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 (4) >
핵폭탄이 강우진이 권기택 감독 차기작에 주연급으로 합류했단 소식이 인터넷에 던졌을 무렵. 아직 이에 대해 모르던 우진은 넷플렉스 코리아에서 한창 미팅 중이었다.
중형 미팅룸엔 ‘남사친’ 관련 주요인물이 꽤 모인 상태.
강우진은 물론이며 통통한 김소향 총괄디렉터 최나나 작가 화린 신동춘 감독 그리고 넷플렉스 각 팀의 팀장들까지. 이미 몇십 분간 인사를 나눈 상태였고 지금은 간단한 대화가 오간다.
와중 화린은 강우진이 주워준 얇은 팔찌를 만지작하면서 우진과 신동춘 감독을 힐끔했다.
‘저 감독님이 우진님이랑 같이 ‘흥신소’ 만드신···’
즉 그녀가 보기에 신동춘 감독은 강우진을 세상에 내놓은 은인과도 같았다. 따라서 팬심에 동한 화린은 신동춘 감독의 호감도가 극도로 치솟았고.
‘미팅 끝나고 제대로 인사드려야지!’
적당히 자료들이 정리됐는지 팀장들과 대화하던 김소향 총괄디렉터가 모두를 주목시켰다.
“자- 여기부턴 신감독님이 핸들링해주시면 됩니다.”
태블릿을 내려보던 신동춘 감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제작사 확정부터 시작해야겠네요.”
“네. 그런데 이미 3곳으로 추려놔서 크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간단히 미팅해보신 후에 상황에 맞춰서 감독님이 결정해주시면 돼요.”
대답을 들은 신동춘 감독이 긴장감이 역력한 최나나 작가에게 시선을 붙였다.
“작가님 미팅 끝나고 간단하게 대본 회의 가능하십니까?”
“아! 네네!! 괜찮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너무 얼어 계시네. 긴장 푸세요.”
“네! 그것도 죽어라 해볼게요!”
최나나 작가의 패기에 미팅룸 전체로 웃음이 퍼졌고 김소향 총괄디렉터가 태블릿을 모두에게 보이며 주제를 바꿨다.
“앞으로 차차 전달될 사항이지만 핵심만 먼저 알려드릴게요. 이번 ‘단막 프로젝트’는 ‘남사친’을 시작으로 2주마다 한 편씩 오픈하는 형식이 될 거예요. ‘남사친’이 뚜껑인 만큼 홍보부터 제작에 관한 모든 것에 힘을 빡 줄 거구요.”
실제 그녀의 청사진엔 예정된 게 많았다.
“거기다 일본 넷플렉스 쪽과 협의를 봤어요. ‘단막 프로젝트’ 전부는 아니지만 1차적으로 ‘남사친’은 일본 넷플렉스에 런칭될 예정입니다.”
한국 일본 넷플렉스 런칭. 강우진은 덤덤하게 듣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꽤나 놀랐다.
‘와- 오지네 일본 넷플에도 업로드된다고?? 판 겁나 커지는데??’
일본 넷플렉스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순간 강우진의 머릿속에 스치는 것.
-[6/대본(제목: 남사친) A급]
급등한 ‘남사친’의 등급.
‘아- 이거 그냥 화린님 합류만이 아니라···혹시 일본 쪽 관련해서 A급인가?’
그때였다.
“참 하나만 더요. 어차피 신감독님이 프리 진행하실 때 결정하시겠지만 사전에 확인해둘 필요는 있을 것 같아서요.”
김소향이 무심한 얼굴인 강우진을 불렀다.
“우진씨. OST 쪽 일을 좀 키웠어요. 우진씨한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부담되시면 그냥 ‘한인호’ 역만 소화해주셔도 되고 괜찮으시면 OST에 참여해보시면 어떠세요?”
뭐라? 뭘 참여해? OST? 퍽 중요한 부분인 건 강우진도 잘 알고 있었다. 음원차트를 보면 드라마 OST가 심심치 않게 순위권에 등장하니까. 근데 그런 걸 내가 해도 괜찮은 거냐? 우진이 속으로 되물을 때 김소향 총괄디렉터가 말을 이었다.
