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화 야수 (5)
“또 다른 장난이 생각났거든·”
저 괴물을 광대를 말려야 하나? 저대로 둬도 괜찮을까? 놈은 분명 뭔가를 저지른다· 과거에도 그랬고 여기 있는 시체들처럼 고깃덩이가 더 늘어날 거야· 여전히 웃고 있는 ‘조커(Joker)’를 보던 기자 ‘로버트 프랭클린’은· 크리스 하트넷은 고뇌가 깊어졌다·
그러다가 알아챘다·
‘아·’
자신이 촬영 중이라는 것을·
더불어·
‘미친 이런 경험을 해보는군·’
저도 모르게 연기임을 망각한 채 눈앞에서 웃고 있는 ‘조커(Joker)’가 현실 세상에 진심으로 위협이 되겠다고 걱정한 것까지· 와중에서 골목길 전체로 ‘조커(Joker)’의 웃음소리가 가득 퍼졌다·
“프흐흐흐 하하하하!”
담배를 빨면서도 시원하게 웃는 그· 바스트로 우진을 담던 카메라가 천천히 뒤로 빠졌다· 곧 모니터엔 강우진과 크리스가 동시에 잡혔다· 이 모습을 보는 안가복 감독은·
‘둘 다 연기라는 걸 잊은 얼굴이야·’
어떤 때보다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 역시도 제3자였다· 감독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조커(Joker)’를 구경하는 점차 광기가 드리워지는 괴물의 성장을 목도하고 있었다· 이미 모니터에 출력되는 것은 연기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현실에 있는 컷을 카메라로 찍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뒤쪽의 총괄 프로듀서 노라 포스터는·
“······”
그 어떤 말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미동조차 안 했다· 아니 굳어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 한다는 게 정확하다· 대체 무엇인가? 자신이 지금 뭘 보고 있나? 그녀는 ‘삐에로:빌런의 탄생’의 시나리오를 100% 숙지하고 있었다· 분명 그중 한 씬이 앵글에 담기고 있다·
배경 인물 호흡 연출 무드 외의 다수·
모든 게 시나리오에서 봤던 것과 동일했다· 다만 딱 하나· 배우들의 연기가 판이했다·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 연출과 같은 앵글이라도 출력되는 폭발력이나 퀄리티가 천지 차이였다·
‘···아니 예상을 할 수 없기에 그런가?’
전혀 추측할 수 없음이 노라의 충격을 배로 키웠다· 더더욱 황당한 것은·
‘저렇게 자유분방하게 날뛰고 있는데도- 씬 흐름이 전혀 시나리오에서 벗어나질 않아·’
씬이 어긋나질 않는다· 어찌보면 배우들의 순발력과 센스로 이어지고 있는 컷인데도 기반이 되는 시나리오의 분위기와 흐름은 자연스레 굴러가고 있었다·
‘둘이 사전에 맞췄나?’
아니 그럴 시간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저리 호흡이 완벽한가?
굳어버린 노라의 몸은 풀리지 않았다· 그녀 주변의 ‘컬럼비아 스튜디오’ 간부들도 딱히 움직임이 없다·
“······”
“······”
“······”
보느라 바빴으니까·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서막과 함께 초반을 짊어질 빌런이 뛰어놀고 있는 것을 말이다·
이때 웃음을 뚝 멈춘 ‘조커(Joker)’ 또는 우진· 그가 담배를 퉤 뱉었다·
“하아-”
강우진이 양손으로 찰랑이는 붉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시선은 허공· 하늘과 땅 그사이 어딘가 애매하다· 그의 두텁고 쭉 찢어진 붉은 입술이 열렸다·
“로버트 너의 사진기에는 어떤 게 찍히지?”
“······글쎄· 여러 가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무시 괄시 핍박 차별 편견 멸시 폭력· 그런 것들?”
“뭐 그렇지·”
“요즘 세상은 재미가 없어 로버트·”
대뜸 우진이 입술을 움찔대더니·
“모두가 모두를 무시하지·”
점차 언성을 높였다· 분노와 광기의 빌드업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모두를 증오해! 핍박하고! 괄시하지! 자기보다 부족하면 차별하고 자기보다 잘났으면 편견을 가지지! 자기와 다르다면 폭력을! 자기와 비슷해도 폭력을!!”
