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속 (2) >
물끄러미 강우진을 올려보던 박판서가 그의 손을 놓으며 답했다.
“저번 연기는 잘 봤어요.”
이때 김도희 감독과 조감독이 붙었다. 입은 김도희 감독이 열었다.
“인사 끝나셨으면 우진씨는 바로 분장하고 의상 준비하시면 돼요.”
“네 감독님.”
“선생님. 진짜 괜찮으시죠?”
“그렇다니까.”
여기서 강우진이 호랑이 포스의 박판서를 바라봤다.
‘어디 아프신가?’
그 시선을 눈치챈 박판서가 걱정말라는 듯 시나리오를 들어 흔들었다.
“괜찮아요 우진씨는 연기 생각만 해. 김감독이 괜히 오바떠는 거니까.”
“아- 알겠습니다.”
이때야 김도희 감독이 작게 한숨 쉬며 조감독에게 지시했다.
“오케이 그럼 서두르자. 우진씨 분장 의상부터. 우진씨! 시나리오 봐서 알겠지만 오늘 메이크업은 좀 세요?”
“알고 있습니다.”
곧 강우진은 조감독과 함께 분장팀이 모인 곳으로 움직였다. 그런 우진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박판서가 김도희 감독에게 읊조렸다.
“행여 나 걱정해서 저 친구 연기 도중에 끊고 그러지는 말아.”
“···네 선생님.”
적당히 답하긴 했지만 김도희 감독은 박판서를 보며 약간 놀랐고.
‘평소 그렇게 차분하신 분이 엄청 달아올랐네?’
박판서와 마찬가지로 저 앞의 강우진에 시선을 맞췄다.
‘역시 우진씨 때문인가? 참- 희한해. 재준씨도 그렇고. 뭔가 신인의 패기도 있겠지만 우진씨는 배우들을 각성하게 하는 힘이 있단 말이지. 나야 나쁘지 않지만.’
새삼 강우진과 붙는 배우들이 약간 측은해지는 김도희 감독이었고 어제쯤 남주인 진재준이 지나가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친구 앞에서 연기하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어요 배우로서가 아니라 배역으로서.’
그건 감독인 김도희가 절대 느껴볼 수 없는 것이었다. 뭐가 됐든 김도희 감독이 모니터 3대가 놓인 자리로 움직일 때였다.
“음?”
스탭들이 통제하는 구경꾼들 사이에서 나타난 꽁지머리 최성건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이 오늘 온다던?’
손님 두 명을 달고 있는 상태였다. 이어 최성건과 김도희 감독이 멀지만 눈인사를 나눴다. 그러면서도 김도희 감독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지? 한 명 아니고 둘이나? 얼굴까지 가린 것 보면 유명한 사람들인가 보네.’
최성건이 안내하는 손님 두 명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으니까. 이미 전해 들은 내용이긴 했다만 김도희 감독의 궁금증이 커졌다. 강우진을 보러 왔으니 같은 업계 사람인 건 확실한데 가서 물어보긴 그림이 이상했다.
턱을 긁던 김도희 감독이 조감독을 불렀다.
“저- 쪽에 보이지. 최대표님이랑 두 명.”
“아아 마스크 쓰신. 누굽니까?”
“몰라. 여튼 저기 두 분은 최대표님 손님들이니까 각 팀들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전해.”
“아아 알겠습니다.”
“남는 의자 있냐?”
“예 몇 개.”
“저기 드려. 앉아서 보게.”
지시를 받자마자 조감독이 겹쳐진 간의 플라스틱 의자를 가지고 뛰었고 의자를 받은 최성건이 김도희 감독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 표시였다. 그런 최성건이 플라스틱 의자를 펼치며 두 손님에게 손짓했다.
“앉으세요.”
간단한 일본어. 당연했다. 손님은 쿄타로 감독과 아카리 작가였으니까. 곧 최성건에게 가볍게 인사한 쿄타로 감독과.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아카리 작가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주변 왔다 갔다 하는 스탭들이 둘을 힐끔 하긴 했지만 쿄타로 감독과 아카리 작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뭣보다 코끝 안경을 추겨 올린 아카리 작가는.
“흠-”
스탭들 사이에서 분장이 한창인 강우진을 보기 바빴다.
‘피지컬은 좋아 보여.’
첫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옆자리 쿄타로 감독을 보는 그녀. 쿄타로 감독은 최성건과 간단한 일본어를 나누고 있었다.