“이미 화린씨는 참여하신다고 하셨고 곡 수집도 꽤 진행된 상태에요. 목표로는 화린씨 솔로곡 우진씨 솔로곡 듀엣곡 해서 2-3곡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다른 곡들도 붙이긴 할 테지만 메인은 우진씨랑 화린씨 위주가 됐으면 싶은 거고.”
여기서 화린이 건너편 강우진을 힐끗 봤고.
‘우진님 하셨으면 좋겠다. 음치라도 내가 온갖 기술 총동원해서 괜찮게 할 수 있는데.’
천천히 다리 꼬던 김소향이 우진 쪽으로 몸을 밀었다.
“명분은 충분해요. 극 중 ‘한인호’가 숨겨진 노래 실력을 뽐내는 장면이 몇 나오니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진씨?”
뭔가 또 일이 무지막지하게 몸집을 불린다. 이번엔 해본 적도 없는 OST를 해보란다. 이 역시 강우진에겐 미친 듯이 생소한 일이었다. 노래방에서 불러제끼는 거랑 세상에 공개되는 건 차이가 크다. 다만 우진은 딱히 후진하지도 않았다.
나름 자신감이 넘쳤다.
‘흐흐 뭐 해본 적은 없다만 어떻게든 되겠지. 연기도 하고 있는데 OST 정도야. 뭣보다 내 가창력 지금 개쩔잖아?’
그의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 물론 이유 있는 자존감이었다. 그러니 약간의 거만함과 허세 한스푼.
“딱히 어려울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살짝 놀라는 김소향 총괄디렉터.
“오- 정말요?”
“네. 정말.”
진짠가? 아니면 일단 질러보는 거? 김소향 총괄디렉터는 헷갈렸다.
‘···그래도 뭐 어느 쪽이든 평타는 치니까 저러는 거겠지? 근데 만약 평타보다 한참 부족하면 난감해지기는 하는데-’
화린은 딴청 피우면서도 속으로 방방 뛰어댔다. 뭐 그녀 말고도 이 미팅룸에 있는 모두는 강우진을 보며 제각각의 반응이었다. 신동춘 감독이나.
‘설마···노래까지 잘하나? 아니겠지?’
최나나 작가 기타 팀장들까지.
‘못 들을 정도만 아니면 뭐···화린이 캐리하면 되니까.’
뭐가 됐든 확인은 필요했다. 따라서 김소향 총괄디렉터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 어- 화린씨하고 우진씨 스케줄 맞춰서 간단한 확인 작업을 한 번 거치죠. 그렇게 오래 걸릴 건 아니고 우리 쪽 녹음 스튜디오에서 우진씨 화린씨 톤을 맞춰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어울리는 곡을 찾기도 수월할 거고. 확인만 해보는 차원에서.”
당연한 수순이긴 했다.
“거기서 화린씨 우진씨가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듀엣곡 한 번 불러볼 거고.”
이어 김소향이 강우진에게 요청했다.
“우진씨는 좋아하는 노래 아무거나 간단히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같은 시각.
넷플렉스 코리아 근방에 있는 24시간 국밥집. 점심에 가까워지고 있는 시간이라 그런지 넓은 국밥집에 손님이 많았다. 그사이 익숙한 인물 3명. 최성건과 장수환 그리고 한예정이 보였다.
셋 다 우걱우걱 국밥 먹기 바쁘다
강우진이 미팅하는 틈에 적당히 배를 채워야 했기에. 가장 먼저 숟가락을 놓은 것은 한예정이었다. 최근 노란 단발로 바뀐 그녀가 물컵을 들며 핸드폰을 내려본다. 동시에 눈이 커진다.
“어? 대표님. 이 기사-”
그런 한예정이 방금 확인한 기사를 최성건에게 훅 보여준다. 숟가락을 입에 문 최성건 역시 금세 동공이 확장됐다.
