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서부 전선의 긴장감은 이제 더 다른 표현을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올랐고 그런 날 선 분위기가 전선을 넘어 서부 전체로 슬금슬금 퍼져나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감이나 긴장에 떨었다·
하나 그런 중에도 소소한 기쁨 정도는 존재하는 것이 사람 사는 곳의 일이다·
오늘 이 회의실이 그랬다·
“아이가 생겼네· 에드워드는 이미 아는 소식이겠지만·”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찾아온 휴식 시간 엘릭이 가져온 소식에 자리가 난장판이 됐다·
“···애가 애를 키운다고?”
엘버스가 의아함을 띄워 냈다·
“···상속자· 상속자라·”
에드워드는 벌벌 떨었다·
“부인의 아이 아이····”
이그렛은 고장 났다·
그나마 정상적인 반응은 의외로 하임베르크에게서 나왔다·
“아! 탄생의 축복! 참으로 축하드립니다· 혹 전쟁 이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위빈으로 찾아가 아이를 축복할 수 있게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저를 포함한 추기경 둘을 데려가지요!”
엘릭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생활이야 어찌 되었든 그의 축복이 대외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그냥 그렇다는 얘기일세· 내게 전쟁을 이겨야 하는 이유가 늘었다·”
다짐하듯 말을 내뱉아 분위기를 환기하려 했으나 쉽진 않았다·
자신이 아버지가 되는 것이 남들에겐 그리 이상한 일로 보인 것일까·
문득 과거를 반성하게까지 된다·
제르디아가 입을 연 것은 그런 순간이었다·
“과연 변화의 이유가 그것이었나?”
그는 호의가 가득 담긴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
자신의 성장이 그리도 반가운 것일까·
괜히 머쓱하여 고개를 끄덕이니 답이 돌아왔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네· 비단 싸움뿐만 아니라 여정 인생이 그렇지· 자네는 우리 세대엔 얻지 못했던 답을 얻은 듯해·”
제르디아의 목소리는 크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가 말을 흘리자 점점 분위기가 소요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이 흘러가듯 제르디아는 어수선하던 분위기를 한 번에 휘어잡았다·
“자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회의를 시작하지· 전략은 다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게 회의가 시작됐다·
최종전까지 딱 사흘이 남은 날의 일이었다·
*
시작은 전날 내린 밤비가 진득한 습기를 만드는 어느 여름 새벽이었다·
찰팍 발소리가 메아리치듯 고요하게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제국 황도를 사방에서 둘러싸 고립시키던 전선이 움직였다·
병력의 이동은 조용히 길어지는 그림자의 형상과 닮아있었다·
총 21년 긴 시간 이어져 온 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마지막 대전·
그 시작은 그리도 고요했다·
침묵을 깬 것은 제국 측이었다·
키이이이잉―!
병력의 이동이 시작되는 순간 황성 꼭대기의 마법진이 소음을 발했다·
그것은 천년 제국 마히르의 수도를 몇 번이고 위기에서 구했던 고대 마법 [천혜의 요새]가 시동되며 이는 굉음이었다·
“전군!!!”
제국의 3황자 크레돈 마히르는 그 순간 외쳤다·
“진격하라―!”
오래전부터 이 순간만을 위해 살아온 그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진군 명령 이어지는 것은 공기를 찢어발기는 함성과 전열에 맞춰 황도로 돌진하는 병력들이었다·
“와아아아아!!!”
콰과광!
요새의 마법이 병력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하나하나가 대규모 붕괴마법과 혼란 마법 그리고 정신 간섭 마법이었다·
“마법 병단!”
크레돈의 지휘 아래 마법 병단이 마법을 발했다·
그 중심에는 제르디아와 이그렛이 있었다·
“내가 공격?”
“그러려무나·”
“그럼 맡긴다·”
말하곤 이그렛이 스태프를 쥐었다·
뒤에선 제르디아가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정신 간섭 마법을 디스펠했다·
전장 전체를 뒤덮는 대규모 디스펠 마법 하나 그의 얼굴 위론 옅은 피로만 감돌 뿐이다·
“뻥 뚫려 있어서 좋네·”
이그렛은 씨익 웃으며 마법진을 엮었다·
그녀를 ‘염화’라 일컫게 한 불꽃의 씨앗이 손아귀를 떠났다·
하늘 위로 그렇게 전쟁터의 천장으로·
씨앗이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피어라·”
나지막이 울린 목소리에 흩어진 숨결이 씨앗에 닿아 싹을 틔웠다·
화르르륵!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거대한 불꽃으로 이뤄진 식물이 전쟁터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져 이윽고 씨앗을 퍼트렸다·
발화 증식 그리고 폭격·
생장해 흩뿌려진 씨앗이 또 다른 식물로 화해 전장을 휩쓸었다·
콰과과광!
그것은 1인이 시전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강한 마법이라 일컬어지는 발렌티아의 성명절기였다·
적의 마법 그리고 요새의 마법은 이그렛이 발현한 마법에 무참히 찢어발겨지기 시작했다·
하나 그것도 잠시 요새의 방어막은 이윽고 수복하며 상처를 지워나갔다·
“쓰읍 역시 안 되나·”
이그렛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과연이라고 해야 할까·
천 년간 황도 위를 살아온 이들의 마나를 조금씩 흡수하며 유지되어온 만큼 요새의 방어력은 단기간에 깎여 나가지 않았다·
이런 소모전을 이어가 봐야 자신의 마나가 요새보다 먼저 바닥나버릴 것이었다·
“증원은 없대?”
