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 – #8 수도행 (2)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티리아 위빈··· 아니 이제는 티리아 포트먼이 된 여인에 대해 조금 더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이곳 위빈의 전 영주였던 위빈 가의 독녀이자 이 땅의 유일한 귀족 영애로 살아온 여인이었다·
당연 그녀의 살아온 삶이 엘릭과 같을 리는 없지 않겠나·
전통과 역사 그리고 기품과 교양에 관한 교육을 걸어 다닐 때부터 받았던 여인이 바로 그녀다·
유년기 때부터 구태여 편한 기술을 멀리하고 오랜 관습에서 비롯된 예절 교육을 받아온 것이다·
그런 성장 과정이 그녀의 고루한 성향에 영향을 미쳤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복잡한 기관과 전력을 이용하는 모든 문물에 무지했다·
불을 지피는 것은 양초가 할 일이라고 여겼고 농사란 것은 사람이 손으로 해야 옳은 줄로 알았으며 이동이란 것은 말과 마차로 해야 함을 믿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상황 또한 그 연장선이었다·
미지를 마주한 순간 누군가는 그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 욕구를 불태운다· 누군가는 경계심과 거부감을 띄워 올린다·
엘릭은 전자였고 티리아는 후자였다·
그녀에게 아직 세상에 자리 잡은 지 얼마 안 된 기계 문물 그중 증기를 뿜는 거대한 쇳덩어리인 기차는 그저 포악한 괴물로만 보이는 것이다·
“마차로 하지요·”
완고했다·
이루 말할 데 없이 완고한 의지의 표명이었으며 이는 엘릭의 속에 작은 불만 그리고 큰 장난기를 자아냈다·
앞서 일렀듯 엘릭은 새로운 것을 마주할 때면 호기심과 도전욕에 사로잡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새로운 면모라 해서 예외적일 리는 없었다·
“내가 꼭 기차를 타아겠다면 어쩌시겠소?”
티리아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하나 이번만큼은 그녀가 무섭지 않았다·
친근감이었다· 완벽하기만 한 타인보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타인이 더욱 친근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 아니던가·
그뿐만 아니었다·
엘릭은 스스로가 선진 문물에 꽤 해박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아무렴 그의 청년기를 내내 함께했던 친우 엘버스 그레이엄은 대륙 문명의 심장인 제도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 편의함과 경이로움을 티리아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마침 적당한 변명거리도 있었다·
“사실 지난 마수 사냥 때 산을 오르며 무리를 한 일이 있었소· 상처가 덧나서 가만있어도 쑤시는 일이 좀 잦구려· 마차처럼 덜컹거리는 걸 탔다간 무릎이 너무 아파 곤혹스러워질 듯하오·”
엄살은 덤이었다·
엘릭은 무릎을 손으로 쓸며 풀 죽은 얼굴을 만들었다·
티리아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워낙에 표정 변화가 없어 기색을 알아채기 힘든 그녀지만 맥락상 그녀의 속에 있는 것이 곤혹스러움임을 모를 수는 없었다·
“···기차도 덜컹거리긴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마차보단 덜 하오· 애초에 그정도로 빨리 움직이니 진동을 크게 느낄 새는 없더구려·”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
“왜긴 위빈까지 오는 길에도 기차를 탔으니 알지 않겠소?”
“····”
기세를 탔다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게다가 기차라면 시간 단축에도 용이하지 않소· 일주일은 걸릴 수도행을 하루 안에 끝내줄 수 있소· 그뿐이오? 가는 경비도 훨씬 절감할 수 있지 않소· 부인께선 언제나 절약을 말하지 않았소·”
조목조목 맞는 말이었다·
사실상 엘릭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승부였다·
왜 아니겠는가 기차란 것은 결국 마차의 상위호환이다·
문명의 발전에 따라 더 나은 형태로 진화한 이동 수단이다·
그저 감정적인 이유로 기차를 꺼리는 티리아의 주장은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것은 티라아의 연전연패였다·
“식사는····”
“기차 안엔 꽤 맛난 먹거리가 있다오·”
“엉덩이가 아플····”
“그것 아시오? 기차의 일등석은 좌석에 고급 시트지를 쓴다오· 그 아래 솜 따위를 덧대어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의자보다 더욱 편안한 면이 있소·”
“화장실····”
“일등석엔 있소·”
애초에 그 콧대 높은 제도 귀족들도 만족시키고자 제작한 것이 일등석이다·
귀족치곤 소담한 그녀가 원하는 것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기차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체스로 치자면 체크메이트·
티리아가 빠져나갈 구석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감정을 드러내며 울컥하기보단 이성적인 승복을 떠올리는 여인이었다·
“···고려해보겠습니다·”
고려라고 하지만 알겠다는 뜻과 같았다·
“알겠소!”
