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속 (3) >
비릿하게 웃고 있는 이상만. 손 뻗으면 닿을 정도의 정면 카메라를 향해 이상만이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진한 연기가 카메라를 덮었다가 사라진다.
가려졌던 이상만의 표정이 변했다.
괴이한 웃음을 띠었던 그가 딱딱한 무표정을 만들어냈다. 김도희 감독이 보는 모니터에는 이상만의 뻣뻣한 얼굴이 가득 찼다. 검버섯으로 인해 거뭇한 얼굴이지만 곳곳에 튄 김교수의 빨간 핏물이 묘하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김도희 감독은 숨을 죽이고 모티터 속 이상만을 응시했다.
‘그렇지 그림 죽인다. 광대 같은 변질과 감정 변화. 볼 때마다 찌릿해 시발.’
첫 등장과 비교하면 지금의 이상만은 미친놈에 가깝다. 중독된 마약이 그의 정신을 갉아먹었으니까. 하지만 이상만은 미쳐가는 와중에 이따금 과거의 모습을 표정을 보인다.
찰나.
이미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갈 순 없지만.
‘벗어나고픈 본심이 살고자 하는 이성이 본능을 비집고 나오는 거야. 찰나의 순간에.’
자신이 썼지만 김도희 감독은 그 이상의 것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어떻게 저렇게나 상반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눈에 독기와 고독이 섞였어. 그게 조화롭다는 게 더 황당하고.’
이런 표현은 시나리오에 적혀 있지 않다. 즉 강우진이 끌고 온 감정으로 만들어냈을 뿐.
다만 희망보단 절망에 가까운 눈.
이 촬영 현장에 있는 모두는 이상만의 찰나에서 마침표를 직감했다. 시선만으로 죽음에 가까워짐을 시사한 연기. 아마 이상만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관객들 역시 같은 마음이겠지.
이어.
-스윽.
재차 담배 연기를 길게 뿜던 이상만이 소주를 원샷한 뒤에야.
“···”
얼굴을 모니터에 처박은 김도희 감독이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컷!! OKOK!! 크- 좋습니다! 좋아요!”
만족 가득한 김도희 감독이 촬영존 안으로 뛰어갔다.
“이야- 우진씨! 지금 텐션 미쳤거든요? 똑같이 한 번만 더 가볼게요 후방 위주로 갔으니까 이번엔 정면으로.”
“예 알겠습니다 감독님.”
금세 이상만의 냄새를 빼낸 우진에겐 분장 스탭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재촬영을 위해 메이크업 수정을 해야 했으니까.
그는 무던한 얼굴을 스탭들에게 내어준 채 속으로 안도의 숨을 뱉었다.
‘워- 클랄뻔 했다. 저 벽돌 생각보다 겁나 가벼워서 휙 하니 날릴 뻔했네.’
김교수를 골로 보낸 벽돌은 소품팀에서 제작한 스티로폼이었다.
‘손에 힘을 더 빡 주고 해야지 날리면 진짜 낭패야. 걍 바로 NG.’
이때 피 분장을 지운 박판서가 우진에게 다가왔다.
“우진씨.”
“예 선생님.”
“바닥에서 내 머리통 가격할 때 말이야 세 번 정도 내려친 뒤에 머리끄덩이 잡고 내 얼굴 올려보면 어때요?”
갑자기? 가만히 박판서를 보던 우진이 되물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는 느낌을 말씀하시는.”
“어어 그런 간지로.”
고개 끄덕인 박판서가 옆에 선 김도희 감독에게 시선을 돌렸다.
“해보니까 죽기 직전의 내 얼굴을 이상만이 한 번 힐끔 보는 게 그림이 좀 더 살지 싶어서. 괜찮나?”
“그럼요. 좋을 것 같은데요? 이번엔 말씀하신 대로 가볼게요.”
“음. 그리고 우진씨. 내 등 뒤로 들어올 때 말이지···”
박판서는 강우진과 함께 직전의 씬에 관해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가르치는 느낌보단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여 더 좋은 그림을 뽑으려는 뉘앙스.
그것을 지켜보던 김도희 감독이 작게 웃었다.
‘원래도 씬 욕심이 많은 분이긴 했는데···선생님이 꽤 신나셨네. 거기다 우진씨를 신인으로 보고 있지 않아 그저 배우로 보고 있는 거지.’
실제 박판서는 강우진에게 배움을 받으려는 말을 뱉기도 했다.
“이상만이 심리 왔다 갔다 할 때 우진씨는 어떻게 그리 감정 인아웃을 빨리해요? 미리 접점을 잡고 시작하나?”
“···아니요. 그렇진 않습니다.”
“그럼?”
여기서 쎈척 한스푼.
“그냥 떠올리고 몸에 퍼트립니다.”
