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화 서막 (4)
속으로 괴랄한 비명을 지른 강우진· 하마터면 그는 겉으로도 괴성이 새어 나올 뻔했다· 아마 같은 차에 스타일리스트 등 팀원들이 함께였다면 쌩난리가 났겠지· 다행히 팀원들은 뒤차에 탄 상태· 어쨌든 가까스로 본능을 참아낸 그가 어렵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도·
‘미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날씨가 좋았다· 우진은 잠시간 현실도피를 한 뒤 다시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최성건이 보이는 핸드폰에 눈을 맞췄다· 설마 잘못 봤겠지·
허나·
『CNM/마일리 카라가 강우진의 집에서 나왔다 둘은 사랑에 빠졌다/ 사진』
기사는 여전히 당당히 출력되고 있었다· 아니 시바 이게 뭐냐고· 내면의 괴성이 커진 강우진은·
“음·”
대수롭지 않은 척을 하며 최성건의 핸드폰을 아예 뺏었다· 물론 과격하지 않고 매우 덤덤하게· 이어 충격적 기사 타이틀을 넘어 말없이 내용을 확인하는 그·
“······”
기사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적당히 축약하면 강우진과 마일리 카라가 사랑을 나눈다는 것· 기사엔 사진까지 첨가됐다· 심지어 2장이나· 한 장은 늦은 밤 마일리 카라가 LA의 강우진 집에서 나오는 컷 두 번째는 집 앞에서 우진과 카라가 가깝게 마주 본 채 대화하는 컷·
사진은 딱 봐도 누군가 몰래 찍은 것·
보정 따윈 일절 없는 매우 현실적 사진이었다· 내용과 사진을 본 강우진은 딱딱한 컨셉질 덕분에 표정은 유지했지만·
‘뭐여 이거!!!’
속 알맹이는 대혼돈에 빠졌다·
‘사랑에 빠졌다??! 의문형도 아니고 그냥 확정이냐??’
아니 보통은 ‘사랑에 빠졌다’가 아니라 ‘사랑에 빠질 것 같다’든지 뭐 ‘핑크빛 기류’ 같은 워딩을 사용하잖아? 우진은 배우가 되기 전 한국에서 심심치 않게 봤던 연예인 열애설들을 상기했다· 근데 본인의 것은 왜 시작부터 확정인가? 헐리웃이라 그런가? 강우진의 생각처럼 헐리웃은 물음표 기사보다는 느낌표 기사가 많았다·
강우진처럼 헐리웃도 ‘노빠꾸’·
그야 처음 겪는 일이지만 헐리웃엔 사실여부는 개뿔 없이 확정적으로 뿌려지는 열애설은 많았다· 몇 날 며칠 따라다니며 증거를 모은 건도 있으나 그것은 극소수고 강우진의 기사처럼 정황만을 가지고 냅다 쏘는 게 보통·
당연히 한국보다 자비가 없다·
‘어떤 새끼야 이 기자!’
점차 혼돈에서 흥분으로 바뀌는 강우진· 뭐가됐든 대특종이었다· 그렇잖은가? 등장부터 지금까지 헐리웃부터 전세계를 뒤흔드는 강우진과 배우 또는 가수나 세계적 탑스타인 마일리 카라의 열애설이었다· 심지어 우진의 이슈력은 최근 거의 하늘을 뚫고 있는 중·
이만하면 강우진의 당황은 이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냐 이거? 이럴 땐 무슨 컨셉질을 잡아야 되냐고·’
그는 데뷔부터 지금까지 한국이나 헐리웃이나 인지도는 최강이었지만 스캔들이 극히 드문 배우이기도 했다· 당연했다· 데뷔 4년 차 그간 너무도 바빠서 딴짓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런 강우진이 한국도 아닌 헐리웃에서 열애설이 터졌다·
곧·
-스윽·
들고 있던 핸드폰을 천천히 최성건에게 넘기는 우진· 최성건은 핸드폰을 받으면서도 오묘한 표정을 지었고 강우진은 기사에 첨가된 사진들 관련 과거를 상기했다·
‘아니 근데 그때 주변에 기자가 있었다고?? 아니면 파파라치였나?!’
