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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MMGA 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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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 (1)

밤 11시쯤 한 작가작업실.

내부가 얼추 40평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공간. 아파트라 언뜻 가정집 같긴 했으나 여긴 작가작업실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거실 중앙 책상엔 보조 작가들이 열심히 노트북을 쳐대고 있다.

보조 작가들이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건 으레 자주 볼 수 있는 광경. 그리고 책이 가득 찬 책장으로 둘러싸인 가장 넓은 방에도.

-타닥 타다다닥.

정신없는 타자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회색 헤어밴드를 찬 중년 여자가 보였다.

“쯧.”

글이 안 풀리는지 혀를 찬 그녀가 이 커다란 작가작업실의 주인이었다. 이름은 박은미 작가. 대략 40대 얼굴에 긴 파마머리를 묶은 그녀.

그런 박은미 작가가.

“하-”

골 아프다는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쌀 때였다.

-♬♪

노트북 옆 그녀의 핸드폰이 경쾌한 벨소리를 뱉었다. 그러나 박은미 작가는.

“···”

슬쩍 눈길만 줄 뿐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약 한 달 전부터 미친 듯 전화가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이유야 간단했다.

『[이슈체크]스타 작가 박은미 작가가 돌아온다···방송가 벌써부터 들썩』

그녀는 국내 몇 없는 스타작가 중 한 명이었으니까. 지금껏 드라마 총 14작품을 썼고 가장 최근 작품을 포함해 8작품을 히트시켰다. 그럼 나머지 6작품이 망했나? 그것도 아니었다. 평균 이상은 했다.

즉 박은미 작가는 망했다 하는 작품이 없는 울트라급 스타작가였다.

그런 그녀가.

『히트작 제조기 박은미 작가 이번 신작 SBC와 함께한다/사진』

이번엔 SBC 드라마국과 손을 잡았다. 연출은 현존하는 PD 중 거물로 손꼽히는 송만우 PD였다. 둘은 이미 5작품을 같이 했었고 심지어 이번엔 프리 시작도 전에 탑배우 한 명이 확정됐다.

바로 홍혜연.

거대한 어마어마한 세 명이 기본으로 깔렸다. 따라서 제작 시작도 전에 소문은 빛의 속도로 퍼졌다.

그 덕분이었다.

-♬♪

박은미 작가의 핸드폰이 분마다 벨소리를 뱉어대는 것은. 대부분 대형부터 중형까지의 수많은 엔터 쪽 전화였다. 어떻게든 자기네들 배우를 끼워 넣고 싶을 게 빤했다. 뭐 당연하긴 했다.

이 판에 낀다면 소위 말하는 초대박이니까.

이를 박은미 작가 역시 모르지 않았다.

“난리네 난리야.”

그녀 정도 급의 작가라면 캐스팅 판을 좌지우지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다만 이번 신작 배우진의 청사진은 어느 정도 그려진 상태. 홍혜연은 확정. 그러니 엔터들의 전화는 박은미 작가에게 귀찮을 뿐이었다.

덕분인지.

“ 어휴- 시끄러워.”

우렁차게 울리는 핸드폰을 끌 생각으로 박은미 작가가 손을 뻗었다. 그러다 멈칫.

“응?”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어 송 PD님. 이 밤에 무슨 전화야? ‘슈퍼액터’ 그거 예선 심사한다면서요 촬영 끝났어요?”

상대가 엔터들이 아닌 턱수염 송만우 PD였으니까. 이어 핸드폰 너머 송만우 PD가 퍽 다급하게 답했다.

“어어 끝났어. 것보다 박작가 나 지금 작업실로 가고 있거든?”

“지금?”

“거의 다 왔어. 20분 있다가 도착이야.”

이미 한배를 탔으니 작업실 오는 거야 문제없지만 시간이 늦었기에 박은미 작가가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

“나 이제 씻으려고 했는데? 급한 거 아니면 내일 아침에 보죠?”

