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9 – #8 수도행 (3)
일등석은 칸막이로 각 좌석이 나눠진 구조였다·
그저 시야를 차단하는 칸막이는 물론 아니었다·
이 좌석의 칸마다 걸린 마법이 아는 것만 3개가 넘는다·
방음 시야 차단 그리고 충격완화·
귀족나리를 위한 칸이란 게 확실히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 아늑함에 티리아의 긴장도 조금은 잦아들었다·
물론 오래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뿌우우우우―
경적음이 일며 기차가 크게 덜컹이는 순간 티리아가 바짝 굳었다·
그 이후는 더욱 극심했다·
멀미를 고려해 티리아를 창가에 앉힌 참이다·
한데 스쳐 지나가는 풍경의 속도에 그녀가 휘청거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엘릭은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뭐 하시오?”
“무슨 말씀이신지·”
그녀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왜인지 곧았던 자세가 점점 움츠러들고 있었다·
시선은 이제 창밖이 아닌 제 무릎 위를 향하고 있었다·
엘릭은 이런 중증의 문명 공포증을 앓은 여인을 생전 본 일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겁을 먹으니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 치솟았다·
“뭐라도 마시겠소?”
“예 부디·”
제발 달라는 말로 들렸다·
엘릭은 칸막이를 두 번 노크했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예의 직원이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여기 차를 두 잔만 내어주게· 나는 아무거나 좋고··· 부인은 뭘 드시겠소?”
“다리아 잎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렇다는군·”
다리아 잎은 동부에서 재배하는 찻잎 중 하나였다·
진정 효과가 있는 걸로 유명했다·
“금방 준비해드리지요· 다과도 필요하십니까?”
“간단하게 부탁하네·”
“예·”
직원은 그의 말대로 꽤 빠른 속도로 차를 달여왔다·
쿠키 몇 개를 함께 내어왔는데 티리아는 그것에 손도 대지 못했다·
엘릭이 본 것은 신기한 광경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식사를 할 때조차 식기 부딪치는 소리를 내지 않던 그녀가 찻잔을 덜컥거리고 있었다·
혼이 빠진 얼굴이었다·
호록호록 차를 마시기는 하지만 기계적이기 그지없었다·
이젠 정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내 미안하구려· 괜히 기차를 타자고 해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었소·”
“농담을 좋아하시는군요· 가주께서는·”
대체 언제까지 강한 척을 할 심산인 걸까·
그녀의 완고함에 혀가 다 내둘러질 정도다·
티 내지 않고 싶어 하니 괜히 들쑤실 필요는 없겠지·
엘릭은 더 이상 같은 일로 화제를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약 두 시간 좌석에는 티리아의 긴장이 만들어낸 묘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중간에 식사가 나왔으나 그녀는 제 몫을 반도 처리하지 못했고 그 뒤론 책이라도 보며 진정하려는 노력을 보이다 되려 멀미가 심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녀의 꼴은 마치 고문이라도 당하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이미 탄 기차에서 내릴 수는 없는 법이다·
공연히 엘릭의 손은 티리아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런 행동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그녀였지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오늘의 티리아는 그대로 엘릭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
그녀의 체향이 짙어짐에 엘릭의 숨이 턱 막혔다·
왜인지 숨이 뜨거워졌고 시선은 허공을 맴돌았다·
낯간지러운 긴장감이 엘릭을 괴롭혔으나 오래가진 못했다·
“···부인?”
흘긋 확인한 티리아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이 벌어져 있었다·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언제 도착합니까?”
멀미와 공포증이 혼재되어 파르르 떠는 모습이 사뭇 애처로웠다·
“음 일곱 시간은 더 가야하는 줄로 아오·”
“그런····”
그녀의 손이 애원하듯 엘릭의 외투 자락을 움켜쥐었다·
엘릭의 입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땡~ 땡~ 땡~!
방음 마법을 뚫고 종소리가 울렸다·
엘릭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방음 마법을 넘어 전해지는 종소리는 하나뿐이었으니까·
“···무슨 일입니까?”
티리아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의아함과 당황스러움이 그의 속에 엄습했다·
‘이게? 진짜? 왜?’
지난 10년 기차를 그렇게 많이 타면서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사고가 하필 오늘 지금 이 시간에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덜컥!
문이 열렸다·
직원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테 테러입니다! 좌석 문을 걸어 잠그고 대기해주십시오!”
기차 테러·
삐걱삐걱 엘릭의 고개가 티리아를 향했다·
그녀는 세상이 무너진 듯 황망한 얼굴로 직원을 멍하니 바라보다 엘릭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눈동자에는 노골적인 원망이 차오르고 있었다·
말로 하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의중이 한눈에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테러 같은 건 없을 거라며·
그런 목소리가 왜인지 귓가에 꽂히는 듯했다·
직후였다·
“아···!”
티리아가 휘청거리다 결국 혼절했다·
“부 부인!”
엘릭은 황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
참 우습지도 않은 우연이다·
엘릭은 좌석에 티리아를 눕히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직원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오?”
