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출 (8) >
사실 나름 ‘미장센 영화제’에 적응하고 있던 강우진이 명백히 당황하기 시작한 건.
홍혜연이 자리로 돌아왔을 때부터였다.
“축하 안 해줘요?”
“···축하드립니다.”
애초 그녀가 최우수상을 받은 것도 의아한 우진이었다. 단연 대상으로 생각했었다. 연기도 그렇겠지만 경험이나 이름값도 무시 못 할 테니. 그런데 홍혜연은 최우수.
“고마워요. 엎드려 절받기지만.”
“근데 저한테 미리 축하한다는 건?”
“왜 모르는 척해? 내가 최우수면 답은 나왔잖아요? 안 어울리게 겸손 컨셉 잡지 마요.”
“···”
“뭐 첫 축하를 내가 먼저 해주고 싶었어요. 최우수 받아도 나 기분 하나도 안 나쁘고. 인정하고 있으니까.”
와중.
-스윽.
일정이 있는 탓에 시상식에 늦게 도착한 꽁지머리 최성건이 도착했다. 식 도중이라 허리를 숙인 채 신동춘 감독과 홍혜연 쪽에 스륵 붙는 그.
정장 입은 최성건이 홍혜연에게 바로 엄지를 세웠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좀 늦었네요. 이야- 혜연이 고새 상을 받았네? 뭐 받은 거야.”
“연기 최우수.”
“잘했네 잘했어. 언플 준비해야겠구만.”
홍혜연이 최우수라는데 소속사 수장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런 둘을 보던 강우진이 일단 자리서 일어났다. 정신없는 와중 예의는 차린 것.
‘앞이 좀 좁네.’
최성건은 우진의 오른쪽 빈 좌석에 앉을 테니 지나갈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최성건이나 홍혜연 모두 뜬금 일어난 강우진에게 시선이 붙었다.
그 순간.
“연기 대상···축하합니다 ‘흥신소’의 강우진 배우!”
난데없이 무대 쪽에서 대상으로 강우진의 이름이 쩌렁쩌렁 울렸고 순간 우진은 메인 무대 방향을 보며 약간 멍때렸다.
여기서 옆자리 홍혜연이 픽 웃었고.
“이거 봐. 자기 이름 부르기도 전에 일어났으면서. 대상은 자기라고 확정 짓고 있었네.”
최성건 역시 미소지으며 강우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너만의 자신감 난 좋게 본다. 축하하고 일단 가서 상 받고 와.”
홍혜연 왼쪽에 앉은 신동춘 감독도 축하를 던졌다. 이 순간에도 자잘한 오해가 쌓였지만 우진은 반응할 겨를이 없었다.
“···”
호흡과 사고를 정리한다고 정신이 없었으니까. 뭔가 이 홀의 공기가 달라졌다. 끈적이면서도 붕 뜨는 기분이었다. 약간 술에 취한 것 같은.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픽 쓰러질 것 같았다. 전율에 가까운 감정이지만 강우진은 이를 인지할 시간도 없다.
-탁 탁 탁.
최선을 다해 무대로 걸어가야 했으니까.
웅성대는 수십 사람들의 리액션도 들리지 않았고 잔잔히 터지는 박수 소리도 전혀 안 느껴지는 강우진. 그는 평생 받아본 상이라곤 초등학생 때 행글라이더 멀리 날리기 은상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엔 쟁쟁한 탑배우들을 제치고 대상이었다.
강우진의 혼이 빠져나가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실력과는 별개로 첫 경험의 중압감. 여기서부터 우진의 이성은 옅어졌고 본능이 몸을 지배했다. 즉 자아를 유지해 줄 컨셉이 짙어졌다는 뜻. 이즈음 강우진은 무대에 올랐다. 정신은 아직 멍한 상태지만 진한 표정만큼은 또렷했다.
그리곤 일본말이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작품 정말 대단했어요.”
쿄타로 감독이었다. 다만 우진에겐 방금의 일본말이 이질적이지 않았다. 뭔가 한국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대답도 아주 자연스레 나왔다. 마치 한국어처럼.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監督.(감사합니다 감독님)”
의도를 한 건 아니지만 의도한 것처럼 연출됐다.
“‘흥신소’를 좋게 봐주셔서 영광입니다.”