“아니아니. 급해 이거 당장 박작가가 봐야 돼. 아 그리고 홍스타도 있어.”

“뭘 봐? 아니 혜연이도 같이 온다구??”

“어어. 자세한 건 가서 얘기합시다.”

밤 11시 넘어서 송만우 PD와 여주로 확정된 홍혜연이 오고 있다. 뭔가 작은 일은 아닌 듯싶었다.

“휴- 같이 심사 본다더니. 일단 알았어요.”

“오케이!”

-뚝.

곧 핸드폰을 대강 던진 박은미 작가가 헤어밴드를 벗으며 방을 나섰다. 밖에 있는 보조 작가들을 퇴근시킬 모양.

“얘들아 지금 송 PD님 오신다니까 다들 오늘은 집에 들어가. 한 이틀 쉬고.”

수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조 작가들이 싱글벙글 짐을 챙겼고 박은미 작가가 픽 웃었다.

“좋단다. 카드 줄 테니까 집 가기 전에 맛있는 것 좀 사 먹어. 가격 신경 쓰지 말고.”

“앗! 감사합니다!!”

카드를 받으며 흥분하는 보조 작가들. 그중 안경 낀 여자가 박은미 작가에게 얇은 종이뭉치를 내밀었고.

“작가님 말씀하셨던 소시오패스 자료들이요.”

종이뭉치를 받은 박은미 작가가 작게 한숨을 뱉었다.

“응 고생했어. 근데 요거는 안 쓸지도 모르겠다.”

“왜요?? 아- 배우 문젠가요?”

“맞아. 할 애들이야 널렸는데 소화를 못 하는 게 문제야. 연기 좀 괜찮은 것들은 기피 하고. ”

혀를 찬 박은미 작가가 자료를 대강 TV 앞 탁자에 올렸다.

“배역 설정 자체를 바꿀지도 모르겠어.”

몇십 분 뒤.

어느새 보조 작가들이 퇴근한 작가작업실. 대신 거실 소파에는 새로운 인물 두 명이 보였다. 송만우 PD와 박은미 작가에게 찰싹 붙은 탑여배우 홍혜연이었다.

“어머- 작가님 작업실 향 되게 좋다! 디퓨저 바꾸셨죠?”

그러거나 말거나 박은미 작가는 약간 귀찮다는 듯.

“홍스타 정신 사나우니까 좀 앉지?”

홍혜연에게 옅은 면박을 줬다. 허나 그런 박은미 작가 익숙한지 홍혜연은 별수롭지 않았다.

“맨날 그러시더라? 귀찮아하시면서도 은근 디퓨저 바꾼 거 알아주길 바라셨잖아요.”

“아니거든? 됐고. 진짜 앉아 차 다 됐어.”

뒤로 박은미 작가가 준비한 차를 탁자에 올렸다. 그러면서도.

-스윽.

아까부터 핸드폰을 내려보고 있는 송만우 PD를 힐끔하며 입을 열었다.

“근데 PD님 국장님이 계속 연출해도 된대? 이번 거 연출 못 할 수도 있다 어쩐다 했었잖아요?”

“흥.”

바로 콧방귀 끼는 송만우 PD.

“내가 하겠다는데 지들이 어쩔거야?”

“에이- 그래도 집단이라는 게 또 안 그렇잖아요? 솔직히 PD님 경력에 이름값에 나이면 애진작에 데스크 앉았어야 되지 않나?”

“데스크는 개뿔. 연출 못하면 은퇴해야지.”

이때야 송만우 PD는 핸드폰 보던 시선을 올렸다. 탁자 건너편 박은미 작가에게.

“근데 진짜 이번 작이 마지막일지 몰라. 나이도 나이고 뒷놈들 생각해서 슬슬 빠져줘야지.”

턱수염을 긁은 송만우 PD는 액면상 50대였으나 사실 40대 중반이었다. 지금껏 이룬 업적과 나이만 보면 진작 방송국 CP 이상급 간부로 앉아야 했다. 다만 연출 못 할 바엔 죽는다는 마인드였다.

