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7 #후일담1 – 새로운 가족 (3)
걸어다니는 재앙들의 강림이었다·
명실상부 서부 최고의 광인이라 불리는 남녀의 등장에 온 위빈이 혼란에 휩싸였다·
“저기 봐! 하늘에서 불이 치솟고 있어!”
“오오··· 오오··· 눈부신 빛이여···!”
이그렛이 만든 불의 길과 하임베르크가 뿜어낸 광휘에 위빈의 촌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을 예견하며 눈물을 흘렸다·
가족을 얼싸안았고 평소 사이가 안 좋던 이들과 화해했으며 짝사랑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
혼란은 설영기사단이 뒤늦게 나서서 수습했으나 그것은 다른 이야기·
“흐 흐아아악···!”
도착한 이그렛은 티리아의 품에 안겨 있던 달린을 보며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미친 듯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움켜쥐었고 그러다가 또르르 눈물을 흘렸다·
“이 이뻐효오··· 너무 이뻐엇···!”
남의 아이를 보며 이렇게까지 감동할 수 있는 이가 많지는 않으리라·
이그렛의 주접에 티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와중 하임베르크는 그랬다·
“아아 주의 은총이 이곳에도 내려왔습니다· 참으로 건강한 아이로군요·”
주의 은총까지 들먹이는 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했으나 그의 말은 비유가 아니었다·
“아이에게서 신성이 느껴집니다·”
“···으음?”
그제까지 심기불편한 얼굴로 서있던 엘릭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하임베르크는 지그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특별히 소명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타고난 마나에 신성이 묻어있다는 말이지요· 미약한 양이긴 하나 이 정도만으로 잔병치레는 없애줄 터입니다·”
좋은 일인가?
아니 좋은 일이지·
애초에 신성력이 있다 해서 사제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양도 미비하다 하지 않나·
신성력은 돌연변이 마나라는 게 이미 몇백 년도 전에 밝혀졌다·
새삼 신경쓸 일은 없을 것이다·
“으 으헤헤··· 주주님····”
에드워드가 비굴하게 굽신대며 엘릭의 곁으로 다가왔다·
엘릭은 그를 흘기다 아이에게 축복을 걸어주는 하임베르크와 사시나무처럼 떨며 입을 틀어막은 이그렛을 한차례 살폈다·
질문은 그 이후에나 나왔다·
“···혹시 더 올 사람이 있나·”
“그 그게····”
에드워드가 더 쭈그러들었다·
엘릭은 영혼을 잃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래서 염병할 서부 인간들은·”
반쯤 포기였다·
*
이후로도 제르디아와 엘버스가 찾아왔다·
다 같이 찾아오겠다고 미리 말을 맞춰놓기라도 한 건지 어떻게 하루 만에 다들 도착한 꼴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손님 방이 넉넉잖으니 잠은 알아서들 자시오·”
하며 엘릭은 성의없는 접객을 했다·
하나 누구도 엘릭에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티리아의 품속에 있는 달린이었다·
“히야 어떻게 저 친구가 아버지가 되었을까?”
“참으로 작은 아이구나· 내 아들 놈이 막 태어났을 적이 생각나·”
“마왕의 아들··· 왕자라면 구울이 되지 않았소· 뭣하면 성불이라도 시켜드리오?”
“자네는 주둥이를 간수할 필요가 있을 듯해·”
“귀여워· 너무 귀여워···!”
아이 주변이 이리 소란스러운 것은 좋지 않을 텐데·
무심코 걱정이 일었으나 달린이 누구의 딸이던가·
“꺄웅!”
6세에 이미 가출을 마스터한 엘릭의 딸이었다·
담 하나는 타고난 것이다·
“아이쿠 이 작은 것이 어른들을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제르디아의 말처럼 달린은 낯선 어른들을 보면서도 꺄르륵 웃으며 버둥대기 바빴다·
새로운 것들이 다 신기한 듯했다·
그것이 이곳에 있는 이들의 판단이었고 실상은 달랐다·
“꺄웅!”
달린이 보는 것은 이들의 몸 주변에 피어올라 있는 마나의 색이었다·
각자가 알록달록하고 서로 다른 일렁임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강렬함이 달린의 혼을 쏙 빼놓아버린 것이다·
조금은 먼 훗날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랬다·
“그래 아가 건강히 자라거라·”
라고 말하는 제르디아와·
“달린 달린···! 내가 평생 지켜줄게···!”