괜한 기대감이 그의 속에 차올랐다·
*
이변은 없었다·
결국 티리아는 기차 이동을 결정했고 저택은 그에 따른 수도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와중 엘릭에게 있던 사고라면 축약된 이동시간만큼 더욱 일을 하게 된 것·
그리고 티리아가 그 일에 더 엄한 잣대를 들이민 것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틀렸습니다· 다시 하시지요·”
고저 없는 조곤조곤한 말투 한 줌의 감정조차 흘리지 않는 무표정 그리고 철두철미함까지·
모든 것이 이전과 같았지만 엘릭으로선 그녀가 보복하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마음을 드러낼 정도로 엘릭이 멍청하진 않았다·
그는 겸허히 수용의 의사를 드러내며 그녀가 지시를 따랐다·
그렇게 일주일·
수도로 떠나는 날이었다·
“도련님 마님· 어서 가시지요·”
따라오는 인원은 알디오와 하녀장 그리고 티리아를 시중들 하녀 두 명이 끝이었다·
애초에 포트먼 가가 수도에 구매해둔 저택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었다·
묵을 곳은 전대 가주인 엘릭의 부친이 업무상의 목적으로 위치만 고려해 산 작은 집이다·
인원의 과잉은 안 될 말이었다·
“···한데 정말 호위가 없어도 되겠는지요·”
기차역에 온 후로도 티리아는 영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며 그리 물었다·
엘릭은 웃으며 답했다·
“기차엔 호위를 들이지 않소· 애초에 이 철도가 범 대륙적인 기업으로서 자체적인 보안을 견고히 해둔 참이니 7강이 나서지 않는 이상 사고는 있을 수 없소·”
“7강이 나온다면 달라진다는 말씀이십니까?”
“적어도 페르딘 왕국에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지·”
더군다나 서부라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야 만나본 일이 없어 잘 모르지만 엘릭이 만나본 모든 7강 중 공연히 철도를 테러할 만큼 정신머리가 나간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래봐야 염화 이그렛이나 마왕 제르디아 정도였는데 그 둘은 이 철도를 운영하는 기업의 대주주들이었다·
가능성이 0에 수렴해버리는 것이다·
“혹시 겁먹었소?”
티리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아닙니다·”
딱딱한 말투였다·
그것이 엘릭의 속에 묘한 간질거림을 일게 했다·
허리를 쭉 편 곧은 자세나 청초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조금은 깨어진 느낌·
꼭 스스로 겁먹은 것을 숨기려는 작은 초식 동물 같았다·
아직도 아이들이나 할 법한 장난질에서 영 벗어나지 못한 엘릭에겐 자극적인 모습이었다·
“그럼 되었지 않소· 곧 기차가 오겠구려·”
일등석은 대기하는 공간이 따로 존재했다·
콧대 높은 귀족 나리들을 위한 철도사의 안배였는데 그 덕에 엘릭은 평온한 마음으로 티리아와 한담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위빈 역에서 수도로 향하는 귀족이라 해봐야 자신들과 위빈 가 뿐이 아니던가·
그리고 위빈 가의 일정에 관해선 이미 얻은 정보가 있었다·
사흘 전에 수도로 향했다던가·
지금쯤이면 그들이 사랑하는 사교모임이나 전전하고 있을 터였다·
‘음····’
왕실 연회에 참석하면 그들의 얼굴을 또 보게 되겠지·
영 기껍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 다신 아군이 될 의향이 없다 못 박으며 협박에 가까운 일까지 했으니 불편함이 있는 것이다·
엘릭은 공연히 품속의 날 죽은 단도를 매만졌다·
혹여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수작질을 부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떠오르던 중이었다·
뿌우우우우―!
대기를 진동시키는 경적 소리가 일었다·
직후 칙칙칙칙 괴물의 가쁜 숨소리를 닮은 증기 소리가 일었다·
“왔구····”
말하려던 엘릭은 그 순간 볼 수 있었다·
“···려?”
티리아의 몸이 쩌저적 굳어있었다·
시선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혼이 쏙 빠진 모습이었다·
단언컨대 엘릭은 티리아가 이렇게까지 긴장한 모습을 처음 봤다·
감정을 얼굴 위로 드러낼 정도라니·
그녀의 문명 공포증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쿵 쿵 쿵 쿵·
엘릭의 예민한 감각이 빨라지는 그녀의 박동을 인지했다·
“···부인?”
“가지요·”
딱딱하게 굳은 말투였다·
티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동작이 사뭇 경직되어 있었다·
꼭 목각 인형 같은 움직임이었다·
엘릭은 입꼬리가 제멋대로 솟아오르려는 것을 참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치이이이이익―!
기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내리는 것은 정복을 입은 다부진 인상의 사내였다·
적어도 기사급 마나를 품은 무장 병력이었다·
“포트먼 남작 내외분이 맞으십니까?”
서글서글한 태도로 말을 건네옴에 엘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내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잘 교육되어있는 태도였다·
엘릭은 티리아를 이끌고 기차에 올라탔다·
그 순간 이는 장난기가 있었다·
엘릭을 티리아를 흘끔 보다가 귓속말로 중얼거렸다·
“부인 기차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하오·”
티리아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시선이 빤히 엘릭을 향하기 시작했다·
선을 넘었나? 장난기가 과했음을 인지한 엘릭은 제 발 저려 사과했다·
“···미안하오·”
머쓱하기까지 해서 뒷목을 쓸며 기차에 올라탄 엘릭은 몰랐다·
티리아가 한순간 그의 사과가 있기 전까지 진심으로 신발을 벗으려 했다는 것을·
진실은 고요하게 묻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