악이 가득한 광분을 보이던 우진의 구겨진 얼굴이 순식간에 평온해졌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말을 지껄여대지· 참아 네가 참아· 참고 또 참아· 겉으로만 그렇지· 아무도 속을 신경 쓰지 않아·”
앞의 두 고깃덩이를 발로 툭 치는 강우진·
“이것들을 누가 신경이나 쓸 것 같아?”
그의 시선이 오른쪽에 선 크리스에게 닿았다·
“로버트· 너도 내 행색과 얼굴 때문에 쫓아다녔잖아 만약 아니었다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걸?”
“······”
“아아아 뭐야 이게· 난 기분이 좋았다고·”
갑작스레 배 쪽에 꼈던 은색 총을 꺼내는 강우진이 몸을 틀었다·
“아까 또 다른 장난이 떠올랐다고 했잖아? 이거야·”
우진이 든 총을 크리스의 이마에 붙인다· 명백히 당황하는 크리스·
“뭐 뭐뭐뭐? 이러지 마 나나는 그저· 다 다른 장난을 치면 어때?”
“이봐 로버트· 나는 지금 너에게 제안을 하는 게 아니야· 명령하는 거지·”
“명령?”
“그래 병신이 돼서 바닥에 나뒹굴라는 명령·”
엿 됐음을 감지한 크리스가 한발 두발 뒷걸음질 쳤다· 조금씩 총구와 멀어졌지만 ‘조커(Joker)’는 계속해서 크리스의 이마를 겨눴다· 이 부분이 시나리오에 있을까? 아니 두 배우는 매우 자유롭게 날뛰는 중이었다·
미세히 떨리는 양손을 가슴까지 올린 크리스가 억지로 웃었다·
“이봐 친구· 장난이지?”
“그래· 장난이야·”
“아 아니- 제발· 제발!”
“음?”
“제발! 오 신이시여· 사 살려줘·”
“······”
순간 허연 얼굴의 붉은 눈썹을 추겨 올린 강우진· 그가 뚜벅뚜벅 크리스에게 단숨에 붙었다· 그리곤 남은 손 검지로 하늘을 찔렀다·
“저 위의 양반은 네게 신이 아니야 방관자지· 지금 네겐 내가 신이야· 틀려?”
“아 아니· 맞아· 당신이 신이야· 살려줘·”
“흠-”
입에 찢어져라 웃던 우진이 크리스의 입안에 총구를 쑤셨고·
“사실 나도 신이 아니야 변덕쟁이일 뿐이지·”
“······어억!”
은색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 크리스의 귓가에 탕탕! 정도의 총성이 울렸다· 아니 착각이었다· 실제론 탕탕!이 아닌·
-철컥 철컥 철컥·
빈 총구의 소리만이 퍼지고 있었다· 강우진이 미소지으며 크리스의 입에 박았던 총구를 빼냈다·
“말했잖아? 변덕쟁이라고·”
다시금 은색 총을 배 쪽에 꽂은 강우진이 자신의 빨간 재킷 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크리스의 청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또 보자고 잘생긴 기자 양반·”
급작스레 뛰어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강우진· 카메라 그의 뒷모습을 찍으며 같이 뛴다· 카메라 한 대가 추가되며 주르륵 바닥에 늘어진 크리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긴장이 풀린 탓·
-스윽·
그런 그가 방금 ‘조커(Joker)’가 바지에 박은 카드를 천천히 꺼냈다· 크리스의 시선을 카메라가 공유했다·
카드엔 ‘삐에로’ 그림과 함께·
-‘(Joker)’
영어가 쓰여져 있었고 뒤쪽엔 빨간 글씨로 된 숫자가 적혀 있었다·
“저 전화번호?”
