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티 (1) >
솔직히 ‘옆집 묘한 남자’역의 설정을 우진은 몰랐다. 그런데 별 생각 없이 선택한 ‘옆집 묘한 남자’역에서 영어나 일본어와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기본 언어 외의 새로운 언어가 감지됩니다. ‘수어(수화)’를 먼저 습득합니다.”]
수어를 각인시키겠다는 로봇 같은 여자 목소리. 정말 예상을 못 했기에 강우진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수어? 그럼 이 ‘옆집 묘한 남자’ 배역이 수어를 사용하는 건가 보네. 좋은데? 어떤 언어든 많으면 많을수록 유용할 거고.”
언어는 문화의 힘이고 강우진에겐 이미 영어와 일본어가 탑재된 상태였다. 수어는 솔직히 우진에게 생소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퍽 좋다고 볼 수 있었다.
생소한 만큼 유니크 하다는 소리니까.
어떤 언어가 배우기 쉽겠느냐마는 영어나 일본어는 자주 볼 순 있지만 수어는 그리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었다. 이에 강우진은 재차 들리는 로봇 같은 여자 목소리를 들으며.
[“‘수어(수화)’ 리딩 준비 중···”]
[“···준비 완료. ‘수어(수화)’ 리딩을 시작합니다.”]
작게 혼잣말을 뱉었다.
“희소하니까 분명 나중에 큰 힘이 될 수도 있어 흐흐 여튼 개꿀이네.”
동시에 거대한 회색이 강우진을 훅 덮쳤다. 곧 강우진의 아랫배에 느껴지는 알싸한 감각. 그러나 크게 동요하진 않는다.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으니까.
주변은 온통 회색이며 강우진은 둥둥 떠 있다.
우진은 작게 웃으며 정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무언가 무언가가 날아올 것을 알고 있으므로.
아니나 다를까.
“온다.”
저 멀리서 어떠한 형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영어나 일본어와 비슷한 속도. 그 형태는 금세 강우진의 시야에 확인됐다.
“손···이네.”
손 모양. 몸은 없지만 어깨까지 보이는 양손이 강우진에게 날아와 사르륵 스며들었다.
뒤로 차례차례 수많은 손 모양이 추가됐다.
잠시 뒤.
[“새로운 언어 ‘수어(수화)’ 리딩을 종료합니다.”]
여자 목소리를 끝으로 우진의 세상이 아공간에서 회의실로 바뀌었다. 강우진의 자세는 ‘얼어죽는 연애’ 1부 대본을 받던 그대로였다. 이어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는 우진.
‘응 괜찮아. 심하게 피곤하진 않아.’
이 과정 역시 점차 익숙해지는 그였다. 영어 때는 녹초가 됐고 일본어 때는 그보단 나았다. 하지만 이번 수어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살짝 몸이 무거운 정도?
반복하는 연기에 몸이 적응하듯 강우진은 세 번째 언어를 습득하면서 피로감이 현저히 줄었다. 이 역시 아공간의 특성이겠지.
‘바로 할 수 있을 것 같네 수어.’
물론 아공간에서 스며든 수어는 생생했다. 영어나 일본어처럼 우진에게 각인됐으니까.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금방 손을 움직여 수어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우진은 새삼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 알고는 있었다만 진짜 아공간 개사기.’
솔직히 영어나 일본어는 습득하기 전에도 익숙한 언어였지만 수어를 달랐다. 얼핏 스치듯 봤던 뉴스에서나 한두 번 본 게 다였다. 강우진에겐 생소함을 넘어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진은 수어 전문가가 됐다.
덕분에 강우진은 손에 들린 대본을 내려보며 속으로 웃었다.
‘수어 겟.’
이때 이월선 작가가 대본을 방금 건넨듯한 대사를 우진에게 뱉었다. 아공간이 아닌 현실에서는 대본을 건넨 지 몇 초 되지 않은 탓.
“촬영 분량이 하루나 이틀이라고 해서 단역이나 가벼운 배역은 아니에요. ‘옆집 묘한 남자’역은 1 2화에서 꽤 중요한 역할. 뭣보다 인물 설정과 관련해서 배울 것도 있죠.”
그녀의 설명에 꽁지머리 최성건이 고개를 갸웃하며 우진에게 붙었고 이미 그 배울 것이란 걸 아는 강우진은.
“음.”
괜히 무게를 잡으며 대본을 읽는 척했다. 그게 얼추 몇 분. 곧 강우진이 시니컬한 시선을 다시금 이월선 작가에게 붙였다.
“수어(수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바로 약간 놀라는 최성건.
“수 수어??”
많은 장신구를 단 이월선 작가는 여유있게 미소지었다.