“뭐야 이거 언제 뜬 거여?!”
“몇십 분 된 거 같아요.”
이들이 본 기사는 이랬고.
『[단독]거장 ‘권기택 감독’ 차기작에 대형 신인 ‘강우진’ 전격 합류···영화사 측 “강우진은 주연으로 캐스팅”』
재빨리 물로 입을 행군 최성건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었다.
“이거는···뇌피셜이 아니라 오피셜인데?”
“네. 공식인 거 보니까 출처가.”
“어. 권기택 감독님 쪽. 근데 아직 타이밍이 아닌 거로 아는데. 왜 이렇게 일찍 터트렸지? 것도 우진이만?”
읊조린 최성건이 인터넷 상황을 확인했다. 이미 따라붙는 기사들이 퍽 많았다.
이때.
-우우웅 우우우웅.
핸드폰이 긴 진동을 뱉었다. 최성건의 핸드폰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가 약간 놀랐다. 거장 권기택 감독의 전화였으니까. 곧 자리서 일어난 최성건이 국밥집을 나와 입구 앞에서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예 감독님.”
핸드폰을 통해 들리는 권기택 감독의 나긋나긋 목소리.
“최대표님. 혹시 기사 확인했어요? 우진씨 캐스팅 확정 기사.”
“네네. 안 그래도 방금 확인하고 연락을 드려볼 참이었습니다. 그- 감독님 쪽에서 공식 발표한 거 맞습니까?”
“우리 배급사가 돌린 거 맞아요. 최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원랜 6월 말쯤 되면 던질 예정이었는데 뭐랄까요 우진씨한테 좀 지저분한 찌라시들이 돌아서 좀 일찍 오픈했어요.”
지저분한 찌라시. 최성건과 bw 엔터 역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일일이 대응하진 않았다. 그딴 찌라시야 연예계서 너무도 일상적이었으니까.
‘뭐 권기택 감독이 좀 안타깝게 봐준 건가? 우리야 기다리던 입장이라 좋기야 한데-’
이때 핸드폰 너머로 권기택 감독이 다시 말했다.
“물론 지금부터 최대표님도 홍보 준비한 게 있으시면 던지셔도 돼요. 우린 일단 우진씨를 시작으로 차차 오픈할 거니까 배급사 쪽이랑 공유하면서 속도 조절하면 됩니다.”
“예예. 감독님. 그럼 저희도 우진씨 관련 소식만 뿌리겠습니다.”
“근데요 최대표님. 근래에 돌던 우진씨 찌라시들. 좀 주제가 중구난방이긴 했는데 내 보기엔 누군가 작업 친 냄새가 나던데. 그냥 기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것 같진 않더라고. 경험상 그건 누가 고춧가루를 뿌린 느낌이 들어요.”
“···예 저도 그리 보고는 있었습니다. 흐름이 좀 급격해진 것도 그렇고.”
“최대표님 발 넓으시니까 잘 찾아봐요. 우진씨 이제 시작인데 어디 책잡힐 곳 해봐야 좁지 않겠어요?”
최성건이 작게 웃었다.
“예 감독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우진씨 이제 우리 주연 배운데 챙겨야죠. 그럼 또 연락합시다.”
-뚝.
그렇게 통화가 끊겼고 최성건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국밥집으로 다시금 들어섰다. 자리의 장수환과 한예정이 득달같이 질문을 던졌다.
“오피셜 맞대죠?”
“드디어 오픈하는 겁니까??!”
“응.”
“크- 첫 상업영화가 권기택 감독 주연. 영화계 또 난리 나겠습니다.!”
흥분한 장수환이었으나 최성건은 턱 괴며 속으로 읊조렸다.
‘그래 이제 작품 가뭄 어쩌고나 잡소리 찌라시는 싹 없어지겠지. 확정은 아니다만 여기에 쿄타로 감독 것까지 엎으면 뭐 재난 수준일 거고.’
이어 핸드폰을 들어 홍보팀에 전화를 거는 최성건.
