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 – #5 마수 사냥 (4)
티리아의 갑작스러운 기절에 엘릭은 무심코 그녀를 안아 들었다·
“끄윽···!”
무릎에 하중이 더해지며 통증이 인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짐에 깜짝 놀란 뤼튼이 손을 뻗었으나 엘릭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업고 가겠네· 어서 안내를 부탁하네·”
“대장! 하지만 무릎이····”
“괜찮네· 어서 가지·”
뤼튼은 이를 악 물다가 이내 조급한 기색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엘릭은 한쪽 어깨에 그녀를 메고 지팡이로 겨우겨우 중심을 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눈발이 짙어지며 시야가 좁아진다· 그렇기에 마나를 이용한 공간 탐지에 더욱 심력을 쏟게 된다·
그러던 중이었다·
“대장! 찾았어!”
한참이나 앞서가던 뤼튼이 오두막을 찾아냈다·
엘릭은 눈을 좁혀 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있다···!’
추억 속에나 존재하던 오두막이 여전한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생활감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스승은 떠난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은 모양·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엘릭은 곧장 오두막으로 걸음을 옮겨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듣기 싫은 소음과 함께 내부 전경이 드리워진다·
“콜록! 콜록!”
뤼튼이 비산하는 먼지에 손을 휘휘 저으며 기침했다·
그의 반응대로 내부는 희뿌연 먼지가 가득해 숨을 쉬기가 불편한 면이 있었다·
“일단 환기를 좀 하지· 이보시게들 자네들은 저기 불을 좀 떼어주게·”
엘릭은 사냥꾼들에게 장작불을 뗄 것을 명령하곤 티리아를 나무 침대에 눕혔다·
이리 껴입고 있음에도 몸을 떠는 꼴이 애처롭게만 보인다·
‘대체····’
어쩌자고 이런 몸으로 따라 나온 건지·
그녀가 야속하게만 느껴지는 시점이었다·
*
“일단 나는 마을 쪽으로 내려갔다 올게· 눈이 언제까지 올지 모르니까 도움이라도 청해야지·”
“부탁하네·”
“어 아저씨들 나 따라오쇼·”
먼지를 대충 흩어내고 벽난로에 불까지 지핀 순간이었다·
오두막 내부는 확실히 따뜻해졌고 그에 따라 티리아 또한 전보단 안정적인 기색으로 잠들기 시작했다·
뤼튼은 외부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사냥꾼들을 데리고 오두막을 나섰다·
엘릭은 그제야 둘만 남은 오두막에서 한숨을 돌리며 자리에 앉았다·
‘이게 무슨 고생인지····’
문득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성치 않은 몸으로 사냥에 따라 나온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 이건 사고였다·
하필 이리도 맑은 하늘 아래 갑작스레 폭설이 내릴 건 또 뭔가·
엘릭은 잡생각을 털어내며 장작불에 몸을 데웠다·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곤란하군·’
더위나 추위에 영향을 받는 경지는 이미 오래전에 넘어선지라 그에 따른 병은 걱정할 일이 없었으나 역시 문제는 무릎이었다·
한창 부상이 나아가던 중 괜한 무리를 해서 회복 기간을 늘려버린 게 아닌가·
그것이 참 곤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다행?’
왜 다행스러운 건가·
엘릭은 ‘끄응’ 소리를 내며 뒷목을 쓸었다·
‘스승님이 들었으면 경을 쳤겠어·’
몸 관리야말로 기사가 무엇보다 중요시해야 할 덕목임을 가르친 사람이다·
하필 스승이 살았던 오두막에 앉아 있으니 그의 생각이 더욱 치밀어 오른다·
엘릭은 오두막 내부를 둘러봤다·
모든 것이 그대로다·
벽에 걸린 목검도 책상 위의 깃펜과 누리끼리한 종이도 벽난로와 저 볼품없는 나무 침대까지·
떠나갈 때조차 제 물건이라곤 검 하나만 챙겨가던 사람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일까·
‘어디서 뭘 하고 계실는지·’
마음이 편해지니 그제야 생각이 다른 곳까지 치민다·
그의 흔적을 마주하고 있음에 문득 엘릭은 스승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
벌써 18년이 지난 과거의 일이었다·
당시의 엘릭은 막 사고뭉치로 마을에 이름을 날리던 여섯 살 꼬맹이였고 그날은 꼭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겨울날이었다·
당시 기사 놀이에 흠뻑 빠져있던 엘릭은 마을 아이들을 이끌고 뒷산을 향했다·
마수 사냥·
뭣 모르는 아이들끼리 제 목숨을 건 여정을 나선 것이다·
사실 그전까지도 마수 사냥을 명목으로 뒷산에서 뛰어놀았던 일이 잦았기에 딱히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진 아이는 없었다·
어른들의 말이야 한창 잔소리처럼 여겨질 시기가 아니던가·
이젠 얼굴도 흐릿한 여러 친구 거기에 뤼튼과 바트까지·
엘릭은 친구들과 옹기종기 열을 맞춰 산을 올랐고
“그르르르―”
하필 그날 마수를 만났다·
새까만 몸체에 싯누런 눈깔·
엘릭의 기억은 그것과 조우한 일이 마지막이었다·
이후의 일은 지금까지도 안개 낀 듯 흐릿하여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날 마수를 만나고 목덜미에 큰 상처를 입었고 그 흉이 아직까지 귓불 아래 남아 있다는 것이다·
스승은 그날 만난 사람이었다·
“일어났나·”
엘릭이 정신을 차린 곳은 오두막의 침대 위였다·
그는 봉두난발로 헤친 흰머리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이나 짐승의 가죽을 잘라 얼기설기 엮은 옷은 산 한가운데 살아가는 산적의 꼴이었다·
그럼에도 늙수그레한 목소리 어딘가에선 묘한 힘이 느껴지는 신비로운 사내였다·
“주제에 마수와 대치하는 패기는 좋더구나·”
스승은 마수와 대치하던 엘릭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마수 앞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버티고 있었다던가·
엘릭은 마수가 놀이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스승이 그걸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금방이라도 죽을 상황이었다는 말을 이후에나 들을 수 있었다·
이후의 일은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엘릭은 목과 턱쪽에 붕대를 감은 채로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것에 스승은 그런 제안을 해왔었다·
“가 감사합니다아····”
“감사할 이유는 없다· 공짜로 살려준 건 아니니·”
“네?”
