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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MMGA Chapter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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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속 (4) >

“감독님도 ‘키요시 역’을 생각하셨다고요?”

아카리 작가가 약간 놀라며 묻자 새치 가득한 쿄타로 감독이 작게 웃었다.

“예 작가님.”

그럼 애초에 그 한국 배우를 주연으로 보고 있었다는 건가? 아카리 작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강우진 배우에게 키요시 역을 제안할 생각이었나요? 그를 보자마자?”

옅게 고개를 젓는 쿄타로 감독.

“아니요. 처음부터는 아니었습니다. 우진씨를 봤을 땐 시나리오의 각색이 진행 중이기도 했고. 그저 ‘흥신소’를 보고 그와 만났을 땐 어떤 역이든 같이하고 싶은 게 다였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언제부터 그를 주연으로 보고 있었나요?”

“···명확하진 않습니다. 아마 이번에 다시 한국에 와서 우진씨가 찍은 드라마를 본 뒤 같아요. 혹시 호텔에서 ‘프로파일러 한량’을 보셨습니까?”

분명 아카리 작가도 볼 순 있었으나 스케줄이 바빠 시간이 없었다.

“아니요 아직.”

“저는 작가님보다는 일정이 수월해서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봤습니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실 때 꼭 보세요. 아주 잘 뽑혔습니다. 그리고 참- 부럽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드라마판 퀄리티 차이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 이미 한국은 일본을 한참 앞서고 있어요. 배우들의 연기 연출 기술 등등.”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짓는 쿄타로 감독.

“시스템의 차이겠죠. 과연 20% 이상의 시청률이 나올 만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대형 작품의 초반 완급을 조절한 건 우진 씨였습니다.”

“···”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합친 연쇄살인범으로 나오는데 극 중 우진씨의 절제된 심리표현이 일품이었습니다. 그저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닌 그의 얼굴만 봐도 배역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행동 눈빛 호흡 목소리톤. 그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함이 없어요.”

나지막이 읊조리던 쿄타로 감독이 수십 년 자신의 경력을 되돌아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생처음입니다. 우진씨는 그만의 독보적인 연기법이 있고 그것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오늘 보니 동료 배우들까지 달아오르게 하던데요.”

“그렇겠죠.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 중독 연기와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쫓는 눈빛. 코앞에서 그런 걸 보면 어떤 배우든 뜨거워질 겁니다.”

여기서 아카리 작가와 시선을 맞춘 쿄타로 감독이 짐짓 진지해졌다.

“한량에서 떠올렸고 오늘 영화 촬영장에서 확신했습니다. 그에겐 ‘키요시 역’이 제격일 겁니다.”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기도 하니까요. 난 오늘 그의 맹목적인 연기에 끌렸어요. 오로지 하나만을 쫓는 연기.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요. 어땠길래 그런 지독한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모릅니다. 하지만 적당히 살아오지 않았겠죠. 산전수전을 겪으며 텁텁하고 깜깜한 무명생활을 이어왔을 겁니다.”

코끝 안경을 추켜 올린 아카리 작가도 속으로 인정했다. 모르긴 몰라도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겠지. 그게 아니고선 오늘 강우진이 보여준 진하다 못해 썩어버린 한 남자의 지옥 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난 원작자지만···두렵기도 해요.”

쿄타로 감독이 동의했다.

“연출자가 만든 배역을 뛰어넘는 연기. 그것을 보면 자신이 쓴 대본이 연출이 너무도 아쉽게 느껴지죠.”

그런 그가 주변에 놓인 종이뭉치를 들었다.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 시나리오였다.

“작가님. 하나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어떤?”

시나리오를 펼친 쿄타로 감독이 어딘가를 검지로 찍었다.

“‘키요시 역’의 설정을 조금 수정하고 싶습니다.”

“설정을요? 어떻게?”

“인물에 한국의 냄새를 삽입하고 싶어요. 당장 생각나는 건 과거입니다.”

“출신? 아니면 재일교포 같은.”

“한국어 대사도 들어가면 더 좋을 것 같구요.”

“···확실히. 키요시 역의 색깔이 더욱 다채로워지긴 하겠어요. 뭣보다 맡는 배우가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곧 아카리 작가가 미소지었고.