참고로 헐리웃은 기자들이 발로 뛰는 경우도 있지만 파파라치가 사진을 찍어 언론사에 파는 경우도 퍽 많은 편· 어느 쪽이 됐든 열애설 기사에 뜬 강우진과 카라의 사진은 진짜였고 얼마 안 된 일이었다· 스토리는 이랬다· 우진과 카라는 밥 약속이 있었고 예전부터 이래저래 고마운 건들이 있기에 강우진이 그녀를 집으로 초대한 것·
하지만 단둘은 아니었다·
이 사진 속 날에는 강우진 최성건 마일리 카라 그녀의 메인 매니저로 총 4명이 함께였다· 그런데 기사에는 마치 단둘이 달콤한 시간을 보낸 것처럼 꾸며놨다· 사랑은 보너스· 여하튼 언론사의 명백한 추측성 기사였다·
이때·
“우진아·”
내내 강우진의 표정을 살피던 최성건이 말을 걸었다·
“이 기사 속 사진 그때지? 마일리 카라랑 같이 밥 먹은 날·”
티 안 나게 움찔한 우진이 담담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후 평소에도 파파라치가 따라다니긴 했는데 설마 너네 집까지 붙었을 줄은- 아오! 늦은 밤이라 방심했다· 내 관리 부족이다·”
“아니요 저도 신경 못 쓴 거죠·”
“이런 빌어먹은 새끼들이 써놓은 것 좀 봐라 아주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탈춤까지 춰대는구만·”
혀를 찬 최성건이 잠시잠깐 강우진의 얼굴을 살폈다· 우진의 심정을 파악하기 위함· 그러나 헛짓· 저 얼음장 같은 표정에서 속내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최성건은 턱을 긁으며 속으로 읊조렸고·
‘흠- 근데 그간 둘 사이를 보면 이 기사가 영 틀린 소리는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 뭐랄까 애매하고 오묘한 기류가 때때로 보였단 말이지·’
bw 엔터의 대표인 최성건이었다· 회사의 심장과도 같은 우진의 심정을 알아둬야 대응이 가능하다·
“그- 우진아· 이건 진짜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랑 마일리 카라랑 둘이 관계가······사이가 어찌 되냐?”
의심이 아닌 알아두기 위함이라는 멘트도 추가됐다· 순간 강우진은 찔렸다· 저도 모르게 말이다· ‘사랑’이란 단어는 황당한 게 맞지만 우진은 카라에게 대놓고 ‘고백’받은 사실이 있으니까· 강우진이나 카라나 미친 듯 바빠서 조금 더디긴 했으나 굳이 표현하면 현재는 썸이나 그 비스무리한 관계?
확실한 건 예전처럼 그저 그런 동료는 아니었다·
이어 최성건이 작게 숨을 뱉으며 주제를 바꿨다·
“흠- 뭐 그건 둘째 치고 일단은 이 열애설 기사부터 처리하자고· 당시 상황 설명하고 바로 정정 보도해야지·”
“···아니요·”
그런데 강우진이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기사 그냥 두죠·”
두 눈을 끔뻑이는 최성건·
“그 그냥 둔다고?”
“네·”
“아니 왜·”
왜냐고요? 그냥 딱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이 기사는 잘못됐고 오해다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정정 보도를 하면 이렇게 뿌려지겠지만 왜인지 강우진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은 대응 없이 그냥 두겠습니다·”
“야 괜찮겠냐? 헐리웃이나 한국이나 이거 그냥 두면 태풍 불 텐데? 거기다 우리가 아무 액션이 없으면 기사를 인정하는 꼴이고·”
우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바로 부정하는 건 좀 싫었다· 사랑까진 몰라도 분위기가 나쁘진 않은 데다·
‘아니 여기서 내가 칼부정하고 정정 보도 갈기면 뭔가- 카라를 내가 거절하는 느낌이잖어?’
