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장 (7) >
“···안 괜찮다?”
류정민의 확고한 답변에 권기택 감독이 나온 배를 긁은 뒤 진중하게 팔짱을 꼈다.
“억지로 하는 게 맞다는 소리네.”
“그렇게 보셔도 됩니다. 터놓고 말씀드리자면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 작품이기에 한다는 건가? 파급력과 배경 쪽이 욕심이 나서?”
되물음에 류정민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곤 우진과의 한량 촬영들을 상기했다.
“···”
그가 다시 말을 뱉은 것은 몇 초 뒤였다.
“감독님 배우는 핏덩이일 때 자신 능력에 관해 한계를 느끼면 돌파를 선택합니다. 힘이 넘치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 한계를 느끼면 돌파보단 좌절을 느끼게 됩니다. 상실감이 크달까요?”
“···음.”
“그런데 저는 주변에서 탑이라고 추켜세워집니다. 좌절의 공포와 상실감 등이 몇 배는 크게 다가오죠. 문제는 최근 저는 그 상태에 돌입했고 그것들을 선사한 게 신인인 척하는 괴물이라는 겁니다.”
류정민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 괴물의 과거는 차치하고. 국내 연예계 경력이 저보다 한 참 못 미치는데도 단 며칠 만에 저의 경력을 뭉개드릴 정도의 괴물이죠.”
“우진씨를 얘기하는 거군.”
“정말 괜찮냐고 물으셨죠? 강우진 버겁습니다. 끝이 어딘지 가늠도 안 됩니다. 볼 때마다 성장하고 있고 같이 연기할 때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아득하게도 느껴집니다. 발버둥을 치면 가까워졌나 싶은데 어느새 저 앞에서 뛰어가고 있어요.”
“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권기택 감독은 탑배우 류정민의 속마음을 정확히 이해했다. 한량의 현장을 직접 봤으니까. 류정민과 강우진의 투샷도. 둘의 연기는 언뜻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진함에서 차이가 있다. 명확하게는 농도의 격차였다.
이때 류정민의 씁쓸한 웃음이 짙어졌다.
“근데 참 세상이 요지경인 건 십수 년 배우로서의 가장 큰 위기를 느끼는 순간인데도 작품은 역대급으로 잘됐다는 겁니다. 연기적인 거나 기술적인 것 등등 저에 관한 평가도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발전했군 그런 걸 보통 알을 깼다고 하지.”
“예. 저도 모르게 주연 탑배우란 무게를 내려놓고 순수하게 연기로 경쟁을 펼쳤습니다. 우진씨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겠지만요.”
권기택 감독은 대답을 속으로 했다.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건 강우진이 현장에서 대들보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지.’
덕분에 주연인 류정민은 다른 것들은 모두 무시한 채 오로지 연기에만 치중할 수 있었다.
“우진씨가 촬영분을 마치고 빠졌을 때 홀가분했습니다. 반대로 불안하기도 했죠. 그와 있으면 제가 죽어라 쌓은 게 쥐똥만 해 지는 게 사실이고 맞닥뜨릴 때마다 도망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
“여러 가지가 꺾이기도 하죠. 의욕이든 열정이든.”
여기서 류정민이 돌연 표정을 진중하게 바꿨다.
“하지만 사람을 순수하게 만듭니다. 욕망 욕심 독기 과열 등 어떤 단어든 앞에 ‘순수’가 붙어요. 그는 저의 맨몸을 보이게 하고 저는 좌절하지만 더 발전할 가능성 역시 볼 수 있습니다.”
“희한한 관계야.”
“괴물? 무섭죠 그런데 전 사고를 좀 바꿨습니다. 그 무서운 걸 이용하겠다고요. 저를 위해서.”
곧 몸을 살짝 앞으로 민 류정민이 권기택 감독과 시선을 맞추며 작게 미소지었고.