“꼬마야 나에게 검을 배워라·”
다시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긴 했다·
“아저씨가 누군데요?”
어찌나 버르장머리가 없는지 엘릭은 과거의 자신이 참으로 징글징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것을 참아낸 스승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스승은 딱 한 마디를 했다·
그 한마디로 엘릭을 매료시켰다·
“기사·”
그 형형하던 금안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기사다·”
그것이 스승과의 첫 만남이었다·
*
타닥 타닥―
난로 속의 장작이 비명을 지른다·
엘릭은 꼬챙이로 장작을 헤집으며 지긋한 미소를 지었다·
‘참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스승과의 일을 떠올리니 이제와 느껴지는 기이함이 참 많았다·
우선 그의 정체 엘릭은 아직까지도 스승이 무얼하던 사람인지 몰랐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는 일체의 관계도 가지지 않은 채 이 위험한 산 중턱에서 사냥으로 생을 이어가던 사람이었다·
언젠가 왜 마을에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 “나는 인간하고만 교류한다·”였던가·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수련 방식도 참 이상했지·’
스스로를 기사라 말하고 실제 검술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으나 그의 수련법은 이제와 돌이켜보면 참 이상한 구석이 많았다·
전장을 전전하며 살아온 엘릭은 이제 기사가 되기 위해선 강건한 육신과 정련된 마나가 기사의 필수요소임을 알았다·
그를 위해선 신체의 단련이 필요했고 또한 정신 수양을 통한 마나의 통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의 수련은 달랐다·
-검계(劍界)를 열어라·
그는 그 한마디만을 던지곤 오로지 대련만을 반복했다·
아니 대련이라는 말도 우습다·
그가 한 일은 엘릭을 끊임없이 살기에 노출시키는 일이었다·
-일어서라· 인간은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
라는 말만 반복하며 날이 시퍼렇게 선 검을 휘둘렀던 게 아닌가·
물론 마나연공법을 가르치긴 했는데 그게 정신 수양을 통해 강해지는 연공법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엘릭은 아직도 그가 가르친 마나연공법의 이름을 몰랐다·
그저 스승의 말을 빌려 편의상 ‘검계(劍界)’라고 부를 뿐이었다·
우스운 점이라면 그 수련이 실제로 통했다는 것일까·
방어는 생각지도 않는 공격일변도의 검술· 그리고 살기가 진할수록 더욱 강한 힘을 뿜어내는 기이한 마나연공법·
엘릭이 19세의 나이로 대륙 7강에 오른 일에 그것들이 지대한 영향을 차지하고 있음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생각을 이어가던 엘릭은 의문을 떠올렸다·
‘살아는 계실까?’
그는 엘릭이 딱 12살이 되던 날 이 오두막을 떠났다·
그저 떠날 때가 되었다는 말만 남겨 엘릭으로서도 그의 행방은 알지 못했다·
워낙 강했던 사람이니 칼을 맞아 죽었을 리는 없겠지만 생각해보면 이미 노인이던 사람이다·
노환으로 명을 달리했을지는 또 모를 일·
‘음··· 그건 아니겠지·’
그가 노환으로 죽는다니 엘릭은 암만 생각해도 그런 장면이 그려지지 않았다·
헛웃음이나 흘리던 순간이었다·
흠칫―
엘릭의 몸이 떨렸다·
고개가 번쩍 들렸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마을이 있는 방향·
넓게 펴둔 마나 그물에 기척이 잡히고 있었다·
“이런···!”
엘릭이 벌떡 일어났다·
잡힌 것은 블레이드 울프 정도는 될 강건한 마나를 두른 개체·
‘하나가 아니다!’
그것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다섯 마리·
포위하듯 퍼져 진열을 이루는 한가운데 있는 것은
“뤼튼!”
뤼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