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화 광속 (8)
세트 연회장에서 시작된 ‘야수와 미녀’ 촬영은 여러 세트를 옮긴 뒤 늦은 밤이 돼서야 모두 끝났다· 백여 명 스탭들은 내일 촬영을 위해 바삐 움직였고 빌 로트너 감독과 인사를 마친 강우진은 팀원들과 함께 트레일러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그는 현재 쫄쫄이 타이즈 차림·
‘아오- 씨 이 옷은 입어도입어도 적응이 안 되냐·’
속으론 투덜대곤 있지만 겉으로는 쎈척이 장착된 우진이 트레일러에 거의 도달했을 때·
“우진아·”
누군가 강우진을 불렀다· 보니 오늘 종일 보이지 않던 꽁지머리 최성건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참고로 최근 최성건은 ‘게스트’ 관련 LA 지사 외 다수로 우진과 함께하진 못하는 중· 어쨌든 우진과 트레일러에 들어선 최성건이 말했다·
“헐리웃이고 한국이고· 그냥 전세계적으로 ‘삐에로’가 ‘아카데미상’ 도전한다는 이슈 빵빵 터지더라· 예상이야 했는데 이렇게 발작 비슷하게 난리일 줄은 몰랐다·”
“그런가요 그래도 ‘컬럼비아 스튜디오’가 아직 정식 발표를 한 건 아니라서· 그게 터지면 더 시끄럽겠죠·”
“언제한다디?”
“며칠 안으로·”
“음· 우리 쪽도 준비해야겠네·”
곧 강우진이 쫄쫄이 타이즈를 갈아입을 때쯤 최성건이 주제를 바꿨다·
“‘야수와 미녀’ 크랩크업 날짜 대충 나왔다며?”
“예· 1월 초라고 들었습니다·”
“1월 초라- 한 달도 안 남았구만· 촬영 시작한 게 어제 같은데 시간 한 번 드럽게 빨리 가네· ‘삐에로’는 편집 막바지에 ‘야수와 미녀’는 촬영이 끝나가고·”
순간 최성건의 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 영화들이 전세계에 개봉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네· 크- 떨린다 떨려· 기대 안 되냐?”
기대되죠 오지게 기대됩니다· 속으론 최성건과 비슷하게 흥분했지만 겉으로는 평범하게 답하는 강우진·
“적당히·”
“고작? 임마 데뷔하고 몇 년 만에 헐리웃 평정하는 거라고· 하여튼 볼 때마다 신기해- 어찌 속내가 그리 딴딴하냐? 여튼 ‘게스트’ 쪽 제니퍼 서먼 대표한테 전화 받았는데· 뜬금 마일리 카라가 연락 왔다고 하더라?”
“······”
“플러스 크리스 하트넷까지· 둘 다 ‘게스트’에 관심이 있고 조만간 미팅할 거라고 하던데-”
작게 미소짓던 최성건이 강우진의 덤덤한 얼굴 중 볼을 툭 찔렀다·
“너지?”
“글쎄요·”
“글쎄는 개뿔· 아니 헐리웃 탑 중의 탑인 두 배우가 미쳤다고 ‘게스트’를 해? 것도 이리 뜬금없이? 네가 작업친 거 아니면 이게 가능한 그림이냐?”
예 맞습니다· 제가 작업 쳤어요· 속으로야 웃으며 답하는 우진이었지만 그가 최성건에게 답한 대사는 매우 짧았다·
“그저 시나리오를 추천했을 뿐입니다·”
“그게 그거지· 뭐라고 했냐? 그 두 배우에게 뭐라고 했길래 입질이 이렇게 빨리 와? 응?”
궁금증이 폭발한 듯 추궁한 최성건이었지만 강우진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근데 생각해보면 딱히 큰 작업을 친 것도 없었다·
‘그냥 뭐- 적당한 설명이랑 추천한 게 전부였는데·’
움직인 건 마일리와 크리스였다· 뭐 물론 그들에게 있어 강우진의 영향력이 어마무시했기에 일어난 현상이긴 했다· 즉 강우진 자체가 현재로선 치트키· 우진은 다른 것을 물었다·
“대표님 ‘게스트’ 건은 언제 오픈하실 겁니까?”
