰을 보고 있다· 팀원들처럼 흥분하진 않았다·
“······”
다만 근엄한 얼굴을 유지하면서도 내면으로는 퍽 고개를 갸웃하는 중이었다·
‘뭐냐 이거?? 왜 이제사 난리법석인 건데?’
이들이 보는 외신 기사들은·
『LA TIME/작년 마일리 카라는 뮤비 촬영장에서 죽을 뻔했다 그녀의 목숨을 살린 것은 화제의 강우진』
작년 마일리 카라의 목숨을 살려준 강우진의 영웅담이었다·
카라와 새 앨범 작업 당시 뮤비 촬영장에서 웬 여자가 마일리 카라를 해하려 할 때 우진이 구해준 일 말이다· 꽤 지난 일이기에 강우진의 기억 속에서 살짝 잊혔었는데 뜬금없이 지금 외신 기자들이 미친 듯이 그 건을 다루고 있었다·
헐리웃 포함 여러 해외 언론사에서 정신없이 기사를 쏟아내는 중·
물론 지금은 약과였다·
이 흐름은 금세 광적으로 변해 헐리웃을 뒤덮겠지·
뭐가됐든 이 건은 최성건이나 강우진이 흘린 건 아니었다·
후로·
‘컬럼비아 스튜디오’ 내의 ‘삐에로:빌런의 탄생’ 촬영 세트장에 도착한 강우진· 그가 등장하자마자 대뜸 백여 명 외국인 스탭들이 과하게 박수를 쳐댔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무슨 시상식을 방불케 하는 열기였고 키스탭들 포함 많은 스탭들이 강우진에게 엄지를 추켜세웠다·
“하하하 우진씨! 아주 굉장한 일을 했던데??!”
“‘이로운 악’을 현실에서 보여줬었구만?? 그걸 왜 여태 숨겼었어요?!”
“내 말이 그 말이야! 마일리를 구한 정도면 헐리웃 진출 초기부터 거의 영웅 취급을 받았을 텐데!”
“지금이라도 알려졌으니 다행이지!”
“보니까 어제까지 넘실대던 악플들 싹 사라졌던데? 다행이야 그나저나 담이 정말 대단해!”
“‘조커(Joker)’가 사람을 구하다니 이상한걸?”
왁자지껄한 상황 속 강우진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
‘아흐- 귀 아퍼 뭐 근데 어느정도 예상한 그림이긴 해·’
경험이 있어서였다· 그것을 언급한 것은 조용히 다가온 안가복 감독이었다·
“자네는 한국이나 헐리웃이나 이슈왕 이미지는 계속 가지고 가는군 신기할 정도야· 근데 한국에서도 비슷한 건이 있지 않았나? 본 기억이 있는데·”
“···예전에 화린씨 일로·”
“아아 그렇지· 맞아 허허· 어째 자네 주변으로는 별의별 일이 다 터지는구만· 여튼 몸조심해 방심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조커(Joker)’가 영웅이 된 묘한 하루였지만 ‘아공간’을 들어갔다 나온 우진은 다시금 필요한 감정과 괴랄한 세상을 끌어올려 촬영에 집중했다· 그의 덕분에 요란하던 촬영장 분위기도 금방 잠잠하게 잡혔다·
“액션·”
그리고 이날 밤·
하루 촬영을 마친 ‘삐에로:빌런의 탄생’ 팀은 뒷정리와 함께 내일 촬영에 관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촬영 콘티에 맞춰 장비를 필요 세트로 이동시키고 키스탭끼리 대화하기 바빴다· 그 사이 턱까지 오는 웨트한 머리에 형형색색 ‘조커(Joker)’ 의상을 입은 강우진은·
-스윽·
여러 외국인 스탭들 포함 총괄 프로듀서 노라 포스터와 함께인 안가복 감독에게 방금 붙었다· 얼굴의 분장을 지운 우진이 다가오자 주름진 얼굴의 안가복 감독이 고개를 돌렸다·
“우진군·”
그의 손에는 시나리오와 촬영 콘티 등이 들려 있었고 속에는 펜으로 휘갈긴 수많은 메모들이 빼곡했다· 이어 안가복 감독이 콘티 한 장을 넘기며 검지로 찍었다·
“내일은 오전에만 솔로 컷 촬영을 진행하고 정오부터 오후 촬영은 투샷 위주로 갈 예정이네·”
강우진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감독님·”
“흠- 아마 크리스와 붙는 씬이 많을 거야·”
참고로 우진은 같은 작품을 찍고 있지만 최근 크리스 하트넷과 만나는 게 드물었다·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다· 한국에서도 대본리딩때 한 번 촬영 끝난 회식 때 한 번 보는 배우들이 즐비했으니까· 대체로 조연이나 조·단역 배우들과 그랬다· 다만 ‘삐에로:빌런의 탄생’에서 우진은 크리스와 붙는 씬이 꽤 있다·
슬슬 둘의 투샷 촬영이 진행되긴 해야 했고·
“알겠습니다·”
작게 고개 끄덕인 우진의 옆으로 모자를 푹 눌러 쓴 짙은 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남자가 다가왔다· 크리스 하트넷이었다· 그의 씬은 약 2시간 전 끝났지만 아직 퇴근하지 않은 모양·
“감독님·”
다가온 그에게도 우진과 같은 설명을 하는 안가복 감독· 크리스가 미소지으며 강우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드디어 만나는군요·”
지금껏 크리스는 강우진의 ‘헨리 고든’이나 ‘조커(Joker)’의 컷에서 이미지 단역처럼 카메라에 담기긴 했지만 인물끼리 서로 대화한 씬은 없었다· 한다면 내일이 처음이었다· 이어 히죽대는 크리스를 가만- 히 보던 우진이·
‘이 존잘 왜케 좋아하냐?’