그녀를 거절하는 모양새가 별로였다· 현실적으로는 바로 부정하고 카라에게 연락하는 게 맞겠지만 강우진은 현실보단 낭만을 택한 모양새· 추가로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언론이나 여론이나 떡밥 주기 싫어요· 당장은 별 대응 없이 침묵하죠·”
“······일단 알겠다·”
두 눈을 좁히며 답한 최성건이 속으로 픽 웃었다·
‘둘이 뭐 있네 확실히 이 기사가 사실일지도·’
같은 시각·
드넓은 ‘유니버설 무비스’ 안의 한 리딩장이었다· 방이 넓고 그 중간에 비치된 ㅁ자 책상 규모 역시 대단히 컸다· 리딩장엔 수십 외국인들이 몰려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흑인의 거인·
“하하·”
핸드폰 속 기사를 보는 그는 영화 ‘존 페르소나’의 프로듀서 조셉 펠튼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존 페르소나’의 대본리딩이 열릴 곳· 따라서 ‘존 페르소나’의 감독과 키스탭 및 제작진 ‘유니버설 무비스’의 관계자 그리고 헐리웃 배우들이 즐비했다·
이미 수십 명은 자리했다·
재밌는 것은·
“이거 진짠가??”
“사진까지 있는 거 보면 확실한 거 같은데·”
“허- 마일리가 강우진의 집에서······둘이 언제 이렇게 된 거지·”
“아니 그런데 이 사진 2장만 보고 판단하긴 이르지· 언론이나 파파라치들 호들갑 떠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도 동감이야· 일단 확정 짓고 보는 언론사들 몰라?”
“하지만 이 사진 속 둘이 너무 사이가 좋은데? 심지어 이 늦은 밤에 집에서 나왔고·”
‘존 페르소나’의 배우들 포함 키스탭 등이 강우진과 카라의 얘기로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 뭐겠는가? 직전에 쏴진 둘의 열애설 기사 때문이었다· 아직 도착은 안 했지만 영화 ‘존 페르소나’의 남주는 강우진· 그러니 모두의 관심이 폭발할 수밖에·
맞다 아니다로 부산스러움이 증폭된다·
이쯤 마찬가지로 핸드폰 속 기사를 보던 조셉 펠튼의 옅은 미소가 짙어졌다·
‘늦게 터진 편이지·’
그가 아주 예전 과거부터 떠올렸다· 마일리 카라가 한국에 처음 넘어갔을 때 가서 강우진의 너튜브 채널에만 출연한 때 후로 마일리 카라 새 앨범에 돌연 강우진 참여 칸 영화제 ‘이로운 악’과 이번의 ‘야수와 미녀’까지· 큼지막한 건 이 정도지만 사이사이 자잘한 에피소드도 많았다·
이게 그저 동료나 친구로서 나올 수 있는 스토리인가? 아니겠지· 사실 헐리웃 유명 프로듀서인 조셉은 우진과 카라의 사이를 어느정도 예측하곤 있었다·
‘기사가 진짜든 아니든 둘이 묘한 기류가 있긴 했지· 잘 어울려 축복해줘야겠군·’
이즈음 앉은 조셉에게 다가오는 코끝에 동그란 안경을 걸친 늙은 남자· 헐리웃 거물 겸 ‘존 페르소나’의 감독 대니 랜디스였다·
“이 기사 어찌 보나?”