하고 주접을 떠는 이그렛은 앞으로 10여 년 후 달린의 재능에 눈이 돌아가 서로 자신의 제자로 들이겠다며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누구의 제자가 될지는 달린의 선택에 맡기겠다며 마법을 시연하는데 그날 서부 끝자락 협곡의 지형이 바뀐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당장은 귀여운 아기와 흐뭇한 어른들의 미소만이 가득할 뿐이다·
*
위빈이 이리 소란스러운 가운데·
달린의 탄생을 축하하며 하하호호 웃는 사람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먼 걸음을 해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이곳이 위빈인가·’
평범한 검은 정장에 중절모를 깊이 눌러쓴 청년은 머리와 눈동자가 검다·
체구는 여리여리했으며 눈빛은 조금 공허했다·
그의 이름은 린다로스 디샤·
과거 엘릭에게 목숨을 구명 받았던 천익이었다·
‘촌이네· 문명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좋게 말해 목가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뒤처졌다·
하지만 린다로스는 좋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평온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소란스러운 문명보단 이리 따뜻한 고요함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봄의 산들바람이 몸을 간질이는 것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그는 한 걸음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품에는 꽃다발이 안겨 있었다·
축하와 감사의 의미다·
그날 엘릭이 목숨을 구해준 이후 가족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으므로·
-이 멍청한 놈아! 내가 형제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살아갈 사람으로 보이더냐!
린다로스는 그날 처음 형제의 주먹질에 당했다·
형제의 눈물을 보았고 그 외에 형수와 조카의 눈물을 보았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더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것을 깨닫게 해준 엘릭에게 천 번 감사해도 모자랄 일·
하나 따로 찾아볼 만큼 친분이 깊지는 않았기에 이번 기회를 이용해 마음을 전할 생각이었다·
린다로스의 걸음은 고요했다·
월영의 진짜 주인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그림자 같은 걸음이었다·
소란을 일으킬 생각이 없어 인기척까지 지우니 마을을 걷는 중에도 그가 곁을 지나침을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한 일·
그리 판단하며 린다로스가 한참 걷던 중이었다·
“음? 당신은 누구십니까?”
덜컥 린다로스의 걸음이 멎었다·
얼굴 위로는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아 걸음걸이를 보니 혹시 서부의 기사님?!”
호들갑을 떨며 외치는 것은 키가 2미터는 될 법한 거구의 청년이었다·
주홍빛 눈동자가 용광로의 열기를 품으며 타들어 가고 있었는데 린다로스는 그것을 보는 순간 절로 속에 경악이 피어남을 느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자신의 기척을 눈치챈 것인가·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렴 그 7강들 중에서도 자신이 작정하고 숨을 때 기척을 눈치챈 것은 검제와 검귀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어떻게 이 자가 그 기척을 눈치챈 걸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꽃다발을 보아하니 포트먼 가의 저택을 찾으시는군요! 아가씨를 보러 오신 거죠?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거기 종자 기사거든요!”
씨익 웃은 청년이 말하며 뒤돌았다·
“이리로 오시지요!”
그가 걸었다·
린다로스의 숨이 멎었다·
‘내 보법이야·’
아 그러고 보니 이곳 기사가 월영 출신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들에게 배운 걸까?
하지만 겨우 단원에게 기술을 배운 정도로 저 정도 구현이 가능한가?
아니다·
저것은 이질적이었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자신의 보법과는 차이가 있었다·
‘개량했어·’
저 청년은 보법을 개량했다·
애초에 자신의 여리여리한 체구에 맞도록 구상했던 월영보를 저 거구로도 구현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몇몇 동작을 수정했다·
‘재능이다·’
저것은 경악스러울 정도의 재능이었다·
린다로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과연 검귀의 고향이라는 것인가·’
종자 기사 하나도 남다르다·
문득 린다로스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봐·”
“예?”
“친절에 감사하지· 크게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네가 원한다면 그 보법이나 무술을 조금 손봐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엘릭에게 직접 보답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주지 않아도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러니 할 수 있는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내가 잘 아는 무술이거든· 그거·”
린다로스의 말에 청년 베론이 놀란 얼굴을 했다·
이윽고 그의 얼굴 위로 차오르는 것은 환희였다·
“저 정말이십니까!!!”
기연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
소란이 한창인 와중이었다·
해가 저물 쯤 포트먼의 저택은 갑작스러운 손님들의 방문에 평소보다 많은 요리를 그리고 식기를 준비하며 한창 바빠하고 있었다·
슬슬 잠든 달린을 침대에 뉘이기 위해 티리아는 달린의 방으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음?”
티리아는 의아해 했다·
온 손님 중에 꽃다발을 챙겨온 사람이 있었던가·
아마 그런 것일 테지·
티리아는 크게 개의치 않고 달린을 뉘인 후 꽃다발을 쥐어 들었다·
향기가 아주 향긋했다·
“후후 아가· 좋은 향이 나지 않니?”
티리아의 물음에도 달린은 웅얼웅얼 옹알이를 할 뿐이었다·
그렇게 날이 저물었다·
하나 소란은 영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은 왕국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서 서부의 거인들을 뵙습니다···!”
후들후들 다리를 떨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올해로 15세 생일을 맞은 페르딘의 어린 왕세자였다·
거두절미하고 그가 찾아온 목적은 하나였다·
우리 왕국에서 이러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