겉으로는 심히 무던하게 답했다·
“잘 부탁합니다·”
“저야말로·”
딱히 말로 하진 않았지만 크리스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때 트레일러에서 나눴던 우리의 약속을 이룰 날이 왔네요 도전자로서 각오는 됐습니다·’
물론 강우진이 이를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왜케 쳐다보지? 따위의 생각으로 눈을 피하지 않을 뿐· 허나 크리스에겐 이 의미 없는 눈빛이 다른 말로 다가왔다·
‘언제든지 덤비라는 거군·’
이때 촬영 콘티를 보던 안가복 감독이 끼었고·
“내일 둘의 컷은 예민하네· ‘조커(Joker)’ 광기에 관한 첫 신봉자가 나오며 ‘삐에로:빌런의 탄생’의 주제를 관통하는 씬이니까· 그러니·”
점잖은 투로 그가 두 배우에게 요청했다·
“저번에 말했다시피 시나리오에 기반을 둔 애드립이라면 환영이야· 창조적인 자유로운 연기를 기대하지·”
이 순간·
“······감독님·”
내내 대화를 지켜보던 어느새 미간이 약간 좁혀진 총괄 프로듀서 노라 포스터가 안가복에게 속삭였다·
“잠시 얘기 좀 하시죠·”
잠시 뒤·
노라는 조금 떨어진 곳까지 안내한 안가복 감독에게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창조적인 또는 자유로운 연기는 이제 조금 지양하는 편이 좋겠어요·”
그녀가 안가복 감독의 핸들링에 반기를 들었다·
지양하는 편이 좋다? 주름진 얼굴의 안가복 감독은 정면에 선 전체적으로 센 인상의 총괄 프로듀서 노라 포스터를 가만- 히 바라봤다· 표정이 퍽 심각했다· 그녀가 방금 뱉은 반기가 진심이라는 얘기·
‘흠-’
안가복 감독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뱉었다·
‘역시 부딪히는군 하긴 시작부터 조금씩 불티가 튀긴 했어·’
헐리웃 유명 프로듀서 중 한 명인 노라 포스터·
조셉 펠튼과 같은 급의 그녀는 한 번에 여러 작품을 관리하는 조셉과는 달리 현재 ‘삐에로:빌런의 탄생’ 포함 ‘컬럼비아 스튜디오’ 작품들만 진행하고 있었다· 즉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전반적인 핸들링을 맡았다는 뜻· 당연히 노라 혼자 하는 건 아니었지만 뭐가됐든 그녀는 예전부터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컬럼비아 스튜디오’가 목숨을 걸었으니 당연했다·
따라서 ‘삐에로:빌런의 탄생’에 거는 기대와 관심이 지대했고 노라 포스터나 ‘컬럼비아 스튜디오’ 간부들 역시 촬영 세트장에 자주 출몰했다· 노라는 사실상 거의 매일 출근 중· 지금은 약간 노라가 현장 기름칠을 도맡은 모양새에 안가복 감독과 ‘컬럼비아 스튜디오’ 사이의 다리 역할인 셈·
그런 그녀가 안가복 감독의 생각에 태클을 걸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그녀와 안가복 감독의 방향엔 어긋남이 있었다· 큰일이 아니었기에 어찌저찌 넘어갔지만 이번엔 노라가 작정한 듯 퍽 진중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한국이라면 세계관 최강자나 다름없는 안가복 감독에게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을 것·
허나 여긴 광활한 헐리웃이었다·
‘역시 조금 귀찮아·’
아무리 안가복 감독이라도 이곳에서는 그저 고용된 감독이나 다름없었다· 감독 천하인 한국과는 달리 헐리웃은 프로듀서의 힘이 더 막강하고 안가복 감독은 이렇게 프로듀서와 의견이 엇갈리면 합의점을 찾아야 했다·
“애드립이 포함된 창조적 또는 자유로운 연기를 지양해달라· 노라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잠시간 침묵하던 안가복 감독이 묻자 노라 포스터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뗐다·
“···크리스 하트넷과 전체적 배우들에게 비슷한 말을 하셨죠 물론 강우진에게도·”
“맞습니다·”
“당장 들어선 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지만 너무 풀어두면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굴러갈 수 있어요· 배우들의 창의성 자유로움 좋죠· 하지만 역시 시나리오가 확고히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벗어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니까·”
정해진 시나리오에 충실 하자는 얘기· 이에 안가복 감독이 답했다·
