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출 (3)
신동춘 감독의 톡을 확인한 강우진이 살짝 놀랐다. 물론 속으로.
‘벌써 본선작 뽑혔다고? 빠른데?’
약간 두근거리는 건 덤.
‘그럼 나 진짜 영화제 가는 거냐? 와- 그런 거 연말에 TV에서나 봤는데. 그걸 내가?’
물론 우진이 본 청룡이나 연기 대상 등의 대형 영화제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알맹이가 소시민인 강우진에겐 규모완 상관없이 마냥 신기했다. 점점 인생이 판타스틱하게 변하고 있음이 절절히 체감되는 중.
이때.
-♬♪
조수석에 앉은 꽁지머리 최성건의 핸드폰이 울렸고 다이어리 속 강우진의 스케줄을 체크하던 그가 발신자를 확인했다.
“신 감독님이네?”
이어 룸미러로 강우진과 시선을 맞춘 최성건이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예예 감독님.”
바로 신동춘 감독의 상기된 음성이 들려왔다.
“최대표님 ‘흥신소’ 본선작에 뽑혔습니다! 위원회 통해서 방금 연락받았어요.”
“오 정말요? 방금?”
“예! 저희 건 확정이고 우진씨한테도 톡은 보내놨습니다. 촬영 중일까 싶어서.”
“아- 지금은 이동 중이긴 합니다.”
흥분이 전염된 최성건이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이야- 근데 엄청 빠른 거 아닙니까? 솔직히 본선작 발표는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출품작이 별로 없었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위원회 쪽이 정확하게는 말 안 했는데 은근 흘리는 말 들어보면 작년보단 30% 정도 늘었지 싶습니다. 최소 1000작품은 넘겠죠.”
“근데 이렇게나 빨리···”
말끝을 흐리던 최성건의 두뇌가 재빨리 돌았다. 덕분에 금세 답이 나왔다.
“작품 좋은 것은 별개로 생각지도 못한 혜연이가 끼어 있어서 바로 연락해줬나 보네요. 본선작 발표는 보통 하루에 몰아서 하잖아요?”
“저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싶어요. 이슈될 작품들은 최대한 빠르게 따로 연락해서 성의를 보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신동춘 감독과 통화하던 최성건이 B팀 촬영장에 다다랐기에 마무리를 지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감독님. 저희도 일정 맞춰서 잘 준비하겠습니다 예예.”
bw엔터의 수장이 전화를 끊자마자 강우진의 옆자리에 있던 한예정이 조수석에 바짝 붙었다.
“헐- ‘흥신소’ 본선작에 붙은 거예요?”
“어 붙었으!”
“우와.”
평소 쌀쌀맞은 한예정도 퍽 놀란 듯 시니컬한 우진을 보며 감탄했다.
“오빠 배우 시작 두 달 만에 영화제 출격하는 거네요?”
대답은 어째선지 최성건이 대신 했다.
“국내서나 두 달이지. 우진이 너 혹시 영화제도 어디서 이미 경험한 거 아니냐?”
그럴 리가요.
이때 진중해진 한예정이 대뜸 코디북을 펼쳤다. 그녀의 눈엔 진한 전투력이 실렸고.
“헤메코 제대로 할게요. ‘미장센 단편 영화제’면 나름 단편에선 메이저라 기자들 감독들 배우들도 많이 와요. 꿇리면 절대 안 돼.”
이쯤 우진은 두쿵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실종의 섬’ 시나리오에 시선을 내렸고 강우진을 룸미러로 보던 최성건이 속으로 탄성을 뱉어댔다.
‘등장하고 두 달 만에 영화제 데뷔? 기상천외한 미친 행보긴 해. 처음 본다고 이런 루트. 심지어 국내 손꼽히는 거장들도 무지막지 달라붙어.’
아무리 연기가 기가 막힌다 해도 거장 감독들이 들러붙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십수 년 연예계서 구른 최성건이 제일 잘 알았다.