직원은 곤란하다는 듯 표정을 흐리며 말했다·
“그 마부들입니다·”
“마부?”
“장거리 운행을 하던 마부들이 기차 탓에 일자리를 잃었다며 폭약 테러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이등석 칸에····”
“가지·”
“예?”
“거기 일행이 있네·”
하필 또 이등석이군·
알디오와 하녀들이 있는 칸이다·
혹여 그들에게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엘릭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칸막이를 나섰다·
직원은 허둥대며 엘릭을 뒤쫓았으나 엘릭에겐 그를 신경 써 줄 여유가 없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처리····”
“되었네· 내게 사고가 생긴다 한들 자네 탓은 하지 않을 테니·”
이들로선 귀족이 휘말리는 것만큼 큰 사고는 없을 것이다·
엘릭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긴 하나 폭약 따위를 무서워할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지 않던가·
여차하면 몰래 살기를 쏘아내 테러범들을 살해할 마음까지 품고 있었다·
그렇게 칸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그 그런 게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직원의 말과 함께 이등석의 풍경이 드리워졌다·
그 순간 엘릭이 쩌저적 굳었다·
“자 상황 끝! 이제 다들 수습합시다· 거기 너 폭탄 수거하고 너는 이 시체들 좀 안 보이는 곳에 치워놔· 자자 승객 여러분! 저희 기차는 안전합니다· 이건··· 음 이벤트로 하죠· 무료한 삶에 문득 찾아온 위기? 어떻습니까?”
그곳에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가는 한 사내가 있었다·
빼빼 마르고 길쭉한 체형 머리칼은 허리까지 오는 장발을 땋아 그 위로 장식물을 부착했고 복장은 금색과 검은색이 섞인 화려한 정복이었다·
“마부들의 테러 뉴스 한 켠에 실릴 만한 소식이지요· 뭐 제가 사고를 다 처리해버렸으니 그것도 같이 실리겠군요· 이참에 테러의 소지가 있는 이들을 전반적으로 조사하는 과정을 거쳐도 되겠어요· 음 좋아요· 이제 다들 이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이상으로 언제나 여러분의 편의에 힘쓰는····”
그가 길게 허리를 숙이며 과장된 예식을 취했다·
“EW의 회장 에드워드 와이트였습니다·”
“와 와아아아!!!”
함성 소리가 공간 전체를 진동시켰다·
그의 미소가 이루 말할 데 없이 짙어졌다·
엘릭은 혼란을 느꼈다·
이어 무릎이 온통 쑤시는 감각을 느꼈다·
‘어째서?’
저자가 여기에 있는 것인가·
엘릭의 안색이 차게 식었다·
눈동자에 맺힌 것은 경계심 그리고 적의였다·
“음?”
에드워드 와이트 몸을 돌린 그가 엘릭을 발견했다·
이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니
“이런····”
짓궂은 기색이었다·
“···기막힌 우연의 일치가·”
그의 가슴팍 거대한 궁궐이 양각된 뱃지가 빛났다·
“오랜만이구먼? 한 4개월만인가?”
“무슨 수작이지?”
“수작은 무슨·”
끅끅 에드워드가 웃었다·
“이러지 말고 우리 자리나 옮깁시다·”
그가 엘릭을 지나쳐 일등석으로 향했다·
엘릭은 그제까지도 적의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 와이트·
EW라 불리는 기업의 총수이자 시대를 바꾼 이 대륙 지고의 지성 그리고 진리를 봤다 일컬어지는 연금술사·
그리고 그런 그를 경외하여 붙인 이름이 바로·
‘금공(金公)·’
대륙 7강 중 1인 금공 에드워드니까·
그는 아르민 왕국의 실권자인 황금의 공작이었다·
또한 가을의 전쟁에서 엘릭의 무릎을 고장 낸 장본인이었다·
무릎이 아려왔다·
“안 오고 뭐하쇼?”
그의 금안이 모노클 너머로 빛났다·
“거기 그러고 있을 생각?”
싱긋 웃는 꼴은 꼭 광대의 것처럼 익살스럽기 그지없었다·
엘릭은 그를 험악하게 노려보며 일등석으로 향했다·
그의 좌석은 일등석 중에서도 가장 넓은 끄트머리 공간이었다·
“자 여기 앉으시고·”
그가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우리 검귀 어르신!”
에드워드는 오랜 친우를 만난 것처럼 친근하게 말했다·
“안색 좋아 보이는구먼!”
지팡이를 쥔 엘릭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자연히 공간을 인지하게 된다·
방 하나의 크기 자리에 있는 것은 그와 자신 둘뿐·
무기는 있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출수가 빠르다·
왜 그가 이곳에 있는가?
이 모든 게 진정 우연이란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이 기차와 철도의 주인이 눈앞의 사내일진대·
문득 티리아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여차하면····’
저놈을 죽이고 탈출을 감행해야겠지·
엘릭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것은 꼭 전장을 전전하던 검귀 카샤의 것과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