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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마약상’ 촬영 세트장.
1990년대의 느낌을 잘 살린 그때의 건물들이나 집들이 지어진 넓은 세트 단지엔 이미 ‘마약상’ 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컷! 방금 좀 대사가 안 들렸어요 포인트 살려서 다시 갑니다!”
여전히 기가 센 인상의 김도희 감독을 필두로 용도별 수많은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오디오 기기 등등. 그 기기들을 둥그렇게 감싼 수십 스탭들.
배우들은 구경하는 자와 연기하는 자로 나뉘었다.
재밌는 것은.
“근데 저분들은 누구래요?”
“배급사하고 제작사 사람들.”
“아-”
오늘따라 현장에 나온 인원들이 퍽 많다는 것이었다. 평소엔 없던 그들이 대뜸 나타난 이유는 간단했다.
“워낙 상황이 안 좋았으니까 아마- 오늘 강우진씨 오는 거 지켜볼 생각이겠지.”
“걱정돼서요?”
“그것도 있겠지만 뭐 전체적인 밸런스를 보려는 거 아닌가?”
강우진을 직접 보기 위해서.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배급사는 배급사대로 이번 이슈는 중요했으니까.
이쯤.
“좋습니다! 컷컷!”
김도희 감독이 직전 씬의 OK를 내렸다. 그리곤 조연출에게 지시했다.
“10분만 쉬자.”
“옙! 10분만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조연출의 외침에 스탭들이 재빨리 촬영존으로 뛰었다. 와중 3대의 모니터 앞에 앉은 김도희 감독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제작사나 배급사 인원들이었다.
“감독님 슬슬 강우진씨 올 때 됐죠?”
던져진 질문에 김도희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10분 안에 도착할 거라고 연락받았어요.”
곧 몇몇이 걱정을 내비쳤다.
“막상 오늘이 오니까 좀 생각이 많아지네요. 진짜 괜찮을까요?”
“좀 모험이긴 했어요. 강우진씨 최근 핫하니까 대중들 어그로야 끌리겠지만 준비할 시간이 좀 짧긴 했으니까. 3주···후- 3주로 ‘이상만’ 역을 제대로 분석했을까요?”
거친 머리칼을 쓸던 김도희 감독 역시 작게 한숨을 뱉었다.
“우진씨를 믿어야죠. 미팅 당시에는 자신감이 대단했어요. 결과 아쉽게 나와도 우진씨 탓은 아니잖아 시간이 부족해서 연기 퀄이 좀 낮게 나와도 책임지는 건 우리여야 하고. 뭣보다 일본어를 우진씨 만큼 하는 배우 못 구하잖아요.”
“그 그렇긴 하죠.”
여러 제작사나 배급사 인원들의 얼굴엔 어둠이 드리웠다. 아직 강우진을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까. 이들에겐 그저 강우진은 반짝 뜨고 있는 신인에 불과했다.
“아 오늘 감독님께서 ‘이상만’ 역에 약간 변화를 주신다면서요? 그건 역시 취소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도 무리라면 뺄 생각입니다.”
“아니 뭐 강우진씨 연기 실력이야 한량을 봐서 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몇 주는 너무 짧긴 하니까요. 어려운 배역이기도 하고. 아무리 단단한 편이라도 신인이니까 너무 많은 걸 몰아붙이면 무조건 부러질 겁니다.”
뭐가 됐든 다들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조건 ‘이상만’ 역을 무리 없이 끝까지 소화하는 것만 생각하시죠 감독님.”
이미 모험적인 캐스팅이었으니 더이상 도전 말고 적당히 문제를 덮는 것에 치중하자는. 하지만 늘 작품적으로 도전을 즐기는 김도희 감독은 이게 탐탁지 않았다.
‘나불거리기 바쁘기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왜들 나와서 지랄들이야.’
그녀가 속으로 투덜댈 때쯤 배급사 간부 한 명이 뜬금 강우진에 관한 주제를 바꿨다.