“전 찬성이에요.”

새치머리를 긁던 쿄타로 감독이 보던 시나리오를 덮었다.

“이젠 그의 대답만 남았습니다.”

다음 날 13일.

강우진의 ‘마약상’ 촬영은 후시 등의 자잘한 것을 빼면 어제부로 끝났다. ‘이상만’이 사망했으니 당연했다.

이어 토요일 주말이 찾아왔다.

이 시각 연일 터지는 이슈들 덕에 연예계는 미친 성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덕분에 살판 난 언론들이었고 인터넷은 매일이 새로운 자극으로 넘실거렸다.

『[드라마]긴박했던 ‘프로파일러 한량’ 9화 최종 시청률 22.6%』

작품 중반을 넘긴 한량은 여전히 20%대 시청률을 방어하며 훨훨 날고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박대리가 회상 등으로 등장하면 이 역시 기사화됐다.

여전히 시청자들은 박대리를 잊지 못했고.

-확실히 박대리가 개쩔긴 했음…다른 배우님도 잘하지만 강우진 임팩이 너무 강렬했음….ㅠㅠㅜ돌아와…덜꼴려….

한량은 스케줄 상 다음 주면 모든 촬영이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물론 이미 강우진은 진작에 촬영을 마쳤지만 한량과의 스케줄이 아예 끝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시청률 25%를 찍었던 대박 작품 한량은 작품이 끝난 뒤가 진짜다.

일단 종방연.

작품이 끝난 뒤 모든 배우가 모이는 종방연 역시 배우에겐 인지도를 높일 자리였다. 많은 기자와 대중들의 관심이 쏠리니까. 종방연 뒤론 여러 후일담 촬영과 인터뷰 재방송 OTT 진출 등등.

특히 한량처럼 대박 작품은 해외 진출이 중요했고.

『[공식]‘프로파일러 한량’ 종영 뒤 일본 넷플렉스 런칭!』

현재 한량은 일본 넷플렉스 진출이 확정이었다. 즉 완결 이후에도 우진은 한량에서 뽑아먹을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누가 뭐래도 한량의 성공엔 강우진의 덕이 퍽 컸으니까.

이어.

『[무비톡]신인이 주연을? ‘강우진’과 ‘권기택 감독’의 관계에 무언가가 있나?』

이틀 전쯤 핵폭탄급으로 터진 ‘실종의 섬’ 관련은 이미 포화 상태. 아니 더더욱 발전하고 있었다. 현재는 권기택 감독 강우진 등이 함유되어 팩트와 어뷰징 기사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여전한 잡소리와 개소리.

과거의 것은 없어졌지만 팩트가 가미된 찌라시들이 돌고 돈다. 하지만 강우진으로서는 현재 상황이 전혀 나쁠 게 없었다.

『[스타포토]‘초대형 라이징’ 강우진 폭발하는 관심에 SNS 팔로워 55만↑/ 사진』

『강우진 팬카페 ‘강심장’ 만 명 코앞』

그야말로 대중들에게 단단히 각인되는 중이었으니까. 강우진의 인지도는 지금만 본다면 여타 탑배우들 부럽지 않은 정도. 허나 언뜻 쉬이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지만 이건 ‘신선함’과 ‘충격’으로 인한 상승세. 어떤 이슈가 그렇듯 미지근해지는 타이밍은 온다.

그것이 얼마나 이어질지가 핵심.

어찌 됐든 왁자지껄한 주말이 어찌저찌 지났다.

다시 찾아온 월요일. 느지막한 아침. 장소는 삼성역 근방 화보 촬영장. 온통 흰색 배경에 수많은 조명이 밝은 빛을 쏴대고 있다. 그곳엔 위아래 회색 정장을 입은 강우진이 서 있다.

풀메이크업에 깔끔하게 올린 머리.

그리고.

-찰칵! 띠디디디!

강우진을 찍어대는 포토그래퍼.

“나이스! 좋아요 좋아! 우진씨 이번엔 턱을 좀 더 들어볼게요!”

“아- 예.”

“어어 나이스나이스! 다 깔본다는 느낌. 좋아요!”

