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류 (3) >
강우진은 자신의 SNS 계정을 보며 약간 벙쪘다. 3만 명? 3만 명이 내 계정을 친추했다는 건가? 난생처음 해본 SNS라 현실감이 없었다.
어쨌든.
‘3만 명이 하루 만에?’
적은 숫자가 아니란 건 대강 눈치챈 강우진이었다. 뭐 탑여배우 홍혜연이라면 3만을 크게 생각 안 할지 모르지만 강우진은 어제까지 쌩무명이었다. 심지어 알맹이는 아직 소시민.
그런데 3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강우진은 팔로워했다.
“···”
강우진은 천천히 손을 움직여 한예정이 올렸다는 사진 중 하나를 터치했다. 과연 좋아요와 댓글이 꽤 됐다.
-드라마 잘 봤어요!!
-연기 넘넘넘 잘하셔서 팔로워했어요….ㅎㅎ
-뭐야? 이 배우님 연기상도 탔어요?? 찾아봐야 겠다!
-당신…나 꼬시기 성공했어 근데 박대리는 무서움ㅋㅋㅋㅋ
-어라? 이분 왜 현실은 박대리가 아닌 거죠? 꾸며놓으니까 그냥 존잘인데????와이????
-ㅠㅠㅠㅠ잘생겨따ㅠㅠㅠㅠ
-초면에 죄송한데요 사랑합니다
-연기 개잘하시더라구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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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만 백여 개가 넘는다. 우진은 댓글들을 쭉 훑으면서 느꼈다.
‘아- SNS이래서 하는 거네. 뭔가 울림이 있다!’
밤새 보던 기사 댓글이나 너튜브 영상의 댓글과는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마치 뭐랄까 바로 앞에서 응원해주는 기분?
이때.
“우진.”
드라마 안 보는 강우진이 신경 쓰였는지 최성건이 입을 열었고.
“왜? 뭐 봐? 뭔 일 났어?”
강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났습니다 났어요.’
그다음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아니요. 그냥 제 SNS 봤습니다.”
“아- 난 또. 아까 점심에 보니까 한 2만 쯤 되던데 지금은?”
“3만이요.”
“응 괜찮네.”
괜찮아? 그거 답니까? 뭐가 그리 평온해? 우진은 속과는 달리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꽤 많은 거 아닙니까?”
“응? 많지. 근데 내일이면 더더더 몰릴걸?”
장수환이나 한예정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꽁지머리 최성건이 머리를 다시 묶는다.
“너 오늘 회사 봤잖아? 전화 터지는 거. 그중 반이 너에 관한 문의였다고? 거기다 지금 우리 회사 공식 홈페이지 가봐라. 게시판 폭발해 너 누구냐고. 평소 혜연이만도 난리였는데 너까지 포함되니까 관리자가 감당이 안 될 정도였어.”
“게시판은 봤습니다.”
“한량 맞춰서 너 검색사이트에 프로필사진도 바꿨더니 그것도 한몫하는 거지. 박대리 궁금해서 찾았더니 본캐는 딴판이니까. 한량 쪽 톡 게시판 봤지? 터진다 터져. 심지어 첫 방이 20%야.”
비죽 웃던 최성건이 검지로 TV를 가리켰다.
“그런 초대박 드라마의 완급조절을 우진이 네가 하고 있잖아. 사람들이 안 찾고 배겨?”
“···”
“네 팬들이 생겨나고 있는 아주 자연스런 과정이야. 물론 너는 특별케이스긴 해. 데뷔 드라마가 이 정도로 터지는 경우가 드물거든. 아니다 없다. 없다고 봐도 된다.”
팬들. 강우진은 설명 중에서도 ‘팬’이란 단어에 집중했다. 진짜 팬이라는 존재가 생겨나는 건가?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매체에서나 보던 팬이 실시간으로 불어나고 있으니까.
‘···이러면 내 팬클럽도 막 생기고 하는 건가??’
여기서 우진의 속마음을 읽은 듯 최성건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 속도면 너 팬클럽도 금방 생길 거다.”
미친. 그럼 사인회나 팬들과의 포옹 같은 것도? 점차 일반인이었던 강우진의 인생이 배우로서 진해지고 있었다. 하루. 단 하루만의 변화였다. 그렇다면 내일과 또는 글피. 시간이 갈수록 파격적인 변화가 있겠지.
이 순간.
“아! 우진 형님!”