“맞아요. ‘옆집 묘한 남자’역은 나레이션 속마음 빼곤 거의 수어 대사예요. 대사량이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수어를 배우는 건 쉽지 않겠죠.”
최성건이 옅게 미간을 찌푸렸다.
‘마귀가 따로 없구만. 과연 짬은 무시 못 한다 이건가? 단역 하나 빼서 대충 흘리려고 했구만 쯧. 분량이 적어도 수어 같은 언어 계열 공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곤란해 가성비가 안 좋아.’
대충대충 넘어가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지만 상황이 이리되면 하나는 버려야 했다. 즉 이월선 작가를 말이다. 수어를 배울 정도의 시간을 쏟는 건 무리니까.
‘여기선 살짝 입 털어서 다른 배역으로 돌려야 돼.’
속으로 읊조리던 최성건이 건너편 이월선 작가에게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작가님. 언뜻 들어도 눈에 확 띄는 배역일 것 같습니다만 조금은 헤비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가요? 어려울 것 같아요?”
“아니요.”
이 순간 둘의 대화에 낮은 목소리가 끼었다. 대본을 보던 강우진이었고.
“다행이네요 이 정도면 제가 소화할 수 있습니다.”
최성건이나 이월선 작가가 동시에 우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제작사 직원들도. 모두 눈이 약간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우진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명분 있는 쎈척을 가미했다.
“수어를 딱히 배우지 않아도 됩니다.”
대답은 최성건이 빨랐고.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우진아 그게 무슨 소리냐.”
이다음이 약간 고개를 갸웃한 이월선 작가였다.
“배우지 않아도 된다···무슨 소리죠? 소화할 수 있다는 건 혹시 우진씨가 수어를 할 줄 안다는 건가요?”
“예. 조금요.”
바로 눈썹 한쪽을 올리는 이월선 작가.
“정말? 수어를 할 줄 안다고요?”
강우진은 차분했다.
“예.”
“···짧게 보여 줄 수 있어요?”
“네 가능합니다. 가령 이 부분.”
펼쳐진 대본에서 강우진이 ‘옆집 묘한 남자’의 수어 대사 컷을 검지로 찍은 뒤 양손을 올렸다. 직전에 습득한 수어를 시작한 것.
-스윽.
뭐랄까 그가 무표정으로 덤덤히 행하는 수어는 매우 능숙했다.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강조할 부분에선 동작에 힘을 넣고 시선으로 감정을 표한다.
묘하기 짝이 없었다.
회의실은 고요하지만 사람들의 괴리는 고조된다. 요란하진 않지만 강우진은 돋보였다. 옷깃이 스치는 소음만으로도 존재감이 진해진다.
강우진을 처음 경험한 이월선 작가는 눈 한 번 감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동작은 최소한으로 통제하고 있어. 그런데 눈은 달라. 눈에 감정이 어찌 저리 꽉 차 있을 수 있지?’
그렇게 강우진의 시범이 끝났고.
“여기 까집니다 작가님.”
모두가 약간 말문이 막혔다. 그중 홀린 듯 우진의 수어를 보던 이월선 작가가 어렵사리 입술을 뗐다.
“···조금 할 줄 아는 수준이라면서요?”
같은 시각 종편 방송국 HTBS.
HTBS의 예능국은 시장통을 연상케 했다. 예능국이라면 으레 이런 분위기였다. 각 프로의 책상엔 수많은 촬영 소품들이 넘실거렸고 PD들이나 작가들 등은 통화하거나 대화하는 것으로 정신이 없다.
특히 예능계는 이 시기가 더없이 바쁘다.
계절이 넘어가거나 날씨가 변하는 타이밍. 얼마 전까진 추웠지만 이젠 덥다고 느낄 정도의 5월이었다. 봄이지만 여름 같기도 한. 세상은 포근한 바람이 불지만 이쯤 예능계는 피바람이 불기 일쑤였다.
새 예능 프로가 기획되거나 기존의 예능에 물갈이가 감행되니까.
덕분에 각종 프로가 썰리며 추억 속으로 사라지기도 하며 새 예능이 불쑥 나타나 대중들에게 소개되는 시기. 그것은 국내 모든 방송사가 비슷했고 종편 방송국 HTBS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HTBS 예능국은 든든한 거목이 있었다.
『예능계 괴물 PD 윤병선 새 예능 기획 들어가나? 관계자 측 “부담 없이 만들어볼 예정”』
바로 윤병선 PD였다. 공중파에서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종편으로 넘어온 윤병선 PD. 그는 이적과 동시에 시청률 터진 굵직한 예능들을 만들어 냈다. 그런 그가 도래한 시기에 맞춰 너튜브가 아닌 TV 쪽 새 예능을 기획 중이었다.
