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 – #5 마수 사냥 (6)
뤼튼은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그런 감상은 엘릭이 자신의 몸에 상처와 멍을 내고 블레이드 울프를 난도질하고 주변의 멀끔하게 잘린 나무들까지 다 으깨는 동안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여기서 헤어지지· 나는 오두막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라고 말한 엘릭이 절뚝절뚝 온 길로 사라진 후에도 뤼튼은 멍했다·
욱씬거리는 감각이 전신을 두드린다·
우그러진 갑옷이 움직임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것들을 꾹 참아내며 마을로 돌아온 순간
“기 기사님!!!”
사냥꾼들의 목소리에 그제야 뤼튼은 어느 정도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
“살아 계셨군요! 한데 꼴이····”
사냥꾼의 리더가 울먹거리는 얼굴을 만드는 것에 뤼튼은 멋쩍게 웃었다·
확실히 거울이 없어 얼굴은 확인할 수 없지만 고개를 숙여 확인할 수 있는 몸은 전쟁이라도 치르고 온 사람의 꼴이 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무어라 변명해야 할까 생각하던 뤼튼은 결국 그리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올시다·”
“아무것도 아니긴요! 부상이 이리도 심각하신 걸요! 그 그보다 마수는요? 지원요청을 하긴 했는데····”
“처리했수· 블레이드 울프·”
쩌저적 사냥꾼들의 몸이 굳었다·
그들의 얼굴 위론 놀라움을 넘어 경탄의 기색까지 자리하기 시작했다·
“브 블레이드 울프라면····”
“그 상위 마수잖아· 게다가 여러 마리라고 하셨었는데····”
“역시 기사는····”
웅성거림은 사냥꾼들 사이에 국한되지 않았다·
마을의 주민들마저 뤼튼을 숫제 괴물을 보듯 바라보기 시작했다·
뤼튼은 이 일을 설명할 길이 없어 머리를 긁적거렸다·
떠오르는 것은 엘릭의 일 검·
인지할 수도 반응할 수도 없었던 그 불가해의 수법이었다·
‘생각해보면 검도 들지 않았었지·’
그렇다면 지팡이로? 한데 지팡이로 그렇게 깔끔하게 베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 그걸 떠나서 엘릭은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단 말인가·
분명 10년 전에도 마을 아이들 중 유독 독보적으로 강하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수법을 사용할 새싹으로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뤼튼은 혼란스러워하다 이내 생각을 포기했다·
그저 빙긋 웃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역시 대장이야·’
생각을 멈추니 그제야 속이 후련해진다·
그래 뭐가 됐든 일이 잘 해결됐으니 만사형통인 것 아니겠는가·
뤼튼이 속에 있던 무언가를 내려둔 시점 웅성거리던 사람들 사이에선 그런 말이 오가고 있었다·
“블레이드 울프라면 그 발톱에 칼날이 있는 마수?”
“그걸 사람이 이겼단 말이야? 그것도 여러 마리를?”
“소 소드 브레이커! 소드 브레이커 뤼튼!”
소드 브레이커 뤼튼·
그 경외를 담은 별칭이 위빈의 한구석에 있는 마을에서부터 조용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엘릭과 티리아가 구조된 것은 그로부터 또 몇 시간 뒤의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눈수레를 이끌고 골짜기를 올라 오두막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포트먼 부부를 마을까지 데려왔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알디오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엘릭을 얼싸안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포트먼의 저택·
“마님의 열이 상당히 높습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정양하셔야 할 듯합니다·”
“알겠네· 나는 조금만 더 있다 나갈 테니 자네는 일을 보시게·”
“예·”
알디오가 고개를 숙인 후 티리아의 방을 빠져나갔다·
엘릭은 침대에 누운 티리아를 가만히 응시했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걱정되는 마음 절반 무모한 행동에 분노하는 마음 절반·
눈을 뜨면 꼭 이 일에 대해 따져야겠다는 마음이 굳건히 자리하기 시작한다·
그에 한숨을 푹 내쉬던 중이었다·
엘릭의 시선은 이윽고 그녀의 방을 훑기 시작했다·
‘단촐하군·’
티리아가 지난 10년 간 새로운 물건을 잘 들여오지 않았다는 걸 단숨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단촐한 구성이었다·
침대와 선반 그리고 책장 하나와 쪽문·
저 뒤쪽이 드레스룸이겠지·
돌이켜보면 이리 그녀의 방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 그에 새삼스러운 감정이 들기도 멋쩍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생각하며 엘릭은 다시금 그녀를 바라봤다·
언제나 창백할 정도로 새하얗던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식은땀이 조금 흐르는 것도 같았고 호흡은 거칠었다·
엘릭은 손수건으로 콕콕 그녀의 이마를 찍었다·
그럴 때마다 인상을 쓰던 얼굴이 조금씩 풀어졌는데 그 반응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우스워 엘릭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아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소·”
하필 블레이드 울프 다섯 마리가 나와 무릎도 생각지 않고 산을 내달려버렸다·
덕분에 회복됐던 무릎이 다시 상해버렸고·
회복 기간이 길어진 것에 더불어 처음 부상을 입었던 때처럼 가만 앉아만 있어도 무릎이 쑤실 지경이 되었다·
곤란한 일이다·
“정말 곤란하오· 너무··· 많이·”
부상을 핑계로 이곳에 남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해서 그게 곤란했다·
“내가 너무 염치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소·”
어느새 엘릭의 손은 멎어있었다·
“이곳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는 나를 발견하오· 그게 썩 나쁘지 않게 느껴져 아침마다 너무 개운한 게 아니겠소·”
말하는 순간이었다·
움찔 티리아의 몸이 떨리더니 이내 그녀의 눈이 스르르 뜨였다·
엘릭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부이··· 어윽!”