‘감독님이 반했다지만 과연 어느 정도일까?’
다시금 시선을 우진에게 옮기는 아카리 작가.
‘분명 연기는 잘 할 거야. 그런데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어. 배우는 경험의 양을 무시할 수 없고.’
연기에 관해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카리 작가는 지금껏 수많은 소설을 만들어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인물들을 창조했다. 인물의 생동감은 결국 경험이 바탕이 돼야 한다. 최소 아카리 작가는 그리 생각했고.
‘많이 보고 느끼고 깨우쳐야 연기의 농도는 짙어져.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저 아이가 조금 부족할지 몰라.’
그것들을 내포한 채 아카리 작가는 시종일관 강우진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뭔가가 있긴 하겠지.’
약 40분 뒤.
강우진의 분장과 의상 준비가 끝났다. 물론 촬영 준비도. 각종 카메라들은 창고 앞 간이 테이블 앞에 세팅됐다. 조명과 오디오 기기들도 마찬가지. 촬영존을 둥그렇게 감싸는 스탭들의 간격은 좁혔고 구경꾼들은 뒤로 더 물렀다. 그리고 간이 테이블에는 박판서가 강우진은 카메라 영역 밖에 서 있다.
이미 간단한 리허설은 끝난 상태.
따라서 스탭들 모두 제 자리에서 쥐죽은 듯이 촬영존을 바라봤고 김도희 감독은 촬영 감독과 잠시간 동선 얘기를 나눈다.
“처음 이상만 들어갈 때 정면보단 영역 밖에서 들어가는 느낌으로. 어? 느낌 알겠죠?”
“어어. 오케이오케이.”
시나리오상 이번 씬은 마약왕 최준호가 정성훈에게 죽임을 당하고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상만과 거래를 튼 정성훈은 일본에 마약을 팔아 기세등등해진다. 떼돈을 벌고 일본의 발도 넓어진다.
그러나 정성훈의 신분은 경찰.
위장 수사 쪽으론 위기였다. 이 프로젝트를 시행한 경찰 간부들과 정성훈은 마찰을 빚게 되지만 이미 돈맛을 톡톡히 본 정성훈은 그들을 무시한다. 때문에 일본 사업에도 잠시 브레이크가 걸린다.
간부들이 뒤에서 손을 썼으니까.
정성훈은 일본 쪽 길은 잠시 멈추고 한국의 내수시장을 노린다. 여기서 다시 이상만이 등장한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정성훈의 일 처리 속도가 너무 느렸으니까. 경찰 간부들의 마찰 때문이었지만 이를 이상만은 몰랐다.
다만 무턱대고 정성훈을 제거할 순 없다.
이미 대가리가 커질 만큼 커진 터라 정성훈 쪽 규모도 몇 배는 불었고 뭣보다 그를 처리하면 마약 제조와 판매에 차질이 생기니까. 공짜로 제공 받는 선물도 못 받는다. 따라서 이상만은 정성훈 몰래 ‘김교수’라 불리는 제조자 김현수를 몰래 호출한다.
김교수를 포섭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자자- 가봅시다!”
촬영 감독과 얘기를 마친 김도희 감독이 전체적으로 외친 뒤 자리에 앉았다고 남자 스탭 한 명이 카메라 앞에서 슬레이트를 탁! 쳤다.
“하이-”
금세 확성기를 통해 퍼지는 사인.
“액션!!”
카메라 앵글은 창고 앞 간의 테이블을 비춘다. 테이블 위엔 각종 회와 소주가 세팅됐다. 거기에 앉은 박판서. 아니 김교수. 통풍이 잘되는 갈색 린넨 셔츠를 입은 김교수가 손을 움직였다.
-스윽.
소주잔에 소주를 따른 것. 표정은 굳었다. 긴장이 서리긴 했지만 과도하진 않다. 꿀꺽. 소주를 원샷한 김교수가 나무젓가락을 들 때였다.
“어어- 회 좋아해요?”
어디선가 까끌하면서도 피곤 섞인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정장 입은 강우진이 걸어왔으니까. 아니다 이상만이다. 어느 쪽이든 별로 상관없다. 둘 다 같다. 그의 뒤론 부하들만 수십 명.
“어흐 덥네.”
