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출 (4)/얘까지 무료입니답
흰색 벤 안에서 몇 걸음 떨어진 강우진을 보던 홍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승합차 앞에서 입꼬리를 비죽비죽 올리고 있었다. 홍혜연의 얼굴이 점점 더 심각해졌다.
“···뭐야 쟤. 뭘 하고있는 거냐고.”
그녀의 행색이 악바리 형사 ‘정현희’ 의상이라 심각함이 더 가중되는 느낌. 벤 안은 우진의 목소리가 잘 들리진 않았다. 뭔가 흐릿했다.
“흐흐···안 되는데. 계속···”
분명 평소의 강우진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경박스런 웃음.
덕분에.
-훅!
홍혜연이 이마에 올렸던 분홍색 안대를 내던지면서도 바로 몸을 움직였다.
-드르륵!
벤의 문을 연 홍혜연이 급하게 강우진에게 뛰었다.
“우진씨!”
이 순간 강우진은 실실대던 웃음을 뚝 멈춘 상태였다. 아니 흠칫했다. 상황상 홍혜연은 강우진의 컨셉 무장해제를 봤을 가능성이 컸으니까. 따라서 우진은 부동자세였다. 홍혜연이 불렀음에도 승합차 창문을 그저 무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강우진!”
못 참겠다는 듯 우진의 바로 뒤에 섰던 홍혜연이 강우진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이내 우진에게 홍혜연의 얼굴이 보였다. 긴 생머리를 묶은 그녀의 얼굴은 세상 심각했다. 강우진은 즉시 곤란함을 느꼈다. 아니다. 이건 위기였다.
“···”
“···”
잠시간의 정적. 강우진이나 홍혜연이나 서로 빤히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그러다 먼저 물꼬를 튼 건 강우진이었다. 조심스럽고 톤이 낮다.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처음부터요.”
순간 강우진의 단단한 얼굴이 미세히 꿈틀했다. 그리곤 약간 힘 빠진 한숨을 뱉었다.
“후···”
자포자기가 섞였다. 이때였다.
-텁!
돌연 홍혜연이 강우진의 양어깨를 붙잡더니 죽어라 흔들었다.
“그러면 안 돼!”
강우진의 얼굴은 정처 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홍혜연은 멈추지 않았고 갑작스레 그녀가 얼굴을 우진의 코앞으로 훅 붙였다. 가깝다. 너무 가까운데? 우진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뒤로 빼냈다.
허나 홍혜연은 심각이 가득한 눈빛으로 강우진의 눈동자를 살핀다. 1초 5초 10초.
이어.
“정신 차려!”
다시금 홍혜연이 강우진의 양어깨를 과감히 흔들어댔다.
그 순간.
“왜 그래?! 뭔 일인데?!!”
저 앞에서 꽁지머리 최성건이 뛰어온다. 그의 뒤론 덩치 큰 장수환도 붙었다. 설상가상이었다. 사람이 늘었다. 이때 강우진과 홍혜연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던 최성건이.
“야야! 잠깐만!”
후다닥 뛰어와 우진과 홍혜연 사이를 갈랐다.
“너네 지금 싸우는 거냐?!”
이상한 오해가 중첩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홍혜연은 최성건의 어깨를 붙잡곤 강우진을 가리켰다.
“그게 아니라! 지금 우진씨가.”
“우진이가 왜?! 뭐?!”
“우진씨가 혼자 웃고 있었어! 것도 실실.”
“···어? 우진이가 웃었다고?”
“웃는 거 본 적 없어 오빤 있어?”
최성건도 약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우진이가 실실 웃었다고? 혼자?”
곧 모두가 무심한 강우진에게 시선을 붙였다. 그리고 홍혜연이 다시 말했다. 여전히 심각.
“방금 히죽대면서 혼잣말도 하고. 실실거리는 게 완전 평소 우진씨랑은 달랐어.”
읊조리던 그녀가 강우진에게 외쳤다.
“빠져나와요! 박대리에 먹히지 말고. 우진씨는 사이코 소시오패스가 아니잖아!”
