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 – #5 마수 사냥 (3)
“이야 하마터면 정말 못 알아볼 뻔했잖아! 왜 이렇게 변했어?”
뤼튼이 껄껄 웃으며 호쾌하게 말했다·
그에 엘릭은 피식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는 자네는 조금도 변한 게 없군· 덩치만 컸어·”
“어쭈? 말투는 또 왜 그렇대?”
“이 친구도 참····”
좋았던 시절의 인연을 만나는 일은 몇 번째 경험이라도 즐겁다·
하물며 그것이 절친한 친우라면 더욱이 그랬다·
“일단 안으로 들지·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
“그래그래 아 부인께 인사를 못 드렸군요! 기데온의 기사 뤼튼이라고 합니다! 예에전엔 여기 대장의 오른팔이었습죠!”
“잘 부탁드립니다·”
티리아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작게 숙이며 그를 응대했다·
그렇게 저택 안으로 들어간 엘릭은 반가운 마음에 본래 목적도 잊고 그간의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기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네만 옆 영지일 줄은 몰랐군· 왜 위빈에서 하지 않고·”
“여긴 기사를 더 안 뽑잖아· 기데온은 품위 유지 명목으로 아직 기사단을 운영 중이거든· 아 위빈을 욕하는 건 아니다?”
“그런 결 신경 쓰진 않으니 괘념치 마시게·”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야기는 꽤 길게 이어졌다·
지난 10년간 어찌 지냈는지나 다른 친우들의 근황 그리고 얼마 전 있었던 수확제의 일 따위를 넘어가니 역시 결말은 추억팔이·
그때의 일이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통에 엘릭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대화가 끊어진 것은 직후였다·
“가주 이리 신통을 깨서 죄송합니다만 슬슬 일 이야기를 해도 되겠는지요·”
“아 미안하오· 내 너무 신나서·”
“아닙니다·”
티리아의 중재였다·
아쉽긴 하나 마침 적절한 타이밍 이대로 가다간 대화가 밤새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뤼튼도 껄껄 웃으며 티리아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래 나도 일단은 파견나온 입장이라서 말이야· 마수 사냥이라고 했나? 부인 일단 그 얘기를 더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복잡한 건 아닙니다· 마을 뒷산의 마수가 마을로 내려와 횡포를 부렸더군요· 조사한 바로는 칼리소 울프가 유력한데 가주께서 안전을 위해 기사 한 명은 있어야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신지라·”
“으음 확실히 마수라면 제가 도움이 되겠군요· 기데온에서도 몇 번 사냥해본 일이 있으니까요·”
엘릭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했다·
칼리소 울프가 아니라 블레이드 울프를 상정해야 하지만 당장 그걸 어떻게 알아냈느냐를 말하기엔 티리아의 눈치가 보인다·
나중에 따로 뤼튼을 만나 언질을 주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나 하며 엘릭은 뤼튼을 유심히 관찰했다·
‘잘 훈련되어 있구나·’
뤼튼의 마나가 아주 안정되어 있었다·
하기야 어릴 적부터 튼튼한 맷집 하나는 알아주는 친구였으니 고된 훈련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터다·
이 정도면 블레이드 울프가 나와도 전면전이 가능한 전력이다·
그가 검으로 발톱을 베어내고 화승총으로 마수를 꿰뚫는 방향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군요· 이쪽 병력은 화승총을 든 사냥꾼 셋· 길잡이 하나· 나쁘지 않습니다· 늑대를 사냥하는 것치곤 과하게 안전하군요·”
뤼튼은 너스레를 떨며 껄껄 웃었다·
“바로 출발하죠· 대장도 남은 얘기는 그때나 하자고!”