‘거기다 헐리웃을 당장 가도 이상하지 않을 영어 실력까지. 일본어는 아직 잘 모른다만.’
파격적인 계약 조건이 전혀 아깝지 않은 최성건이었고 우진의 폭발적인 미래를 가늠하던 그가 몸을 돌려 물었다.
“그래서 우진아. ‘실종의 섬’ 좀 냄새가 어때?”
“재밌습니다.”
“오? 재밌어?”
“예 왜 그러시는지.”
“아니. 너의 재밌다는 말이 좀 어색하달까?”
어색할 것까지야. 우진의 대답은 컨셉이 아니었다. ‘실종의 섬’은 진심으로 재밌었다.
‘아니 남자가 괴생명체를 어떻게 참아?’
그렇기에 우진은 냉담하지만 진심을 다시금 뱉었다.
“아직 끝까지 읽진 않았지만 재밌습니다.”
“그래그래. 전부 읽은 뒤에 알려줘라. 그거 할 건지 말 건지 그리고 어떤 캐릭터가 특히 좋았는지. 권기택 감독님은 급할 건 없다고 하셨으니까 천천히 보고 잘 생각해보고.”
“예 대표님.”
“아마 권기택 감독님도 ‘미장센 영화제’ 스케줄 있으시다고 했으니 영화제 끝날쯤 미팅 잡으면 될 거야.”
여기서 대뜸 강우진이 착 깔린 목소리로 주제를 바꿨다.
“그리고 혹시 대본이나 시나리오 더 얻을 수 있습니까?”
“갑자기? 지난 거? 아니면 시작 전인 거?”
“이왕이면 기획 중인 게 좋겠습니다.”
딱히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작품 욕심을 낸다기보단 여러 대본과 시나리오를 읽어두려는 게 컸다. 경험과 지식도 빨리 습득해야 되니까.
‘그러다 등급 높은 거 나오면 좋고.’
와중 턱을 쓸 던 최성건이 되물었다.
“으음- 뭐 시장에 도는 작품들 가져오는 건 어렵진 않아. 근데 너무 급할 건 없는데?”
“그저 봐두기만 해도 됩니다.”
“그래? 그럼 너 선호하는 장르는? 스릴러나 액션 로코 등등.”
“딱히 상관없을 것 같아요.”
“흠 데뷔 초반 좀 센 캐릭들 했으니까···너무 그렇게만 가면 이미지 고정되기 쉽거든? 사실 팬덤 훅 터지는 건 달달한 게 으뜸이긴 하고.”
뭔가 설명하던 최성건이.
“우진이 넌 마스크가 범용성 또는 스팩트럼이 좋아.”
묵묵한 강우진에게 제안했다.
“너 로코나 아니면 멜로 그런 거 봐볼래?”
같은 날 점심쯤. 일본 도쿄.
도쿄역 근방의 한 고급 스시집. 대충 보기에도 뭔가 비싸 보이는 가게였다. 그런 스시집의 좌식 VIP룸에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있다. 한쪽은 새치 가득한 짧은 머리에 코가 컸고 50대는 넘어 보인다. 반대쪽은 50대보단 젊고 삐쩍 마른 남자였다.
둘은 테이블 중앙에 놓은 형형색색 스시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러다 삐쩍 마른 남자가 대화의 물꼬를 텄고.
“あ 監督.(아 감독님.)”
시선은 스시에 붙은 새치 가득한 남자가 나지막이 답했다.
“なんで? 早く食べる人が勝者じゃん.(왜? 빨리 먹는 사람이 승자잖아.)”
들린 대답에 마른 남자가 피식 웃었다.
“아니요 스시 말고요. 이번에 한국 가실 겁니까? 무슨 영화제 초청받으셨다면서요.”
“음? 아아- 그래. 갈 생각이야.”