“···그게 단가?”
“예.”
“흠. 많이 배우고 있어요 이번에도 잘 부탁해.”
기분이 좋았다. 우진은 ‘인정’이라는 달콤함에 푹 빠졌다. 착각이든 뭐든 지금껏 많은 인정을 받은 그였으나 역시 많은 인정 중에선 연기와 관련된 게 가장 으뜸이었다.
‘크- 성취감 뽕 죽이네.’
이상만과는 전혀 결이 다른 중독이랄까. 그렇게 강우진과 박판서는 다시 촬영에 돌입했다. 씬은 점점 더 투박하며 사실적이지만 더없이 좋은 퀄리티가 뽑히기 시작했다. 박판서의 발전 반복되는 구현에 몇 배는 선명해지는 우진의 이상만.
“아니면 니네들이 찜쪄먹든가. 다져놔서 연할 거다.”
컷과 액션이 두어 번은 진행됐다. 그럴수록 이상만의 미치광이 농도는 짙어졌고 우진의 무아지경 연기에 스탭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그래 이런 걸 원했어.’
처음부터 강우진의 연기를 직관하던 쿄타로 감독은 어느새 일어난 상태였다.
‘직접 보러오길 잘 했어.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수십 배 차이가 있다.’
아니 우진의 연기가 시작됐을 때부터 그랬다. 마스크를 썼기에 얼굴은 가렸지만 그의 반짝이는 눈은 선명했다.
‘신인에 까메오 역이지만 한국의 대단한 배우들과 전체 스탭들을 입 다물 게 하는 연기. 보고 있으면 정신이 팔리게 되는 폭발력.’
새치 가득한 쿄타로 감독은 촬영 현장 전체를 둘러보다가 모니터 앞에 앉은 김도희 감독을 응시했다. 욕심이 났으니까.
‘당장 앉아서 저 연기를 직접 만지고 싶다.’
단편을 전전하다가 이제사 빛을 보는 저 신인배우가 수많은 일본 배우들과 일본의 연기판을 헤집어 놓을 거라는 믿음.
여기서 쿄타로 감독이 시선을 내렸다. 왼쪽의 아카리 작가를 보기 위해서였다.
안경을 코끝에 걸친 그녀는.
“···”
쿄타로 감독과 다르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침착하진 않다. 왜? 그보다 동공이 몇 배는 확장된 상태였으니까.
“세상에···”
일본말로 작게 읊조리는 아카리 작가. 뭐랄까 그녀가 보기에 강우진의 연기는 처음 보는 부류였다.
당연히 그것은.
‘경험? 농도? 부족? 아니야 틀려. 그 어떤 것도 아쉽지 않아. 오히려 넘칠 정도야. 저 배우는 어떻게···왜 저렇게 깊은 것을 가지고 있지?’
수많은 인물을 창조해온 아카리 작가가 딱 원하던 이상향이었다. 자신이 쓴 인물이 살아 있다면 딱 저랬으면 싶은 염원.
그때.
“작가님.”
쿄타로 감독이 아카리 작가에게 넌지시 속삭였고.
“직접 보니 어떠십니까.”
현장 속 강우진에게서 눈을 못 떼던 아카리 작가가 홀린 듯 답했다.
“···나중에요. 나중에 말해요.”
방해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몇 시간 뒤.
촬영이 반복되며 떠 있던 해가 저물고 있었다. 하지만 ‘마약상’의 촬영 열기는 시간이 갈수록 뜨겁다.
“살수차! 비 뿌려 봅시다!!”
“OK!”
장소는 김교수의 머리통이 박살 난 곳과 같다. 하지만 세팅된 소품이나 주변 느낌이 다르다. 해가 지고 있기에 살짝은 어두침침해졌으며 이상만의 첫 등장처럼 빗물을 쏟아낼 살수차도 준비됐다.
그리고.
“보출 준비!”
“옙! 여기! 이쪽으로 모이세요!”
이상만의 부하 역을 맡을 검은색 정장의 보조출연자들도 추가됐다. 얼추 열댓 명. 그중에선 이상만의 오른팔 격인 단역 배우도 있었다. 이들에겐 전부 날카로운 사시미 칼이 지급됐다.
이번 씬은 이상만의 마지막을 장식할 컷.
퍽 처참한 말로를 보여줄 예정. 시나리오상 이상만이 김교수를 죽인 뒤 정성훈은 점점 더 미쳐가는 이상만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전까지는 아슬아슬하지만 선을 지켜오던 이상만이었으나 김교수를 죽인 뒤부터는 고삐 풀린 망나니와 다를 게 없다.
거기다 하루의 반을 뽕에 취해 지냈다.
