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화 에미 (1)
빌 로트너 감독의 급작스런 디렉팅· 그의 지적은 간단했다· ‘미녀 벨라’가 너무 빨리 ‘야수’를 사랑하는 눈으로 본다는 것·
“헷갈렸나? 마일리 감정이 너무 빨라요· 마일리도 알다시피 지금 ‘미녀 벨라’는 ‘야수’에게 공포 또는 충격을 느껴야 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었다· 초반 ‘미녀 벨라’는 ‘야수’를 보자마자 자지러지니까· 하지만 빌 로트너 감독이 보기에 지금 우진을 보는 마일리 카라의 눈엔 전혀 공포가 담겨있지 않았다· 공포? 오히려 애정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것이 빌 로트너 감독을 거슬리게 한 것·
따라서 그는 마일리 카라에게 지적했고 잠시 멈칫한 카라는 헛기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흠 그랬나요? 너무 마음이 급했나 보네요·”
“미리 준비하거나 상상하는 건 좋지만 너무 빨랐어· 두 씬 뒤부터 다시 갑시다·”
“네·”
부드럽게 넘기는 마일리 카라· 빌 로트너 감독이나 수십 헐리웃 배우들 스탭들 외의 다수는 딱히 의심 없는 눈초리였다·
다만 딱 한 명·
‘······이것 봐라? 저번엔 그렇게 아니라고 부정하더니?’
고동색 눈이 인상적인 마리아 아르마스는 카라를 매우 의심했다· 큰 눈을 좁히며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하지만 카라는 별수롭지 않게 금발을 쓸어 넘기며 시나리오에 시선을 내렸다· 여유를 연기해야 했으니까·
‘미쳤나 봐! 나 지금 그를 어떻게 봤던거지??’
실제 카라는 현재 내면으로 매우 혼돈스러웠다· 자기도 모르게 ‘야수’가 아닌 자신이 마음을 표한 남자로서 강우진을 봤으니까· 그것도 수백 명이 몰린 이 ‘야수와 미녀’ 리딩장에서 말이다· 애써 대수롭지 않게 시나리오를 보는 그녀였으나 상당히 당황했다·
그런 마일리 카라를 조심스레 바라보는 강우진·
‘애정하는 눈?’
컨셉질로 인해 무심한 얼굴이지만 우진의 관심이 건너편 카라에게 쏠렸다· 이 대본리딩에 도착하고부터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보였기 때문· 그런데 방금의 시선에 애정이 담겼다?
‘그랬나? 아닌데· 나는 뭐 못 느꼈다고·’
하지만 강우진으로서는 전혀 감도 안 왔다· 그럴 만했다· 공포까진 아니어도 카라의 시선엔 딱히 정 따윈 보이지 않았으니· 대체 어느 부분에서 애정을 느낀 거지? 이때 방금 대사를 마친 마일리 카라가·
-스윽·
강우진을 슬쩍 봤다가 시선을 휙 피했다· 여기서 우진이 약간 확신했다·
‘아- 쟤도 지금 컨셉질 중?’
하마터면·
‘뭐야 왜 귀엽냐·’
컨셉질도 잊고 작게 미소지을 뻔했다·
후로·
‘야수와 미녀’ 대본리딩은 카라의 작은 실수 빼고는 큰 문제 없이 진행됐다· 강우진이나 카라 마리아 아르마스 등 배우들의 연기는 당연히 흠잡을 것 없었고·
-♬♪
리딩 뒤의 삽입곡 연습도 매우 원활했다· 배우들 모두 대사와 함께 곡들 습득에도 퍽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야수와 미녀’ 전체 대본리딩은 늦은 오후가 돼서야 모두 끝났다·
하지만 바로 돌아가지 않는 배우들·
분위기가 쾌활했다· 점차 다같이 식사를 하자는 분위기로 굴러갔지만 왜인지 마일리 카라는 꽤 다급한 인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리딩장을 빠져나갔다· 뭐 아무도 그녀를 잡진 않았고 강우진도 같았다·
‘좀 있다가 DM 보내봐야겠네·’
이때 우진에게 다가오는 여배우· 마리아 아르마스였다· 그녀가 강우진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다만 언어는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였다·
“마일리와 사귀고 있죠? 마리아는 아니라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분위기가·”
“아니요·”
허나 강우진은 그녀의 말을 칼 같이 자르며 스페인어로 답했다· 컨셉질이 몇 배는 두텁다·
“당신이 착각한 겁니다·”
