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협 (2) >
누굴 좋아해? 바로 당황이 진해지는 화린이 어버버댔다.
“무무무슨 소리야?? 말이 되는 소리를 좀. 내가 그분. 아니 우진씨를 왜 좋아해. 아직 친해지지도 않았어!”
“그래?”
“어! 말했잖아 단막은 진짜 작품이 좋았고. 이 예능은 우진씨보다 내가 빨리 제안받았다니까?”
“···”
“아 정말 진짜 트루. 이 언니 진짜.”
둘의 속닥거림을 자른 것은 화린 쪽의 뚱뚱한 실장이었다.
“저기- 방해해서 미안합니다만. 화린아 슬슬 가야 되는데?”
“아! 응응! 언니 일단 나갈게.”
“그래. 톡해.”
“어어 언니도 결과 알려줘!”
손을 붕붕 흔든 화린이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홍혜연은 작게 웃으며 그녀를 배웅했다. 이어 팀들과 차분히 복도를 걷는 홍혜연. 허나 그녀는 속으로 이름 모를 감정이 치솟았다. 이게 불안함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화린이 있는건- 진짜 생각 못 했는데.’
홍혜연은 뭔가 연한 초조함을 느꼈다. 그렇게 잠시 뒤 홍혜연은 미팅룸에서 안경 쓴 윤병선 PD를 만났다. 윤병선 PD나 작가들은 생각지도 못한 탑여배우의 등장에 입이 귀에 걸린 상태.
“하하 혜연씨. 연락받고 놀랐습니다 진짜.”
“제가 너무 갑자기 미팅을 잡았죠?”
“괜찮아요 더 느닷없이 잡으셔도 버선발로 달려나가야죠. 우리 혜연씬데.”
미소짓는 홍혜연.
“과해요 PD님. 그대로시네.”
“예능판은 언제나 좀 과해야죠. 하하. 그나저나 진짜 제 예능에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네. 맞아요. 근데 오다가 화린이를 만났거든요? 확정이라면서요?”
“아- 보셨어요? 맞아요. 화린씨는 확정.”
말을 마친 그가 작가에게 투명 파일을 넘겨받았다.
“일단 지금 확정된 분들 보여드릴게요. 비밀만 좀 지켜주시면 됩니다. 화린씨 포함 강우진 안종학 하강수님. 한 분은 조율 중이고. 여기 홍혜연님도.”
“화린이가 제일 먼저 얘기가 됐다던데.”
“맞습니다. 제안은 가장 빨리 보냈죠. 우진씨랑 같은 소속사라 얘기는 들으셨죠? 이슈 흐름 때문에 우진씨만 빨리 오픈했어요.”
악동스레 웃는 윤병선 PD.
“그러고 보니 혜연씨가 화린씨랑 친하죠? 우진씨랑은 같은 소속사고. 혜연씨가 합류해주시면 그림 하나는 좋겠는데요? 케미도 그렇고. 다른 분들이랑도 친분은 있으시죠?”
“네. 적당히. 근데 저랑 우진씨 같은 소속사인 건 별문제 없나요?”
투명 파일을 덮은 윤병선 PD의 웃음이 짙어졌다.
“전- 혀 없습니다. 재미만 있으면 그런 것까지 시청자들이 일일이 신경 안 써요. 언론이나 물고 빨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홍혜연. 그녀의 결심은 화린을 만난 직후 퍽 딴딴해졌다. 곧 홍혜연이 윤병선 PD에게 물었고.
“포맷이 어떤 식인가요?”
“일단 혜연씨 요리는 좀 좋아하세요?”
“요리? 그냥 라면은 잘 끓여요.”
“충분합니다.”
윤병선 PD가 확정된 기획안을 펼쳤다.
“그럼 혜연씨 올해 하반기 스케줄이 어떻게 되세요?”
뒤로 한 시간쯤.
청담동 쪽의 샵에 도착한 화린에게 톡이 도착했다. 상대는 홍혜연이었고.
-내 사랑:화린! 나도 예능 하기로 했어.
내용을 확인한 화린이 바로 답장을 보냈다.