“더군다나 이번엔 배역의 격차 없이 같은 주연급입니다. 몇 배는 더 치열해지겠죠. 이젠 기대까지 됩니다 우진씨는 얼마나 더 괴물 같을 것이며 저는 어느 선까지 성장할까 하는.”
거장 권기택 감독이 속으로 헛웃음을 뱉었다.
‘얘도 충분히 괴물이야 다만 강우진과 체급이 차이 날 뿐.’
다시 ‘마약상’ 세트 촬영장.
김도희 감독이 모니터에 얼굴을 처박고 입맛을 다셔대는 중에 주·조연 배우들 등등은 강우진의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돌연 애드립이 나올 줄이야 연기가 변화무쌍해서 눈을 못 떼겠군.’
‘직전 첫 연기가 좀 아쉽다고 생각한 건가? 내 눈엔 충분히 대단했는데?’
첫 연기 임팩트가 워낙 강렬했기에 강우진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지금의 포옹이 실수라는 것을 생각지 않았다.
어쨌든.
‘음? 이 분위기 전에도 경험했었지?’
묘하게 조용한 상황에 강우진은 과거를 떠올렸다. ‘흥신소’ 때 진짜로 넘어졌던 상황 말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다만 사람들은 우진의 실수를 연기로 받아들인다.
이번에도 그런 냄새가 풀풀 풍겼다.
‘오케이 스무스하게 이어 가보자.’
뻔뻔함의 극치.
우진은 이미 경험이 있었기에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다시금 이상만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촬영은 끊김 없이 끝까지 이어졌다.
물론 아무도 우진의 실수를 눈치채진 못했다. 겉으로 덤덤한 우진은 속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나이스 나름 잘 넘어 간 것 같지?’
뒤로 방금의 씬은 총 4번 정도 반복된 뒤에야 마무리됐고 다음 컷은 이상만이 홀로 마약에 빠져드는 장면이었다. ‘마약상’에서 이상만의 첫 등장 이후 캐릭터를 견고히 만들 중요한 씬. 따라서 배우들은 강우진에게 딱히 말을 걸진 않았다.
호기심이 터지긴 했다만 모두 꾹꾹 참는 듯 보였고.
“우진씨 바로 가도 괜찮겠어요? 시간 필요하면 좀 쉬었다 가도 돼.”
리허설 겸 강우진과 얘기하던 김도희 감독은 약간 걱정이 있긴 했다만 시나리오를 손에 든 우진에겐 시간 따위 별 의미 없었다. 퇴근만 늦춰질 뿐.
“아니요 괜찮습니다. 바로 가셔도 됩니다.”
시니컬하게 답한 우진은 촬영 세팅을 하는 중 ‘이상만’의 사무실을 간단히 둘러본다. 현실을 눈에 담은 뒤 그가 남몰래 검지를 들었다. 촬영 전 아공간에 진입해 복습하기 위함이었다.
-푹!
더 정확히는 무뎌질 것도 상정한 것이기도 했다. 구역질 나는 씬이지만 반복하고 반복해서 선명해지되 별수롭지 않아야 했다.
곧 강우진은 이상만의 세상을 리딩하고 돌아왔다.
‘이상만’에겐 두 가지 세상이 공존했다. 현실과 죽음. 그 끈적한 감정을 몸에 지닌 채 우진이 소파에 앉았다. 감정을 끌어 올리기 전에 이상만의 부피를 키운다. 이미 그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욕심을 낸다.
‘조금 더 조금 더 사실적으로.’
이미 이상만 그 자체지만 그것을 망각해본다. 다시 되짚는다. 철저히 망상에 빠져야 했다. 이 순간만큼은 주변 사물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이상만의 존재 하나로 종결될 컷이니까.
그때.
“하이- ”
촬영 준비를 마친 탓에 김도희 감독이 확성기에 대고 크게 외쳤다.
“액션!”
곧장 강우진은 이상만이 걷는 죽음의 길을 끄집어 올렸다. 그 구린 냄새가 낯짝에 절절히 표현된다.