말하며 그가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시선을 창밖으로 향하던 뤼튼은 창밖을 흘끔 보더니 “엥?”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당황을 표했다·
엘릭도 그를 따라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왜 그러는··· 음·”
엘릭의 미간이 좁아졌다·
“눈이 내리는군·”
흰색 알갱이가 하늘하늘 땅 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알갱이의 굵기로 보아 쌓이는 눈이었다·
*
곧장 이동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길이 얼면 마차나 말이 움직이기가 여의지 않았고 그보다 떨어져 내리는 눈에 몸이 젖으면 체온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뤼튼이야 마나를 다루는 기사이니 괜찮겠지만 다른 이들으로선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 해서 마수를 그냥 놔둘 수도 없는 일·
결국 결론은 한 방향으로 귀결됐다·
“음 눈이 그치는 대로 움직이자·”
뤼튼의 의견이었다·
“마냥 나쁘다고는 볼 수 없어· 눈이 쌓인다는 건 마수의 발자국이 더 확실히 파인다는 말이거든· 이동 경로나 서식지의 파악에 훨씬 용이해·”
“언제쯤 그칠 것 같나?”
“그래도 오후쯤에는 그치지 않을까?”
그리 오랜 시간이 소모되지 않음에 엘릭과 티리아는 동의를 표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은 출발 준비를 마쳤다·
뤼튼은 물어왔다·
“그런데 진짜 따라오게?”
“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왜 없다고 생각해?”
뤼튼의 시선이 엘릭의 무릎으로 향했다·
엘릭은 머쓱하게 웃었다·
하긴 지팡이 없인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산행을 따라간다니 걱정될 만도 하다·
하지만 엘릭의 입장에선 도리어 우습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래 봬도 10년이나 대륙을 일주해본 사람이네· 이 정도 부상으로 골골대진 않아·”
“그렇다면 나야 말릴 길이 없긴 한데··· 그래도 마수가 나오면 내 뒤에 꼭 붙어있어야 한다?”
“유념하지·”
사실 엘릭으로선 이런 와중에도 티리아를 떼어두고 가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절름발이 된 몸으로서 위험하니 당신은 빠지라는 말을 하는 게 참 우습지 않던가·
무엇보다 직접 따라나서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굳건하니 다른 말을 더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엘릭은 그녀를 흘금 바라봤다·
‘음 오늘따라 유독 말이 없는데·’
뤼튼과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사실이 이제야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긴장을 하긴 하는 건가?
표정도 왜인지 평소보다 굳어져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출발하지요·”
티리아의 말에 마차가 움직였다·
마을에 도착한 것은 1시간 정도가 더 지난 후의 일이었다·
도착하니 이미 전날 이곳으로 온 사냥꾼들과 길잡이 그리고 촌장이 세 사람을 맞이했다·
“여 영주님과 부인께서도 가시는 겁니까?”
촌장은 기함하며 말했으나 그로선 영주 내외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엘릭의 말에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끝·
엘릭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걱정 말고 마을 사람들을 다독이고 계시게·”
엘릭은 싱긋 웃으며 사냥꾼들에게 말했다·
“자 다들 준비된 것 같으니 그만 출발하지·”
“예!”
그렇게 산행이 시작됐다·
마을의 뒷산이라곤 하나 거대한 산맥 그중 마수가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인근 약초꾼들이 한 번씩 왕래하는 큰길이었다·
엘릭은 주변을 조사하며 산을 오르는 사냥꾼들과 뤼튼을 유심히 살폈다·
블레이드 울프에 관한 언질을 주기 위해서였다·
‘슬슬 흔적이 보일 때가 됐는데·’
직접적으로 ‘이건 블레이드 울프의 흔적이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좋은 방도가 존재했다·
아무렴 목책이 잘린 상태나 마을은 헤집은 수법으로 마수의 종을 파악하는 것보단 주변에 남아있는 흔적을 가리켜 그들 스스로가 마수의 종을 다시 깨닫게 하는 게 훨씬 쉬운 일이 아니겠나·
엘릭은 당장 전면으로 나설 생각이 없었다·
“찾았습니다!”