“근데 한량 쪽에 좀 알아보니까 강우진씨 외국물 먹었단 소리가 있더라고요?”
대답은 시나리오를 편 김도희 감독이 빨랐다.
“아- 그거 일본 쪽일 거예요.”
“응? 아니던데요? 제가 한량 거기 제작사 지인한테 들었는데 영어권에 있었을 거라고 그러던데요?”
“···영어권?”
“네. 영어를 무슨 현지인 수준으로 한다고 하던데요? 외국인 스탭이 우진씨 영어를 극찬했다고.”
여기서 주변 십수 명 스탭들이 웅성거렸다. 대화에 끼어드는 키스탭도 있었다. 조명감독이었다.
“어어어 나도 그렇게 들었어요. 한량 조명감독이랑 친하거든. 해외파 출신인데 우진씨는 뭐라더라? 헐리웃에 있었을 거라고 오바를 떨던데?”
“뭐야 다들 강우진씨 궁금해서 여기저기 물어봤구나?”
“아- 그렇죠. 제작사 분들도 똑같지 않습니까? 다들 걱정돼서 알아봤을 거잖아?”
“그래도 헐리웃은 좀 너무 나갔네.”
슬슬 배우들도 끼었다.
“신인인데 절대 신인 같지 않다고도 들었습니다. 외국물 먹어서 마인드가 다르다나?”
주·조연할 것 없이.
“한량 리딩 때 그 강우진이란 친구가 연기는 독학했다고 직접 말했다는군.”
“···그건 좀 말이 안 되네요.”
“뭐지? 캐릭터가 너무 황당한데?”
“그냥 신인의 패기? 허세? 뭐 그런 거겠죠.”
이때였다.
“감독님!! 강우진씨 도착했습니다!!”
김도희 감독의 무전기 속 스탭의 외침이 크게 퍼졌다. 화제의 신인 강우진이 도착했다는 사인. 곧 김도희 감독이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잠시 뒤.
촬영존에 강우진이 도착한 것은 몇 분 뒤였다. 우진은 스치는 스탭들의 시선이 부담됐다.
‘뭐여 왜들 이렇게 쳐다보냐?’
그럴수록 우진의 포커페이스는 강렬해졌고 저 앞에서 김도희 감독이 뛰어왔다.
“우진씨!”
그녀에게 차분히 인사하는 강우진.
“안녕하세요 감독님.”
“응응. 일찍 왔네요? 음- 현장에서 보니까 느낌이 또 다르네.”
“그렇습니까?”
되물은 우진이 김도희 감독 뒤쪽을 힐끔했다. 그리곤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와- 씨. 저거 몇 명이냐? 몇 부대가 몰려있는 거여! 어디 전쟁 났냐?’
몰린 인파가 너무 많았으니까. 얼추 60명은 거뜬히 넘어 보인다. 문제는 스탭만이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이때 우진의 뒤에 선 최성건이 인파 속 아는 사람이 있는지 움직였고.
“어이구- 이부장님? 오랜만입니다?”
“하하하 그러게요 최대표님.”
강우진은 김도희 감독에 이끌려 주요 배우들의 앞에 섰다. 정식 인사야 나중에 하겠다만 1차적으로 간단히 얼굴을 익혀야 했으니까.
“여긴 다들 알다시피 강우진 배우님.”
“안녕하십니까.”
착 깔린 목소리. 배우들은 저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강우진에게 적당히 인사했고 김도희 감독이 겹쳐진 종이 몇 장을 우진에게 슬쩍 내밀었다.
“우진씨. 이건 이제 쪽시나리온데 ‘이상만’ 컷 중에서 몇몇 수정이 있었어요. ‘이상만’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함이긴 한데 갑자기 좀 힘들겠죠? 물론 기존의 시나리오로 가도 되긴 해요.”
이건 영화 현장에서 으레 자주 있는 일이었다.
