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6 #후일담1 – 새로운 가족 (2)
출산의 고통에 관해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미 그 고통에 관해 알고 또한 공감하고 있으니까·
다만 한 가지를 남겨 기쁜 소식으로 그 끝을 고하니·
“애애애애앵―!”
“고생하셨습니다! 아가씨께서 건강히 나왔어요!”
티리아는 무사히 아이를 낳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티리아의 숨이 턱 풀렸다·
엘릭의 머리채 또한 자유로워졌다·
“부인! 부인!”
엘릭은 속이 철렁이는 티리아의 손을 꼭 잡으며 그녀를 불렀다·
자신을 낳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난 까닭이었다·
혹여 그녀도 아이를 낳고 힘에 부쳐 숨을 거두는 것은 아닐까·
일순 뎦쳐 온 공포심은 이윽고 삐져나온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잦아 들었다·
“···아이 아이는·”
티리아는 숨을 할딱거리면서도 그리 중얼거렸다·
산파가 아이를 티리아의 품에 안겼다·
쭈글쭈글해서 일견 징그럽게까지 보이는 꼴이다·
그럼에도
“아아····”
“너무 어여쁘지 않소? 고생했소·”
두 사람은 그 모습조차 사랑스럽게 여겨져 아이를 사이에 두고 몸을 기댔다·
엘릭이 티리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티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애애애앵!”
아이가 울었다·
그러다 티리아의 온기에 점점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에 티리아가 중얼거리니 그것은 이미 정해두었던 아이의 이름이었다·
“달린·”
노란 꽃의 이름을 따 달린 포트먼·
이리도 먼 길을 되돌아 겨우 품에 안게 된 결실·
“반갑구나· 달린·”
어머니는 아이와 첫 인사를 나누었다·
*
그로부터 약 이 주 정도가 더 지났다·
포트먼가는 조용히 축제 분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상주하고 있던 의사는 티리아와 달린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폈다·
사용인들은 작은 요소 하나까지도 산모와 아이에게 맞춰주며 그들의 빠른 안정과 회복을 도왔다·
그렇게 티리아는 침상을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는 뽀얗게 살이 올라 어여쁜 모습으로 바뀌었다·
갈색 머리와 옅은 녹안·
거기에 벌써부터 또렷한 이목구비는 아이가 얼마나 특출난 외모를 가졌는지 벌써부터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자아아~ 아가씨이잉~·”
알디오가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달린을 보며 헤벌쭉 웃었다·
그의 손에는 딸랑이가 쥐어져 있었고 맞은 편에서는 하녀장이 비슷한 얼굴을 한 채로 인형을 흔들었다·
요즘의 그들은 폭군이었다·
갓 태어난 포트먼의 아가씨는 저택의 모든 이들 저택을 넘어서 위빈의 모든 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현시점 최고의 인기인일진대 두 사람은 연륜과 직위를 방패 삼아 다른 이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유모를 내보내고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사용인들의 불만이 쌓였으나 그러면서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저들이 이 가문의 주인 내외에게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알기 때문·
그리고 저들이 어찌할 수 없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었다·
“집사장님 하녀장님· 영주님 내외께서 오십니다·”
“아이쿠 아가씨! 엄마 아빠가 왔어요옹~!”
“자네는 이제 일을 때려 칠 생각인가?”
엘릭이 헛웃음을 흘리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알디오와 하녀장은 그제야 헛기침하며(헛기침조차 달린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였다) 근엄한 척을 했다·
“오셨습니까·”
“그래 이제 일들 보러 가시게·”
두 사람이 시무룩해졌으나 주인의 명령엔 겸허히 따라야 할 따름·
그렇게 방해꾼들이 사라지자 엘릭은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티리아가 타박했다·
“당신 손은 씻었습니까?”
“씻었소· 우리 딸이 병에 걸리면 안 되니까·”
“확실하지요?”
“내가 무슨 다섯 살배기 애인 줄 아오?”