“크- 후-”
눈과 코와 입이 따로 논다. 무언가가 이상만을 끌어당긴다. 아니 밀어내기도 한다. 물리적 공간이 끝없이 꺼진다.
이상만의 세상엔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해진다.
너무나 절절했으며 묘연하다. 얼굴에 가득 핀 죽음의 세상을 카메라가 정면에서 담는다. 가깝다. 그렇기에 모니터에 출력되는 이상만의 강제적인 희로애락은 욕이 나올 정도로 생생했다.
이것을 60명 넘는 인원이 코앞에서 지켜보고 있다.
평가는 나오지 않았다. 그 누구도 지금의 이상만을 보며 가타부타 첨언을 달지 못했다. 저것은 저 연기는 누군가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씬은 길지 않았다.
“···컷! O OK!!”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무아지경이던 우진의 얼굴이 단번에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직전까지 풀풀 풍기던 중독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재촬영이 있을지 모르니 사용했던 소품들을 정리해 소품팀에 전달하는 강우진.
이쯤 돼서야 배우들 몇몇이 나지막하게 읊조렸고.
“돌았네 진짜.”
“소름 돋았어 발작하고 발광 사이를 애매하게 표현한 거 같은데- 말이 안 나오네.”
확성기를 손에 든 김도희 감독은 약간 멍때리고 있었다. 물론 시선은 모니터 속 강우진을 보고 있다.
‘얘는 신인이 아니야 그냥 배우야. 진짜 배우.’
대단했다. 그저 그 단어가 다였다. 방금의 씬은 김도희 감독이 나름 심혈을 기울여 짠 장면이었다. 직접 마약 중독자를 찾아가 인터뷰도 따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약 영상을 찾아서 넣은 컷.
연기 허들이 매우 높다 그런데 강우진은 너무도 가볍게 해냈다.
물론 그녀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도 비슷하겠지. 이때 김도희 감독 주변에 서 있던 제작사 간부 한 명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고.
“···저- 진지하게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호 혹시 강우진씨 진짜 마약을 해봤다거나 그 그런 건 아니겠죠? 이게 미친 소린지는 알겠는데요 와- 연기가 진짜.”
“에이 설마. 말도 안 돼요.”
배급사 인원들도 조심조심 끼어들었다.
“근데 저렇게나 디테일하게 보여줄 줄은.”
“···그런 일이 있긴 했었거든요 과거에.”
“아아 조호재?”
희한한 광경이었다. 배우의 연기가 너무나 뛰어난 바람에 제작진에서 실제와 연기를 혼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중재한 것은 김도희 감독이었다.
“여기서 마약 실제 해본 사람 있어요?”
“어 없죠.”
“근데 방금 우진씨가 한 연기가 사실적이라고 어떻게 판단합니까?”
“···”
“그렇게 따지면 시나리오 쓴 건 나니까 나부터 검사해봐야겠네요.”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행여 우진씨한테 가서 물어보지 마세요. 은인인 배우한테 그딴 예의 없는 행동 보였다간 정말 현장 다 뒤집어엎을 겁니다.”
이어 제작사나 배급사 인원들이 금세 수그러들었다. 김도희 감독은 진짜 한다면 하는 성격이었으니까. 그런 그녀는 짜증이 폭발하면서도 저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긴 했다.
‘반대로 말하면 이 양반들이 저런 병신같은 소릴 할 정도로 우진씨의 연기가 터무니없었단 소리가 되지.’
등장한 지 몇 달 안 된 신인이 굵직한 업계 관계자들을 연기로써 헷갈리게 한 것.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곧 김도희 감독이 자리서 일어나며 제작사나 배급사 인원들에게 서늘하게 말했고.
“슬슬 다들 철수해요 강우진씨 연기 봤으니까 검증은 끝났잖아? 촬영에 방해됩니다.”
촬영존 속의 강우진에게 걸어가는 김도희 감독. 우진은 촬영 감독과 뭔가 얘기 중이었다.