동시에 무대와 가까운 관객석 쪽이 쑥덕댔다. 무대 위 코가 큰 쿄타로 감독도 눈이 살짝 커졌다. 물론 그의 옆에 선 통역 직원도.
따라서 통역 직원이 우진에게 물었다. 이번엔 한국어였다.
“일본어를 잘하시네요?”
놀란 통역 직원이 얼결에 뱉은 질문이었다. 이때야 강우진의 붕 떠 있던 이성이 조금씩 돌아왔다.
‘···아. 어? 일본어? 나 방금 일본어로 답했었나?’
좁게 보이던 강우진의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 덕에 온몸을 휘감고 있던 긴장이 조금씩 옅어졌다.
“아니요 그저 조금 할 뿐입니다.”
통역 직원에게 대답할 때쯤 강우진은 이성을 완벽히 찾았다. 수많은 거물이 지켜보는 자리였다. 어쩌면 첫 출사표가 될 곳에서 일말의 실수가 있으면 안 됐다. 쿄타로 감독이 입을 연 건은 이다음이었다.
물론 일본어였고.
“혹시 일본에 사셨습니까? 공부해서 나오는 발음이 아니라서 그래요.”
양손에 트로피와 꽃다발을 든 강우진이 쿄타로 감독과 시선을 맞췄다.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조명 탓인가? 뭐가 됐든 일본어 좀 써볼까? 강우진이 적당히 낮게 일본어로 답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리 내세울 실력은 아닙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
“하하 그럴 리가요. 그 정도 일본어 실력이면 원어민 수준인데. 뭐랄까 좀 놀랐습니다.”
“어떤 게?”
“···터무니없는 연기력에 그 정도의 외국어를 통달했으면서 어째서 당신은 단편에 전전하고 있는 겁니까? 한국엔 그런 배우가 많은 건가요?”
단편에 전전해? 뭔 소리지. 강우진은 약간 뜸을 들였다. 와중 통역 직원은 고민했다. 이 대화들을 통역해야 할까?
그도 그럴 게.
“뭐야 쟤. 일본인이었나 봐요?”
“아니던데. 한국말도 잘 했어요.”
“아니면 미리 습득해 놓은 거 아닌가?”
이 순간 관객석 백여 명은 죄다 고개를 갸웃대고 있었으니까. 이름 모를 무명이 연기 대상을 받은 것도 의아한데 그런 무명 배우가 무대 위에서 덤덤히 일본 거장 감독과 허물없이 대화 중.
“강우진이랬나? 일본어 수준급인데? 아- 일본에서 활동했었나 보네.”
“재일교포 같은 거? 그래서 쿄타로 감독이랑도 안면이 있는 건가?”
“일본에선 꽤 유명한가 봐요? 재일교포는 일본 이름이 따로 있잖아.”
“묘한 친구구만.”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게 빤했다. 강우진을 모르는 인물들이 이 정돈데 아는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특히나.
“···일본어?”
심사위원석의 권기택 감독이나.
‘어떻게 된 거야. 해외파라는 게 영어권만이 아니었던 건가? 일본도 거쳤어? 두 쪽 모두에서 연기력을 쌓아왔다?’
입을 작게 벌린 홍혜연 최성건 신동춘 감독.
‘일본어까지 된다고? 심지어 일본어도 유창해? 뭐야 쟤 사실 인생 2회차인 건가?! 말이···안 되잖아. 왜 까도까도 계속 미스테리한 거냐고!’
‘···역시 일본어도 가능한 거였군. 대체 저놈은 어떤 과거를 살아온 거지?’
‘오호- 우진씨가 일본에 살았었나 보네.’
물론 박은미 작가까지. 그녀는 얼마나 놀랐는지 양손으로 입을 막은 상태였다.
‘미친 연기력 토템 영어 일본어···이거 정말 종교를 창설해야 할지도.’
백여 명이 모인 홀은 나름 고요했지만 잔잔한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착각과 오류가 점철된 태풍. 하지만 정적 그 태풍의 눈인 강우진은 이 상황을 전혀 몰랐다.
그저 쿄타로 감독을 근엄히 바라볼 뿐.
이때.
-스윽.
무대 아래쪽 ‘미장센 영화제’ 스탭이 강우진을 보며 손가락을 휘휘 돌렸다. 수상 소감을 진행하라는 사인이었다. 하긴 무대 위에서의 사담이 좀 길기는 했다. 이를 눈치챈 통역 직원은 통역을 포기하고 우진에게 손짓했다.