테이블 앞에 멈춘 이상만이 입은 정장 재킷을 벗었다. 그리곤 셔츠 소매를 걷었다. 양팔에 선명히 보이는 문신. 곧 이상만이 김교수 반대편 자리에 푹 앉았다.
“우리 김교수님 만나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요?”
김교수의 소주잔을 채우는 이상만. 그의 분위기는 전과는 많이 달랐다. 여전히 눈 안에는 매서운 광기가 보였지만 유연하진 않다. 유약하다. 의도한 허술함이 아니었다.
현재의 이상만에겐 뿜어대던 폭력성이 줄었다.
다만 기괴스러운 냄새를 풍겼다. 뱀처럼 행동하지만 사마귀 몸통을 짓이기면 튀어나오는 연가시에 가깝다. 꿈틀꿈틀 얇고 약하지만 역겹고 치명적이다.
-치직.
담배를 입에 문 이상만이 김교수에게 담뱃갑을 내민다.
“하나 해.”
“담배 끊었어.”
“이 좋은 걸 왜 끊어?”
“나이가 찼으니까.”
“지랄 분위기 잡지 마 새끼야. 교수교수 불러주니까 니가 진짜 교순줄 알지?”
급작스레 어금니를 물던 이상만이 대뜸 비죽 웃었다. 혼란스런 표정 변화. 그것을 카메라가 가깝게 담았다.
“아아- 쏘리쏘리. 미안해 김교수님.”
김교수가 이상만을 물끄러미 보다가 되묻는다.
“괜찮은가?”
“뭐가.”
“자네 얼굴을 보면 알 텐데. 죽어가고 있잖아.”
“노친네. 아가리에 소주병 박아버리기 전에 입조심해.”
빈약하지만 뾰족하다. 팔뚝을 긁는 이상만의 어투엔 묘한 살의가 담겼다. 울컥거리지만 그것을 억지로 참기에 들을 수 있는 경고. 하지만 김교수는 이상만을 그저 안쓰럽게 바라봤다.
그럴 만했다.
움푹 파인 눈덩이 짙어진 다크서클 온 얼굴에 진하게 핀 검버섯 부스스하다 못해 개털 된 머리카락 듬성듬성 자란 턱수염.
눈앞에 앉은 남자는 이미 이상만이 아니었다. 그저 뽕맛에 취한 뽕쟁이일뿐.
“그래서. 날 보자고 한 이유는 뭔가.”
“본론? 본론 좋지. 그- 말이야. 이제 정사장 그만 빨고 내 똥꼬나 좀 핥아달라고.”
“정성훈을 버려라?”
“아니? 그냥 버리긴 아깝지.”
-스윽.
흡사 미친놈처럼 웃는 이상만이 몸을 김교수 쪽으로 쑤욱 민다.
“그 새끼 내장 싹- 꺼내서 팔 건데?”
“아쉽지만 난 뽕쟁이랑은 거래 안 해.”
“···뭐?”
“뽕을 팔아야지 뽕을 먹으면 쓰나. 오늘 일은 못 들은 거로 하겠네.”
“니 정성훈이랑 떡이라도 쳤냐?”
“···”
“내가 대줄 테니까 내 똥꾸멍에 박으라는데 혓바닥이 존나 길어 시발놈이.”
초반의 이상만과 지금의 이상만의 명확한 변화. 아니 변질이라고 할지. 그가 지녔던 유연한 중후함과 무게감이 사라졌다. 그저 중독에 빠진 미치광이의 모습.
실제 그는 미쳐가고 있었다.
그 변화가 이상만의 어투와 눈빛 그리고 행동에서 절절하게 표현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주를 가볍게 원샷한 김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가 한걸음 옮길 때 새 담배를 입에 문 이상만이 황당하게 웃었다. 다만 좀 전과 웃음의 질감이 다르다. 그나마 달렸던 통제가 아예 사라진 느낌.
“쥐좆만한 것들 이래 금붙이 끼고 다니게끔 만들어 놨드만 이제사 나를 무슨 걸뱅이 취급을 하고 자빠졌네.”
하지만 김교수는 이상만을 무시했다. 그러나 십수 명 부하들이 그를 막았다. 뒤따라 흐느적 일어나는 이상만.
“김교수님. 뭐 급한 일 있다고 그래 빨리 가. 뽕쟁이한테 뽕 좀 만들어 줘.”
“정성훈과 얘기해라.”