‘조커(Joker)’의 명함이었다·
잠시 뒤·
기자 ‘로버트 프랭클린’역의 크리스 하트넷이 호흡을 정렬한 후 씬에 맞춰 짤막한 대사와 함께 마무리 연기를 진행했다· 그의 바스트 조금 위를 잡던 카메라가 움직인다· 크리스의 손에 들린 ‘조커(Joker)’ 명함을 클로즈업·
“······”
현장 전체로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여유 컷을 위한 고요함· 그게 얼추 10초쯤· 수백 외국인 스탭들은 모두 안가복 감독을 바라봤다·
이윽고·
“···컷·”
안가복 감독의 주름진 입에서 사인이 뱉어졌고·
“OK·”
살짝 부산스러워진 주변은 아랑곳없이 안가복 감독은 바로 촬영존으로 걸어갔다· 앉아 있는 크리스와 조금 떨어져 있는 여러 분장팀이 붙은 강우진을 콜한 것· 모인 두 배우에게 안가복 감독이 만족 가득한 웃음을 보였다·
“환상적· 아니 그 이상이었네· 자네들의 창의적 연기 자유로운 호흡 덕에 원래의 씬보다 몇 배는 불륨이 풍성해졌어· 이 맛에 감독을 계속하는 거지· 내 상상을 가뿐히 뛰어넘는 연기였어·”
퍽 극찬이었다· 입에 발린 소린 아니었다· 안가복 감독은 실제로 모니터를 보던 좀 전까지 또는 지금도 전율이 흐르고 있었다· 글로만 보던 장면이 배우로 하여금 현실에 구현될 때 그 모습이 감독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설 때 연출자는 말로 표현 못 할 쾌감을 느끼게 된다·
‘허나 그것은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순간이 아니지·’
그런 희소하며 희귀한 현상을 겪지 못한 감독도 수두룩했다· 시나리오 배우 감독 등 수많은 조건들과 합이 잘 맞아야 만날까 말까였고 배우들의 능력이 가장 크다·
지금 안가복 감독은 매우 흡족했다·
자신의 본능과 욕심 욕망을 눈앞의 배우들이 실현해 줬고 증명시켜 줬다· 곧 안가복 감독이 얼굴이 허연 강우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어느새 ‘조커(Joker)’의 냄새를 빼낸 채 원래의 무심함을 장착한 채였다·
‘크리스도 좋았지만 역시 이놈이 연기 호흡의 전체를 핸들링했어·’
모니터로 본 강우진의 압도는 그의 장악력은 무시무시했다· 소름 돋는 분장과 해괴한 의상이 한몫 거들긴 했지만 부수적인 것들로 시선 강탈하게 한 폭발력은 역시 우진의 연기였다·
‘대체 이 괴물은 모자란 것이 무엇인가?’
보기 드문 정도를 한참 넘어섰다·
‘아마 향후 몇십 년 어쩌면 백 년이 넘어도 이놈과 비빌 배우는 나타나지 않겠지·’
미소짓던 안가복 감독이 우진에게 엄지를 보였다·
“최고였네 잠시 정비하고 구도 좀 바꿔서 다시 가보지· 초반 크리스를 내려볼 때 짝다리를 짚어보면 어떻겠나?”
“해보겠습니다·”
후로 잠시간 방금의 씬들에 관해 이래저래 얘기하던 안가복 감독이 빠졌다· 돌아가는 감독의 등을 보던 크리스의 갈색 눈동자가 왼쪽으로 스탭들의 의해 분장을 수정하는 강우진에게 닿았다· 어떤 것이든 찢어발길 것 같던 그의 광기가 온데간데없어졌다·
작게 한숨 쉬는 크리스· 그가 속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도전자? 각오? 난 아무것도 못 했어· 한참 밀렸지·’
민망하기도 했다· 일전에 가열차게 내민 선포가 무색할 정도로 아무것도 못 했다 생각했으니까·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한 건 없다· 그저 강우진에게 끌려다녔을 뿐·’
이 역시 난생처음이었다· 뭐랄까 시도조차 못 하고 저 멀리 뛰어가는 1등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패배나 뭐 그런 것이 아니다· 화조차도 나지 않았다·
이건 그저·
‘수준의 차이지·’
흉내를 내는 연기와 ‘진짜’가 현실에서 날뛰는 것의 극명한 간극이었다· 이어 크리스가 우진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끌려다니기만 했군요·”
덤덤히 크리스를 보던 강우진· 딱히 표정엔 변화가 없었지만 속으로는 나름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뭐여 침울해진 건가? 살짝 응원해줘?’