“곧이네· 기다리게·”
“그 말라깽이 새끼는 뭐하고 있는 거야?!”
이그렛이 분통을 터뜨렸다·
오늘을 위해 준비를 해왔다던 에드워드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었기에·
제르디아는 싱긋 웃음을 흘렸다·
무언가를 확실히 아는 듯한 태도에 이그렛의 기분이 괜히 침잠해지는 순간
쿠구구궁!
진동이 땅을 울렸다·
이그렛의 고개가 돌아갔다·
진동의 원흉은 언젠가 설계도로만 봤던 거대한 쇳덩어리·
“진짜 저게 대체 뭐지?”
전차였다·
이그렛은 인상을 찌푸렸다·
*
굉음이 전신을 울리는 순간 에드워드는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 뭐? 문명 수준? 여긴 그냥 원시 수준이지· 전기 보급도 제대로 안 된 세상에서 고작 열차 하나 나왔다고 호들갑 떠는 게 내 입장에선 얼마나 우습겠냐?
그것은 어릴 적 만났던 한 신비로운 여인과의 추억이었다·
에드워드는 아직 그녀가 누군지 모른다·
정체도 소속도 그리고 고향도·
다만 그녀가 마법사였고 또한 자신의 기억을 남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이란 것만을 알았다·
실제로 그를 경험했기에·
– 에휴 기분이다· 잠시만 보여줄게·
그날 에드워드는 여인에 의해 어떤 풍경을 봤다·
정말 이 대륙 전체를 원시 문명 수준으로 치부할 정도로 발전된 세계·
그리고 그 세계의 전쟁·
그것은 에드워드가 아는 모든 상식을 깨부수는 형태의 세계였다·
거창한 미사여구를 떼어내 다만 그 세계의 것을 이곳에 구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어렴풋이 에드워드에게 남아 오늘로 온 것이다·
“비서야·”
전차의 안에서 에드워드는 말했다·
“제대로 보여주자·”
에드워드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비서가 전차를 조작했다·
그 순간 전차의 포신에 마나가 집약되었다·
‘아직 완전한 기계화는 힘들지·’
아니 기억 속 풍경처럼 완전한 기계화를 추구할 필요도 없었다·
모자란 기술력을 커버해줄 마력이 이 세계에는 있었으니까·
실제로 기억을 전해준 그녀도 기술과 마력의 결합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임을 말했으니까·
키이이이잉―!
단 일곱 대의 전차·
그리고 그 포신으로 몰려드는 거대한 마나의 응집체·
이윽고 그것이 불을 뿜으니·
“주주님의 사랑! 발사아앗!”
에드워드는 크게 환호하며 포격을 시작했다·
꽈아아아앙―!
요새에 금이 갔다·
*
“이제 자네가 나설 차례네·”
엘버스의 말에 엘릭은 눈을 떴다·
명상을 끝내고 일어서는 순간 엘릭의 주변을 유영하던 마나가 몸속으로 숨어들었다·
다만 기세가 죽은 것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마나를 몸 안에 온전히 가두는데 성공한 것이다·
“백병전이 시작됐네·”
와아아아―!
하며 요새에 금이 간 순간부터 제국측의 병력이 악을 쓰며 달려 나왔다·
연합 측 진영에선 하임베르크가 신성을 발했다·
난전이 펼쳐졌다·
총 화살 마법이 하늘을 메우고 피와 살 비명이 땅을 메우는 난장판의 한가운데·
엘릭은 고요히 황성을 바라봤다·
그리하면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기다리고 있구나·’
엘하다크 마히르가 저곳의 중심에 가만 앉아 있었다·
그는 이 모든 전쟁이 무용하다는 듯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제국이 스러지는 것을 관망하고만 있었다·
그 태도가 참으로 간악하고 이기적인지라·
“다녀오지·”
엘릭은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서걱―
그저 눈앞의 모든 것을 베어 넘기며·
“아아아악!”
진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적들이 얼마나 있고 아군이 얼마나 있는지 마법이 얼마나 쏟아지고 공격이 얼마나 집중되는지·
그 모든 것을 철저히 외면한 채 엘릭은 홀로 황성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엘릭이 검을 휘두르며 나아가는 궤적엔 핏빛 길만이 그 흔적으로 남을 뿐이었다·
그렇게 황도의 문 앞 요새의 입구·
엘릭은 검에 마나를 욱여넣은 후 휘둘렀다·
쩌어어엉―!
소리와 함께 일순 요새에 틈이 생겼다·
그 안으로 몸을 집어넣어 홀로 황도에 입성·
그 순간
피잉―
비수 하나가 뺨을 스치고 날아들었다·
엘릭은 고개를 들었다·
“천익인가·”
소년의 외형이라 말해야할 여린 몸 검은 머리와 검은 눈 그 외의 모든 것을 가리는 잠행복·
서부 모든 암살자의 주인·
천익 린다로스 디샤가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