입 주변에 치킨 양념을 묻힌 장수환이 호들갑 떨며 TV를 검지로 찍었다.
“박대리 등장!”
어느새 ‘프로파일러 한량’ 2부에선 박대리가 나오고 있었다.
유지형이 미제 연쇄살인범의 가능성을 세상에 공표한 뒤의 상황이었다. 경찰과 검찰은 발칵 뒤집혔고 국민 모두는 연쇄살인범의 재등장에 치를 떨었다.
사라졌던 괴물이 몇 년 만에 다시 나타나 사람을 죽였다. 유지형과 형사 정연희는 공조를 펼쳐야 했다.
하지만.
[“자수하러 왔어요”]
박대리가 집 주변의 경찰서에 자수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중반부 조금은 천천히 흘러가던 ‘프로파일러 한량’이 박대리로 인해 급속도로 호흡이 빨라졌다. 약간은 느슨했던 긴장감도 훅 솟았고.
여기서부터 각 인물의 모습을 빠르게 장면교차로 보인다.
연쇄살인범의 자수 빠르게 소식이 전해지는 경찰 당황한 검찰 재빨리 박대리를 보려는 유지형 등. 이어 박대리는 취조실에 덤덤히 앉았다. 그것을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프로파일러 한량’ 2부는 마치 마지막 화 같았다.
그 정도의 긴박감과 절정이었다. 특히나 박대리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편집에서 자주 박대리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박대리는 많은 대사 없이도 감정을 표현했다. 시청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아 맞아요. 제가 죽였어요. 근데 밥은 안 주시나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절묘하게 합쳐진 모습이었으니까. 처음엔 분명 사이코패스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박대리는 소시오패스 성향을 보였다. 한순간 바뀌는 것이 아닌 서서히 마치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조금씩 옭아매는 듯한 연기.
뒤로 중후반부. 유지형과 박대리의 대면.
취조실의 장면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적절히 들어가는 BGM 인물 간 눈빛 싸움 간결한 대사처리.
그리고.
[“자수한 이유는 그거예요. 내가 안 죽인 걸 증명하려고.”]
박대리를 이어 유지형의 대사를 끝으로.
[“진범이 따로 있다?”]
‘프로파일러 한량’ 2부가 막을 내렸다.
동시에 한량 측 공식 홈페이지의 톡 게시판이나 각종 커뮤니티가 불타올랐다.
-헐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
-아니 난 백퍼 박대리가 죽인 것 같았는데 진범 아니라고?????!!!
-시발 ㅈㄴ재밌다
-박대리가 자수할 때 소름 오지더랔ㅋㅋㅋㅋ캬 연기 존나 잘함
-와~ 1부 박대리 처음 나올때부터 뭔가 다르다 싶었는데 오늘 박대리가 씹캐리함
-아니…홍혜연 왜케 이쁨?? 얼굴에 기스나도 예쁘더라
-뭐야? 이러고 끝나면 담주까지 어케 버티라구? 3부 내놔! 내놔!!!!
불타오른다는 표현이 부족할 지경.
-박대리 연기하신 배우분 강우진? 이분 백퍼 뜰거같음
-근데 살인 방식은 박대리랑 같았다매? 그럼 어떤 진범이 박대리 방식을 따라 한 건가?
-취조실씬 지렸다….유지형이랑 박대리 서로 심리전하는데 어후…..
-↑박대리가 진짜 지림
-진심 한시간 1분이었음ㅋㅋㅋㅋ하 간만에 볼 거 생겨서 좋댜ㅋㅋㅋㅋㅋ
-류정민 연기 준나 늘었음 근데 박대리 연기한 배우분이 넘사더랔ㅋㅋㅋ
-지금 박대리가 핵심임 혼자 완급조절 다 해줌.
-ㅇㅈ좀 늘어진다 싶을 때 박대리 나오면 갑자기 존나 재밌어짐
-한량 배우들 전부 연기 구멍이 없음 그래서 더더더욱 재밌는 듯 씨발 그러니까 3부 줘
재난과 비슷했다.
이어 다음 날 아침.
금요일과 토요일을 덮쳤던 ‘프로파일러 한량’의 2부 시청률이 17일 일요일 아침에 발표됐다.
『[공식]‘프로파일러 한량’ 2부 종합 시청률 23.2% 드라마 역사 새로 쓴다』
23% 돌파.