무심히 걸어가는 우진의 뒷모습을 보던 마리아는 작게 혼잣말을 뱉었다·
“아닌데 뭐가 있는데 둘이·”
한편 한국·
늦은 오후인 LA와 달리 한국은 아침· 이 시각 넷플렉스 코리아 미팅룸엔 파트2 편집이 막바지인 송만우 PD를 포함해 최나나 작가 외의 ‘이로운 악’ 전체 팀이 모였다· 김소향 총괄디렉터가 핸들링하는 이 미팅은 파트2 때문에 모인 게 아니었다·
“이게 우리가 LA에서 보낼 스케줄이거든요? ‘에미상’이 제일 끝이고·”
어느새 2주 앞으로 다가온 ‘에미상’ 관련으로 소집된 것· 화린이나 하강수 등 배우들부터 후보 부문에 오른 송만우 PD나 최나나 작가 그리고 키스탭들 전원이 경청한다·
당연했다 곧 당도할 ‘에미상’ 시상식의 전반적인 관리는 넷플렉스가 주관하니까·
“20일 출국 LA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로 이동합니다· 그다음 날부터 언론사 인터뷰가 시작되고요·”
김소향이 보여주는 것은 ‘에미상’ 전과 후의 전체 스케줄들·
“약 1주간의 일정을 소화하면 남은 건 이제 ‘에미상’인데· 다들 들으셨다시피 ‘에미상’ 장소는 LA의 ‘와이크로소프트 씨어터’·”
핵심은 역시 ‘에미상’ 당일이었다·
“초대형 공연장인데 ‘에미상’은 매년 여기서 열려요 레드카펫 형식은 이런데- 다들 당일 코디는 좀 신경 쓰셔야 돼요· 아무래도 ‘이로운 악’이 아시아 최초로 10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보니 관심이 폭발 중이거든요? 거기다 원체 ‘에미상’이 규모가 크니까 헐리웃은 당연하고 각국의 기자들 방송사 ‘에미상’ 중계팀도 몰리면······레드카펫에 최소 천은 예상해요·”
곧 ‘이로운 악’ 팀에 긴장감이 팽배해졌다· 시상식이야 다들 가봤지만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릴 정도의 국제 시상식은 처음이니까· 이쯤 턱수염 송만우 PD가 물었다·
“연락을 하고 있긴 한데 우진씨는 우리랑 스케줄 같이 가능한가?”
고개를 젓는 김소향·
“어려울 것 같아요· 워낙에 바쁘시니까· 우진씨는 사전 스케줄 없이 촬영 지속하다가 ‘에미상’ 당일에 합류할 거예요·”
“음·”
이어 김소향이 브리핑을 계속했다· 이 미팅이 끝나는 건 대략 1시간 뒤였고·
“그럼 다들 공항에서 뵙죠!”
며칠 뒤·
『[포토]LA 출발하는 ‘에미상’ 10개 부문 후보 ‘이로운 악’ 팀!/ 사진』
‘이로운 악’ 팀은 LA행 비행기에 올랐다·
약 일 주 일 뒤 8월 1일 월요일·
LA 중심지에 있는 ‘와이크로소프트 씨어터’· LA에 있는 모든 공연장 중에서도 규모적으로 단연 1등인 초거대 공연장 주변은 아침임에도 인산인해였다·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메인 홀부터 옆 건물인 중형 홀까지 쭉 이어진 레드카펫엔 왜인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자리 잡기 바빴다·
진작에 백 명은 넘겼다·
그들은 전부 기자들이었다· 심지어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이 몰렸다· 그렇다면 왜 기자들은 이 아침부터 레드카펫 주변에 몰리는가?
이유야 심플했다·
『LA TIME/[프라임타임 에미상] 오후에 시작되는 에미상 하지만 기자들은 아침부터 바쁘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방송계 시상식 ‘에미상’이 오늘 오후에 열리니까· 전세계 수많은 유명인이 참석할 예정이었고 그가 누가 됐든 제일 좋은 자리에서 촬영할 욕심에 기자들은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잡는 것·
그렇게 흐른 시간이 몇 시간쯤·
쨍쨍하던 해가 점차 지는 시각· 정확한 시간은 오후 3시· 백여 명 기자들이 몰렸던 레드카펫엔 어느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머릿수가 늘었다· 대충 봐도 500명은 넘어 보였다· 메인 홀부터 레드카펫의 끝까지 빈 공백 없이 빼곡한 기자들·
언어도 다양하고 국적도 제각각·
그렇기에 왁자지껄을 한참 넘는 데시벨을 자랑하는 분위기였다· 여기저기서 고함도 들렸다·
“어이! 거기 내 자리라고!”