“물론 그것엔 나도 찬성입니다· 당연히 배우들의 자유로운 연기의 기반은 시나리오가 될 거고 나의 디렉팅 역시 시나리오가 기준점입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외의 것이 너무 반복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이 쌓이면 나중엔 걷잡을 수 없을 거예요·”
괜한 꼬장은 아니었다·
노라 역시 프로듀서로서 파생된 걱정을 피력하고 있는 것· 지금 굴러가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판은 어마무시했고 ‘삐에로:빌런의 탄생’은 그 거대한 판의 서막을 맡는 작품· 평소보다 몇 배는 예민할 수밖엔 없었다· 뭣보다 경력만 십수 년인 노라는 현장에 자유를 줘서 망하는 작품을 꽤 많이 봐왔다·
“기존의 시나리오도 충분히 관객들의 관심을 끌 정도의 퀄리티죠 그러니 그대로 가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안가복 감독은 노라와 생각이 달랐다·
“나 역시 ‘삐에로:빌런의 탄생’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을 수락했어요· 다만 이 작품은 너무 틀에 박히면 폭발력이 줄어듭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 하는 걸 배우들이 표현하게끔 해줘야 합니다·”
“알아요 그렇기에 강우진 씨의 자유로운 연기들을 인정한 거예요· 감독님의 의견을 묵살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적당히 완급조절을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거죠·”
감독과 프로듀서의 의견이 팽팽하다·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총괄 프로듀서가 우세하다· 이곳은 헐리웃이니까· 허나 안가복 감독은 무려 100편의 영화를 찍어 온 경험 수두룩한 노장 중의 노장·
영물 안가복 감독은·
“······노라·”
고집을 꺾기보다는 협상을 택했다·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요·”
그 역시 ‘삐에로:빌런의 탄생’에 크나큰 의미를 부여했고 경험과 더불어 본능이 여기선 밀어붙여야 한다 외치고 있었으니까·
“강우진과 크리스의 투샷 씬· 이건 일단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그들의 창의성과 자유로움에 맡겨보죠· 그런데 만약 그 연기가 시나리오와 비교해 그리 눈에 띄지 않거나 보기에 탐탁지 않다면 당신의 말대로 다시 찍는 방향으로 가는 거로·”
“······감독님· 모두가 같진 않지만 ‘컬럼비아 스튜디오’ 사람 중에 감독님의 연출 방법을 그리 반기지 않는 이가 있어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겠어요?”
“물론이죠 새 감독을 앉히는 일이 발생해도 나는 그래야겠습니다·”
자를 테면 잘라보라는 것·
어느 때보다 맹렬한 기세인 안가복 감독이었고 그를 빤- 히 보던 노라는·
“···알았어요·”
한 걸음 물러섰다· 감독의 의중이 퍽 단단했고 이 이상 대립이 커지면 현장 분위기가 죽는다· 배우들 사이로 소문도 퍼질 수 있고·
‘일단 촬영까진 가는 게 좋겠어·’
차라리 촬영을 본 뒤 행동하는 게 낫다는 판단·
곧 짧게 침음을 뱉은 노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촬영을 보는 거로 할게요· 다만 내일 ‘컬럼비아 스튜디오’ 사람들이 나올지 몰라요·”
아무 상관 없다는 얼굴인 안가복 감독이 작게 웃었다·
“좋군요·”
답한 그가 노라에게서 벗어나 기다리고 있는 두 배우· 즉 강우진과 크리스에게 붙었다· 우진은 무심한 얼굴을 유지하곤 있지만 속으론 뭐지? 싶었다·
‘둘이 싸우는 거 같던디? 괜찮나?’
이를 알 턱이 없던 안가복 감독이 강우진과 크리스에게 말했다·
“내일 날뛰어 주게·”
다음 날 7월 8일 아침 대형 승합차 안·
여러 외국인이 탄 승합차 창가 쪽 자리에 앉은 남자가 눈에 띈다· 모자를 눌러 쓴 크리스 하트넷이었다· 창밖을 향하고 있는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 어느새 크리스가 탄 승합차는 광활한 ‘컬럼비아 스튜디오’ 입구를 지나 촬영이 있을 세트 단지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어·
-스윽·
크리스가 눈을 감았다·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심정과 마음을 정돈하는 것· 호흡도 정리했다· 아까부터 미세히 뛰는 심장을 진정시킨다·
‘진정해 오늘 난 ‘조커(Joker)’를 상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