“음? 아- 슬슬 해야지· 그래도 ‘삐에로’랑 겹치면 안 되니까 ‘컬럼비아 스튜디오’가 정식 발표한 뒤에 해야겠지?”
대화하던 둘 중 쫄쫄이 타이즈를 벗은 우진이 모자를 쓴 뒤 먼저 트레일러를 나섰다· 재밌는 것은·
‘아·’
트레일러 바로 앞 익숙한 금발의 여자가 서 있다는 것·
“왜 그렇게 오래 걸려요?”
아직 ‘미녀 벨라’ 모습인 마일리 카라였다· 종일 같은 촬영장에 있었지만 서로 섞이는 씬이 없어서 한 마디 대화도 못 해본 그녀였다· 눈치를 살핀 최성건이 작게 헛기침한 뒤 먼저 자리를 떴다· 곧 강우진이 카라에게 읊조렸다·
“의상이 그대로네요·”
한 줄로 금발을 땋은 카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감독님과 얘기하다가 좀 늦었어요·”
“그랬군요·”
“그보다-”
말끝을 늘린 카라가 우진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좋은 향이 느껴졌지만 강우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마일리 카라가 주변을 훑다가 목소리를 죽였다·
“‘게스트’ 쪽에 전화했어요 며칠 안으로 미팅할 거 같네요·”
“네 들었습니다·”
“참고로 아직 확정은 아니고 뭣보다 당신 때문에 ‘게스트’에 관심가진 건 아니에요· 시나리오가 재밌어서 미팅을 잡은 거예요·”
잠시간 카라의 얼굴을 응시하던 강우진이 별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고·
“압니다·”
급작스레 두 눈을 좁히던 카라가 뱉은 말을 정정했다·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반은 당신 때문이 맞아요·”
강우진이 저도 모르게 웃었다· 잘 생각해보니 카라가 우진의 컨셉질 무장해제를 두 번이나 만들어 냈다·
“반이나 되나요?”
“······맞아요 그러니까 밥 먹어요 우리·”
“밥?”
“응· ‘야수와 미녀’ 촬영 동안 한 번도 못 먹었잖아요·”
그랬나? 하도 바빠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어려울 것 없다는 듯이 강우진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밥 먹죠·”
단숨에 표정이 밝아진 카라가 헛기침하며 표정을 숨겼다·
‘밥 한 번에 왜 이렇게 기쁜 건데? 짜증나 정말·’
후로·
퇴근한 강우진은 이동하는 승합차 안에서 인터넷 서핑을 즐겼다· 시작은 한국 쪽부터였다·
‘어우 씨 난리네 진짜·’
한국은 그야말로 미쳐 날뛰고 있었다· 주제는 뭐겠는가? 우진의 인터뷰 여파가 강렬히 퍼지는 중·
『[이슈픽]강우진의 ‘삐에로:빌런의 탄생’ 이번 4월에 열릴 ‘아카데미상’ 노린다? ‘컬럼비아’는 아직 조용』
『강우진이 직접 밝힌 ‘아카데미상’ 도전! 업계 전문가들 “시기상 불가능” 이번 4월 ‘아카데미상’에 진짜 강우진 모습 볼 수 있나?』
한국 언론은 온통 강우진과 ‘삐에로:빌런의 탄생’ 그리고 ‘아카데미상’ 얘기뿐이었다· 이미 ‘에미상’에서 남주상을 탄 그였기에 언론은 더욱 광분했다· 한국 대중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SNS 각종 커뮤니티 너튜브 사이로 우진의 떡밥만이 팽배했다·
-강우진 인터뷰한 거 헷갈린거 아니냨ㅋㅋㅋㅋ아니 솔까 4월에 아카데미상인데 그걸 어찌 나감??
-컬럼비아 영화사도 조용한거 보면 강우진이 먼저 질러버린듯ㅋㅋㅋㅋ백퍼
-ㄴㄴ4월 오스카에 강우진 나가는 거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님 조건만 채우면 쌉가능
-조건이 뭔데???