장소는 중형 미팅룸.
인원은 대략 열댓 명. 그중 턱 괸 윤병선 PD가 미팅룸 앞쪽에 세팅된 화이트보드 판을 바라보고 있다.
“흠-”
다른 여자 작가들도 비슷했다. 화이트보드 판엔 여러 연예인들 사진이 붙어 있었고 쓴 안경을 벗어 눈과 눈 사이를 꾹꾹 누르던 윤병선 PD가 한숨을 뱉는다.
“라인업 괜찮긴 한데. 어째 물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확 꽂히는 맛은 없어.”
작가 한 명이 답했다.
“일단 저 위에 3명은 무조건 같이 가는 거고 미들이 좀 허약하다는 말씀이세요?”
“그런가? 아우- 모르겠다. 종일 미팅에 미팅에 미팅만 해서 뇌가 굳었어.”
“그럼 일단 이 정도만 하시죠. 내일 ‘운동회’ 쪽 ‘프로파일러 한량’ 촬영 있으시잖아요? 준비하셔야 하지 않아요?”
“뭐 그쪽은 이미 다 해놔서. 촬영 세팅 끝나면 확인만 하면 돼.”
이어 기지개를 쭉 켠 윤병선 PD가 앞에 놓인 여러 종이 중 하나를 집으면서도.
“시리즈 3개로 기획해서 들어가는 건데. 뭐랄까-”
다시금 턱 괴며 작가들에게 말을 던졌다.
“멤버 중에 외국어가 되는 친구가 하나쯤은 있는 게 괜찮지 않나? 해외서 너무 허둥대는 것만 보여주면 고구마니까.”
“그렇긴 해요. 핵심은 한국의 음식을 알리는 거고. 그럼 외국어 가능한 캐릭터 한 번 알아볼게요.”
“응 뭐 유창할 필요는 없어. 음- 영어 보통수준? 일본어도 되면 좋겠다만 두 개다 되는 건 어렵지.”
“찾으면 있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 외국어가 가능하면 탑들 빼곤 없겠죠.”
“탑들도 잘 없어.”
그러면서도 다시금 앞쪽 화이트보드 판에 시선을 옮긴 윤병선 PD가 읊조렸다.
“일단 다음 주까지 영어 괜찮은 캐릭터로 좀 찾아보자.”
다음 날 아침. 22일 금요일.
오늘 강우진에겐 두 가지의 대형 이슈가 있었다. 하나는 ‘프로파일러 한량’의 3화 방영날이었고 남은 것은 너튜브 채널 ‘운동회’의 녹화가 있었다.
따라서 이미 언론에선.
『[이슈톡]20% 돌파한 ‘프로파일러 한량’ 드디어 오늘 3화 방영』
『이번 주 내내 난리 법석이던 ‘프로파일러 한량’ 3화에서 23% 넘길 수 있나?』
‘프로파일러 한량’ 3화에 관한 기사를 미친 듯 쏟아내면서도 ‘운동회’ 관련 소식도 재빨리 전했다.
『[단독]‘프로파일러 한량’ 주연들→ 윤병선 PD ‘운동회’ 뜬다』
물론 강우진이 출연한다는 것 역시 실렸다.
『단 2화 만에 라이징으로 발돋움한 ‘박대리’ 강우진 윤병선 PD ‘운동회’에 첫 예능 출격』
의도된 홍보였다. 현재 박대리의 인기는 작지 않으니까.
전국을 ‘프로파일러 한량’이 점령한 지 약 일주일. 현재 언론이나 여론은 미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운동회’에 관한 대중들의 기대감도 폭발적일 수밖엔 없었다.
-와….역시 운동횤ㅋㅋㅋㅋ윤피디님 감사합니다!!! 저 배우들 전부가 예능에 나오다니….ㅠㅠㅠ
-와씨 강우진? 진짜 강우진님 예능 나오는 거뮤ㅠㅠㅠㅠㅠ기대돼….어떤 캐릭일지 너무 기대돼……
-윤피디가 감이 확실히 쩌넼ㅋㅋㅋㅋ핫하니까 바로 섭외해서 진행하넼ㅋㅋㅋ그나저나 강우진은 좀 의왼데? 개궁금
-류정민이랑 홍혜연…거기다 연기 지리는 박대리 강우진….넘넘 궁금했어요ㅜㅜㅜ감사해요
-강우진 인스타가니까 평소엔 존잘이던뎈ㅋㅋㅋㅋㅋㅋ로코 좀 찍어줘요 오빠…..젭라
-탑배우들 사이에 강우진ㅋㅋㅋ이건 노렸넼ㅋㅋ하긴 핫하니깤ㅋㅋ어떤 성격일지 궁금하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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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중 강우진은 서울에 한 촬영 스튜디오에 도착한 참이었다. 당연히 멋을 부렸다. 오늘의 우진은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었고 메이크업이나 헤어에도 힘을 줬다.