조셉 펠튼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하지만 사진상으로는 잘 어울리는군요·”
“그런가? 흠-”
침음을 뱉던 대니 랜디스 감독 역시 미소를 지었고·
“가뜩이나 강우진에겐 여러 이슈들이 붙은 상탠데 이 특종 급의 열애설로 더욱 요동치겠구만· 이렇게나 끝없이 이슈가 터지는 배우는 또 처음이군·”
시끌시끌한 리딩장 전체를 훑은 그가 조셉에게 요청했다·
“다들 흥분한 거 같은데 좀 진정시킬 필요가 있겠어·”
동감한다는 듯 거인 조셉이 자리에서 일어나 웅성대는 모두에게 말했다·
“흥미로운 건을 확인한 건 알겠지만 조금 침착해질 필요가 있는 거 같네요· 그리고 강우진씨 도착하면 그 건에 관한 건 일절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열애설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얘기·
“‘존 페르소나’의 대본리딩에 방해가 될 테니까요·”
말을 마친 조셉 펠튼이 의자에 다시 앉았고·
‘어떻게 잡은 강우진인데 이딴 일로 기분 상하게 만들 거 같아? 절대 안 되지·’
다행히 리딩장의 분위기는 점잖게 변했다·
이로부터 20분 뒤쯤·
-스윽·
갈색 패딩의 강우진이 ‘존 페르소나’ 리딩장에 입장했다· 그의 등장에 수많은 인사들이 던져졌고 우진 역시 모두에게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속 알맹이 강우진은 ‘존 페르소나’의 전체 인원들 눈치를 살폈고·
‘스읍- 이 양반들 뭔가 가면을 쓰고 있는 거 같은데? 기사 봤겠지 응 백퍼 봤다· 참고 있는 건가?’
배우들부터 제작진 전체는 입이 근질거려 미치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오묘한 상황 속 대니 랜디스 감독의 한마디로·
“시작할까요 배우 소개부터 하죠· 먼저 강우진씨·”
“안녕하세요· ‘존 오웬’ 역을 맡은 강우진입니다·”
‘존 페르소나’의 대본리딩이 시작됐다·
한편·
LA의 한 대형 에이전시의 미팅룸에 고성이 터졌다·
“이런!! 이게 무슨!!”
꽤 넓은 내부를 보니 대여섯 외국인과 의자에 앉은 금발의 여자가 보였다· 여유 있게 다리 꼰 마일리 카라였다· 그녀는 태블릿을 보고 있었고 화면엔 역시 열애설 기사가 출력되는 중· 이어 반삭 머리 메인 매니저가 고함을 이었다·
“당장 헛소리라고 정정 보도하고! 마일리! 너는 강우진에게 연락해봐!!”
다른 외국인들 역시 분노한 건 마찬가지· 이어 옅게 웃던 카라가 뱉은 대답은·
“조나단 그러지 마·”
“뭐?? 무슨 소리야??”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야·”
“그래 네가 강우진을 좋아······어? 뭐?”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미 그에게 고백도 했고·”
후로 몇 시간 뒤 일본·
LA는 오후였으나 일본은 이른 아침이었다· 그런 일본 도쿄에 있는 커다란 공연장· 수만 관객석이 비치된 이 공연장에선 오늘 한국 걸그룹의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걸그룹 멤버들은 공연장의 제일 큰 대기실에 몰려 있었다·
아침부터 리허설을 돌려야 했으니까·
특이한 건 걸그룹 멤버 중 한 명인 루즈한 검은색 후드를 입은 여자가·
“······아·”
핸드폰을 보다가 돌연 마시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바닥에 툭 떨궜다· 덕분에 내용물이 바닥에 산재했고 주변 팀원들이 놀라며 여자에게 붙었다· 여자의 두 눈은 터질 듯 확장돼 있었다· 이에 놀란 팀원들의 외침·
“화 화린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여자는 강우진을 극심히 덕질하는 화린이었고 그녀는 핸드폰 속 열애설 기사를 보며 혼이 빠져버렸다·
“꿈-”
강우진의 열애설 기사는 이미 한국과 일본에 핵폭탄 터진 듯 가득했다·
“그래· 이건 꾸 꿈일 거야·”
꿈일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