-찰칵! 띠디디디!

지금 우진은 유명한 남성 잡지의 화보를 촬영 중이었다. 물론 잡지의 표지를 장식할 예정이었다. 최근 우진에겐 이런 스케줄이 퍽 많았고.

“오케이! 이번엔 웃어봅시다! 스마일!”

속 알맹이는 소시민인 우진은 나름 화보 촬영에 자세가 나왔다. 적응을 한 탓. 물론 어색하긴 했다. 그래도 연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이번 거는 잡지 표지랬나? 크- 나 진짜 출세했네.’

약간 기대하던 우진이 순간 기분이 다운됐다.

‘아- 근데 그 잡지를 날 아는 사람이 보는 건 좀 쪽팔린데.’

이때.

“됐고! 우진씨! 의상 갈아입고 5분 뒤 다시 갑시다!”

포토그래퍼가 의상 교체를 요청했다. 덕분에 우진의 스타일리스트인 한예정이 바빠졌고 강우진은 입은 정장 재킷을 벗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동시에.

“우진아.”

방금까지 어딘가와 통화하던 최성건이 우진에게 물통을 내밀며 물었고.

“‘실종의 섬’ 다 읽었다고 했지?”

시니컬하게 물통 두껑을 딴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1차 완독은 했고 2차로 읽고 있습니다.”

곧 꽁지머리 최성건이 우진의 귓가에 대고 물었다.

“쿄타로 감독 언제 볼래.”

갑자기? 아- 일본에 있으니 미리 약속을 잡아야 되나? 강우진이 상관없다는 듯 답했다.

“스케줄만 맞는다면 언제든 괜찮습니다.”

“일본 진출 결정은 했고?”

“예.”

“그럼 오늘 스케줄 정리 다 하고 밤쯤 어때.”

“···오늘 밤이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빡빡하지 않나? 정도의 표정을 우진이 짓자 최성건이 웃었다.

“사실은 너 ‘마약상’ 촬영 때문에 말을 못 했는데. 쿄타로 감독 지금 한국에 있다.”

“아.”

“그리고 ‘마약상’ 촬영장에도 왔었어. 손님이랑 같이. 그- 네가 말한 아카리 작가랑.”

놀라는 우진이었으나 표정 변화를 가까스로 참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와락 외쳤다.

‘날 봤다고?? 그 둘이?!’

하지만 강우진은 차분해야 했다. 그래서 흥분을 죽어라 참았다.

“그렇습니까?”

“어. 미안 그쪽 요청도 있었고 너 연기하는 거 방해될까 해서 말 안 했다.”

“괜찮습니다.”

덤덤한 우진을 보며 최성건이 약간 허탈한 미소를 보였고.

“나름 서프라이즌데 반응 참 심심하구만. 뭐 너답다. 그래서 오늘 밤 고?”

강우진이 짧게 답했다.

“예 고.”

이어 다시금 강우진을 호출하는 포토그래퍼. 덕분에 일어난 우진에게 최성건이 다시 말했다.

“아아 그리고 아마 아카리 작가도 같이 올 거야.”

한편 한량의 촬영 세트장.

끝이 코 앞이라 그런지 턱수염 송만우 PD를 포함해 수십 스탭들이 분주하다.

“10분 뒤 스탠바이요!!”

“PD님! 여기 소품들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어어- 간다.”

정신없는 세트장 한쪽.

“흠-”

배우들 대기석에 다리 꼰 탑여배우 홍혜연이 핸드폰을 내려보고 있다. 거친 촬영이었는지 하얀 피부에 상처 분장이 짙은 그녀.

그런 홍혜연이 보는 건 ‘실종의 섬’ 관련 기사였고.

-스윽.

핸드폰을 보던 그녀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베이비펌 류정민이 대본을 보고 있다.

“오빠 ‘실종의 섬’ 확정됐다며?”

뜬금없는 물음에 대본 보던 류정민이 미간을 좁혔다.

“갑자기 뭐냐.”

“아니- ‘실종의 섬’ 기사에 계속 우진씨만 나와서. 오빠는 언제 나오나 해서.”