예? 강우진은 잠시간 멍때렸다. 하지만 홍혜연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방금 우진씨 웃음은 박대리의 것보단 좀 더 주접스럽긴 했는데···그게 더 소름이었어. 촬영도 끝났잖아? 너무 몰입했던 거죠? 못 빠져나오겠어?”
최성건도 강우진의 얼굴을 자세히 보며 걱정을 보탰다.
“정말? 정말 그래? 힘드냐? 정신과 예약 잡아줘? 괜찮아 정신과 다니는 배우들 꽤 있으니까.”
“···아니요.”
“메소드과 배우는 임마 더 조심해야 돼! 그러니까 한 번 가자.”
이 순간 강우진의 머리는 매우 빠르게 돌고 있었다. 생전 갈 일도 없던 정신과를 가게 생겼으니까. 답을 내라 뭐든 답을 내.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면서 정신과를 안 갈 묘수.
그때.
‘아.’
번뜩 뭔가가 떠올랐다. 우진은 즉시 방금 생각난 변명거리를 시니컬하게 읊조렸다.
“아니요 방금 그건 박대리가 아니었습니다.”
대답은 미간을 좁힌 홍혜연이 빨랐다.
“···아니라고? 그럼?”
“‘실종의 섬’ 시나리오 안의 한 캐릭터를 해본 거예요.”
“‘실종의 섬’? 그게 뭔데요.”
“권기택 감독님 시나리오요.”
곧 최성건이 아- 따위의 반응을 보이며 홍혜연에게 시선을 붙였다.
“그런 거였구만? 어후 놀라라. 아직 확정이 아니라서 별말 안 했는데 ‘실종의 섬’ 그거 권기택 감독님 차기작 맞어.”
“···권기택 감독님 차기작 시나리오를 우진씨가 받았어?”
“어 받았지.”
“진짜? 권감독님 배우 검증할 거 다 하고 난 뒤에 주시지 않나? 그리고 난 차기작 소식 못 들었는데.”
“우진이 검증받았다. 그리고 권감독님 차기작은 아직 대외빈 것 같고.”
“그럼 지금 우진씨만 시나리오 받았다는 거야?”
되물음에 최성건이 묵묵한 우진을 힐끔 한 뒤 답했고.
“뭐 영화사에선 배우들 몇 돌렸다는데 조용한 거 보면 우진이만 받은 것도 같어.”
눈 커진 홍혜연이 강우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송만우 PD님 거 촬영 끝나자마자 권기택 감독님에 합류한다고?”
“아직 확정된 건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박대리 촬영이 끝나자마자 바로 권기택 감독님 쪽 캐릭터를 연습했다는 거예요? 쉬지도 않고?”
“연습까진 아니고 심심해서 한 번 해봤습니다.”
“무슨 캐릭턴데요?”
“이중인격. 그 이상 말씀드리기가 좀.”
“아 그래서 웃는 게 박대리보다 더 주접스러웠던···”
이곳은 이미 ‘실종의 섬’이 아닌 ‘착각의 섬’ 자체였다. 어쨌든 우진은 속으로 진한 안도를 느끼면서도 목소리를 깔았고.
“오해지만 걱정 감사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와- 씨 진짜 앞으론 방심 금물이다.’
뒤로.
‘착각의 섬’이 얼추 적당히 정리된 후 홍혜연은 왜인지 우진에게 적당한 인사 뒤 뜬금 대본 연습을 한다며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반면 강우진의 퇴근길을 여러 배우들이 배웅했다.
류정민은 물론이고 오늘 촬영에 나온 주연급 배우들은 전부다.
“우진씨 ‘미장센 영화제’ 본선작 올랐다면서요? 축하해.”
“그거 이번에 후원사 바뀌면서 엄청 판을 키웠던데? 나도 초대받았는데 시간 되면 갈게요. 보니까 국내 거장들하고 외국 감독들도 초대 많이 됐더라고.”
“미장센은 원래 배우들도 꽤 가잖아? 그거 시상식이 5월 7일인가? 어머 그러면 우리 드라마 첫방이 15일이니까 잘하면 우진씨 엮이겠는데요?”