-진짜?! 완전완전 잘됐다! ㅠㅠㅠ빨리 찍고 싶어 언니랑 막 놀면서 해야지!
진심이었다. 화린은 진짜 홍혜연과의 예능 촬영이 기대됐다. 다만 화린은 약간 복잡한 심경이기도 했다.
‘하- 그냥 우진님 덕질한다고 처음부터 말할걸’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게 후회됐으니까.
같은 날 늦은 밤.
시간은 11시를 넘겼다. 다들 퇴근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할 시간. 그러나 서울의 도로는 번쩍번쩍한다. 여전히 차가 많이 다닌다.
그중 매끈한 검은색 외제차가 눈에 띄었다.
대충 봐도 몇억은 가뿐히 넘길듯한 차였다. 그런 외제차는 도로를 달리고 달려 신사역 부근으로 움직였다. 역 근방에는 차가 많았지만 골목으로 들어서니 인적과 차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이후 몇십 분 뒤.
뭔가 갔던 길을 왔다갔다 반복하던 외제차가 한 건물 앞에서 잠시 정차했다. 그리곤 다시 출발. 이것을 반복한다. 한눈에 봐도 이상함이 감지될 정도. 그러거나 말거나 외제차는 건물 앞에 섰다 출반했다를 반복했다.
이윽고.
-스륵.
만족했는지 어쨌는지 외제차가 건물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건물을 보니 3층에 성형외과가 있었다. 어쨌든 주차장으로 들어선 외제차는 소리 없이 주차를 마쳤고.
-텅!
차 운전석에서 단발의 여자가 내렸다. 특이한 건 얼굴을 죄다 가렸다는 것. 얼굴만 한 마스크를 썼고 검은색 모자도 푹 눌러썼다. 심지어 안경까지. 그런 그녀가 주차장 주변을 잠시간 둘러보다가.
“···”
말없이 발길을 옮겼다. 입구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여자. 그리고.
-톡.
그녀가 누른 건 성형외과가 있는 층이었다. 이건 좀 이상했다. 시간은 이미 밤 11시 30분을 넘겼다. 성형외과는 진작에 닫을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여자는 퍽 익숙한 듯 성형외과로 향했다. 문이 잠기고 불이 꺼진 성형외과의 유리문을 여는 그녀.
재미는 건 성형외과의 유리문이 열려 있다는 것.
따라서 얼굴 가린 여자는 성형외과로 유유히 입장했다. 뒤로 그녀가 성형외과를 나와 엘리베이터를 탄 건 30분이 지나서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손에 작은 종이가방이 들렸다는 것.
종이가방을 든 여자는 지하주차장의 외제차에 탄 뒤.
-부웅!
스무스하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다시금 고요해진 주차장. 그것도 잠시 조용하던 주차장에 차 시동 소리가 퍼졌고 대기하고 있던 느낌의 작은 소형차 한 대가 외제차를 따라 주차장을 벗어난다.
이어 1시간쯤 지났을까?
성형외과에 있던 외제차는 청담동의 고급 아파트로 들어갔고 적당히 차를 주차한 뒤 외제차서 내리는 여자. 그런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보이는 현관 앞에서 도어락을 풀었다. 동시에.
“후-”
신발장에서 짧은 한숨을 뱉으며 얼굴을 가렸던 것들을 벗었다. 마스크 모자 등. 곧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눈길을 사로잡을 미모 단발 단아한 느낌.
그녀는 ‘실종의 섬’에 캐스팅된 어제쯤 강우진과 티격대던.
“벌써 시간이 이렇게. 쯧.”
탑여배우 서채은이었다.
한편 서채은의 아파트 앞쪽.
외제차를 쫓던 작은 소형차는 아파트 입구 쪽 갓길에 정차한 상태였다. 아파트의 보안이 워낙 투철하기에 진입하지 못해서였다.
뭐가 됐든 소형차 안에는.
“블박부터 확인해 봐.”
“어어.”