“정말입니까? 좀 쉬셨는데 슬슬 작품 하셔야죠.”
“한다고 해도 자네하곤 안 해.”
“서운하네.”
사실 감독이라 불린 50대의 코 큰 남자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명감독이었다. 일본 내에서 거장 하면 항상 거론되는 인물. 필모는 다큐 액션 실사화 드라마 스릴러 등 장르 불문이고 2018년엔 칸 영화제에서 당당히 상도 탔었다.
이름은 타노구치 쿄타로.
거기다 쿄타로 감독은 한국과 연이 깊기도 했다.
『‘일본 거장’ 타노구치 쿄타로 감독 한국 여행 사진 SNS에 또 올렸다』
한국의 컨텐츠와 문화 등을 좋아하는 친한파였으니까. 그의 SNS에는 한국 여행한 사진이 자주 올라왔고 꽤 예전엔 한일 합작 작품을 찍은 적도 있었다.
어쨌든.
“서운할 게 뭐 있나 자네하고 몇 작품을 같이 했는데.”
쿄타로 감독이 젓가락을 놓으며 읊조리자 건너편 마른 남자가 작게 한숨 쉬며 주제를 바꿨다.
“예예 근데 한국의 그 영화제 가서 즐기실 게 있습니까?”
“‘미장센 단편 영화제’야. 작년에도 초청받았는데 못 갔어. 올해는 가 봐야지. 즐긴다기보다는 단편 예술 쪽으론 메이저 영화제니까 볼 게 많지.”
“그래도 단편 영화제면 배우들도 전부 무명일 거고 한국에서나 메이저지 국제로 따지면 심심할 텐데요? 작품들도 소소할 것 같고.”
물 잔을 들은 쿄타로 감독이 건너편의 마른 남자를 약간 쏘아봤다.
“그런 정신이 일본 영화판을 후퇴시키는 거야.”
“···예?”
“단편 예술 쪽 영화에 무명 들어가는 건 일본도 똑같아. 오히려 요즘 돌아가는 판을 보면 일본은 한국의 컨텐츠 시장 시스템을 배워야 돼.”
“아- 예 그건 뭐 저도 동의합니다.”
“일본 넷플렉스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나? 랭킹 10위에 한국 작품이 반 이상이 넘어. 위기잖아? 하지만 일본은 내수시장이 안정됐기에 언제나 똑같지.”
“···”
“배우들은 늘 ‘저 지금 연기합니다!’ 톤으로 연기를 해대고 연출자들도 계속 같은 방식과 시스템을 차용해.”
여기서 쿄타로 감독이 긴 한숨을 내쉬었고.
“하지만 이미 일본은 한류에 먹히고 있다고. KPOP이나 K컨텐츠들을 사랑하는 대중은 계속해서 늘고 있지.”
진심 어린 속마음을 뱉었다.
“우린 더 한국에 관심을 가져야 돼. 그렇기에 난 한국에 가는 것이고.”
이후.
강우진이 ‘프로파일러 한량’ 촬영에 푹 빠져있을 때쯤 인터넷의 여러 영역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속속 발표됐다.
『[무비톡]올해로 후원사 바뀐 ‘미장센 단편 영화제’ 작년과는 다른 행보에 주목!』
바로 ‘미장센 단편 영화제’ 관련이었다. 당연히 ‘프로파일러 한량’이나 드라마 전쟁 등처럼 메인은 아니었으나.
『‘미장센 영화제’ 위원회 측 “올해는 해외 유명감독들도 많이 참석할 것”』
분명 작년보다는 공격적인 홍보였다. 각종 포털사이트의 연예면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미장센 단편 영화제’는 자주 보였다.
-국내 메이저급 미장센 단편 영화제 근황.jpg
과연 바뀐 뒷배. 즉 후원사가 자금을 넉넉히 쓰고 있음이 확실했다. 하루 반짝하는 것이 아닌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미장센 단편 영화제’ 관련 홍보는 몸집을 불렸으니까.