“상 타고 이슈되면 당연히 엮어야지? 영화제 좀 잘 되고 우리 거 시청률 터지면 올해 라이징 배우는 우진씨로 확정?”
배우들은 대체로 강우진의 ‘미장센 단편 영화제’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이들은 ‘흥신소’에 홍혜연이 나오는 건 아직 몰랐다. 비밀이었으니. 그중 평소 호탕한 장태산이 우진을 보며 떠오른 말을 가볍게 뱉었다.
“근데 이번 미장센에 배우 쪽 상도 신설됐다매? 얼핏 보니까 박정혁도 나온다 안 했어? 하하 이거 잘- 하면 우진씨하고 박정혁하고 상 두고 싸우는 그림 나오겠는데? 그럼 난 우진씨 한 표.”
이런 시끌벅적한 배웅이 끝난 건 30분을 보낸 뒤였고 우진이 탄 승합차 안은 고요했다. 같이 고생한 스타일리스트 한예정은 꾸벅꾸벅 졸았다. 평소 시끄러운 로드 장수환도 묵묵히 운전할 뿐. 조수석 최성건도 말없이 핸드폰을 내려본다.
그리고.
‘뭔가 묘- 하네. 기분이.’
강우진도 덤덤한 얼굴로 컴컴한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지옥 같았지만 정들었던 ‘프로파일러 한량’ 촬영장은 이제 갈 필요가 없었다. 첫방 회식 때를 빼면 전체 스탭이나 배우를 볼 일도 없고.
‘고생을 함께한 전우들을 뒤로하고 전역하는 기분? 배우 이거 약간 헤어짐에 익숙해져야겠네.’
그래 군대 전역. 지금 우진의 기분은 딱 전역 날의 느낌과 비슷했다. 그쯤.
“우진아.”
다이어리를 펼친 조수석의 최성건이 몸을 돌려 물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정신과 필요하면 말해.”
아니요 절대 안 갈 겁니다. 우진이 확정이 실린 목소리로 답했고.
“걱정마세요 멀쩡합니다.”
고개 끄덕인 최성건이 강우진에게 이번 주 스케줄 관련을 읊기 시작했다.
“촬영 고생 많았다. 내일부터 30일까진 ‘프로파일러 한량’ 후시 작업하고 프로필 수정 건 포함해서 기타 등등 좀 소화하고. 금토일은 좀 푹 쉬자. ‘미장센 영화제’ 관련으론 대충- 5월 4일부터 준비 시작하면 되니까.”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하던 강우진이 낮게 답했다.
“예 대표님.”
드디어 강우진에게 첫 휴일이 잡혔다.
며칠 후.
어느덧 4월이 끝나고 5월의 해가 떴다. 오늘은 5월 2일 토요일. 물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말 아침이었지만 영화계는 조금 달랐다.
『‘미장센 단편 영화제’ 4월 30일을 기점으로 성대하게 개막/사진』
이틀 전에 꽤 공격적으로 홍보를 던지던 ‘미장센 단편 영화제’가 시작됐으니까. 미장센 영화제는 30일에 개막해 6일 정도 상영을 하고 마지막인 7일에 폐막과 시상식을 진행하는 스케줄이었다.
그리고.
“코엑스 간만이네.”
한창 진행 중인 ‘미장센 영화제’에 강우진이 나타났다. 장소는 CCV 코엑스. 초대형 영화관이었고 현 시간은 아침 9시 30분.
“워- 사람 은근 많네.”
강우진은 이른 아침에도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약간 놀랐다. 저 많은 인파가 죄다 ‘미장센 영화제’를 위해서 온 건 아니겠지. 어쨌든 우진이 시간을 확인했다.
‘시작이 아침 10시부터랬지?’
웃긴 건 강우진의 행색이 좀 요상하다는 것. 흑 청재킷까지는 무난하다만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썼다. 마치 연예인인 것 마냥. 뭐 배우인 것 맞지만 아직 정식 데뷔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진이 이런 복장인 건 최성건의 조언 때문이었다.
‘어? ‘흥신소’ 미장센 할 때 직접 가서 볼라고? 아- 뭐 괜찮겠지. 시사 테스트한 거랑 대형 스크린이랑 보는 건 또 느낌이 다르니까. 가는 건 좋은데 얼굴은 가리고 가라? 알았지?’