“그런 게 어딨어! 자릿값이라도 ‘에미상’에 지불했나??”
“뭐야?!”
“이봐! 말려! 말려!!”
기자끼리 싸움을 벌이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이렇듯 몰린 기자들이지만 아직 반도 안 왔다는 게 황당할 따름· 거기다 점차 사진기를 든 기자들만이 아닌·
“저는 지금 ‘에미상’ 시상식 레드카펫 앞에 나와 있습니다 과연 세계적으로 규모가 엄청난 시상식인 만큼 많은 기자들이 몰렸습니다· 이번 ‘에미상’에서 주목할 작품은 역시 한국의 ‘이로운 악’이고 ‘이로운 악’은 무려 10개 부문 후보로 오르면서······”
커다란 방송사 로고가 붙은 카메라가 함께인 방송팀들도 불어났다· 한두 팀이 아니었다· 지금 보이는 것만 수십· 미국부터 시작해 ‘에미상’에 참여한 전체 국가의 방송팀들이 즐비했다· 사이에 한국의 방송사도 끼어있다·
한국의 여러 방송사는 레드카펫 주변 ‘에미상’ 측이 세팅한 대형 트로피 동상 앞 커다란 포스터 옆 등에서 촬영 중이었다·
“수많은 해외 언론사들이 몰린 가운데 아직 ‘에미상’에는 ‘이로운 악’ 팀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나라 방송사들은 ‘이로운 악’을 기다리고 있는 듯 자주 언급하는 게 들립니다·”
국적 불문 기자들과 방송사들을 다 합친 수는 천 명에 가깝다· 추가로 ‘에미상’ 측의 스탭들과 관계자들을 섞으면 천을 가볍게 넘긴다·
현재 ‘에미상’ 측에서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는 팀은·
“지금부터 ‘에미상’의 시작을 장식한 레드카펫을 보여드릴게요!”
약 30분 전부터 라이브를 시작한 전세계로 ‘에미상’ 현장을 알릴 생중계 팀이었다· 참고로 ‘에미상’은 너튜브 포함 몇몇 영상 플랫폼에서 생중계될 예정·
이때였다·
-스윽·
레드카펫과 메인 홀 사이 ‘에미상’의 로고가 덕지덕지 붙은 포토존에 몇몇 외국인들이 들어섰다· ‘에미상’이 고용한 포토존 사회자와 스탭들이었다· 이 사회자가 맡은 임무는 레드카펫을 통과한 배우들 외의 유명인의 인터뷰를 따는 것·
따라서 이 근방에 기자들이 제일 많이 깔렸다·
이때 시각은 4시 30분쯤·
어느새 레드카펫 주변으로는·
“$*(#%&(*#(*%!”
“@%**@(%_!$*()!!”
“($%)*%()@%(!#!(~!!”
들리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괴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기자와 방송팀 그리고 생중계팀이 두 배로 늘었으며 그 어마무시한 규모 이상으로 구경꾼들이 응집됐으니까· 구경꾼이라 함은 이 근방에 사는 일반 시민들부터 ‘에미상’을 노리고 참석한 해외 대중들 포함이었다·
수천· 그리 길지도 않은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레드카펫에 몰려든 머릿수·
그리고 5시를 넘겼을 때·
“왔다!!”
“헤이! 레오!! 레오!!!”
“어이! 밀지 말라고!! 레오 이쪽 좀 봐줘!!”
레드카펫에 첫 배우가 나타났다· 헐리웃 유명 남자 배우였고 그의 등장과 함께 천을 넘는 카메라에서 번개가 쳤다·
-파바바바박!
-파바바바바바박!!
어둑어둑해지고 있지만 아침과 다르지 않았다· 터지는 플래시들이 눈이 멀 정도였으니까·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상황이지만 1등으로 도착한 헐리웃 남자 배우는 여유롭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하하 내가 처음인가?”
그가 시발점이었다· 곧 밝은 조명과 플래시 세례가 화려한 레드카펫엔·
-파바바바바바박!!