그야말로 파죽지세. 하지만 SBC 드라마국에 있는 송만우 PD는 기뻐함과 동시에 조연출 등의 스탭들에게 재빨리 지시했다.
“됐으! 일단 오늘은 종일 기자들이 알아서 떡밥 굴려줄 테니까 냅두고 내일부터 시간차로 너튜브 편집 영상들 올려!”
“옙!”
“준비된 홍보 기사들도 돌리고! 예정된 SNS 이벤트도 바로 진행해라!”
다음 주에 방영될 3부까지 이 폭발력을 유지하면서도 지금보다 더 많은 인지도를 끌어올려야 했으니까. 원래 드라마라는 것은 시작보다 유지가 더 힘든 작업이었다.
그것을 송만우 PD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리고 배우들 연락 돌려서! 다음 주 홍보 스케줄 다시 확인해!”
현재 인터넷 전체는.
『[이슈톡]이틀 만에 전국 뒤흔든 ‘프로파일러 한량’ 어디까지 날아오를까?』
‘프로파일러 한량’이 점령했다 봐도 무방했다.
하루 지난 월요일.
이른 아침쯤. 커다란 검은색 벤의 안 딱 봐도 연예인이구나 싶은 여자가 연신 핸드폰을 내려보고 있다. 가슴까지 오는 긴 머리 길쭉한 다리 눈 밑의 점 나이는 20대 초중반쯤?
사실 그녀는 유명 걸그룹의 리더였다.
이름은 화린. 8년 차 장수 걸그룹 ‘엘라니’에서 연기 파트를 맡고 있고 ‘엘라니’의 멤버 4명은 전부 각 영역에서 잘나가는 편. 그중 화린이 걸그룹으로서나 배우로서도 퍽 인기가 높았다. 현재는 그룹활동은 끝났고 솔로 활동 중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핸드폰으로 보고 있는 것은.
『[배우IS]신인 맞아? ‘박대리’ 연기한 강우진 심층분석』
왜인지 강우진의 기사였다. 잠시간 기사를 정독하던 화린이 다른 기사를 확인했다. 이번에도 강우진이 포함된 기사였다.
이때.
“하- 화린아.”
조수석에 앉은 뚱뚱한 남자가 긴 한숨을 뱉었다. 아마 실장급 매니저인 듯.
“너 광고 콘티 안 보고 뭐 보는데?”
“아 잠깐만.”
“미치겠네. 저거저거 ‘미장센 영화제’ 갔다 와서부터 정신 빠졌네. 야 단편 영화들 보고 싶다고 빌고 빌어서 보내줬더만 왜 보고 와서는 나사 빠진 것처럼 그러고 있냐고.”
“나사 안 빠졌어. 멀쩡해.”
“후···너가 영화 찾아보는 거에 목숨 거는 걸 알아서 보내준 건데 실수했나 싶다.”
실제 화린은 예술 단편 독립 상업 할 것 없이 영화 보는 게 취미였다. 어쨌든 뚱뚱한 실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대표님한테 걸려라 또. 아! 너 진짜 내가 미장센 그거 보내준 거 대표님한테 말하지 마라? 나 죽는다?”
“말 안 해. 걱정마.”
“그래서. 콘티 안 보고 뭘 보고 자빠졌냐고.”
“‘프로파일러 한량’ 기사.”
“아! 그거 대박 났드라? 시청률 20% 넘겼지? 크- 거기에 네가 들어갔어야 됐는데.”
“뭐래.”
“홍혜연한테는 축하 보냈고? 둘이 심심하면 만나서 와인 한다매.”
되물음에 화린이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답했고.
“언니한테는 첫방날 전화했어. 아 잠깐만 조용해 봐봐.”
입 다물 생각 없던 실장이 화린의 옆자리에 쌓인 종이뭉치를 가리켰다.
“뭘 조용히 해. 너도 대박 작품 하나 잡아야 될 거 아니냐? 너 들어온 대본들 확인은 했냐?”
“나중에 나중에.”
“하 뭐 대본들 놔뒀다가 똥 닦을 때 쓰려고? 대표님이 쫀단 말이다 빨리 작품 찾으라고. 어이구 두야.”
“···”
곧 화린은 다시금 입을 다물고 기사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흥신소’랑 한량 박대리가 같은 강우진님이 맞다는 거지?’