총괄 연출자인 감독의 결정으로 대사가 바뀌거나 상황을 뒤집거나 인물의 감정을 바꾸는 등. 다만 강우진은 어찌 보면 굴러 박힌 돌이었다. 본인이야 차고 넘친다고 생각했지만 남들에게 3주는 짧은 시간이었다.
덕분에 김도희 감독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무리겠죠? 정말 부담 없이 생각해봐도 돼요.”
‘이상만’의 캐릭터가 조금 더 명확해지면 좋겠다만 괜히 무리했다가 신인인 강우진의 폼이 무너지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기 때문.
그러거나 말거나 강우진은.
“예. 잠시 보겠습니다.”
매우 별수롭지 않았다. 오히려 초연하다. 왜?
‘아공간 뜨네. 그럼 문제없지.’
쪽대본과 비슷한 쪽시나리오엔 검은 사각형이 붙어 있었으니까. 우진은 가장 처음 리딩(경험)했던 쪽대본을 상기하면서도 남몰래 검지를 들었다.
뒤로 멈칫.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강우진이 멈칫거린 것은. 사람들에겐 몇 초. 하지만 우진은 아공간에서 몇십 분이나 있다가 나온 상태였고.
‘뭐 간만에 시원하게 쎈척 한 번 지르자. 퇴근도 앞당길 겸.’
시나리오에 시선을 붙인 강우진이 앞에 선 김도희 감독에게 낮게 말했다.
“5분만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 5분요? 정말?”
“네. 5분.”
“···?”
김도희 감독의 두 눈에 물음표가 가득해진다. 그리고 주변의 배우들이 수군댔다. 그럴 수밖에.
‘뭐야 쟤. 좀 건방진 것 같은데?’
어이없는 대답이었으니까.
‘5분?? 뭐라는 거야? 허세도 적당히 해야지.’
‘딱 보니까 신인 패기로 점수 좀 따보려는 거 같은데 대사부터 표현 등을 어떻게 5분 만에 익혀? 김감독 고생 좀 하겠구만.’
문제는.
“예 됐습니다.”
강우진이 고개를 끄덕인 건 5분이 아닌 3분밖에 안 걸렸다는 것이었다.
“전 준비됐습니다.”
어느새 오후 7시가 넘어갔다.
해가 지고 주변은 조금씩 컴컴해진다. 그래서인지 세팅된 가로등의 주황빛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리고 한 건물 앞엔 검은 세단 4대가 세팅됐다.
그 주변으로 카메라와 조명들이 설치됐고 수십 스탭들이 촬영존을 감쌌다.
이 순간.
“살수차!!”
자리에 앉은 김도희 감독이 무전 쳤다. 그녀의 외침이 끝나자 촬영존에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검은색 장우산을 쓴 수십 단역들이 진입한다. 다들 정장을 차려입었다.
“조명 좀 줄이고요!”
“OK!”
“더더더더. 스톱! 자 갑시다!”
김도희 감독이 외치자 남자 스탭 한 명이 카메라 앞에서 슬레이트를 쳤다. 그다음 김도희 감독이 무전기에 대고 사인을 던졌다.
“카메라 돌았어요! 액션!!”
곧 주차된 4대 세단 중 끝에 선 세단의 운전석이 덜컥 열렸다. 역시 장우산을 든 정장 남자가 나왔고 그가 재빨리 움직여 뒷좌석의 차 문을 열었다.
-스윽.
뒷좌석에서 담배를 입에 문 강우진이 내렸다. 한 손은 주머니에 쑤셨다. 정장이지만 넥타이는 없고 목에 붙은 첫 단추는 풀었다. 보이는 가슴 속살엔 진한 문신이 얼핏 보인다.
“후우-”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 가만 보니 그의 왼쪽 뺨에 흉이 보인다. 칼자국. 피부도 거칠다. 만지면 까끌거릴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뒤로 넘긴 머리만은 깔끔했다. 눈매는 약간 풀렸지만 눈동자는 매섭다.
