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5 #후일담3 – 몰라도 되는 이야기 (3)
질문 산책을 다녀온다던 남편이 외간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부인의 반응은?
정답·
“···늦은 시각에 손님이 오셨군요·”
살의를 뿜는다·
저택이 침묵에 휩싸였다·
단 한 명 티리아가 만든 싸늘하고도 묵직한 침묵이었다·
늦은 밤까지 잠들지 않았던 사용인들은 큰 구경거리를 목도한 사람처럼 이색적인 옷차림의 여인을 바라봤다·
여인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어 손님이니까 대접 좀 해봐·”
티리아의 심기를 한결 더 불편하게 만드는 끔찍한 상황·
엘릭이 그 한가운데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부인 일단 내 말 좀 들어보시겠소?”
그는 오랜만에 무릎을 꿇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
그리도 험악한 분위기였으나 오해는 어렵지 않게 풀렸다·
애초에 정부로 보기에는 두 사람의 거리감이 꽤 있었던 까닭이다·
무엇보다 여인의 태도가 그랬다·
“아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말고· 내가 뭐 하러 얘랑 붙어먹어? 아저씨잖아·”
얽히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말에 티리아는 진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얘기만 하고 갈 거야· 차나 좀 내와 봐·”
접견실에 다리를 꼬고 앉은 여인의 말이었다·
그에 사용인들이 손님용 차를 내어 왔고 그 향을 맡으며 여인이 엘릭의 궁금증을 하나둘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내 이름부터· 아리아 헤브론· 아리아 머셔· 편한 쪽으로 부르는데 이름으로는 부르지 마· 맞먹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
여인은 아리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뒷산에서 보인 기예나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마법사로 보였는데 그녀가 이곳을 찾은 목적은 역시 엘릭 자신 때문이었다·
그제야 엘릭은 그녀의 목적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호위 목적으로 나를 찾았단 말이오?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어 네가 어머니 뱃속에 계셔서 돌아갔었지·”
“어떻게 그게 가능하오? 난 태어나지도····”
“운명이 점지한 것들이 있어· 얘가 존나 쎄질 거예요~ 하고 혼이 육신에 깃드는 순간부터 온갖 세상의 축복이 다 내려지는 것들· 네가 그래· 내가 그렇고 아까 본 그놈이 그렇지· 차원마다 몇백 년 주기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차원이니 운명이니 모를 말만 내뱉는 것에 엘릭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느꼈잖아? 세상에는 아주 많은 차원이 겹쳐서 존재하고 있는 거· 서로 교류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거·”
안다·
그걸 알아서 실을 건드렸고 그 끔찍한 것을 불러들였다·
“내 일이 우리 같은 놈들을 모으는 거야· 할 일이 있거든·”
“···할 일?”
“쉽게 말하면 우리 집안에서 운영하는 의회에 공석을 채우는 일? 각 차원계 마다 관리인이 필요하거든·”
그녀의 설명은 대체로 불친절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설명하지 못한다기보단 설명하는 일을 귀찮아 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확실히 느껴지는 게 있었다·
“인재 영입이라기엔 내게 그리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하시는군?”
“마음 쓰지 마·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다 그래· 다 내가 너무 잘난 탓이지· 왜 아랫것들한테 사사로운 감정을 쏟는 건 귀찮잖아?”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오만이라고 할 수 없었다·
확실히 그녀와 싸워 이기라면 그 일이 가능하리란 확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엘릭은 인과를 볼 수 있다·
과정에서 최적의 결과를 뽑아내 과정 없이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진대 그녀에게선 어떤 ‘최상’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테면 그렇다·
온 세상 법칙이 그녀를 지키고 있다·
정확히는 그녀를 떠받들어 모시고 있다·
탁―!
그녀가 빈 찻잔을 테이블 위에 놓으며 말했다·
“죽음이란 게 있어· 관념적인 거 말고 실제하는 개체로·”
대뜸 그녀가 말했다·
“많이 귀찮은 놈이야· 그놈이 없으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차원이 무너져내려· 그런데 그놈이 있으면 모든 차원의 모든 세상이 정해진 멸망으로 치달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 차원이 그 죽음한테 찍혀버렸어·”
엘릭은 묵묵히 말을 들었다·
“내가 태어나기까지 좀 많이 귀찮은 일이 있었지· 그런 걸 다 이겨내고 우리 아빠가 죽음이랑 협상을 했어· 너 대신 우리가 차원 관리할 테니까 구석에 짱박혀 있어라··· 뭐 그런 내용으로·”
여전히 아리송한 말이었지만 대강의 흐름은 파악할 수 있었다·
죽음이란 것이 있고 그것을 막기 위해 범차원적인 집단을 설립한 사람이 있다·
그것이 아리아의 아버지란 사람이고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은 그 집단에 자신을 초청하기 위해서라는 뜻·
“우리 아빠가 개인 호위 네 명을 데리고 있어· 사실 누구 호위가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끝까지 들고 있는 게 좀 의아하긴 했거든? 근데 말하더라고· 직접 손 쓰기 귀찮은 상황에선 호위를 쓰는 게 편하다고· 와 천잰가? 싶었지·”
“····”
“그래서 나도 호위라는 걸 만들어보려고 했지· 너한테 제안하려고 한 게 그거야· 지금은 뭐··· 크게 필요하진 않은데 일단 왔으니까 물어볼게·”
그녀가 삐뚜름하게 턱을 괴고 물었다·
“내 호위할래?”