-일단 LA 쪽 영화관에 1주 이상 영화가 개봉해야됨ㅋㅋㅋ
-그렇게 하면 컬럼비아 영화사는 ㅈㄴ손해보는 거 아님?? 아카데미상 노렸다가 엿되면 개봉일정 싹 꼬이는거자넼ㅋㅋㅋㅋㅋ
-여튼 진심 강우진이 아카데미상 찐으로 나가면 개레잔도ㅋㅋㅋㅋ신급 되겠다
-근디 이렇게 대놓고 사발 풀면 아카데미상에서 아니꼬와서 안 뽑는 거 아니냐???
-작품이 지리면 뽑아야짘ㅋㅋㅋㅋ어쨌든 헐리웃도 지금 난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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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뿐만이 아닌 오프라인 역시 강우진 얘기가 넘실거렸다· 대중들의 대화에서 우진을 아는 연예계 관계자들 배우들 연출자들 등등· 한국이나 일본이 이 정돈데 헐리웃은 오죽할까?
『CNM/강우진의 폭탄 선언에 ‘아카데미상’ 측은 조용 정말 ‘빌런의 탄생’은 ‘아카데미상’을 노리는 걸까』
외신은 끝없이 기사를 파생시켰고 해외 유명 커뮤니티인 ‘네딧’에서도 온갖 잡소리와 헛소문이 번졌다· 다만 시기가 연말인 만큼 전세계 연예계는 강우진에게만 초점을 맞출 순 없었다·
수많은 시상식 행사 파티들이 줄을 이었으니까·
강우진 역시 ‘야수와 미녀’ 촬영을 이어가면서도 몇몇 시상식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매번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이번엔 우진은 말을 아꼈다·
그렇게 1주일 정도가 지났다·
어느덧 12월 중순·
초반보다 더욱 연말과 크리스마스 냄새가 진해진 상황 ‘야수와 미녀’ 촬영 세트장으로 출근 중이던 강우진이 ‘컬럼비아’ 쪽에 연락을 받았다·
“예 알겠습니다·”
짧게 통화를 마친 우진이 핸드폰을 내리자 오늘은 강우진과 함께인 최성건이 득달같이 물었다·
“뭐래?”
우진의 대답은 덤덤했다·
“1시간 내로 발표한답니다·”
실제로 이로부터 30분 뒤 ‘컬럼비아 스튜디오’는 공식 SNS 채널을 통해 전세계로 발표를 던졌다·
-[안녕하세요 컬럼비아 스튜디오입니다· 오늘은 ‘삐에로:빌런의 탄생’ 관한 얘기를 알려드릴까 합니다· 최근 강우진씨의 인터뷰로 화제가 된 내용입니다· 그가 말한 내용들은 모두 사실이며 우리 ‘삐에로:빌런의 탄생’은 내년 4월에 있을 아카데미상에 도전합니다· 따라서 선 개봉은 LA에서 2월 중 먼저 시작될 예정이며······]
안가복 감독이 ‘컬럼비아 스튜디오’에 전한 설계 그대로였다· 이 발표는 삽시간에 헐리웃을 잠식했다· 그간 물음표 가득하던 외신은 느낌표로 바뀌어 기사를 쏟아냈고 세계 대중들은 그 어떤 때보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로 떠들어댔다·
세계 여론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신박하며 충격적이거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거나·
헐리웃 역사를 통틀어도 거의 전무한 방법이었기에 다분히 그럴 만했다· 논란이 수십 배는 가중됐다· 허나 ‘컬럼비아 스튜디오’는 대수롭지 않게 ‘삐에로:빌런의 탄생’의 추가 포스터와 예교편을 공개했고 강우진은 자신의 SNS에 ‘삐에로’ 촬영 현장 사진을 공개하며 ‘응원해달라’ 정도의 짧은 의견을 올릴 뿐이었다·
헐리웃 포함 세계가 ‘삐에로:빌런의 탄생’으로 부글부글 끓어 넘칠 무렵 착착 진행되는 것들도 많았다·
“아 안녕하세요 마일리 카라·”
“반가워요·”
영화 ‘게스트’의 ‘A8 미디어’· 즉 제니퍼 서먼과 직원들은 헐리웃의 1티어 탑여배우 마일리 카라를 영접했다·
“후- 긴장되네요 그 마일리 카라가 눈앞에 있으니·”
“음? 그런가요? 작품 재미있게 읽었어요·”
“정말 영광입니다·”
간단한 미팅이었지만 생각도 못 한 대스타와의 미팅에 제니퍼 서먼은 티 나게 긴장했다· 반면 카라는 여유가 넘쳤다· 이 자리에서 확정 지어야 하는 건 많지만 역시 제니퍼 서먼이 신경 쓰는 것은 마일리 카라의 몸값이었다· 카라가 작품을 해준다면야 절을 100번 해서라도 잡아야 하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몸값이라면 그림의 떡이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흠- 나쁘지 않네요?”