생각해보면 맞는 소리였다. 여러 사람들과 ‘흥신소’를 관람했다가 강우진을 알아보면 일이 좀 귀찮아지니까. 오늘의 우진은 사적인 휴가를 즐기는 거니 뭐든 조심하는 게 좋았고.
“얼굴만 가리면 되겠지. 어차피 아직 알아보는 사람도 개뿔 없는데.”
강우진이 초대형 코엑스 내부로 진입했다. 일단 영화관으로 가면 되나? 했는데 친히 입구서부터 영화제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어 우진이 CCV 코엑스 영화관에 도착했다.
‘미장센 단편 영화제’는 역시나 일반 상영존이 아닌 따로 준비한 특별관 쪽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입구서부터 행사 느낌이 물씬 풍겼다. 영화제 관련 옷을 입은 스탭들하며 홍보 그림이 실린 등신대 등등.
뭣보다.
‘허- 뭐냐? 몇 명이나 온 거여?’
영화제를 첫 타임부터 즐기러 온 사람들이 퍽 많았다. 로비는 거의 인산인해. 얼추 백여 명은 넘지 않을까? 뭔가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기자들도 보였고 봉에 핸드폰을 낀 BJ이나 너튜버들도 몇몇 눈에 띈다.
따라서 강우진은 약간 긴장했다.
‘진짜 제대로네.’
참고로 ‘미장센 영화제’ 상영관은 여기만 있는 건 아니었다. 상영하는 단편 영화는 약 30편에 10편씩을 종일 반복하며 매일 10편씩 로테이션 방식으로 돌린다. 장소는 총 3곳. 즉 오늘이 ‘흥신소’가 처음으로 상영하는 날이었다.
어쨌든.
-스윽.
잠시 멈칫한 강우진이 기둥에 비치된 영화제 팸플릿을 집었다. 여러 가지 정보가 적혀 있다. 영화 시간표라든지 영화제 관련.
그중 강우진이 집중한 건 상영표였다.
‘‘흥신소’는 보자- 아 10시 첫 타임이네.’
단편이라 그런지 10편을 다 봐도 약 3시간이 좀 넘는 수준. 그중 ‘흥신소’는 러닝타임이 길어선지 가장 첫타임이었다. 따라서 우진은 미리 예약한 티켓을 발권한 후.
‘여기 맞지?’
안내판에 적힌 특별관의 문을 열었다. 내부는 일반 상영관과 거의 비슷했다. 다만 규모가 컸다. 아직 상영 전이라 불은 켜져 있었는데 역시나 사람이 꽤 있다. 시간이 임박해선지 얼추 500석에 80%는 채워진 상태.
연령대도 다양했다.
혼자 온 사람 커플 친구끼리 어르신들. 사람이 많아 말소리부터 부산스럽다. 다만 아무도 강우진을 신경 쓰진 않았다. 그저 몇몇이 힐끔대는 게 다였다. 아마 마스크를 써서 그런 듯. 물론 강우진도 별 신경 안 쓰고 정해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중간의 입구 쪽 끝 자리였다.
동시에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꾼 강우진이 작게 심호흡했다. 막상 정면 대형 스크린에 자신이 나온다 생각하니 뭔가 초조했다. 어색하기도 했고.
‘후- 맨날 탑배우들 얼굴이나 봤지 저 큰 스크린에 내 얼굴이 나올 줄 상상이나 했겠냐고.’
긴장됐다. 최성건의 말처럼 테스트 시사와는 또다른 감정이었다. 추가로.
‘관객들까지 있으니까 반응도 실시간일 거잖어?’
자신의 연기와 얼굴을 볼 수백 관람객들까지 주변에 가득했다. 서서히 강우진은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바로 그때.
“여기 맞다니까.”
“올- 맞네?”
“입 좀 닫고 자리나 찾아.”
입구 쪽에서 남자 목소리들이 강우진에게 들렸다. 문제는.
“엥?”