“우진씨 괜찮아요?”
뭐가? 그저 좀 피곤한 게 다인 우진은 대강 낮게 답했다.
“예 괜찮습니다.”
“에이 그래도 좀 쉬죠. 방금 그 찐한 씬은 누구라도 힘들어요. 그림은 잘 뽑혔고 두 번 촬영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좀 쉬면서 감정 좀 추스려요.”
우진의 어깨를 두드린 김도희 감독이 촬영 감독과 시선 맞춘 후 말을 이었다.
“일단 가서 담배나 하나 피죠 우진씨.”
바지 주머니서 담뱃갑을 꺼내는 김도희 감독에게 강우진이 무심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 담배를 안 피워서.”
“···어? 담배를 안 피워요?”
“예. 담배 안 합니다.”
순간 김도희 감독이나 촬영 감독이 약간 놀랐다. 되물은 것은 김도희 감독이었고.
“근데 ‘이상만’ 촬영할 땐 자연스럽게 피웠잖아요? 꼴초까진 아니라도 무조건 핀다고 생각했는데?”
강우진이 매우 별수롭지 않게 답했다.
“연기였습니다.”
여기서 김도희 감독이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하하 깜빡 속았네요.”
본인도 제작사 배급사 인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마약상’의 드넓은 세트 단지 중 허름한 창고 주변이 분주했다. 당연히 촬영 준비 중이었다.
“미술팀! 감독님이 여기 의자에 핏자국 더 많아야 된답니다!”
“얼마나요?!”
“많이요 많이!”
“저기 위에 창문 막아요! 차단막 어딨어?!”
“바로 사 오겠습니다!”
분위기는 딱 폐창고. 꽤 넓다. 돌기둥은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고 바닥 여기저기엔 쓰레기가 넘실거렸다. 구석엔 핏물이 묻은 비닐도 즐비하다. 그런 폐창고에 수십 스탭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는 와중.
-팔락.
창고 중앙에 미리 세팅된 나무 의자에 앉아 시나리오를 보는 남자가 눈에 띈다. 무지 반팔티를 입은 그. ‘마약상’의 남주 진재준이었다. 대체로 인상이 날카롭다. 그 역시 국내 탑배우 중 하나였고 연기파 배우 이미지가 강했다.
‘마약상’에선 위장 수사를 펼치는 ‘정성훈’ 역을 맡았다.
재밌는 것은.
“후우-”
탑배우 진재준의 표정에 퍽 긴장이 섞였다는 것. 이미 ‘마약상’ 촬영은 중반부를 넘었고 적응은 애진작에 끝났다. 그런데 진재준은 뭔가 진중했다.
‘강우진이라-’
당연히 어제 나타난 괴물 강우진 때문이었다. 단 한 컷의 연기만으로 현장을 뒤집은 신인. 어제 촬영을 접고 배우들끼리 숙소에서 떠든 얘기는 죄다 강우진이었다.
그리고 진재준은.
‘정민이 형이 해준 말 그대로네 그거.’
강우진 관련해서 류정민에게 이미 물어봤었다. 어떤 배우인가에 관해서. 이에 류정민의 답변은 짧고 굵었다.
‘연기 죽어라 해라 아니면 너도 모르게 잡아 먹힌다.’
솔직히 진재준은 믿기가 힘들었다. 류정민 정도 되는 탑배우의 조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인에게 잡아 먹히는 건 말도 안 되잖아? 다만 어제부로 진재준은 류정민의 말을 절절히 믿을 수 있었다.
‘땜빵을 구했는데 뭔 괴물이 왔어.’
그저 감독의 모니터를 통했는데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특히 강우진의 그 마약 솔로씬은 혼을 빼고 볼 정도였다. 오늘 진재준은 강우진과 첫 대면 씬을 찍을 예정이었다. 시나리오상 일본 진출을 욕심내는 ‘정성훈’이 건달 인맥을 통해 ‘이상만’과 만날 약속을 잡는다.