그런 그가 긴 한숨을 뱉었고.

“아직은 나만큼 시청률 빼는 놈이 없어서 그나마 생명 유지하는 거고.”

홍혜연과 박은미 작가가 한마디씩 보탰다.

“전 PD님이 계속 연출하셨으면 좋겠는데!”

“나도 비슷한 생각이긴 한데. 뭐 PD님이 CP로만 합류해줘도 괜찮겠다 싶기도 해요.”

그러나 송만우 PD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어차피 계속 눈치 주기도 하고 이번 작품 마무리되면 회사 나가야지. 제작사 하나 차려서 연출 계속하는 방향도 보고 있고.”

“오호- PD님이니까 투자는 바로 들어오겠네요.”

이 순간.

“그러니까.”

송만우 PD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고.

“이래저래 이번 거 제대로 터트려 보자고.”

긴 생머리를 팔랑인 홍혜연이 눈웃음쳤다.

“동의 완전 동의.”

작게 한숨 뱉은 박은미 작가도 어깨를 으쓱이며 거들었다.

“뭐 언제는 그런 마음가짐이 아니었나? 그래서? 이 밤에 두 분이 쳐들어온 용건은 뭐죠?”

되물음에 송만우 PD가 대뜸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아까부터 만지작대던 핸드폰을 앞쪽 대형 TV에 연결했다. 바로 미간을 찌푸리는 박은미 작가.

“뭐해? 영화라도 보자구요?”

대형 TV를 조작하던 송만우 PD가 리모컨을 들며 잔잔히 답했다.

“일단 봐 보고 얘기해.”

“뭘 봐?”

“오늘 찾은 숨어있던 고수. 아니 배우.”

“···뭐라는 거야 대체.”

박은미 작가가 대놓고 칭얼댔지만 송만우 PD는 자신의 핸드폰에 담긴 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이어 대형 TV에선 한 남자가 출력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슈퍼액터’ 예선전의 첫 참가자 강우진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박은미 작가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쟨? 아- 이거 혹시 ‘슈퍼액터’ 녹화분?”

하지만 리모컨 쥔 채 서 있던 송만우 PD는 질문을 질문으로 답했다. TV를 검지로 찍으면서.

“저 친구 어때.”

의자에 앉은 강우진. 고개가 약간 삐뚤하고 핸드폰을 귀에 붙이고 있다. 거기다 동공이 약간 풀렸고. 박은미 작가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바로 평가를 내렸다.

“키도 좀 되고. 비주얼도 괜찮네요. 살짝 거친 느낌도 섞였고. 근데 쟤 술 먹었어요? 취한 것 같은데? 동공이 풀렸어. 눈빛이 좀.”

대답은 다리 꼰 홍혜연이 빨랐다.

“쎄-하죠? 얼빵하면서.”

“살짝 맛이 간 것 같아. 신인? 지망생? 여튼 무명치곤 분위기가 독특하긴 하네.”

“아니요. 신인이나 지망생 같은 잣대로 나누긴 애매해요.”

“뭐? 하- PD님 저런 애를 왜 보라는 건데요? 나 진짜 피곤해. 오늘 글도 안 나와서 가뜩이나 머리 깨진다구.”

이때였다.

-드륵.

TV 속 강우진이 느릿하게 움직여 심사위원 앞에 섰다. 그리곤 뭔가를 보이기 시작했다.

발작과 발광 그 사이 어디쯤.

거친 숨과 필사적인 눈빛 괴랄한 손짓과 발짓 처연함과 처절함이 섞인 몸의 떨림 얼굴 근육에서부터 발산하는 세세한 표현.

그렇게 30초 1분 3분.

TV 속 강우진은 처음과는 다른 사람이 돼 있었고 소파에 앉았던 박은미 작가는.

“···”

어느새 대형 TV 코앞에 붙어 있었다. 좀 전의 불평불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금 그녀의 표정은 단단하고 올곧다.