무릎의 상태도 잊고 벌떡 일어났다가 그대로 통증에 휘청인다·
인상을 찌푸리며 중심을 다잡은 엘릭은 티리아를 살폈다·
“···음?”
눈이 몽롱하게 풀려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끔뻑끔뻑 눈을 깜빡이다 시선을 자신에게로 향한다·
눈이 마주쳤고 티리아가 더듬더듬 엘릭의 검지를 움켜쥐었다·
힘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부인···?”
“····”
티리아는 움켜쥔 엘릭의 검지를 가만 보더니 이내 몸을 웅크리며 엘릭의 손을 끌어당겼다·
엘릭은 당황하며 그녀의 의도대로 끌려갔다·
손이 티리아의 품에 꼬옥 안긴 꼴이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가만 더 관찰해보니 그녀는 곧장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엘릭은 헛웃음을 흘렸다·
“안고 자는 물건이 필요한 쪽이셨구려·”
티리아의 안색이 한결 편해져 있었다·
*
티리아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엘릭은 집무실로 향했다·
그녀가 쉬는 동안 저택의 일은 자신이 돌봐야 할 터·
그간 배운 것도 있는 만큼 간단한 일 처리는 가능했기에 곧장 서류를 펼친 시점이었다·
펜을 쥔 손을 본 순간 엘릭은 문득 다른 생각에 사로잡혔다·
일만 시작하면 괜히 집중력이 흐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감이 조금 무뎌졌나?’
엘릭은 설산에서의 블레이드 울프를 처리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조금 더 깔끔하게 베어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당시에야 급박해서 무심코 넘어갔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전장에 있던 때보다 마나의 조절에 서툴러진 것도 같았다·
아무렴 최초 목적했던 것은 주변 나무를 피해 깔끔하게 블레이드 울프만 써는 것이지 않았나·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았고 쥐어진 검이 없기도 했지만 사실 그런 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마나를 칼처럼 벼려 몸 주위로 뿜어내는 기술이었으니 검이 필요치도 않았다·
엘릭은 인상을 찌푸렸다·
원인은 곧장 파악됐다·
‘살기가 줄었군·’
검계는 날카롭게 벼린 살기로 마나를 통제 아래 두는 수법이다·
일반적인 마나 연공법과 다르게 살기에서 멀어질수록 마나의 통제 또한 힘들어진다·
마나의 총량이나 가진 힘이 준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뿜어내는 마나의 양을 조절하지 못해 세밀함을 잃는다·
즉 이대로 전장에 나서게 되면 아군이고 적군이고 할 것 없이 한 번에 휩쓸어버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었다·
실제로 살기의 통제가 힘들었던 시절엔 전장 한복판에서 아군까지 다 휩쓸어버린 일이 꽤 많았다·
그것 때문에 생겼던 원한 관계도 몇 존재했다·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갔다간 그때와 같은 사고를 또 칠지 모르니까·
‘재활 훈련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도 무심코 망설이게 된다·
위빈의 목가적인 분위기가 이리 사람을 무뎌지게 만든 것이었다·
다시 전장에 돌아간다·
그 명제를 떠올릴 때마다 떠오르는 망설임은 날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었다·
“후으····”
엘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노크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도련님·”
“음? 무슨 일인가?”
“뤼튼 경께서 복귀 전에 인사를 하고 가시겠답니다·”
벌써 떠난단 말인가?
엘릭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바로 가도록 하지!”
딱 지팡이를 짚으며 집무실을 나섰다·
곧장 향한 곳은 접견실이었다·
“아! 대장 왔어?”
뤼튼이 호쾌하게 웃으며 그를 응대했다·
하지만 엘릭은 웃지 못했다·
“음? 표정이 왜 이래?”
장난스럽게 웃는 뤼튼은 꼭 몽둥이 찜질을 당한 것처럼 온몸이 푸르딩딩하게 멍들어 있었다·
엘릭이 한 짓이었다·
‘···조금만 살살할 걸 그랬나?’
문득 미안한 마음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