제시한 몸값에 마일리 카라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확정은 아니다만 이 정도 느낌이라면 가능성은 있다· 제니퍼 서먼은 속으로 방방 뛰었다·
‘어느 정도 몸값이 높아진다고 해도- 예상 범위 안이야·’
물론 그녀가 카라에게 제시한 몸값도 퍽 큰 금액이었다· 어쩌면 ‘게스트’의 전제 제작비 중 50% 이상이 배우들 출연료라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이는 헐리웃에선 비일비재한 그림·
이어 마일리 카라와 미팅을 마친 제니퍼 서먼은·
“후 이제 다음·”
기백 서린 얼굴로 다음 타자를 만났다· 정확시 3시간 뒤 그녀와 마주친 헐리웃 탑배우는·
“하하 안녕하세요·”
“어서와요 크리스·”
크리스 하트넷이었다·
한편·
헐리웃의 ‘빅 파이브’ 중 한 곳인 ‘유니버설 무비스’에서도 하나의 안건이 확정됐다· 모인 이는 거인인 조셉 펠튼 포함 수많은 키스탭들 헐리웃 거물 감독 대니 랜디스 등· 즉 강우진이 세 번째로 확정 지은 영화 ‘존 페르소나’였고·
“복잡하니 연말은 보내자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신없는 12월을 보내고 내년 1월에 시작하시죠·”
“음 그래· 대본리딩은 1월에 가는 거로·”
‘존 페르소나’의 대본리딩이 몇 주 뒤 1월로 잡혔다·
이어 시간이 녹았다·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 너무도 많은 건들이 넘실거린 탓이었고 반쯤 혼을 빼고 스케줄을 쳐내던 강우진이 늦은 밤 LA의 집에 도착했다· 종일 촬영하다 퇴근한 그였기에 피로도가 극에 달한 강우진이었고·
“어후- 미친 죽갔네·”
컨셉질을 벗어던진 그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2022/ 12/ 31]
-[PM 11:55]
벌써 올해의 마지막도 5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 따라서 강우진의 핸드폰엔·
-우우웅·
-우우웅·
끝없이 여러 연락이 도착하고 있었다· 톡 메시지 DM 등등· 종일 전화도 울려댔다· 한 해의 마지막답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는 것· 그런 메시지들을 확인하던 우진이 순간 짧게 말했다·
“아 한 살 더 먹었네·”
핸드폰 화면에 표시된 숫자들이 바뀌었으니까·
-[2023/ 1/ 1]
강우진이 배우 4년 차가 된 순간이었다·
이틀 뒤 2023년 1월 3일·
한국 헐리웃 포함 어디나 정신없던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새해 역시 어디든 조용하진 않았다· 이른 아침 강우진은 방금 승합차에 올랐다· 새해가 밝았지만 그의 얼굴엔 역시나 포커페이스가 짙다·
“······”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는 그였지만 우진은 속으로 나름 두근대고 있었다·
‘오우 뭐했다고 내가 4년 차 배우냐?’
잠시잠깐 ‘아공간’을 처음 접한 때가 상기된 강우진· 바로 이때·
-우우웅 우우우웅·
그의 핸드폰이 긴 진동을 뱉었다· 약간 움찔한 강우진이 발신자를 확인했다· 상대는 안가복 감독이었다· 속으로 어라? 싶은 우진이 티 안 나게 목을 가다듬은 뒤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네 감독님·”
한국어로 말한 그에게 안가복 감독의 늙은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끝났네 ‘삐에로:빌런의 탄생’ 편집 말이야·”
발사 전 장전을 마쳤단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