“···”
분위기는 흐물흐물하다. 하지만 그 유연한 중후함엔 폭력성이 담겼다. 그런 아우라였다. 말실수한 번하면 바로 목을 찔러버릴 정도의 기세.
그래 지금 그는 강우진이 아닌 ‘이상만’ 그 자체였다.
이어 이상만이 작게 오른쪽 팔뚝을 긁다가 우산을 씌워주는 부하의 어깨를 두드렸다.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 이게 칭찬인지 알았는지 부하가 고개를 숙였고.
“감사합니다.”
담배 연기가 눈에 들어갔는지 한쪽 눈을 찡그린 이상만이 부하의 머리를 싸잡아 당겼다.
“가까이 오라고. 다 젖는다.”
“아아! 죄송합니다!”
“아니면 그러길 원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형님!!”
이상만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다. 가래가 잔뜩 낀 것 같다. 그러나 단어 하나하나에 경고가 실렸다. 곧 부하를 잠시간 힘없이 바라보는 이상만. 부하는 한없이 짓눌린다.
심연이 가득한 이름 모를 공포.
눈을 천천히 감는 것조차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이상만은 시선을 부하에게 고정한 채 천천히 손을 올려 담배를 입에서 빼냈다. 폐에서부터 길게 뿜어지는 담배 연기. 그런 연기가 주황색 가로등 빛들 사이로 넓게 퍼진다.
재차 담배를 길게 빠는 이상만. 무표정이지만 충분히 불쾌하다. 지금의 습도가 기분이 간지러운 팔뚝도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까지.
그런 이상만이.
-스윽.
담배를 입에 문 채 오른쪽에 몰린 부하들 뒤쪽 멀리에 시선을 옮겼다. 길게 늘어선 가로등을 본 것. 차례로 촘촘히 박힌 주황빛. 가로등을 본 이유? 멋있어서? 아니었다.
“춤을 춘다.”
이상만의 눈에선 주황빛들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에서만 그랬다. 중독의 여파. 덕분에 이상만이 픽 웃었다. 시발 저게 뭐야. 언뜻 주마등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작게 번졌던 이상만의 웃음이 점차 사라진다.
“후-”
뻣뻣한 무표정인 이상만이 뱉은 담배 연기로 주마등들을 가렸다. 다만 담배 연기는 금세 하늘 위로 올라간다. 그렇기에 빌어먹은 주황색 주마등들이 다시 이상만에게 보였다.
그는 더욱 불쾌했다. 간지러움도 심화된다.
격한 남자 괴성이 퍼진 것은 이때였다.
“혀혀형님! 살려주십쇼! 제가! 제가 미쳤었나 봅니다! 제발! 형님!”
건물 입구에 꿇어앉은 사내. 얼굴이 지랄 났다. 그 정도로 뭉개졌다는 뜻. 이어 이상만이 그를 천천히 내려봤다. 사내는 뭐라뭐라 계속 소리치는데 이상만에겐 잘 들리지 않았다.
-두두두두둑!
-후두두두두둑!
폭우 소리가 사내의 목소리를 먹었으니까.
“···”
따라서 이상만은 그저 사내를 가만히 내려본다. 그의 눈빛엔 감정이 철저하게 제외됐다. 그래 딱 벌레. 그저 벌레는 봤을 때의 눈이었다. 아무것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럼 답은 하나였다. 밟아 죽인다.
-슥.
사내를 내려보던 이상만이 우산 밖으로 손을 뻗었다. 미친 듯 쏟아지는 빗방울이 그의 손을 사정없이 때린다. 차갑고 시렵다. 이상만이 가진 분위기와 닮은 온도였다.
여기서 이상만이 작게 읊조렸고.
“불겠어.”
우산 든 부하가 되물었다.
“예?”
“바다가 불겠다고.”
“아.”
이어 얼굴이 피떡 된 사내에게 한 걸음 다가간 이상만이 쪼그려 앉았다. 사내와 눈높이를 맞춘 것. 다시금 팔뚝 한 번 긁고. 그대로 사내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이상만.