뭐랄까 그녀는 강우진을 조사하는 느낌이었다. 왜? ‘흥신소’를 봤으니까. 거기에 나온 ‘김류진’도. 그다음 강우진이란 배우를 안 그녀였다. 하지만 정보는 개뿔 없었다.
궁금증은 거기서부터 파생됐고.
‘그런 연기 처음 봤다구. 인물이 펄떡 펄떡거리는 거. 신인 같지만 그 디테일 미친 연기를 보면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어 분명. 연극 쪽에 오래 있었나? 맞아. 그럴 거야.’
와중에 친한 홍혜연이 나온 ‘프로파일러 한량’을 본 화린. 그런데 씬스틸러로 나온 박대리 역의 배우가 궁금증을 가졌던 강우진이었다. 화린은 뭔가 짜릿함을 느꼈다. 우연이 운명 같기도 했다.
‘김류진 박대리. 완전 연기법이 달랐지? 왜 기사엔 멋있단 말이 없어? 난 진짜 완전 멋있던데.’
따라서 그녀는 어제부터 그 강우진이란 배우에 관해 닥치는 대로 찾았다. 뭐든 어떤 정보든.
이건 이성의 느낌보단.
‘어디 극단 출신이지? 학교는? 나이는?’
팬심에 가까웠다. 화린으로서는 처음 겪는 감정이기에 본인도 잘 모르고 있었다.
‘전작도 아예 없고. 알려지지 않은 단편이 있나? 아이 씨. 근데 뭔 정보가 이렇게 없어?’
이것이 ‘덕질’의 첫 시작이라는 것을.
한편 한 대형 오피스텔.
보기엔 사람 사는 곳처럼 보이지만 이 오피스텔은 사무실이었다. 거실에 책상이 배치됐고 벽면에 커다란 화이트보드 판이 보인다. 공간 구석구석 여러 잡다한 물품들도 즐비했다.
꼭 예능국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뭐 틀린 소린 아니었다. 이 사무실은 대형 너튜브 채널 ‘운동회’의 회의 사무실이니까. ‘운동회’ 채널은 구독자 300만을 거느린 대형 채널.
그리고 이 채널의 수장은.
“흠-”
방금 책상에 앉아 침음을 뱉은 남자였다.
국내 예능판의 몇 없는 초거물 PD. 윤병선 PD. 예능계 전설로 꼽히는 그가 찍은 예능은 화려했다. 찍었다 하면 준수한 시청률을 달성하며 그가 기획하는 예능 등의 방송들은 늘 화제가 터졌다. 윤병선 PD는 ‘운동회’ 채널과 방송국을 오가며 활동 중이기도 했다.
그런 윤병선 PD는 현재 여러 작가들과 TV를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모니터링에 가까웠다.
이미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컨텐츠 및 조사를 하기 위함. 이들은 대박 난 ‘프로파일러 한량’을 다시 보기 하고 있었다. 윤병선 PD는 말없이 드라마를 시청했고 주변에 앉은 너덧 명 작가들은 뭔가를 적기 바쁘다.
이때.
“있잖아.”
안경 쓴 윤병선 PD가 TV를 검지로 가리켰다.
“저 사이코패스 배우. 이름이 뭐지?”
작가 한 명이 조사표를 보였다.
“강우진 배우요. 신인이고.”
“이번 ‘한량 팀’ 촬영에 저 배우는 왜 빠졌어? 출연 리스트에 없지?”
“네. 어- 류정민 홍혜연 이도정···강우진은 없네요.”
“저 친구 왜 빠졌지?”
대답은 다른 작가가 했다.
“빠진 게 아니라 생각도 못 한 게 맞아요. 저희랑 한량팀이 의견 조율할 땐 아예 거론조차 안 됐었고. 찾아보니까 미장센에서 연기 대상도 탔는데 그땐 저 배우가 한량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한량팀이 숨겼던 건가?”
“그랬겠죠. 딱 보니까 제대로 씬스틸런데 힘주려면 숨겨야 했겠죠?”
천천히 고개 끄덕인 윤병선 PD가 TV 속 박대리를. 아니 박대리를 연기하는 강우진을 유심히 본다. 아주 자세하게.
그게 얼추 3분쯤.
“마스크도 좋고. 뭔가 인생에도 반전이 있는 느낌이 드네.”
팔짱 낀 윤병선 PD가 눈을 빛내며 작가들에게 잔잔히 읊조렸다.
“강우진 저 배우도 합류시키자 연락 돌려봐.”< 급류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