멈춰 선 김교수에게 천천히 느긋느긋 다가가는 이상만. 그러나 시선엔 이미 절제가 풀렸다. 이상만은 뒷모습인 김교수의 오른쪽 어깨에 얼굴을 얹었다. 카메라는 정면에서 나란히 붙은 두 인물을 투샷으로.
그리곤 김교수의 귓가에 이상만이 속삭였다. 음성이 괴이하다.
“자꾸 시발 정성훈 정성훈 하는데. 그 새끼도 제조법 알고 있지?”
“···글쎄.”
“아는 것 같은데?”
“길 좀 열어주지.”
이때 김교수가. 아니 박판서가 손에 묻은 땀을 바지에 닦았다. 연기지만 연기가 아니었다. 귓가에 들리는 이상만의 목소리 덕에 인지했으니까.
곧 자신이 죽을 거란 걸.
하지만 이상만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팍팍해.”
어깨에 얹었던 얼굴을 빼냈지만 김교수의 등 뒤로 그의 괴이한 음성이 계속 들린다.
“정성훈 그 쥐좆이 쪽빠리 새끼들한테 손을 뗐고 내수시장 어쩌고 지랄하는데 움직이질 않아. 팍팍해. 그럼 어쩌겠어?”
“이상만.”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 이 말이야.”
작게 한숨 쉰 김교수는 앞에 막아선 부하들을 억지로 밀어낸다. 하지만 쉽지 않다. 곧 김교수의 뒷모습을 보는 이상만의 눈에서 이성이 사라졌다. 오직 본능만이 존재했다.
“보자-”
이상만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창고 앞쪽에 쌓인 벽돌들을 발견했다.
“어어 딱 좋네.”
벽돌 하나를 집어 드는 그. 피곤한 듯 숨이 더디고 퇴근을 바라는 힘 빠진 손짓. 그대로 벽돌을 든 이상만이 부하와 몸싸움 중인 김교수를 불렀고.
“김교수.”
우뚝 멈춘 김교수가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이상만이 김교수의 얼굴에 벽돌을 후렸다.
-팍!
그의 얼굴엔 아무 표정이 없다. 그저 대수롭지 않다.
“이거 다 늙어서 내장 팔릴라나? 야 팔리겠냐?”
부하가 오들오들 떤다.
“히 힘들 것 같습니다.”
“그지? 눈알은?”
“···”
“몰라 씨발 거.”
이상만이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김교수의.
“크흐···어억- 커허···”
등위로 올라탔다. 그리곤 작업을 계속했다. 김교수의 머리통을 벽돌로 두 번 내리찍는다.
-팍!!팍!!!
거리낌 따위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이내 김교수의 머리통에서 핏물이 파악 튄다. 그 핏물은 벽돌에 선명하게 스며들었고.
-스윽.
벽돌을 코에 대고 피 냄새를 맡은 이상만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노친네라 그런가 군내가 나네 군내가.”
“···으허-”
“살겠다고 발광은. 어어 있어봐라 있어 봐.”
-팍팍팍팍!
반복되는 둔탁한 소음. 벽돌이 김교수의 머리통을 박살 내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도 금세 물렁물렁해진다. 이상만이 김교수의 머리통을 내려칠 때마다 뼈가 으스러지고 어느새 김교수는 한낱 살점만 남은 고깃덩이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이상만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팍팍팍!
마치 고깃덩이를 땅속에 박을 요량처럼 보일 정도였다. 후리고 내려치고 찍고 박는다. 어느새 핏물은 벽돌만이 아닌 이상만의 얼굴에도 가득 튀었다.
검버섯과 핏물이 조화롭게 섞인다.
그렇게 몇십 초를 발작하던 이상만은.
“후-”
들고 있던 벽돌을 앞에 선 부하들에게 휙 던졌고 핏물 가득한 얼굴을 닦지도 않고 뒤쪽 간이 테이블에 툭 앉았다. 그대로 소주 한 잔. 회 한 점.
질겅질겅 회를 씹던 이상만이 나무젓가락으로 바닥에 박힌 고깃덩이를 찍었고.
“정성훈 불러. 그리고 치워라 그거. ”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때 카메라가 핏물과 검버섯이 가득한 이상만을 바짝 땡겨 잡았다. 이어 팔뚝 긁는 이상만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움찔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아니면 니네들이 찜쪄먹든가. 다져놔서 연해.”< 가속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