어쨌든.
‘드디어 하는 건가 예능 촬영?’
승합차에서 내린 강우진은 표정만큼은 무심함의 극치지만 속으론 떨림으로 인해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있었다. 나름 낯선 상황에서 오는 긴장에 적응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완벽하지는 않은 모양.
심지어.
‘뭔가 오늘 나 완전 연예인 같은데. 적응 안 된다.’
현재의 자신 모습도 떨림을 부추기고 있었다. 자주 입지 않았던 비싼 트렌치코트부터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까지. 연기하기 전엔 자신이 배역처럼 꾸며지지만 예능 촬영은 우진에게 연예인이라는 강박을 심어주는 느낌이었다.
‘아니아니 나 일단은 연예인 맞잖아. 침착하고 심호흡하고 컨셉질 잊지 말고.’
그래서인지 강우진의 시야는 점점 더 좁아졌다. 언제나 첫 경험이라는 건 두려운 법. 이때 조수석에서 내린 최성건이 강우진의 어깨를 잡았다.
“뭐 딱히 긴장은 안 되지? 이미 ‘운동회’ 예능들 모니터링도 했고.”
아니요 약간 토할 것 같습니다만. 우진은 미소짓는 최성건 보며 격렬히 도망을 생각했다. 그러나 뱉어진 낮은 음성은 세상 뻔뻔했다.
“나름 재밌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래그래. 다른 선배 배우들도 많고 분위기도 유쾌할 거다. 말했지만 너는 그냥 너대로 하면 돼. 뭘 딱히 하려고 안 해도 되고.”
“저대로. 알겠습니다.”
이 순간 강우진은 다짐했다. 그 어떤 때보다 확실한 컨셉질에만 집중하기로. 정해진 대본도 연기도 없다. 그저 쌩 날것으로 녹화되는 만큼 방심은 금물이었다.
‘후웁! 후우- 정신 똑바로 차려 여기를 그냥 미친 전쟁터라고 생각하자.’
곧 마음을 차갑게 식히는 우진의 주변으로 장수환과 한예정이 붙었고 시간을 확인한 최성건이 앞장서며 강우진이 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튜디오는 3층이었다. 대기실을 들러도 됐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 이유는 강우진이 스튜디오를 확인하자마자 절절히 느꼈다.
‘와- 돌았네. 카메라가 몇 대냐?? 사람도 개 많아. 진짜 이미 촬영 돌리고 있잖어?’
채널 ‘운동회’ 예능은 이미 촬영이 시작된 상태였으니까. ‘운동회’는 아티스트들이 도착하고 대기하며 자잘한 담소를 나누는 그 모든 것을 담는다. 따라서 이미 스튜디오에 세팅된 열대 넘는 카메라들은 열일하고 있었다.
촬영존을 밝히는 조명들도 마찬가지.
이때.
“강우진씨 도착했어요!”
입구 쪽 스탭의 외침이 스튜디오 전체로 퍼졌고 작가들과 얘기하고 있던 윤병선 PD가 웃으며 우진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우진씨. 처음 뵙네요.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안경 쓴 윤병선 PD가 우진에게 손을 내민다. 그 주변으로 수십 스탭들이 모여들었다. 다들 강우진을 힐끔대기 바빴다. 뉴페이스의 등장이었으니.
덕분에.
“···”
강우진의 심박수는 두 배로 훅 올랐고 시야가 더 좁아졌다. 지금 그의 머릿속엔 오직 컨셉만이 선명했다.
“안녕하세요 PD님.”
낮게 깔린 짧고 간단한 인사. 이에 윤병선 PD나 주변 작가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다들 눈칫밥이 100단이라 뜻이 금세 통했다. 성격부터 파보자. 그래야 무슨 그림을 뽑을지 결정되니까. 곧 악마 같은 미소를 지은 윤병선 PD가 덤덤한 우진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박대리를 진짜 사실적으로 연기하시더라고요? 우리 작가들도 드라마 보고 소름 돋는다고 난리였어요. 박대리 연기 많이 힘드셨죠?”
자 어떤 반응인가? 허나 강우진은 간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증폭된 긴장에 약간 반자동으로 답한 것. 심지어 매우 짧았다.
“네.”
“···”
순간 윤병선 PD의 뇌리에 강렬한 한가지가 스쳤다.
‘우와 얘 이거 쉽지 않겠는데?’< 멀티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