이상만은 이미 부산 조직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까딱 잘못하면 일본 진출이고 뭐고 정성훈은 이상만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현재로서 일본에 제대로 줄이 있는 건 이상만뿐이었다. 그러니 정성훈은 이상만의 눈에 들어야 했다.
문제는 만남의 장소였다.
사무실이 아닌 폐창고. 실제 시나리오에서도 이 폐창고에서 정성훈과 이상만은 퍽 자극적인 장면을 많이 보여준다.
물론 절정은 이상만의 손에서 파생된다.
이때.
-스윽.
“안녕하세요.”
폐창고로 메이크업과 의상 준비를 마친 강우진이 입장했다. 그 역시 어제 세트장 주변 숙소에서 지냈고 오늘은 어제보다 나름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낮은 톤은 그대로긴 하다만.
그런 우진이 김도희 감독과 스탭들에게 인사한 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기다리고 있던 진재준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진재준은 작게 웃으며 우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젠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못 했네요. 잘 부탁해요 아마 나랑 제일 많이 만나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우진을 가까이서 본 진재준은 그의 분위기가 특이하다 생각했다.
‘차분한 건지 냉랭한 건지 헷갈리네 뭐 실제 성격이야 연기하는 거랑 상관없긴 하지.’
그리고 우진은 진재준의 손을 놓으며 속으로 연신 신기해하는 중이었다.
‘와- 진재준. 얼굴 개작네. 존잘에 소두에 역시 탑배우들은 죄다 사기캐여.’
이후 몇십 분 정도 뒤에 촬영 준비가 끝났고 폐창고로 오늘 촬영분이 없는 배우들이 몰린다.
“어? 선생님도 나오셨습니까?”
“이상만이 나랑 붙는 씬도 몇 있으니까. 솔로 컷 말고 상대역 있을 때 어떤 연기를 하는가 궁금해서.”
“아- 하긴 김교수 죽이는 게 이상만이죠?”
배우들보단 구경꾼으로 보는 게 맞았다. 뭐가 됐든 폐창고 중앙 나무 의자에 마주 앉은 강우진과 진재준. 둘 사이 시나리오를 든 김도희 감독.
“일단 이상만이 부하 고문하는 건 했다 치고. 그 뒤쪽 씬만 한 번 리허설 가볼게요. 우진씨 칼 여기.”
곧 정장 셔츠만 입은 강우진에게 사시미 칼이 전달됐다. 현재 칼은 깨끗하지만 본 촬영에 돌입하면 핏물이 뚝뚝 떨어질 예정이었고 칼을 들어 올린 강우진이 자신의 셔츠 소매로 슥슥 닦는다.
그리곤 책상 중앙에 칼을 휙 던진다.
칼은 데굴데굴 굴러 진재준. 아니 ‘정성훈’의 앞에 멈췄다. 그다음 이상만이 턱을 괴며 대사.
“뭔데 니.”
애써 덤덤하게 답하는 정성훈.
“뭐가. 뽕 팔러 왔다. 일본에 길 좀 깔아줘.”
“쪽빠리 새끼들 좀 까칠한데?”
“안다. 그래도 니스칠 좀 하면 괜찮다그래서 왔다.”
“칠해 봐 그럼. 보자 가져온 거.”
정성훈이 주머니서 뭔가를 꺼내 책상에 올렸다. 자잘한 알갱이를 내려보던 이상만이 나지막이 대사.
“다이아몬드네.”
순간.
-훅!
이상만이 정성훈의 앞에 멈춘 사시미 칼을 휙 들어선 정성훈의 오른쪽 눈앞에 붙였다. 날카로운 칼날이 정성훈의 눈알 앞에서 미세히 떨린다. 움찔한 정성훈.
반면 이상만은 작게 고개를 꺾으며.
“눈깔이 뽕쟁이가 아닌데?”
정성훈의 동공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폭력적인 시선.
“짭새 눈깔이야 니 짭새지.”
진재준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확장 (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