많은 배우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헐리웃만이 아닌 여러 나라의 탑배우들· 턱시도나 정장 또는 드레스로 멋들어진 레드카펫의 흥을 돋운다·
물론 배우들만이 아닌 다른 이들도 도착할 예정·
유명 감독부터 프로듀서 인플루언서 외에 ‘에미상’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초대 손님이 최소 수천이었다· 초청된 배우들까지 합치면 오늘 ‘에미상’ 메인 홀에 입장할 인물은 만 명이 넘는다·
점점 레드카펫을 빛내는 배우들이 늘어남에 따라·
“지금 크리스 하트넷! 크리스 하트넷이 도착했습니다!”
기자들의 손가락은 물론 수많은 나라의 방송팀 카메라들도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뿐인가?
“꺄아악!! 크리스!! 크리스!!!”
언론사와 방송사 인원들을 감싼 수천 구경꾼들은 죄다 머리 위로 핸드폰을 들어 올려 턱시도나 드레스 입은 배우들을 미친 듯이 찍어댔다·
아비규환을 아득히 뛰어넘는 현장·
그 열기는 시간이 갈수록 증폭됐다·
정신이 혼미해진 레드카펫을 통과한 배우나 유명인들은 제일 끝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인터뷰를 마치면 메인홀로 이동 중· 분위기 자체는 자유분방한 느낌이 강했다· 인터뷰도 웃음과 농담이 가득했고 ‘에미상’의 생중계 역시 틀에 박힌 앵글이 아닌 촬영팀의 멋대로였다· 뭐 배우들이 제일 많이 찍히긴 했다·
현재 ‘에미상’은 전세계로 생중계 중이며 전체 시청자 수는 몇만을 넘겼다·
와중에 한국 쪽 방송사 인원들이나 기자들은 누군가를 애타기 찾았고·
“‘이로운 악’ 팀은 아직인가??”
“그러니까! 슬슬 올 때 된 것 같은데?! 이미 통과했나?”
“아니! 내가 처음부터 있었어! 아직 안 온 게 확실해!”
해외 방송사들도 비슷했다· 누가 뭐래도 올해 ‘에미상’의 스타는 10개 부문에 최초로 오른 ‘이로운 악’이었으니까·
그 순간·
“응?”
레드카펫 초입에 자리 잡은 미국의 한 방송사 카메라맨이 미간을 좁혔다·
“뭐 뭐지??”
자신이 찍는 앵글에 요상한 인물이 잡혔기 때문· 방금 리무진에서 내린 어처구니없는 의상을 입은 남자였다· 이에 카메라맨이 주변 동료들에게 외쳤다·
“저기! 저기 봐!! 이상한 놈이 나타났어!”
그의 외침에 초입에 있는 수백 기자들과 방송팀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재밌는 건 모두의 반응이 비슷하다는 것·
“뭐야! 누구야 저거!”
“구경꾼이 난입한 거 같은데?!”
“그럴 리가! 리무진에서 내렸잖아?”
다분히 그럴 만했다·
등장한 남자는 빨간 재킷과 바지 파란 셔츠 노란 조끼 헤진 갈색 구두 벌겋고 퍼런 짝짝이 양말 차림이었으니까· 심지어 턱을 가릴 정도의 웨트한 긴 머리 색은 레드카펫과 비슷하게 붉다·
지금 레드카펫을 밟은 남자는 말이 없다·
“······”
턱시도만이 즐비한 ‘에미상’에선 단연코 볼 수 없는 의상에 분위기·
그야말로 미친놈이 맞았다·
“누군데?! 배우야??!”
일단 외국인 기자들은 셔터를 눌러댔고 여러 방송사들도 미치광이 남자를 찍긴 했다만 문제가 터졌다 싶었다· 턱시도만 보이던 레드카펫에 또라이가 나타났으니까·
이때 기자 중 한 명이 돌연 영어로 외쳤다·
“강우진! 강우진이잖아??!!”
동시에 미치광이 남자가· 아니 강우진이 양손으로 붉은 긴 머리를 뒤로 쓸었다· 얼굴이 선명히 보인다· 수백 기자들은 더 흥분했고·
“강우진 맞네!! 근데 뭐 뭘 입고 온 거야?!”
강우진은 무심한 얼굴로 레드카펫에 첫 발을 내딛었다·
-스윽·
‘조커(Joker)’의 ‘에미상’ 행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