거기다.
“너희들 ‘미장센 단편 영화제’라고 아냐? 이번 달 30일에 개막하는 영화제거든? 거기서 광고가 들어왔으!”
여러 BJ나 너튜버들도 ‘미장센 단편 영화제’를 광고했다. 관심도야 무지막지하진 않았으나 그래도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퍼지긴 했다. 일단 작년엔 시도조차 안 한 홍보 방법이 동원됐기에.
『[이슈IS]유명 너튜브들부터 여러 탑배우들까지 ‘미장센 영화제’ 홍보에 열 올린다』
나름 시선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즉 원래도 ‘미장센 단편 영화제’에 관심 있던 사람들과 관심 없던 사람들이 섞였다. 거장이나 탑배우 또는 외국 유명 배우 등등의 나름 자극적인 단어들도 한 몫을 거들었다.
이런 공격적인 홍보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영화 관련 커뮤니티가 들썩거렸고 SNS 등에서도 ‘미장센 단편 영화제’의 공유가 잦았다. 온라인뿐이 아닌 오프라인도 비슷했다.
예를 들면.
“오-”
점심을 먹고 방금 자리에 복귀한 강우진의 친구 김대영이 그랬다. 원래도 연기에 취미가 있던 그였기에 관심은 더 컸고.
“‘미장센 단편 영화제’ 올해는 기사 겁나 때리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영화제 일정을 보니 폐막·시상식을 제외하고 단편 본선작 상영 기간이 일주일에 주말도 껴 있었다.
하지만 우람한 김대영은 혼자 가는 것이 외로웠다.
“스읍- 누굴 좀 꼬셔볼까?”
그런 김대영이 강우진이 포함된 멤버 3명 중 한 명에게 톡을 보냈다.
-야 이경성 송신.
친구 역시 휴식 중인지 답장은 빨랐다.
-뚱경성: 말하라.
-(링크) 담주 주말에 이거 보러 가실? 단편 영화제
-뚱경성: ㄴㄴ
-왜 병신아 너 주말에 어차피 할 것도 없자네
-뚱경성: 롤. 그리고 그걸 내가 왜감.
-아 끝나고 술이나 빨게.
-뚱경성: 그럼 딴 애들도 불러. 강우진 이새낀 왜케 잠수타냐?
-몰라 맨날 바쁘다고만 함 여튼 일단 나형구도 부른다?
-뚱경성: 어 나형구도 나오라 해. 글고 강우진 백퍼 여자 생겼다
-여자면 ㅇㅈ이지 형구 오케이 때림 니도 나와
-뚱경성: ㅇㅇㅋ
친구 중 두 명을 포섭한 김대영이 강우진에게도 톡을 보냈다.
-야 죽었냐? 면상 좀 보자
의외로 답장이 빨리 왔다.
-우지랄: 담에. 진짜 좀 바쁨.
답장을 보자마자 우람한 김대영이 콧방귀를 꼈다.
“이 새끼 여자 생긴 거 백퍼네.”
4월 26일 일요일. 늦은 오후.
장소는 ‘프로파일러 한량’ 촬영 세트장이었다. B팀이 아닌 메인팀이었고 송만우 PD 포함 수십 스탭들이 숨을 멈추고 촬영존을 바라본다.
“···”
“···”
그들이 보는 곳엔 수갑 찬 강우진. 아니 박대리가 서 있었다. 양쪽으로 형사들이 그를 붙잡은 모습.
이때 정면 카메라가 레일을 타고 서서히 박대리에게 붙었다.
따라서 턱수염 송만우 PD가 보는 모니터에 박대리의 얼굴이 점점 클로즈업된다. 박대리는 딱히 말이 없다. 그저 다가오는 카메라를 응시했다. 재밌는 것은 모니터 속 박대리에게 조금씩 변화가 있다는 것. 얼굴이 확대될수록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다.