우진에게 매우 익숙한 음성이라는 것. 덕분에 강우진은 자연스레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남자 세 명이 보였다. 그들을 보자마자 우진은 재빨리 고개를 훅! 숙였다.
이유야 간단했다.
‘저 미친놈들이 왜!!’
남자들은 강우진의 불알친구들이었으니까. 우람한 김대영을 시작으로 이경성과 나형구까지. 여기에 강우진까지 끼면 원래의 4인방이 완성된다. 그렇기에 우진은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왜인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친구들은 강우진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서로 대화하며 우진의 바로 옆을 스친다. 선두는 김대영이었다. 그가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며 친구들에게 작게 말했다.
“아 겁나 앞쪽이네.”
대답은 한 손에 팝콘을 든 뚱뚱한 이경성이 빨랐다.
“야 이거 영화보다가 모가지 뒤로 부러지는 거 아니냐?”
기생오라비 느낌의 나형구가 동의했다.
“목 빠지는 거 확정.”
투덜대면서도 셋은 일단 제일 앞쪽 자리에 앉았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꾼 김대영이 이유를 설명했다.
“아 세 자리 붙은 게 여기밖에 없었다고.”
곧 팝콘을 씹던 이경성이 대뜸 강우진을 소환했다.
“강우진 주말에도 안 나오는 거 보니까 여친 생겼어 이거.”
“좀 냅둬라. 걘 원래도 우리 중에서도 인기 나름 있었잖냐.”
“아니 숨기는 게 좀 빡치잖아.”
“알리면 니하고 형구가 보여달라고 지랄을 하니까 그랬겠지.”
이 순간.
-스으.
밝던 상영관의 조명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동시에 시끄럽던 내부가 단숨에 조용해졌다. 영화가 시작될 거라는 신호였으니까. 그 덕에 3인방은 일단 대화를 끊었고.
-♬♪
정면 대형 스크린에선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미장센 영화제’ 관련 홍보 영상이 틀어졌다. 영상이 길진 않았다. 얼추 5분쯤?
이어 상영관 불빛이 전부 꺼졌다. 그대로 대형 스크린에 회색 안개와 함께 영화 타이틀이 출력된다.
-‘흥신소’
5초 뒤 타이틀이 사라지며 고요하던 상영관 전체로 창문 열리는 소음이 퍼졌다. ‘흥신소’가 시작된 것이었다.
-드르륵.
김대영과 친구들은 나름 스크린을 응시하며 집중했다. 500여 명의 관객도 마찬가지. 이때 컴컴하던 스크린에 영상이 출력됐다.
‘흥신소’ 글자들이 붙은 낡아빠진 창문을 연 김류진이 나온 것.
[“후우-”]
흐리멍텅한 눈동자에 영혼이 없는 얼굴의 김류진이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그리고.
[“갈까 의뢰인 보러.”]
담배를 창틀에 구겼다.
이 순간.
“···?”
“?!”
“???”
김대영 이경성 나형구가 전부 작게 입을 벌렸다. 당연히 시선은 스크린에 닿은 상태. 우람한 김대영은 두 눈을 쉴새 없이 끔뻑였고 이경성은 팝콘 들던 손을 우뚝 멈췄다. 나형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곤 고개를 갸웃했다.
왜겠는가?
자신의 불알친구인 강우진이 저 커다란 스크린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뭐지?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이건 당황 정도가 아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 닮은 정도가 아니라 저건 강우진이 확실했다.
곧.
-스윽.
스크린을 뚫어져라 보던 삼인방이 마치 짠 듯이 고개를 내렸고 충격이 서려 커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좌우 왔다 갔다. 얼마나 놀랐는지 입을 벌린 채로 말이다. 눈빛은 비슷하다.
맞지?
그러다 우진의 불알친구 삼인방은 다시금 김류진이 보이는 대형 스크린에 시선을 올렸다. 그리곤 속으로 거의 동시에 발작했다. 어쩌면 발광.
‘시팔!! 니가 왜 거깄는데?!!!’
‘저 새끼! 거기서 왜 배우인 척을 하고 자빠졌냐??!’
‘대체 뭔···시발 꿈인가?!!’
불알친구들이 우진의 첫 데뷔를 직관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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