“왜 그렇게 말랐나.”
“혀 형님! 제가 진짜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용서를!”
“말랐다고 너.”
“···”
서늘하게 읊조린 이상만이 입에 물린 담배를 빼내 사내의 코 바로 앞에 붙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내의 코를 타고 떨어지는 빗방물에 담배를 댔다. 담배는 금세 치직 소음을 냈다.
“아- 해.”
수분을 머금고 꺼진 담배를 사내의 눈앞에 붙이는 이상만이 묘한 톤으로 말했다. 다만 사내는 이게 뭔 소린가 싶은 얼굴.
“···예??”
“아- 하라고. 입 벌려.”
“!!”
“벌려.”
곧 피떡이 된 사내가 입을 쩍 벌렸고 이상만이 들고 있던 담배를 사내의 목구멍에 쑤셔 박았다. 사정없다. 마치 손을 사내의 내장까지 박아버릴 파워였다.
“커컥! 컥컥!!”
“그거 먹고 면상 좀 불리자.”
“크억! 컥!”
“너 지금 너무 말랐어.”
까끌한 목소리를 낸 이상만이 옆 부하에게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의 움직임은 차분하다.
“공구리.”
부하들은 단박에 지시를 알아들었다. 사내와 공구리를 합쳐 바다에 내던지라는. 그래서 온몸을 탱탱하게 불려버리라는. 이내 사내는 부하들 몇몇에게 질질 끌려간다. 뭔가 미친 듯 절규하긴 하지만 이상만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런 이상만이 방해물 사라진 정면을 응시했다.
건물로 올라갈 계단이 보인다. 음침하고 어두컴컴하다. 불길하기만 한 계단이 왜인지 이상만에겐 해방될 수 있는 통로로 보였다. 바로 발을 움직이는 이상만.
어느새 그의 얼굴엔 무표정이 아닌.
“···”
미세한 웃음이 걸렸다. 얼굴 근육이 움찔댄다. 기분이 고조된다. 뇌가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시킨다. 뛰어라 바로 눈앞에 있으니까. 이상만의 웃음은 웃음이 아니었다.
웃음이 아닌 죽음이었다.
그의 입엔 죽음이 걸려있다.
유연하고 진한 죽음이었다. 그 정도의 표정이었으며 표현이었다. 이상만의 얼굴에 번지는 죽음은 점점 더 심오해진다. 그렇게 죽음을 얼굴에 매단 이상만이 건물로 들어간다. 이때 계단 앞에 비치된 카메라를 이상만이 스친다.
카메라는 계속 정면. 이상만은 카메라를 스친 뒤 우뚝 멈췄다.
잠시간의 정적.
컷이 나와야 할 타이밍이다. 그러나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직 우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만 건물 전체로 울려 퍼진다.
이유야 심플했다.
“···미친.”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던 김도희 감독의 혼이 빠져나갔으니까.
‘오준우는 비비지도···못할 것 같은데. 김류진이나 박대리는 보이지도 않아 그저 이상만만 보여. 인물을 전부 다르게 보이게끔 하는 기술이 벌써-’
물론 그녀 주변에 선 스탭들 제작사 인원 배급사 배우들 등의 모두가 그랬다. 다들 촬영존 안의 신인 배우를 괴물을 멍하게 보고 있다. 눈빛에 담긴 뜻은 비슷했다.
방금 내가 뭘 본거지?
그때 시간이라도 멈춘 듯 움직임이 멎은 수십 인파들 사이 조연롤 배우 한 명이 시선을 강우진에 둔 채 어렵사리 입을 달싹였다.
“···쪽시나리오 잠깐 본 게 단데 저게 어떻게 왜 되는 겁니까?”
하지만 들리는 대답은 없었다.
“···”
“···”
괴물을 첫 경험 한 모두의 사고가 정지됐으므로.< 확장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