투정부리듯 말하니 티리아가 웃었다·
그녀가 이윽고 달린을 안아 들었는데 어미가 온 것을 어찌 알았는지 달린은 꾸물꾸물 몸을 움직이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우웅····”
“그래 우리 이쁜 아가·”
티리아가 달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달린의 숨이 조금 더 편해졌다·
엘릭은 그 광경에 속이 충만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괜히 또 손을 뻗어 달린의 손가락을 간질였는데 달린이 그걸 꼭 쥐었다·
엘릭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녀석 벌써부터 손아귀 힘이 특출나구려· 역시 내 딸이오· 검을 가르치면 대성을····”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달린은 여아입니다· 교양을 가르쳐야지요·”
“하 하지만····”
엘릭은 아이에게 검을 가르쳐 대련 지도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티리아의 뱃속에 달린이 자리 잡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하루 크기를 부풀려온 꿈이었던 만큼 이런 거절이 달갑지 않았다·
“거 검을 배우면 건강해지는····”
“다치기나 하겠지요· 당신의 어린 시절처럼·”
움찔―
사고뭉치 엘릭 포트먼의 전과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반박할 말이 궁해진다·
“그 그거언····”
“달린은 제가 직접 가르칠 것입니다· 잘 보듬어주면 아이도 밝고 교양있는 아이로 자라겠지요·”
티리아가 흐뭇한 얼굴로 말함에 엘릭의 아랫입술이 댓발 튀어나왔다·
그걸 본 티리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속삭이듯 한마디를 더했다·
“···정 뭣하면 아들도 하나 낳아서 가르치시지요·”
화악! 엘릭의 얼굴이 붉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 야릇한 눈짓이 오갔다·
하나 아직은 시기상조·
“큼 크흠! 그 말을 꼭 기억할 것이오·”
“···예·”
그리 한참이나 좋은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영주님 마님·”
그새 알디오가 돌아왔다·
일을 하라고 했더니 농땡이라도 피우려는 것인가?
하긴 달린이 잠시도 보지 않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이쁜 아이이긴 했다·
자랑스러움과 못마땅함이 공존했고 그 기색을 어찌 안 것인지 알디오가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응?”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문 뒤쪽으로 웬 멀대같은 말라깽이 하나가 빼꼼 고개는 내밀었다·
“주주님···?”
그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에드워드 와이트였다·
*
참으로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엘릭은 금방 에드워드가 방문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먼저 따님의 출산을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어찌 이리 어여쁘신지· 커서 남자 여럿 울리····”
“선 넘지 마시게·”
“···예입!”
엘릭은 문득 다 자란 달린이 남자를 데려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벌써부터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라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그런 엘릭의 기색을 눈치챈 것인지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이내 헤헤 웃으며 손을 비볐다·
“그래도 저희 대주주님 아니십니까? EW의 대표나 되어서 직접 행차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요! 암! 그렇고 말고!”
그가 짝짝 박수를쳤다·
그러자 비서가 접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엘릭과 티리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의 뒤로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커다란 트레이를 줄줄 끌고왔기 때문이다·
“약소한 선물입죠!”
짠!
에드워드가 소리를 내는 순간 트레이 위로 얹어져 있던 천이 일제히 거둬졌다·
그 뒤로 드러나는 것은 하나하나가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
“육아용품입니다! 제도에서 가장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한 첨단 공학 장비들이지요!”
도저히 가만 봐서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온갖 물건들의 향연이었다·
그나마 알 만한 것은 이것들이 어지간해선 구할 수 없는 물건이란 것 정도·
엘릭과 티리아가 서로를 바라봤다·
멍하게 입을 벌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준다는 데 못 받을 이유는 뭔가·
슬슬 잠에서 깬 달린의 반응이 특히 그런 결정의 큰 지분을 차지했다·
달린은 눈을 반짝거리며 에드워드가 가져온 물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헤’하고 입이 벌어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가 여기 침이 흘렀구나·”
티리아가 손수건으로 달린의 침을 닦았다·
흐뭇한 광경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그 그리고····”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급격히 비굴해졌다·
엘릭은 문득 눈을 좁혔다·
그가 저런 반응을 보이면 대체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다지 듣고싶은 내용은 아닐 것 같군·”
확언하자 에드워드가 울먹거렸다·
쿵!
그의 무릎이 꿇렸다·
“죄 죄송합니닷!”
쿵!
이마까지 바닥에 찧었다·
연이어 큰 소리가 두 번 울리자 달린이 꺄르륵 웃었다·
에드워드가 그 웃음소리에 ‘역시 검귀의 딸인가!’ 하며 두려워한 것은 다른 일·
이윽고 에드워드의 입을 빌어 좋지 않은 소식이 튀어나왔다·
“그 그들이 옵니다···!”
눈을 질끈 감은 에드워드가 말한 ‘그들’·
엘릭은 왜인지 그게 누구인지 알 것만 같았다·
티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굳어버렸고 에드워드는 이어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막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 아시잖습니까·”
막을 수 없는 사람이겠지·
그래 말해 무엇할까·
이그렛 하임베르크겠지·
특히 하임베르크는 달린이 태어나면 축복을 해주기로 한 약속이 있으니 언젠가는 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엘릭은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의 출산을 축하하러 오는 것인데 같은 전장에 섰던 동료나 되어서 무작정 막을 수도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 언제 온다던가?”
말한 순간이었다·
쿠구구궁―!
하늘이 울렸다·
달린이 또 꺄르륵 웃었다·
엘릭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저 멀리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빨간 불꽃의 길이 있었고 그 아래로 휘광이 점차 커다래지며 다가오고 있었다·
엘릭이 황망한 얼굴로 에드워드를 바라봤다·
에드워드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
“···지금인뎁쇼?”
엘릭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