“일단 소감부터 하세요.”
분위기를 파악한 쿄타로 감독도 우진에게 바로 일본어로 사과했다.
“아 이런. 미안해요. 내가 진행을 방해했군.”
곧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선 강우진. 그의 시야에 백여 명의 거물들이 한눈에 보였다. 300석 이상의 좌석을 전부 채운 건 아니지만 이 상황 자체가 첫 경험인 우진에겐 충분히 웅장했다.
“···”
우진이 티 안 나게 침을 삼켰다. 결전의 순간이다. 소감? 뭘 말해야 하나. 최대한 무거우면서도 예의가 있어야 했다. 그쯤 무대 주변에 포진된 기자들이 엉거주춤 강우진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고.
“누군진 몰라도 이 일단 찍어야겠지?”
“홍혜연이나 박정혁을 눌렀는데 찍어야지.”
“이름 뭐랬더라?”
“강우진 강우진.”
무대 위 무심한 강우진에게 꽤 눈부신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이에 강우진은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았으니까.
‘아오- 씨. 몰라. 적당히 하고 가자.’
정신이 산만한 탓인지 강우진은 대략 머리에 떠오르는 말들을 뱉기로 했다. 당연히 목소리는 깔고.
“감사합니다. 힘든 시간들이 참 길었지만 지금은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소감을 길게 하진 않겠습니다. 이 영광의 상을 채찍으로 생각하고 지금보다 더 멈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우진의 소감이 끝나자 적당히 박수가 터졌다. 그런 사이 권기택 감독이 픽 웃었고.
“멈추지 않고 지금보다 더 최선을? 무섭구만.”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강우진이 무대를 내려왔다. 와중에서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도 멈추진 않았고 백여 명의 눈길도 강우진을 따라 움직였다.
뒤로 강우진이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흥신소’팀의 축하가 던져졌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이 산만한 강우진은 적당히 감사를 표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손에 들린 트로피를 내려본다. 역시나 성취감이 말도 안 되게 높았다.
‘아- 입꼬리 자꾸 올라가네. 참아라 참아.’
단편이지만 영화제에서 연기로 최고라 인정한 상이었다. 강우진은 이 상을 집 어디에 장식하지? 따위의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작품 대상! 올해는 나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흥신소’!!”
갑작스레 무대에서 ‘흥신소’가 불렸다. 동시에 눈시울을 붉힌 사각턱 신동춘 감독이 일어났다.
즉 ‘미장센 단편 영화제’에서 3관왕으로.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다들!”
‘흥신소’가 휩쓸었다는 뜻이었다.
약 한 시간 뒤 서울의 한 대형 카페.
대충 보기에도 퍽 넓은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카운터 주변엔 카페 로고가 박힌 컵이나 가방 등이 진열돼 있고 주변에 비치된 테이블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다들 뭔가를 정신없이 해댄다.
누구는 수다를 누구는 공부를 누구는 핸드폰을. 많은 손님들은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각자 할 것을 하기 바빴다. 그런 손님들 사이 음료가 올려진 창가 쪽 테이블에 익숙한 여자 3명이 앉아 있다.
나이는 20대 초반?
딱 대학생의 얼굴. 이미 꽤 오랫동안 수다를 떤 뒤라 그런지 딱히 대화는 없다. 한 명은 가져온 노트북으로 뭔가 작업 중이었고 남은 둘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중.
그러다.
“응?”
흰 셔츠를 입은 여자가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그녀의 말에 주변 친구들이 반응했다.
“뭔데? 누구?”
“또 남자지.”
“아! 아니라고!”
약간 투덜댄 셔츠 입은 여자가 보던 핸드폰을 친구들에게 훅 보였다. 핸드폰엔 한 기사가 출력 중이었다.
“봐봐! 이 이름! 어디서 들은 거 같지 않아?”
친구들은 금방 핸드폰에 시선을 맞췄다.
“음- 그러네? 익숙한데? 근데 좀 흔한 이름이긴 해. 너 썸타던 남자 중 한 명 아니고?”
“아니라고!”
“근데 이 남자 배우야? 홍혜연이랑 같이 찍혔네? 무슨 시상식 있었나?”
“몰라. 나도 연예 기사 돌다가 걍 눈에 띄어서 봤어.”