“글쎄다. 저번에 들었을 땐 조금씩 최대한 천천히 풀 거라고 했어 정확히는 모른다만 우진씨로 뚜껑 열고 느릿느릿 터트리겠지. 뭐 어떤 느낌인지는 알거잖어 너도.”

“우진씨랑은 연락해?”

“아니 아직. 어차피 ‘실종의 섬’ 주연진 캐스팅 자체가 대외비였으니까. 우진씨는 내가 합류한 거 아직 모를걸? 말했냐?”

“나? 아니?”

“왜. 너 우진씨랑 안 친하냐? 같은 소속사잖어.”

뭔가 의아함이 번진 류정민이 뜬금 픽 웃었다.

“니 설마 아직도 ‘운동회’로 우진씨한테 삐졌냐? 와- 얼마나 속이 좁은 거여. 그 화보 사진 솔직히 헷갈릴만했잖아?”

“뭐래. 아니거든?”

이쯤 류정민이 송만우 PD에게 불렸다. 따라서 홍혜연은 다시금 핸드폰을 내려봤고 이번엔 다른 것을 검색했다. 화린과 강우진 관련이었다. 즉 ‘남사친’. 기사가 꽤 쏟아진다.

‘착착 진행되고 있나 보네.’

사실 홍혜연은 ‘운동회’ 스케줄 이후로 강우진을 보지도 않았고 연락도 그닥 많이 하지 않았다. 축하한다는 톡이 전부. 반면 화린에게는 ‘남사친’이 확정된 직후에 연락했었다.

그녀로서는 미친 듯 궁금했으니까.

‘그때 나랑 와인 마실 땐 심드렁하더니 그렇게 급작스럽게 단막을 해?’

하지만 정작 화린의 대답은 단출했었다. ‘딱히 강우진씨는 관련이 없고 작품이 좋았어’가 전부. 언뜻 보기엔 타당하긴 했지만.

‘뭔가···이상하단 말이지.’

홍혜연은 꺼림칙한 것을 느꼈다. 뭐 강우진과 화린의 접점은 전혀 없긴 했다. 이건 여자의 감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무턱대고 의심하거나 화린에게 묻는 것도 그림이 이상했다.

이쯤.

“아 나 뭐해?”

생각이 깊어진 자신이 요상하게 느껴진 홍혜연이 머리를 흔들었다.

‘됐어됐어 신경 쓰지 말자. 응 그냥 강우진이 선택한 작품이 또 잘될까 싶어서 궁금한 거야. 그래 그게 다야.’

미친 감을 소유한 강우진이 ‘남사친’을 선택했고 거기에 돌연 화린이 합류했다. 어째 ‘흥신소’와 느낌이 비슷했다. 홍혜연은 애써 그 비슷한 느낌이 신경 쓰인다며 자신을 다독이며 속였다.

그러나.

“···”

옅지만 이름 모를 감정이 계속해서 파생되는 홍혜연이었다. 자꾸 거슬리고 떠오르며 생각한다. 가슴 한켠이 불편한 것도 있다. 그럼에도 홍혜연은 계속해서 부정했다.

이내 잠시간 말이 없던 홍혜연이.

-스윽.

왼쪽에 모인 자신의 팀 중 매니저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곧 스타일리스트들과 얘기하던 빼빼 마른 팀장이 홍혜연에게 다가왔고.

“어어? 왜? 뭐 마실래?”

“아니. 그···있잖아. 우진씨 윤 PD님 거 새 예능 확정이랬나?”

윤병선 PD의 새 예능에 강우진이 합류한 건 아직 세상엔 비밀이었으나 bw 엔터 내부론 얘기가 꽤 돌고 있었다. 당연히 쉬쉬하긴 했지만. 그렇기에 홍혜연도 전해 들은 것.

뭐가 됐든 팀장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응 그렇다더라? 홍보 자료 모으고 있다고 들었으.”

“야외 버라(버라이어티)래?”

“글쎄. 대놓고 야외 버라는 아닌 것 같던데.”

“···”

급작스레 생각에 빠진 그녀. 이게 이상해 보였는지 팀장이 되물었고.

“왜?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던 홍혜연이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그거 나도 해볼까?”< 가속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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