총 3명의 인원이 타 있었다. 운전석 조수석에 남자 둘 뒷좌석에 여자 하나. 이상한 건 이들의 모습이었다. 뭐랄까 경찰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일반적이진 않았다. 심지어. 뒷좌석의 여자는 대포만 한 카메라를 들고 있기까지 했다.
그녀에게 운전석의 남자가 물었다. 피부톤이 검다.
“전부 찍었어? 확인해 봐.”
“찍었어요. 성형외과 도착부터 나오고 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서채은도 제대로 찍었지?”
“네. 성형외과에서 내리는 부분만. 근데 얼굴을 죄다 가려서 식별은 안 돼요.”
운전석 남자가 비릿하게 웃었다.
“임마 그게 포인터여. 얼굴 꽁꽁 싸매고 그런 그림이 있어야 뉘앙스가 확 살지. 안 가리면 재미가 없어.”
읊조린 남자가 조수석 남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블박에 서채은 차 확실히 찍혔지?”
“옙.”
“사진도 찍었고?”
“네.”
“됐으. 얼굴 가렸어도 차가 서채은 거니까 전혀 상관없어. 일단 서채은 아파트 전체 컷 하나 찍어둬 혹시 모르니까.”
고개 끄덕인 여자가 아파트에 대고 셔터를 눌러댄다. 대체 이들은 누군가? 누구기에 서채은의 행적을 기록하나?
그 답을 운전석 남자가 읊조렸다.
“일단 편집장님한텐 말하지 마. 그 멧돼지 새끼 이거 알면 바로 기사 갈기라고 발광한다. 당장은 우리끼리만 아는 거야. 절대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마라?”
이들은 연예부 기자들이었다. 무려 대형 언론사 ‘파워패치’ 소속이었고 연신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던 조수석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확실한 겁니까?”
바로 그의 머리를 톡 때리는 운전석 남자.
“이 새끼가. 너 내 정보력 무시하냐? 생각해봐 임마. 자정이 다된 이 시간에 성형외과를 왜 가? 것도 혼자 몰래. 이거 백퍼 프로포폴 맞다.”
“성형외과선 발뺌할 텐데.”
“괜찮아. 내 채널로 확인해보니까 거기에 서채은만 가는 게 아니야. 몇몇 더 있어. 죄다 상습적이고 확실한 증인도 있으니까 걱정마. 거기에 곁들일 조미료만 좀 더 모으면 돼.”
즉 정황을 수집하겠단 것. 이어 차를 출발시킨 운전석 남자가 설명을 이었다.
“덩치 큰 건 서채은이고 나머지 곁다리들 얹어서 한방에 털어야 돼.”
다음 질문은 뒷좌석 여자가 뱉었고.
“언제쯤 터트릴 생각이신데요?”
“곁다리들 거까지 모은다 치면 다음 달은 되겠지. 폭탄 터지고 난리 나면 검사나 뭐 그런 건 알아서 진행될 거다. 그럼 서채은 곁다리들 바로 나락.”
입이 귀에 걸린 운전석 남자가 크크 웃었다.
“걔네가 하는 광고나 작품도 싹 나가리고.”
그 시각 삼성역 근방.
위치는 강우진의 오피스텔. 자정이 넘어서야 그의 오피스텔 현관이 열렸고 얼굴에 피곤이 붙은 우진이 들어섰다. 그는 신발을 벗자마자 옷을 벗지도 않고 바로 침대에 다이빙했다.
“···뒤졌다. 내일 낮까지 진짜 잠만 잔다.”
엎어진 우진이 격하게 다짐한다. 실제 강우진의 내일 출근 시간은 점심쯤이었으니까.
곧 그가 오늘의 스케줄을 상기했다. 뭐가 많았는데 기억이 잘 안 났다. 새로 들어온 광고 관련 미팅도 있었고 잘나가는 너튜브 채널의 인터뷰도 있었다. 그리고 무슨 행사에도 갔었으며 밤엔 SNS용 촬영까지.
이런 빡빡한 스케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공간 없었으면 진짜 진작에 사망했다.”
그나마 우진은 아공간의 휴식 덕에 어찌저찌 살아남은 거였다. 과연 연예계 생활은 알맹이가 소시민인 강우진에겐 레벨이 퍽 높았다. 하지만 나름 조금씩 성장하는 그였고.
