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 – #5 마수 사냥 (2)
엘릭은 곧장 저택을 나서 티리아와 함께 마을을 향했다·
그리 도착한 마을의 풍경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형태였다·
“으음··· 심각하구려·”
무너진 집이 몇 채 보였다·
파헤쳐진 땅이나 저 멀리 무너진 목책은 무언가가 힘으로 밀고 들어와 마을을 뒤집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예의 마수이리라·
“저는 잠시 촌장과 이야기하고 오겠습니다·”
“그러시오· 내 여기서 기다리지·”
함께 갈 수도 있었으나 엘릭은 그리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개인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빠르다는 이유였다·
10년 전이라면 모를까 엘릭은 용병으로 구르던 지난 세월 간 마수를 마주한 일이 수없이 많았다· 전쟁에서 마수의 서식지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까닭이었다·
이젠 흔적만으로 마수의 종까지 파악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가장 확실한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우선 엘릭은 마을 외곽으로 향해 목책의 파편을 확인했다·
‘베어낸 건가·’
그리 보인다·
적어도 박치기를 했다면 이렇게 깔끔하게 일자로 부러지진 않았을 테니까·
늑대형 마수라고 했으니 생각나는 것은 블레이드 울프나 칼리소 울프 정도·
각각 기다란 발톱이나 뿔이 특징적인 마수다·
거기에 하나 더 단서가 될 만한 점이라면····
‘인명 피해가 생각보다 적다·’
마을에 마수가 침입한 것치곤 죽은 사람이나 장례를 치르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부상자 몇몇 정도인데 이 점이 마수의 정체를 더욱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블레이드 울프로군·’
마수 중에서도 상위종에 속하는 마수다·
마나를 이용해 발톱 위로 검기를 두르는 마수로 생존을 위한 사냥 행위 외에도 놀이를 위한 사냥도 즐기는 종·
이리 공포만 심어주고 돌아갔다는 것은 다음 사냥을 위한 전조현상이라고 봐야 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큰 화가 마을을 덮쳤을 터였다·
‘악질적인 놈에게 걸렸군·’
이를 어찌해야 할까·
엘릭이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가주·”
티리아가 돌아왔다·
“대충 이야기는 다 듣고 왔습니다·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시지요·”
“아 그리하지·”
그새 조사를 마치고 온 건가·
아니 그녀의 성격상 인사말이나 허례허식은 다 치우고 본론만 들었을 게 뻔하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엘릭은 그녀를 따라 마차에 올라탔고 그 이후에나 그녀가 알아낸 내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말을 들을수록 확신이 굳어졌다·
블레이드 울프가 맞다·
이제 문제는 그녀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냐는 것·
“일단 사냥을 나서야겠지요· 언제 또 마을에 내려올지 모르니 최대한 빠르게 채비할 생각입니다·”
“마수의 종은 정확히 파악하셨소?”
“마을 주민들의 말로는 정확한 형상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나 거대한 칼날 같은 것을 본 기억은 있다고 하니 칼리소 울프로 추정 중입니다·”
엘릭의 표정이 굳어졌다·
‘안 된다·’
칼리소 울프와 블레이드 울프 사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마나를 무기로 쓰는 마수와 몸뚱어리 하나만 믿는 마수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이대로 칼리소 울프를 상정하고 나섰다간 사냥에 나선 인력이 되려 시체가 되어 돌아올 게 뻔했다·
‘블레이드 울프를 사냥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기사다·’
그것도 마나를 다루는 수준의 기사여야 했다·
검 위로 마나를 덧씌워 절삭력을 올리고 그것으로 늑대의 발톱을 정면으로 베어내지 않는다면 사냥 과정에서의 희생은 불가피해진다·
이를 어찌 설명할 도리가 없어 끙끙대던 엘릭은 이내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아 그럼 기사가 동원되겠구려!”
영지 기사는 기본이 마나 유저다·
단 한 명이라도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자가 있다면 그를 전면으로 내세우면 될 것이리라·
생각하며 물었고
“음?”
답은 엘릭이 생각지도 못한 형태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희 영지에는 기사가 없습니다·”
엘릭은 입을 떡 벌렸다·
*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일갈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리할 수 없는 이유는 있었다·
곧장 덧붙여진 티리아의 설명 탓이었다·
“영지의 마지막 기사는 위빈 가의 지그 경이었습니다· 그분은 8년 전에 노환으로 은퇴하셨지요·”
“그 이후로 다른 기사를 더 임명하지 않은 것이오?”