엘릭은 곧장 답했다·
“싫소· 당신은 싸가지가 없어서·”
“오 정답·”
“그리고 내가 그걸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서·”
“똑똑하네? 어디 사는 동방 무사랑은 다르게· 칼잡이가 다 병신은 아닌가 봐·”
“···무슨 소리요?”
“있어· 너는 몰라도 되는 얘기·”
한숨을 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일이었소?”
“응 있으면 좋고 아니면 그만인 정도? 그리고····”
순간 그녀의 눈빛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엘릭은 오싹함을 느꼈다·
“···어차피 넌 다시 날 찾을 거야· 경지가 더 높아지면 알 수밖에 없거든· 아 이대로 가다가 다 좆되겠구나~ 하는 거·”
직후 그녀가 씨익 웃었다·
와중 엘릭이 놀란 사실은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가 존재한다는 사실·
어안이 벙벙한 와중이었다·
“나중 일이니 지금은 신경 쓰지 말고· 집안 화목해 보이네· 가정에 힘써·”
그녀는 그리 말하고 접견실을 나섰다·
그 순간이었다·
“주주니··· 임?”
에드워드가 접견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리아와 마주했다·
에드워드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고 아리아는 미간을 좁히다 “아?”하는 소리를 냈다·
“뭐야 너 얘랑 아는 사이였어?”
반가움이 물씬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이야 그새 이만큼이나 늙었네· 하여튼 인간들 나이 먹는 속도는 참 적응 안 된단 말이야·”
하며 아리아는 멀대 같이 큰 키를 가진 에드워드를 올려봤다·
“꼬맹이 나 기억해?”
묻는 그녀의 말에 에드워드의 입술이 달싹였다·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눈을 하다 이내 헛웃음을 흘리며 말하니·
“···오랜만에 체스나 둘까요?”
엘릭은 그가 그리 감성적인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
이후의 일은 썩 할 말이 많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엘릭이 떠난 접견실에서 아리아와 어떤 대화를 나눴고 그 뒤로 위빈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
엘릭으로선 모종의 거래가 오갔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고 딱히 그 사실이 대수롭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서 결국 그분은 누구셨습니까?”
티리아가 묻는 말에 엘릭은 한마디로 답했다·
“가정 교육이 심히 필요한 사람이었소· 웬 제안을 해오는데 당장은 필요치 않아 거절했고·”
“으음 그랬습니까·”
티리아 또한 대수롭지 않게 그 일을 넘겼다·
그렇게 어느 여름날의 사건은 끝을 맺었다·
엘릭도 그 일을 향후 십 년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살았다·
언젠가 다음 경지를 개척한 날 엘릭은 아리아와 스스로를 레논이라 소개한 성직자를 만나게 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일·
당장 엘릭은 그녀의 말 중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었던 하나의 말을 따르며 살았다·
“아이들은?”
“달린은 일리아와 놀다 지쳐 잠들었습니다· 리만은 동화책을 붙잡곤 영 놓아주질 않아요· 지금도 유모가 고생 중이지요·”
가정에 충실하라·
늦은 밤 엘릭은 침대에 누워 티리아와의 대화에 빠졌다·
그녀의 말이야 어쨌든 당장은 참으로 행복하다·
개구쟁이 딸 달린은 자신을 닮아 활기차고 웃음이 많았다·
조숙한 아들 리만은 다섯 살이 벌써부터 티리아를 닮아 조곤조곤하고 예의가 바르다·
이 아이들과 티리아가 함께 있는 순간이 퍽이나 행복하다·
매일매일이 같으면서도 새롭고 충만하면서도 새로운 갈증을 일게 한다·
엘릭은 그 감각을 음미하다 말했다·
“이제 곧 가을이구려·”
“예 또 수확철이지요·”
“달린은 또 밀밭을 뛰어다니다 어디 한군데가 까져 오겠지·”
“리만은 올해로 첫 수확을 볼 겁니다·”
“잊지 못할 광경이 되겠군· 당신이 그랬고 내가 그랬고 달린이 그랬던 것처럼·”
“위빈의 가장 큰 자랑거리니까요·”
티리아의 손이 엘릭의 뺨을 쓸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맞았다·
지그시 눈꼬리가 휘어졌고 그렇게 두 사람이 입을 맞췄다·
“잘 자시오·”
“당신두요·”
위빈의 여름은 그렇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