이미 이상만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반면 상만파의 몸집은 과거와 비교해 두 배 이상은 커졌다. 정성훈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린다. 본인의 목숨이 위험하기도 했고. 따라서 정성훈은 이상만을 제거하기로 한다.
물론 자신이 직접 할 생각은 없었다.
목표는 이상만의 오른팔 부하. 그를 불러내 최근 이상만의 문제점을 살살 긁으면서도 이상만이 제거된다면 너와 함께 하겠다는 떡밥을 던진다. 오른팔 부하는 이를 아주 빠르게 받아들인다. 과거완 달리 이상만의 상태가 매우 좋지 못했으니까. 포악한 맹수는 없고 약에 미친 또라이일 뿐.
목을 치려면 지금이 적기.
곧 오른팔 부하는 정성훈과 입을 맞춰 덫을 놓는다. 이상만에게 일본이 아닌 한국 내수시장에 관한 얘기를 하자며 약속을 잡은 것.
장소는 김교수를 골로 보낸 항구 쪽 창고 앞.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우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끈적이는 습도와 기분 나쁜 축축함이 만연한 차 안.
“···”
전보다 검버섯이 진해진 강우진이 뒷좌석에 앉아 있다. 눈동자는 허공을 휘젓는다. 생기는 없다. 생명도 없다. 숨만 쉬는 멍청한 인형. 그의 시야는 왜인지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미 우진은 이상만의 모든 것을 끌어올린 상태.
그때.
“하이- 액션!”
김도희 감독의 사인이 던져졌다. 곧 이상만이 허공을 휘젓는 눈동자를 내린다. 미세히 떨리는 손을 움직여 속주머니서 담뱃갑을 꺼냈다. 달다. 이상만은 담배가 맛있다고 생각했다.
“후우-”
좀 전에 약을 해서? 아니면 차를 두두두 때리는 비 때문인가? 이상만은 담배를 최대한 길게 빨았다. 담배 연기가 온몸 전체를 한 바퀴 돈다. 그런 감각이었다.
이때.
-덜컥.
차 뒷문이 열렸다. 우수수 빗소리와 함께 장우산을 든 오른팔 부하가 말했다.
“형님 정성훈 도착했습니다.”
좌석에 박혀 있던 이상만은 어렵사리 고개를 움직였다.
“···”
딱히 말은 없다. 아니 하지 못 한 것이었다. 힘이 없다. 그의 몸은 전 같지 않았다. 살점들의 탄력은 없고 근육이 한없이 빠졌다. 어쩌면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것들의 이상만의 얼굴에 가득 담겼고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담는다.
-스윽.
어떻게든 움직이는 이상만. 그를 지금 움직이게 하는 건 미약하게 남은 목표 의식. 그리고 보스라는 자신의 위치 때문. 다만 그나마 남은 이성은 약을 맹목적으로 갈구하는 본능에 잡아 먹히기 일보 직전.
이어 이상만이 천천히 우산 밖으로 손을 내민다.
거센 빗물이 그의 앙상한 손을 때려댔다.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이상만을 지켜보던 수십 스탭들은 왜인지 소름이 돋았다.
‘첫 등장이랑 에너지가 180도 달라서 개새낀데도 측은해 보인다. 연기 미쳤네 진짜.’
‘진짜···뭐 움직임 하나하나가 죄다 눈길이 가. 역대급 캐릭터네.’
저도 모르게 감탄하거나.
“그림···죽이네.”
입을 막는 이들도 있었다. 이때 우산 밖으로 손 뻗은 이상만이 나지막이 말했다.
“불겠구만.”
그의 짧은 말에 우산을 든 오른팔 부하의 얼굴이 더욱 굳어진다.
“바다가 말입니까?”
이상만이 힘 빠진 웃음을 죽음을 얼굴에 띄운다.
“어. 바다가.”
“많이 마르셨습니다.”
“그러냐?”
“예.”
천천히 손을 내린 이상만이 비에 젖은 자신의 손을 내려본다. 왜인이 피식 웃는다. 언젠가 비슷한 장면이 있었던 것 같았으니까.
“시발 거 빨리 끝내고 술이나 빨자.”
이상만과 부하 무리들이 창고 앞으로 움직였다. 폭우는 점점 더 강도가 세진다. 시야를 게걸스럽게 방해할 수준이었고 이상만이 재차 담뱃갑을 꺼내며 천천히 창고 주변을 훑는다. 카메라 역시 이상만의 뒤에서 창고를 비춘다.
없다. 있어야 할 정성훈이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다시금 이상만의 옆모습을 바짝 당긴다. 길게 담배 연기를 뿜던 이상만이 약한 목소리를 낸 건 이때. 향한 건 바로 옆에 선 오른팔 부하였다.
“없어진 거냐 아니면 원래부터 없었냐.”