‘이거···이거 연기가 맞아?’

세상에 이런 반전이 있나. 박은미 작가는 보면서도 계속 의문이 들었다.

‘진짜 칼에 찔려본 경험이 있나?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해?’

이때.

-스윽.

송만우 PD가 대뜸 재생되던 영상을 뚝 멈췄다. 그리곤 눈을 크게 뜬 박은미 작가에게 물었다.

“약 빤 것 같던 처음과 세상 처절한 지금. 어느 쪽이 이 친구 진짜 성격 같아?”

“모르겠어. 그보다 얘 연기 왜 이래요? 처음 봐 이런 류 이건 사실적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할지.”

“그래. 저걸 쪽대본 1분 보고 보였다면?”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말이 돼요??”

“모르긴 몰라도 어마어마한 노력이 있었겠지.”

“뭐라구요??”

“아니야 얘 인터뷰까지 한 번 봐봐.”

곧 TV에선 연기를 멈춘 강우진의 짧은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독학했습니다’ 따위의 대답을 뱉는 그는 이번엔 퍽 거만해 보였다. 또는 자존감이 높거나. 여기서 다시 묻는 송만우 PD.

“이쪽이 진짜 같아?”

“···헷갈려.”

“그렇지?”

이어 턱수염 송만우 PD가 TV를 뚫어져라 보는 박은미 작가에게 한걸음 붙었고.

“애가 연기가 미친 와중에 계절감이 확실해. 선선했다가 뜨거웠다가 싸늘했다가. 마치 싸이코같이. 쟤 보고 있으면 배역 하나 안 떠올라?”

이때야 박은미 작가의 정신이 팍 돌아왔다. 그런 그녀가 몸을 뒤로 휙 돌려 탁자 위에 시선을 맞췄다.

탁자 위 그녀가 본 것은.

“아.”

보조 작가가 주고 간 소시오패스 자료였다.

다음 날 아침 13일. 강우진의 원룸.

시간은 8시쯤. 잠에 빠져있던 강우진이 번뜩 눈을 떴다. 머리는 산발에 머리맡엔 책대본과 시나리오가 널브러져 있다. 아마 대본을 읽다가 잠든 모양.

어쨌든.

“끄으-”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켠 우진은 생수부터 들이켰다. 그러면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여기서 멈칫.

“아 왔네.”

모르는 사람에게서 톡 하나가 도착했다. ‘슈퍼액터’ PD가 우진의 연기컷을 보내준 것. 그런 영상을 일단 핸드폰에 다운받은 강우진이.

-스윽.

양반다리로 앉았다. 영상을 확인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그는 쉽사리 영상을 틀지 못했다.

“좀 거시기하네.”

꺼졌던 수치심이 다시금 켜졌으니까. 이불킥 뭐 그런 느낌이겠지. 본인의 목소리마저 녹음해서 들으면 어색하다. 그런데 민망함과 쪽팔림이 가득한 발악하는 병신일 게 빤한 본인 연기를 본다?

쉽지는 않은 일.

그래도.

“후- 진정해 고작 영상이니까.”

강우진은 봐야 했다. 이 영상이 아공간에 처음 진입한 직후의 증거였으니까.

곧.

-톡.

강우진이 저장한 영상을 터치했다. 그의 핸드폰에선 그가 출력됐다. 바로 역겨움이 올라오는 우진이었으나 참았다.

그게 얼추 5초.

“응?”

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폭발하던 수치심도 옅어졌다. 이유야 간단했다.

“이거···괜찮지 않나?”

핸드폰 속 자신의 연기가 나쁘지 않았으니까. 물론 여전히 어색함은 있었다.

다만.

“잘하잖아? 나 왜 잘하지?”

쪽팔리거나 수치심이 들 정도의 연기력은 아니었다. 그것도 잠시. 핸드폰 속 자신이 무언가에 찔려 악을 지르는 부분에 이르자.

“···와씨 쩌는데?”