강우진이 낮은 톤으로 답했다·
“아니요· 받아주는 ‘로버트’가 없었다면 이 씬에서 ‘조커(Joker)’는 금방 식어버렸을 겁니다·”
“···하하 그런가요? 늘 냉랭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위로도 할 줄 아시네요·”
“물론입니다· 다만 이건 위로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약간 감동한 크리스가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도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 차려야겠네요 조금 더 ‘조커(Joker)’를 끓게 하기 위해서·”
눈에 힘을 빡 주는 크리스· 그런 그를 보며 우진은 그닥 말은 없었으나 내면으로는 약간 질색 중이었다·
‘역시 과해 부담 캐릭이야 이 양반·’
한편 여러 모니터 몰린 자리로 돌아온 안가복 감독· 잠시간 주변 키스탭들과 대화하던 그가 시선을 돌렸다· 인상이 센 총괄 프로듀서 노라 포스터와 눈을 맞춘 것· 두 인물은 바로 입을 열진 않았다· 간단히 눈빛 교환을 하던 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짧게 숨을 뱉은 노라였다·
“제가 실수······바보 같았네요· 하마터면 방금의 씬들을 놓칠 뻔했어요·”
한걸음 붙은 그녀가 안가복 감독에게 말을 이었다·
“강우진- 그의 연기적 폭발력을 모르진 않아요· 하지만···지금까지의 ‘조커(Joker)’보다 더 충격적인 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과거의 ‘거머리’ 때를 상기하던 안가복 감독이 픽 웃었다·
“황당하겠지만 그는 완성형이 아닙니다· 현재도 성장하고 있죠· ‘거머리’ 때와 지금에 실력차 역시 명확하고·”
인정한다는 듯 고개 끄덕이던 노라가 안가복 감독 너머 현장 속 강우진에게 시선을 맞췄다·
“생소하고 낯설어요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존재잖아요 그는· 그래서 잘한다는 걸 알면서도 겁을 먹었던 것 같아요·”
“이해합니다· 도전보다는 안전· 나 역시 한국에서 연출자로서 자주 고뇌하던 것이니까·”
“감독님·”
곧 재차 안가복 감독과 눈을 맞춘 노라가·
“앞으로 그 어떤 첨언도 안 할 것을 약속합니다·”
확정적으로 선언했고·
“자유분방한 ‘조커(Joker)’를 완성 시켜주세요·”
뒤쪽에 모인 ‘컬럼비아 스튜디오’ 간부들에게 붙은 그녀가 웃으며 읊조렸다·
“돌아가죠 이 이상 있는 건 방햅니다· 혹 직전의 씬을 봤는데도 아직 불만이 있는 분이 있으면 지금 얘기하세요·”
간부들은·
“······”
“······”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루 지난 아침 ‘컬럼비아 스튜디오’·
촬영 세트장이 아닌 메인 건물 안이었다· 명확히는 중형 회의실이었고 ㅁ자형 책상엔 ‘컬럼비아 스튜디오’의 간부들이 앉아 있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
포커페이스가 진한 표정에 차가움이 서린 강우진이 자리했다· 그 옆엔 당연히 꽁지머리 최성건이 보였다· 이어 간부 중 민머리 남자가 강우진 쪽으로 태블릿과 투명파일을 건넸고·
“‘삐에로:빌런의 탄생’ 바로 다음의 영화 기획섭니다· 전체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두 번째 시리즈고 첫 번째 서막으로 빌런이 탄생했으니 다음으로는 히어로가 등장해야겠죠·”
브리핑하던 간부가 확정적으로 말을 뱉었다·
“강우진씨 ‘조커(Joker)’로서 당신에게 두 번째 영화와 그다음 세 번째 영화까지 출연을 제안합니다·”
방대한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서막인 ‘삐에로:빌런의 탄생’ 뒤로 계획된 후속작인 두 영화의 출연 제안이었다· 퍽 거대한 딜· 허나 잠잠히 민머리 간부를 보던 강우진의 대답은 심플했다·
“시나리오가 먼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