“···”
침착하다. 지금의 그는 포악한 맹수도 아니고 미치광이 병신도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한 몇 분 뒤의 처참한 말로를 직감한 뽕쟁이일 뿐.
“원래부터 없었네.”
“수고하셨습니다 형님.”
“지랄. 짜치게 인사는.”
오른팔 부하가 들고 있던 장우산을 스륵 내렸다. 동시에 십수 명 부하들도 똑같이 행동했다. 금세 모두는 쏟아지는 장대비를 흠뻑 맞았다. 곧 이상만은 내려치는 빗물을 올려보다가 젖어버린 담배를 입에 천천히 넣었다.
이 순간.
-푹!!
부하 중 덩치 큰 사내가 이상만의 복부에 뭔가를 찔렀다. 하지만 이상만은 딱히 움직임이 없다. 그저 힘 풀린 시선으로 사내를 응시할 뿐. 쇠약한 기세지만 사내는 공포를 느꼈고 양손을 떨며 이상만에게서 뒷걸음질 친다.
그런 부하를 보던 이상만이 배에 꽂힌 사시미 칼을 내려봤다.
익숙한 칼이었다.
“새끼가. 넣다 말어 왜.”
정성훈의 눈알에 붙였던 그에게 선물로 줬던 사시미 칼이었다. 그것을 배에서 훅 빼낸 이상만이 덩치 좋은 사내에게 휙 던진다.
“다시 넣어.”
이게 시발탄이 됐는지 오른팔 부하가 십수 명 부하들에게 외쳤다.
“조져!!”
멈칫멈칫하던 부하들이 한 번에 이상만에게 달려들었다. 카메라 조금 빠지며 떼샷. 푹이나 쑤욱같은 소음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바닥을 때리는 폭우 소리가 다였다. 하지만 이상만의 발치에만 붉은색 빗물이 흘렀다.
그렇게.
-턱!
난자당한 이상만이 무릎을 꿇었다. 그의 복부가 넝마가 됐다. 붉은 것이 울컥인다. 힘 풀린 이상만을 오른팔 부하가 발로 밀었다.
“···꺼으-”
바닥에 쓰러진 이상만의 입에서 핏물이 줄줄 흐른다. 이때 오른팔 부하가 챙겨온 뭔가를 이상만의 주변에 뿌렸다. 뽕쟁이인 그가 사용하던 장비들이었다. 이상만이 쟁여둔 투명 알갱이. 아니 다이아몬드 봉투도 포함이었다.
“끄- 커읍.”
엎어진 이상만은 시야가 흐릿해졌다. 와중에 기어가기 시작했다. 지익지익. 남은 생명을 모두 짜내 긴다. 그가 보는 것은 하나였다. 주사기. 죽음이 코 앞이지만 그는 좀비마냥 질질 기어서 주사기를 집었다. 덜덜 손이 떨리지만 어떻게든 들어 올렸다.
그리곤.
-푹.
어딘가에 찔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른팔 부하가 나지막이 욕했고.
“병신.”
이상만이 웃기 시작했다.
“흐으 흐흐흐.”
헷갈렸으니까. 현실과 죽음을 혼동한다. 죽음이 몸을 지배한 것과 약이 혈관을 타는 것 감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약과 죽음은 광경은 다른 바 없었다.
문제는.
“흐흐흐- 으흐흐.”
그가 찌른 주사기는 텅 비어 있다는 것. 그저 난자당한 몸에 구멍을 하나 더 냈을 뿐. 그런 이상만이 몸을 덜덜덜 떨다가 죽음의 코앞에서 작게 읊조렸다.
“뽕맛···죽이네 시발.”
그대로 이상만의 심장이 멈췄다.
이후
쿄타로 감독과 아카리 작가는 ‘마약상’ 현장에서 벗어나 승합차를 타고 서울로 이동 중이었다. 물론 예정대로 강우진을 만나진 않았다. 아니 만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의 경이로운 연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
“···”
승합차 안 분위기는 무겁다. 쿄타로 감독과 아카리 작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저 창밖을 보거나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그런 둘에게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계속해서 소름이 돋는다는 것.
그렇게 약 30분간 조용하던 승합차에서.
“작가님.”
처음 일본어가 들렸다. 쿄타로 감독이 먼저 입을 연 것.
“강우진 배우를 보고···무슨 배역이 생각나셨습니까?”
이어 창밖을 내다보던 아카리 작가가 천천히 쓴 안경을 벗었다. 그리곤 강우진을 떠올렸다. 사실 그녀는 우진의 ‘이상만’을 본 뒤로 딱 하나의 배역이 깊게 박힌 상태였다.
“···키요시 역.”
대답을 듣자마자 쿄타로 감독이 작게 웃었다.
“제가 생각해둔 배역과 같습니다.”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 속 주연 중 하나였다.< 가속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