“응 기사 봤죠? 어어. 공식이라니까 우리도 준비해둔 거 던집시다. 언론 SNS 공홈 등등 모든 채널에 최대한 빨리.”
지시를 끝으로 전화를 끊은 최성건이 다리를 꼬았다. 그리곤 머리를 굴린다.
‘흠- 우진이를 작업 칠 새끼야 뭐 한 새끼밖에 없지.’
강우진이 국내 연예계에 등장한 게 몇 달 안 됐다. 그렇기에 우진을 공격한 상대를 아주 간단히 도출하는 최성건.
‘서구섭. 그 불독 새끼가 확실해. 공격의 물꼬를 텄든 아니면 터진 찌라시를 부추겼든 서구섭 새끼가 관여한 건 확실하겠지.’
물론 최성건은 계속 서구섭 대표를 주시하고 있긴 했다. ‘흥신소’의 투자자가 bw 엔터인 걸 알았으니 절대 가만히 있진 않겠지.
‘솔직히 바로 냅다 덤벼들 줄 알았는데 어째 좀 조용하다 했다. 뭐 나도 슬슬 각 잡아야겠네.’
대뜸 최성건이 비죽 웃었다.
‘덤벼보든가 나보다 서구섭 니가 더 다칠걸?’
뭔가 조커를 숨겨둔 표정이었다.
이후.
권기택 감독의 차기작 소식이 영화계 언론을 뒤흔들었다. 정확하게는 핫한 강우진이 주연으로 발탁됐다는 이슈.
이는 삽시간에 연예계 전반적인 언론으로 옮겨붙었다. 그럴만한 소스였다.
어마무시한 거장 권기택 감독의 신작도 그랬지만 그 초대형 작품에 난데없이 데뷔 몇 달 차의 강우진이 주연이라니? 당연히 시끄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파급력이 심상치 않다. 고작 1시간 만에 각종 포털사이트에 기사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HTBS 예능국 팀 승합차를 타고 이동 중인 윤병선 PD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야- 이거 뭐야? 우진씨가 그 권기택 감독 차기작에 합류한다는데? 심지어 주연급으로.”
소식을 듣자마자 작가들이나 후배 PD들의 눈이 커졌다.
“헐! 진짜요??!”
“대박! 맞네! 슬슬 기사 겁나 깔리기 시작했어요! 와- 권기택 감독 영화 주연이라니···미쳤다. 핫한 수준이 아닌데요 이거.”
“확실한 거겠죠?? 이러면 혹시 우진씨 권기택 감독 사단 되는 거예요??”
“아직 사단까진 아니지 않나?”
흥분한 작가들에게 여러 기사를 훑던 윤병선 PD가 물었다.
“이런 초대형 떡밥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이거 무조건 예전에 확정된 거 비밀로 하고 있었던 모양새지?”
“그렇겠죠. 권기택 감독 정도 파워면 애진작에 뽑아 놓고 숨기는 거 쌉가능이죠 그러다가 타이밍 맞춰서 터트린 것 같아요.”
“한량 보고 권기택 감독이 우진씨한테 바로 시나리오 보낸 거겠네. 아 ‘흥신소’ 땐가? 뭐 여튼 우진씨는 뭐 하나 평범하게 가는 게 없구만.”
대단하다는 듯 헛웃음을 뱉던 윤병선 PD의 미소가 왜인지 짙어진다.
“대중들한테 확실히 각인될 거야.”
의미심장하게 읊조리는 윤병선 PD.
“흠- 이거 우리도 살짝 힘 보태줄까?”
비죽 웃는 윤병선 PD의 말에 메인작가의 눈이 약간 커졌고 보던 핸드폰을 내리며 그에게 빠르게 되물었다.
“힘을 보태요? 아- 우리도 우진씨 언플 돌리자는 말씀이세요??”
“응 그 소리지.”
예능 PD 특유의 악동스런 표정의 윤병선 PD가 가볍게 말했다.
“가속은 붙었으니까 부스터까지 달아버리자고.”< 강화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