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2 #후일담2 – 포트먼의 꼬마 아가씨 (3)
달린 포트먼 7세·
직책 아가씨·
건강 상태 양호·
대망의 특기·
“이번이 몇 번째 가출이던가?”
“7번째십니다·”
“허허····”
무려 가출·
엘릭은 괜히 티리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 애는 대체 누굴 닮아서 이리 가출이 잦은지·”
“굳이 입을 열고 싶습니까?”
“····”
“찾아오십시오·”
티리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품에는 집안의 장남 리만 포트먼이 세상 모르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금발머리칼을 살랑이는 아이는 이 분위기를 알지도 못한 채 그저 꿈나라에만 가 있다·
엘릭은 움찔 몸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 데리고 들어오겠소·”
건강해도 너무 건강한 딸·
바람과는 다르게 자신을 너무 닮아버린 딸을 찾기 위해서·
*
세월이 참 무섭다·
고작 30대에 접어든 나이지만 엘릭은 그런 생각을 꽤 자주했다·
아무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사람이야 안 변하겠는가·
본디 조곤조곤하고 큰 소리를 내지 않던 티리아는 달린의 말썽이 늘 때마다 점점 무섭게 변해갔다·
엘릭은 그 더럽던 성질머리가 팍 죽어 부드러운 사람이 되었다·
부부가 서로를 닮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의 결실 달린은 두 사람의 어릴적을 빼다 박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주로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이번엔 왜 가출했는지 아는가?”
이젠 기사단장이 된 베론에게 묻자 답이 돌아왔다·
“저도 잘····”
“그래 속내를 꾹꾹 숨기는 아이지· 거기에 행동력만 좋아서 원·”
엘릭은 허허롭게 웃었다·
달린은 티리아의 소심함 그리고 엘릭의 행동력을 그대로 물려받아 버렸다·
즉 홀로 끙끙 앓으며 고심하다 안 좋은 방향으로 결론을 내곤 가출이라는 행동을 실행해버리는 아이가 된 것이다·
이리되면 데려오는 것은 또 엘릭의 몫이었다·
“자네는 가문에 들어가 있게· 내 홀로 다녀올 테니·”
“옙!”
베론이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엘릭은 한숨을 푹 내쉬곤 기감을 넓혔다·
이젠 경지를 완전히 몸에 받아들이는 지경이라 위빈 전체를 탐사하는 것은 선 자리에서도 충분했다·
달린의 기척은 이윽고 엘릭의 기감에 들어왔다·
‘찾았군·’
굴다리 밑이다·
어릴 적 엘릭이 가출 처로 자주 이용했던 곳·
괜한 감상은 뒤로 미뤄야지·
엘릭은 추억에 잠기려는 스스로를 다독이곤 굴다리로 향했다·
‘여긴 그다지 바뀐 곳이 없구나·’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니 어릴 적 그대로다·
하긴 이곳뿐만 아니라 농사에 필요한 몇 가지 기구를 제외하곤 위빈 전체가 전과 다른 점이 잘 없었다·
급격한 변화를 지양한 까닭이다·
덕분에 이리 추억을 되새길 수 있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하며 엘릭은 굴다리 밑 판자집 앞에 도달했다·
안쪽에서 흠칫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아마 달린은 자신이 온 것을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성격뿐만 아니라 무재까지도 자신을 닮았으니까·
“크흠~·”
하며 엘릭은 헛기침했다·
약 5초 판자집이 고요하게 가라앉은 후에 겨우 끼익 하며 문이 열렸다·
드디어 말썽꾸러기 공주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술을 삐죽이는 게 여간 삐져있는 게 아니었다·
“···뭐야 아빠잖아·”
실망한 듯한 태도·
글쎄 엘릭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엄마가 오길 바랐느냐?”
“···아닌데·”
달린이 풀썩 담요를 깔고 앉았다·
엘릭 또한 달린의 옆으로 가 앉았다·
“엄마는 많이 바빠서 아빠가 대신 왔단다· 집에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안 갈 게야?”
“흥!”
달린이 고개를 돌렸다·
엘릭은 쓴웃음을 흘렸다·
육아란 게 이렇게 어려운 줄은 미처 몰랐던 터라 곤란함이 한껏 치솟는다·
하나일 때보다 둘이 되니 더했다·
어릴 적부터 사랑받으며 자라온 달린은 자신에게로 향하던 사랑을 동생에게 나눠지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그걸 자신과 티리아도 어렴풋이 눈치챘고 최대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해봤으나 그 결과가 이것·
아이의 마음을 완전히 채워주기엔 모자람이 있는 부모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엘릭은 달린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쑥 들어 올렸다·
그리곤 무릎 위에 앉히며 등을 토닥였다·
“리만이 누나를 보고 싶어 하더구나·”
“거짓말 리만은 엄마만 있으면 되는걸·”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엄마가 잠시만 없어도 빽빽 울어대잖아!”
맞다·
리만은 갓난아기였던 달린을 생각해보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까다로운 아이였다·
주로 티리아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점이 그랬다·
잠시만 티리아가 자리를 비워도 울기 일쑤다·
막 잠에 들어 있어도 마찬가지·
티리아가 휴식을 취하고자 침대에 뉘면 귀신같이 눈치챈 리만이 빽빽 울기 시작한다·
달린을 신경 써줄 환경이 못 되는 것은 그래서였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은 못난 부모겠지·
엘릭은 그저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아빠가 널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됐어· 아빠는 무죄야·”
“흐하하 그러니?”