“아.”
깜빡 잠들뻔한 우진이 어렵사리 몸을 일으켰다. 이젠 과거처럼 대충 자면 안 됐다. 씻는 것은 기본중에 기본이고.
“뭐래드라 일단 팩을 시작으로-”
피부관리도 신경 써야 했다. 덕분에 우진이 긴 한숨을 쉬며 거실로 나왔다. 그러다 주방 식탁에 대충 던져둔 대본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거.’
이월선 작가의 ‘얼어죽는 연애’ 2부 대본이었다. 제작진에게 추가로 받은 것.
‘일단 리스트업은 해두지 뭐.’
속으로 읊조린 강우진은 대본을 집었다. 정확하게는 대본 옆에 뜬 검은 사각형을 찔렀다. 금세 강우진은.
“보자-”
온통 컴컴한 아공간에 진입했다. 곧장 나열된 흰 사각형에 도착한 강우진. ‘얼어죽는 연애’ 2부는 문제없이 잘 등록됐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우진이.
“됐네 슬 나가자.”
현실로 나가는 ‘퇴장’ 주문을 외치려던 때였다.
“퇴···응?”
멈칫한 강우진이 뜬금 미간을 찌푸렸다.
“으으응?”
그러더니 흰 사각형 중 하나를 유심히 보는 강우진. 이상함을 감지했으니까.
“···이게 왜 이렇게 됐냐?”
강우진이 보는 흰 사각형은 ‘실종의 섬’이었다. 분명 전과는 달라진 점이 있었다.
-[3/시나리오(제목: 실종의 섬) D급]
‘실종의 섬’ 등급이 D로 떨어졌다. 원래는 A+였는데? 잠시 쉬러 들어온 우진이 봤을 땐 점심까지만 해도 A+급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D급. 당황한 우진이 황당하게 읊조린다.
“미친 뭐지? 왜 갑자기 D까지 훅 떨어졌냐?”
100% 뭔가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게 뭔지 알 길이 없었다.
“아- 씨 뭐냐고.”
강우진은 머리를 쓸면서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당장 먼저 떠오른 건 우현구 감독이었다. 그는 범죄자로 낙인이 찍혔고 작품은 F급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권기택 감독의 문제?
‘아니 그건 가능성이 좀 작지 않나?’
권기택 감독에게 문제가 있다면 ‘실종의 섬’은 진작에 낮은 등급이 나와야 했다. 그런데 분명 오늘 아침까진 괜찮았다. 지인인 우현구 감독의 말로를 대놓고 봤었고.
더군다나.
‘평소 그 감독님 성격을 보면 뭔가 스캔들을 일으킬 위인이 아니야.’
그렇다면 스탭들. 스탭들? 그 사람들이 무슨 문제를 일으킨다고 작품 등급이 이렇게나 훅 떨어질까? 떨어져도 한 단계나 떨어지는 정도겠지. 즉 스탭들도 제외.
“···역시 배우들인가?”
영화 손발이 투자금이라면 배우들은 심장이었다. ‘실종의 섬’엔 강우진 제외 탑배우들이 즐비했다. 우진은 먼저 그나마 친한 류정민을 상기했다.
“그 존잘님은- 아니지 싶은데.”
우진의 다음으로 합류한 류정민이었다. 그의 문제라면 그때 바로 등급이 떨어졌거나 현재도 촬영 중인 ‘프로파일러 한량’의 등급도 떨어지는 게 맞다. 허나 한량의 등급은 여전히 S급이었다.
이러면 셋으로 좁혀진다.
‘최근에 합류한 그 탑배우들.’
전우창 김이원 그리고 서채은. 이어 강우진이 확정적으로 읊조렸고.
“셋 중 하나야. 무조건.”
왜인지 우진에게 서채은의 얼굴이 계속 상기됐다. 회식에서의 기분 나쁜 첫인상 덕일지도 모른다만.
“느낌에 딱- 서채은인데.”
일단 때려 맞춘 게 얼추 정답에 근접했다.< 위협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