강우진은 저도 모르게 감탄해버렸다. 이게 진짜 나라고? 당연히 연기에 관해 개뿔도 모르는 그였기에 이렇다 할 기준은 없다만 시청자로서 본다면 영상 속 본인은 충분히 대단했다.

어느새 영상에 빠져드는 강우진. 이때 그는 돌연 깨달았다.

“나 꼴사납지 않았던 거였나?”

쪽팔려 하거나 이불킥 할 필요가 없는 수준.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난 좀 무아지경이었지?’

정신도 없었고 뇌 작동도 더뎠다. 거기다 우진은 ‘연기를 잘한다’의 명확한 기준도 몰랐다. 모두가 신들린 연기라 평해도 본인이 쓰레기라 결론 내리면 그것으로 끝. 어제의 강우진이 딱 그랬다.

그렇기에 연기는 남이 평가해주는 것.

하지만 강우진은 폭발하는 수치심에 연기를 끝내자마자 런했다. 아니 도망쳤다. 이쯤 약간 침착해진 우진이 어제를 상기했다.

‘내 연기가 오졌다. 그걸 기준으로 맞춰보면?’

억지로 지워냈던 흑역사들이 전부 새롭게 보였다. 3명 심사위원들이 했던 질문은 전부 예의상이 아닌 충격에서 비롯된 것. ‘슈퍼액터’ PD 역시 마찬가지.

“잠깐만. 그러면 내 1차 합격은 웃음거리를 위한 게 아니라- 진짜 연기로 합격했다는.”

어제 만난 모든 이들이 강우진의 연기에 반했다. 그런 결론이었다. 이 순간.

“아 씨.”

강우진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제 종일 내보였던 지독한 컨셉이 떠올랐으니까. 근엄한 척 쎈척 허세 등등.

“돌겠네.”

당시엔 쪽팔림을 감추기 위한 연막이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거만함을 부추긴 꼴이었다.

“오지는 미친 실력자로 봤겠는데.”

연기력 최상위 포식자 또는 괴물 천재배우. 그런 놈이 자존감마저 하늘을 찌르니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 강우진의 탄식은 대체로 사실이었다. 허나 이미 오해의 눈덩이는 구르기 시작했다. 꽤 빠른 속력으로.

물론 당사자인 강우진은 몰랐지만.

그러다.

“뭐 어때.”

적당히 읊조린 강우진이 단숨에 답을 내렸다.

“다시 안 볼 사람들인데 딱히 신경 안 써도 되겠지.”

현재 집중해야 되는 것은 다른 쪽이기에.

“여튼 난 아공간인지 나발인지에 들어갈 수 있고 작품 속 배역을 가질 수 있다.”

강우진은 지금 당장이라도 어제의 ‘겁먹은 사내’를 보일 수 있었다. 꼭 뇌 속에 저장된 것 같은 감각. 곧 우진이 팔짱 끼며 옆에 놓인 대본을 말없이 봤다.

정확하게는 대본 옆에 뜬 검은색 사각형을.

“···”

그가 작게 읊조린 것은 이다음이었다.

“개 어이없는 말이다만. 호주 워킹이 아니라 배우를 해볼까?”

이때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손에 쥐어진 핸드폰이 긴 진동을 뱉었다. 전화였고 화면엔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다. 덕분에 대수롭지 않게 핸드폰을 귀에 붙이는 강우진.

“네 여보세요.”

핸드폰 너머로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강우진씨. 나 송만우 PD라고 기억나죠? 심사위원석 중간에 앉았던.”

“아 턱수염 나신.”

상대는 송만우 PD였다.

“하하하 맞습니다. 다른 게 아니고 혹시 만날 수 있습니까? 가능하면 빨리.”

나를? 왜? 순간 미간을 찌푸린 강우진이 아차차 하며 작게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매우 낮은 톤으로 답했다.

“먼저 이유를 알려주시는 게 순서 같은데요.”

컨셉질을 유지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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