“예 그럴 만한 인재가 없었던 것도 이유지만··· 무엇보다 기사는 가성비가 안 좋지 않습니까·”
시대의 변화였다·
이제 대륙의 전장을 지배하는 이름은 ‘화약’이었다·
“···하긴 그렇겠구려·”
기사는 영입부터 육성 유지 및 관리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돈 먹는 하마였다·
그에 반해 화승총을 보라 총은 단 한 자루만 있으면 농부도 무장병력으로 만드는 간편하고 흉악한 무기다· 게다가 그 수준이 잘 훈련된 기사를 해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화승총의 가격 또한 천문학적인 수준이긴 하나 그것이 기사를 육성하는데 필요한 돈보다 많지는 않다·
서부의 전장처럼 대규모 병력이 운용되는 곳이라면 몰라도 이제 이런 한미한 시골 영지에서 굳이 기사를 키울 필요가 없었다·
그저 적당히 훈련시킨 병사에게 총을 들려주면 그만인 일이니까·
문득 씁쓸함 그리고 안타까움이 엘릭의 속을 적셨다·
엘릭은 여전히 기사를 동경했고 그들의 강한 힘을 존중하는 쪽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본인부터가 전쟁 용병으로 살아 검으로 오를 수 있는 정상에 올랐으니 기사의 운용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사의 몰락이라····’
언젠가 전장에서 들었던 말이 새삼 피부 위로 와닿는다·
“···혹 제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인지요·”
티리아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엘릭은 빠르게 표정을 수습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음 그저 안타까워 그러오· 아실지 모르겠지만 내 어릴 적 꿈이 기사였거든· 한데 기사가 사라진다니 새삼 속이 쓰린 게 아니오·”
작게 웃으며 답한 엘릭은 조언에 가까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총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힘이 기사에겐 있지 않소? 기사의 영입 건은 다시 한번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소·”
어찌 납탄 따위가 기사의 검을 완전히 꺾을 수 있겠나·
총과 검은 고점부터가 다르다·
엘릭 본인만 해도 검 한 자루만 들려준다면 몇백의 화승총 부대는 홀로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일을 해본 일도 있었다·
영지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기사 하나쯤은 두고 있는 게 좋다·
확신의 말을 내뱉은 직후였다·
“그 부분은 다시 생각해보지요· ···아니 가주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그리하는 게 맞겠습니다· 이 영지는 결국 가주께서 운영하셔야 할 영지이니·”
엘릭은 흠칫 놀랐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부분이 들춰진 이유였다·
“가주?”
“···아무것도· 그저 바람이 추워서·”
구태여 복잡한 생각을 지금 더 할 필요는 없으리라·
엘릭은 변명하듯 답하며 흘러가는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스륵―
그녀의 털 망토가 펼쳐져 엘릭의 어깨까지 감쌌다·
엘릭의 몸이 바짝 굳었다·
데굴데굴 구른 눈이 그녀를 향했다·
“이건····”
“춥다 하시기에 망토가 크니 두 사람이 덮기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녀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몸은 조금 더 붙었다·
팔이 닿았고 손끝이 스치며 냉기가 오갔다·
그녀의 콧잔등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엘릭은 뻐끔뻐끔 말을 흘렸다·
“···추워 보이시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저보다는 가주의 몸이 중하니까요·”
“그건····”
“저는 괜찮습니다·”
왜인지 단호한 말이었다·
엘릭은 더 거절을 잇지 못했다·
시선은 정면을 향했다·
달그락 달그락·
마차가 흔들리며 손끝은 계속 부딪쳤고 어느 순간 두 손이 그중 새끼손가락이 얽혔다·
누가 먼저 그리했는지는 두 사람 다 알지 못했다·
*
다음 날 오전이었다·
결국 여러 차례의 의논 끝에 이번 사냥에 기사를 동원하기로 결정 낸 티리아는 인접 영지인 기데온에 기사를 요청했다·
엘릭은 그 과정이 꽤나 험난할 것을 예상했으나 기데온은 생각보다 쉬이 기사를 내어주었다·
두 사람은 지금 기사를 맞이하기 위해 저택의 정문 앞에 나와 있었다·
“위빈 가와 기데온 가는 5대 이상을 교류해온 가문이니 어려울 것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게다가?”
“···아닙니다· 이 부분은 직접 보시면 알겠지요·”
티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엘릭은 의구심에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녀는 더 말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결국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 순간이었다·
“저기 오시는군요·”
엘릭의 고개가 번쩍 들려 전방을 향했다·
그곳에 갈색의 튼튼한 말을 타고 저택으로 오는 이가 있었다·
겨울의 눈부신 햇살을 풀 플레이트가 반사해 실루엣만이 보이는 사내였다·
덩치는 컸고 말을 달리는 동작은 호쾌했다·
‘꽤 군기가 잘 잡혀있구나·’
수준은 갓 마나 유저에 오른 정도나 될까·
판단하며 그를 유심히 보던 엘릭은 이윽고 기사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
엘릭의 눈이 부릅 뜨였다·
“워워~·”
과장된 목소리가 울렸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말이 속력을 줄였다·
말 위에 올라 타 있는 사내의 얼굴이 다부지다·
하나 그 어딘가엔 개구진 기색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엘릭은 그를 알았다·
10년만에 만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엘릭에겐 친근한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엘릭의 안색이 환해졌다·
“뤼튼!”
그는 어린 시절 함께 사고를 쳐대던 절친한 친우 도축점의 첫째 아들 뤼튼이었다·
뤼튼이 환히 웃으며 외쳤다·
“대장! 오랜만이야!”
참으로 뜻밖의 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