마치 사람이 웃는 과정이 슬로우모션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
박대리의 웃음이 자라고 있다. 아니 소름 돋는 웃음이 얼굴에 드리운다는 게 정확했다. 잉크가 번지는 느낌. 이윽고 카메라가 박대리의 두 걸음 앞에 멈췄을 때.
“···”
아무 표정 없던 박대리의 얼굴엔 화사한 미소가 질펀했다. 광기 서린 진한 눈과 성장한 웃음이 합쳐지니 얼핏 삐에로를 연상케 했다.
그려진 웃음 그 속에 숨겨진 실체.
얼굴은 하나지만 여러 가면이 합쳐진 표정이었다. 진위를 알 수 없는 그의 캐릭터성을 명확하게 표출하는 씬.
이 순간.
“···커 컷!! OK!!!”
강우진의 연기에 혼을 빼고 있던 송만우 PD가 벌떡 일어나 사인을 외쳤고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수십 스탭들이 우진을 향해 박수쳤다.
-짝짝짝짝짝짝짝짝!
“크!! 죽여줬어요!!”
“우진씨! 고생 많았습니다!!”
“아쉽네 아쉬워! 우진씨 수고하셨습니다!”
대기하던 류정민 등의 배우들도 박수에 동참했다. 얼굴엔 진심 어린 미소가 담겼다. 그간 강우진이 연기한 박대리는 정말 대단했으니까. 비록 후배지만 같은 배우로서 존경의 뜻이 담겼다.
그리고.
-스윽.
단숨에 세트 안 강우진에게 달려온 송만우 PD가 양손 엄지를 추켜세웠다.
“내 연출 인생 통틀어서 우진씨가 그간 보여준 박대리는 역대급이었어요. 진짜로.”
쏟아지는 극찬과 축하들. 이에 강우진은 역시나 무심한 얼굴이었지만 속으로 약간 당황 중이었다.
‘이거-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되냐??’
추가로 약간의 울컥함과 무지막지한 성취감 또는 고양감이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이 순간 컨셉질이고 쎈척이고는 별로 필요가 없었다.
‘어···그냥 감사를 때려 박자.’
강우진은 송만우 PD 포함 고생을 함께한 많은 선배 배우들과 수십 스탭들에게 근엄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들 고맙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강우진의 ‘박대리’ 촬영분이 끝난 순간이었다.
이어 한 시간 뒤.
박대리로서 ‘프로파일러 한량’ 촬영을 마친 강우진이 세트장 주차장으로 나왔다. 팀 없이 우진 혼자였다. 최성건은 연출팀과 얘기 중이었고 한예정은 의상 관련 뒷정리 중 덩치 좋은 장수환은 같이 오다가 화장실로 달려간 참.
뭐가 됐든.
-스윽.
무표정의 강우진이 검은 승합차 앞에서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어느새 어두컴컴했다. 다만 달빛이 밝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선선한 바람도 불어왔다. 마치 자연이 마지막 촬영을 축하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우진은.
“···”
지금껏 꾹꾹 눌러왔던 희열이 저도 모르게 표출됐다. 그의 입에서 짙은 미소가 비죽비죽 튀어나온 것. 컨셉질을 잠시 내려놨다. 홀가분함과 한고비를 넘긴 탓에 기분이 죽여줬으니까.
그간 고생했는데 이 정돈 괜찮잖아?
실실거린다. 지금의 우진은 딱 그런 웃음을 뱉어대고 있었다. 강우진의 본연의 모습. 인기척이 있으면 다시 돌리면 되니까.
“흐흐 아 웃으면 안 되는데. 계속 나오네 이거.”
그리고 실실거리는 강우진을.
“···?”
흰색 벤 안에서 누군가가 보고 있다. 대기 중이었는지 안대를 이마에 걸친 홍혜연이었다.
“쟤 지금···뭘.”
그녀의 표정이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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