와중 사냥꾼 하나가 외쳤다·
엘릭은 그쪽을 확인했다·
‘음 애매한데·’
눈이 좁아진다·
사냥꾼이 찾은 것은 발자국이었다·
크기가 통상적인 칼리소 울프보다 크긴 하나 그것에 블레이드 울프 고유의 특징이 묻어나진 않는다·
“발자국이 꽤 크군·”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말이 끝·
하나 이어진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확실히 마을 하나를 헤집을 만하네· 덩치가 아주 커·”
“예 성체 중에서도 꽤 실한 놈으로 보입니다·”
역시 발자국만으로는 무리인가·
엘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이동하도록 하지·”
더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행인 점은 아직 여유가 있다는 것 정도일 터다·
보통 마수가 둥지를 트는 것은 다섯 번째 골짜기 이후이니 아직 첫 번째 골짜기이니 지금 시점에선 불의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엘릭이 넓게 펴둔 마나 그물에 마수의 기척이 잡히지 않았다·
‘괜찮다·’
그리 판단하며 쭉 걸어 두 번째 골짜기를 한참 오르던 중이었다·
뤼튼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미치겠네·”
그의 말대로 미치고 팔딱 뛸 상황이었다·
“하늘도 맑았는데 이놈의 눈은 왜 또 갑자기 내리는 거야?”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또 눈이 소복하게 쌓이기 시작한다·
엘릭으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지금까지야 걸음을 옮기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수준이긴 하나 여기서 더 쌓인다면 운신에 상당한 제한이 걸릴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더해 그런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부인 괜찮소?”
“···예·”
티리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엘릭은 그제야 그녀의 상태가 이상함을 확실히 깨달았다·
얼굴이 붉기에 그저 추위 때문인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장갑을 벗고 그녀의 얼굴 위로 손을 얹으니 열기가 느껴졌다·
“감기구려·”
엘릭의 표정이 한껏 굳어졌다·
티리아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별것 아닙니다·”
“아니기는 이런 상태인데 왜 말을 하지 않았소?”
“····”
티리아가 침묵했다·
다른 이들 또한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대장 어떡할래? 일단 내려갈까?”
아니 내려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마을로 내려가 그녀의 몸을 녹이려 할 때쯤이면 이미 열이 잔뜩 올라 쓰러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생각하던 엘릭의 생각이 이내 한 지점까지 뻗어 그곳에서 멈췄다·
“···뤼튼 그곳으로 가지·”
“응?”
“오두막· 여기 두 번째 골짜기에 오두막이 있잖나·”
그의 말에 뤼튼이 눈을 크게 떴다·
“···아! 네가 그 산적한테 검 배우던 곳!”
“기사네·”
“아무튼!”
뤼튼의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그래! 거기라면 당장 눈도 피하고 부인 몸도 녹일 수 있겠다! 어서 가자!”
“부인 조금만 더 걸을 수 있겠소?”
티리아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엘릭은 그녀의 어깨를 꽉 붙들며 말했다·
“조금만 참아주시오·”
“···예·”
엘릭은 곧장 그녀를 부축하며 걸음을 보채기 시작했다·
다행히 뤼튼도 오두막을 기억하고 있던 것인지 앞서는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
사박 사박―
눈을 밟는 소리가 온통 울린다·
그 한가운데서 티리아는 엘릭을 흘금 바라봤다·
잔뜩 걱정 어린 얼굴이었다·
‘열이 이렇게까지 오를 줄이야····’
티리아는 스스로의 안일함을 속으로 꾸짖었다·
하지만 이걸 미리 알았다고 해서 오지 않았을까 하면··· 고개를 젓게 된다·
역시 걱정 탓이다·
이런 계절의 이 산맥 그리고 엘릭이 함께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 까닭이다·
열기로 어지러운 와중 익숙하게만 느껴지는 눈 쌓인 산의 풍경 위로 흐릿하게 기억 속 풍경이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너 먼저 도망가!
갈색 머리의 아이가 목덜미에 피를 줄줄 흘리며 외치고 있었다·
표정은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그 뒤로는 싯누런 눈을 빛내는 검은 마수가 있었다·
-빨리!!!
그 외침이 왜인지 머리 속까지 선명하게 울리는 기분과 동시에
털썩―
티리아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부인!!!”
엘릭의 놀란 목소리가 그녀가 기억하는 마지막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