“응 대신 엄마는 유죄!”
달린이 가득 심통 난 목소리로 말했다·
“달린을 싫어하니까 완전 유죄!”
관심이 멀어진 것을 이리 해석한 것일 터다·
어찌 관심을 끌어보려는 수단이 가출이라니·
부끄러운 과거의 자화상이었다·
그렇기에 엘릭은 말해주었다·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거짓말이야·”
“정말인데?”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 아이 또한 부모의 거울이라·
서로를 꼭 닮은 부녀기에 아는 것이 있었다·
“너를 너무 사랑해서 믿는 게다· 동생을 위한 시간을 빼주어도 네가 의젓하게 참을 수 있는 아이란 걸·”
달린이 흠칫했다·
뺨을 부풀리는 게 영 마음에 안 드는 답인 모양·
엘릭은 한마디를 더했다·
“영 뭣하면 엄마한테 직접 말해보겠느냐?”
달린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것은 대화를 두려워했던 티리아의 어릴 적을 그대로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엘릭은 알았다·
이런 점을 고쳐주지 않으면 너무 아픈 순간을 지나쳐야 한다는 것을·
“아가·”
“응····”
“무서우냐?”
달린은 망설임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무엇이 무서우냐?”
“···엄마가 나 싫어할까 봐·”
하며 중얼거리듯 내뱉는 것은 지난날에 대한 후회였다·
“매 맨날 사고만 치고··· 속 썩이고··· 그러니까아····”
스스로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좋은 신호다·
와중 가슴이 아픈 점은 그걸 알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충동성·
즉 아이가 그리하게 만드는 불안감이다·
엘릭은 잠시 말을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아가 이 아비가 하나만 말해주어도 되겠느냐?”
“응···?”
“대화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란다· 아비가 그래봐서 알아· 조금만 용기를 내서 서로의 진심을 주고받는다면 사실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는데 그걸 못하게 되면 너무 오랜 시간을 아파해야 하거든·”
달린이 빼꼼 고개를 들었다·
엘릭은 쓰게 웃으며 달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느냐? 이 아비는 어릴 적에 너보다도 엄청난 사고뭉치였단다· 가출은 백번도 넘게 했고 네 할아버지에겐 소리를 지르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지·”
“···알아· 엄마가 한 번씩 말해줘·”
“그래 무어라 하던?”
“···아빠처럼 되면 안 된다고·”
엘릭은 쿡쿡 웃었다·
티리아의 가장 큰 걱정이 달린의 가출인 만큼 어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더 쉽겠지·
“그래 아비처럼 되면 안 된다· 그러려면 대화를 해야 해· 대화를 하는 데 큰 준비는 필요 없어· 이 가슴 속에 이파리만큼 작은 용기만 있으면 되는 게야·”
달린의 가슴을 콕 두드렸다·
“우리 딸은 이미 용기가 있지 않느냐?”
“모르겠어····”
“아니 넌 분명 용기가 있단다· 이 아비의 딸이니까·”
엘릭이 바라는 것은 언제나 하나였다·
가정의 평화 그리고 행복·
그런 엘릭이 아는 사실 하나·
행복을 위해선 솔직해져야 한다·
오해로 빚어진 세월은 다시 붙잡을 수 없어 너무 아플 것일 테니·
달린의 눈을 마주 보던 엘릭은 감회에 빠졌다·
그리하며 입을 열었다·
“아가·”
“으응····”
“넌 이 아비보단 더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게다·”
말하자 달린이 입을 우물거렸다·
엘릭은 덧붙였다·
“너는 우리의 자랑이니까· 그러니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게야· 무엇도 겁먹지 말거라· 혹여 네가 실수를 한다면 이 아비가 함께 해결법을 생각해줄 테니·”
아 이 말을 이렇게 하게 되는구나·
언젠가 그리도 듣고 싶어 했던 말이고 또 언젠가는 꼭 달린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불현듯 전해졌다·
“너는 아비와 같은 실수를 안 했으면 해· 아비는 이게 얼마나 아픈지 알아서 내 딸만큼은 그런 아픔을 몰랐으면 하거든·”
아직도 하나가 후회된다·
부친과 끝까지 제대로 된 화해를 하지 못한 것·
솔직하지 못함이 끝내 비극으로 끝나버린 그런 과거가 사무치도록 후회된다·
엘릭은 그렇기에 간절히 부탁했다·
“그래 줄 수 있겠니?”
달린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엘릭은 싱긋 웃었다·
“그래 그럼 엄마에게 가자· 사과하고 물어보자꾸나· 정말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으응····”
달린이 수긍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저택으로 돌아갔다·
일곱 번째 달린의 가출·
그것은 티리아의 눈물과 함께 끝이 났다·
“달린! 어딜 갔던 것이니!”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티리아는 달린을 보자마자 냅다 달려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눈물이 달린의 머리에 톡 떨어졌고 달린은 그에 울먹이다 엉엉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미아내애애!!!”
참으로 다행이었다·
달린이 두 사람의 나쁜 점을 모두 닮았음에도 딱 하나 솔직함과 용기만은 품었다는 것이·
엘릭과 티리아에게 그리고 달린에게도 너무 다행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