“강우진 강우진. 으으으음. 어디서 들었더라?”
“근데 좀 잘생기긴 했다. 신인인가 봐.”
그때였다.
“다들 뭐 봐?”
여자 3명 뒤로 갈색 긴 머리에 모자 쓴 여자가 등장했다. 손에 물기가 있는 것이 화장실을 다녀온 모양. 그런 그녀에게 바로 물음표가 전달됐다.
“현아! 너 강우진이란 이름 기억나?”
물음에 모자 쓴 여자는 당연히 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유야 심플했다.
“기억하고 뭐고 그거 우리 오빠라고 했었잖아.”
그녀는 강우진의 동생 강현아였으니까. 즉 여기 앉은 여자 3명은 그녀의 친구들이었다. 이어 친구 한 명이 양손을 짝 쳤다.
“아!! 맞다! 현아 오빠···어? 오빠? 오빠라고?”
“응.”
“헐 대박.”
“와- 현아 너 오빠 배우 아니라며?”
자리에 앉던 강현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오빠 얘길 왜 하고 있었는데?”
“아니! 헐! 현아 너네 오빠 지금 기사에 떴는데?”
“···그게 뭔 소리야. 배우 한다고 선포한 게 두 달 전인가 그런데.”
“진짜야!”
친구 중 한 명이 강현아에게 핸드폰을 밀었다.
“심지어 홍혜연이랑 같이 나왔음! 무슨 상 타셨나 봐! 뭐야! 오빠 완전 잘생기셨네!”
“???”
강현아가 눈을 반짝이는 친구들을 훑다가 핸드폰에 시선을 내렸다.
동시에.
“···어?”
그녀의 두 눈이 디립다 확장됐다. 분명 기사 안에는 자신의 혈육이 찍혀 있었으니까. 심지어 탑여배우 홍혜연과 함께였다.
“엥???”
한편 경남 진주.
진주 버스터미널 근방. 현재도 수많은 버스들이 오가는 거리에는 사람이 퍽 많다. 버스를 타거나 방금 버스에서 내렸거나. 그런 인파들 때문인지 버스터미널 주변엔 가게가 많다.
그 사이 죽집이 보였다.
편의점이나 김밥집보다는 손님이 없어 보이는 죽집이었다. 인테리어는 죽집이라 그런지 차분했고 주인으로 보이는 건 부부였다. 남편은 카운터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었고 부인은 카운터 옆 간이 의자에서 한숨을 돌리는 중.
부부는 둘 다 동안이었다.
남편 쪽은 키가 꽤 크고 진한 인상 부인 쪽은 키는 적당했지만 피부가 좋았다. 문제는.
“하-”
부인에게 고민이 있는지 퍽 긴 한숨을 뱉는다는 것.
“걱정이네 걱정이야.”
그러자 마우스를 클릭하던 남편이 시선은 모니터에 둔 채 물었다.
“왜.”
“당신은 걱정 안 되나? 아들한테 관심이 없어.”
“현미야. 너는 너무 걱정을 사서 한다. 알아서 하겠지 일단 두고 보자고.”
남편의 대답에 부인이 작게작게 투덜댔다. 이쯤 손님이 입장했고 자연스레 부인이 손님들에게 인사했다. 이어 적당히 주문을 받은 그녀가 카운터로 돌아왔다.
“야채죽 호박죽.”
“···”
그런데 남편한테서 대답이 없다. 이상함을 느낀 부인이 남편의 어깨를 툭 쳤다.
“뭐하는데.”
이때야 훅 정신을 차린 남편이 보던 모니터를 와이프 쪽으로 돌렸고.
“···현미야. 이름이 눈에 띄어서 클릭했거든? 근데 왜 우리 아들이 이런 분하고 사진을 찍었을까?”
얼굴을 작게 구긴 부인이 ‘뭐라는 거야’ 정도의 말을 뱉으며 모니터에 눈을 붙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금세 입을 쩍 벌렸다.
당연했다.
“어어? 우리···우진이네?”
“응 우진이. 근데 왜 우리 아들이 기사에 나와?”
부부에겐. 아니 강우진의 부모로서는.
『[영화제]‘미장센 영화제’ 배우상 받은 배우끼리 찰칵! 홍혜연은 ‘최우수상’ 신인 강우진이 ‘대상’/ 사진』
거대한 충격이었으니까.< 돌출 (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