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1 – #8 수도행 (5)
“···전쟁이 길어지길 바란다· 이 말뜻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카샤가 느릿하게 말했다·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에드워드는 차오르는 긴장을 억누르며 답했다·
“제대로 들은 거 맞습니다· 목적도 어르신이 생각하는 그게 맞고·”
“돈놀이에 미친 건가? 전쟁을 길어지게 해서 돈을 더 쓸어담겠다?”
“그만큼 많은 돈이 필요한 일을 계획 중이라서·”
에드워드는 생각했다·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까지 숨겨야 할까·
카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신뢰를 줄 선이 어디일까·
이윽고 내뱉는 말은 그러했다·
“다음 세대의 무기를 개발 중이거든요·”
“···다음 세대?”
“화승총 다음·”
카샤의 인상이 험악하게 찌푸려졌다·
알 만한 일이다· 애초에 그의 무릎을 아작 낸 것이 자신의 볼트액션이 아니던가·
그다음을 노린다는데 어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
‘하지만····’
그렇다고 이 얘기를 숨기자니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다·
에드워드는 부지런히 입을 놀렸다·
“어르신이 개입하면 우리 전쟁이 너무 빨리 끝나· 나는 이 전쟁이 3년 정도는 더 이어지길 바라고 있어· 무기 개발 및 실전 배치 시험 그리고 조율을 끝내기 위해선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잖아? 그런데 전면전에 들어서면 그게 안 된단 말이지·”
지금의 서부는 폭발 직전의 화약고였다·
떨거지들을 수호하던 카샤가 사라지며 4개 왕국이 멸망했다· 그에 이어 7강 중 여섯이 각자 전선에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누구 하나가 움직이는 순간 피바다다·
협상은 없다·
에드워드는 그 본인부터가 염화 이그렛과 마왕 제르디아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쪽이지만 국가 간의 입장 차이란 것이 있는 만큼 전장에 들어선다면 그들과도 한쪽이 죽어 나갈 때까지 싸울 터였다·
그런 상황에 카샤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준다니·
“아르민을 도와달라곤 안 해· 그냥 어르신이 요양 생활을 더 즐겨줬으면 하는 겁니다·”
에드워드는 이것이 걸어볼 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애처가인 것 같단 말이지·’
부인 얘기를 꺼내는 순간 울컥해서 살기를 쏘아내는 점이나 그 이전에 부인 앞에선 순한 양의 탈을 쓰고 있던 점을 생각하면 그럴싸한 추측이었다·
‘그러니까 이젠····’
굳히기에 들어가야지·
맨입으로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저쪽에서 받아줄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협상이라고 생각합시다· 어르신한테 우리 기업 지분 좀 드릴까 하는데·”
카샤의 손끝이 움찔했다·
에드워드는 속으로 작게 놀랐다·
‘통하나?’
이건 좀 의외·
에드워드가 알던 카샤는 돈에 그리 큰 욕심이 없는 사내였다·
지금은 멸망한 4국의 편에 선 이유조차 죽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면 설명이 될까·
7강을 보유한 국가들이 그를 전력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막대한 자금과 지위를 약속했음에도 그는 끝까지 그 요구들을 쳐냈었다·
이제와서 그 의견에 흔들리는 이유가 뭘까····
“얼마나?”
“1%· 많이는 못 줘· 내가 우호 지분이 아슬아슬해서·”
“그 상속인이 나여야만 하나?”
아 이거구나·
에드워드의 눈이 빛났다·
‘애처가 확실·’
“뭐 원하는 곳으로 돌려드릴 수 있수다· 어르신도 참 부인 사랑이····”
“금공·”
툭 카샤의 손끝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하나 그 영향은 소리처럼 앙증맞지 않았다·
“꺼억···!”
에드워드는 목이 쥐어뜯기는 감각에 헛숨을 토해냈다·
물리적인 것은 아니었다·
‘살기···!’
극도로 벼린 살기를 실처럼 늘어뜨려 목에 감아버린 것이다·
오로지 그만이 할 수 있는 기예다·
“그··· 만···!”
“너무 기어오르는군· 그렇게 아는 척 하는 습관이 곱게 보이진 않네·”
“그윽···!”
에드워드는 문득 억울해졌다·
부인과 관련된 언급을 한 건 저쪽이 먼저 아닌가?
맞장구를 쳐준 것뿐인데 왜 이런 폭력을 겪어야 하는 것이냔 말이다·
애절한 눈으로 카샤를 바라보자 그가 이윽고 살기를 거뒀다·
카샤는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것인지 홀로 인상을 구긴 채 침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
“용건은 그게 끝인가?”
“그쵸···?”
절로 공손한 말이 튀어나온다·
역시 검귀 카샤와 한 공간에 단둘이 있는 것은 살 떨리는 일이다·
에드워드는 호흡을 진정시킨 후 그에게 말했다·
“···천천히 고민하셔도 됩니다· 보아하니 당장 움직이실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급히 갈 건 없는 일이었다·
이곳까지 온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의중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더해 실제로 본 카샤는 부인과의 소꿉놀이에 꽤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당장은 서부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여·’
그러니까 소꿉놀이를 조금 더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호의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는 게 좋을 터였다·
카샤는 후우 숨을 길게 내쉬더니 이내 에드워드에게 시선을 던졌다·
특유의 날이 서 있는 눈빛이었다·
“···자네 말대로 당장 답할 일은 아닌 듯하네· 이 일은 더 고민해보지·”
라고 말한 카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싹―
에드워드의 등골에 소름이 돋아났다·
살기가 또 몸을 옥죄어왔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말일세· 부인에게 관심을 가지진 말아주었으면 해· 이 일을 더 아는 사람이 나오면 너무 불쾌할 것 같군·”
말하는 저의가 꽤나 분명하다·
에드워드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르신이 원하신다면 거국적으로 입막음 절차를 진행해드릴 수 있지· 싸우러 온 거 아니라고 했잖아요?”
“부디 내 심기를 거스르지 말아주게· 자네는 알지 않나·”
“우리 어르신은 참을성이 많이 없지?”
“이해해서 다행이네·”
그제야 카샤가 싱긋 웃었다·
본판이 미남인 터라 서글서글한 미소가 선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살기만 없었다면 분명 그리 느껴졌을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이만 가보지· 오늘 만남은 불쾌했네· 가급적 앞으로는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아이구 어련하시겠습니까·”
“가보지·”
달칵!
카샤가 방을 나섰다·
그제야 에드워드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소파에 몸을 묻었다·
“흐아아아아!”
죽는 줄 알았네·
그래도 정체를 숨기고 있는 입장에서 사고는 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던 것인데····
“우리 어르신 성격 한번 지랄맞다니까·”
에드워드는 껄껄 웃었다·
이번 만남으로 확실해 진 것은 정체를 숨기고 있다 한들 카샤는 카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당장 움직이지 않으리란 호재까지·
애드워드는 잠시 카샤의 부인에 대해 떠올렸다·
‘부인이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 봐· 아니 복 받은 건가? 저런 인간이 숙이고 들어가 주니까·’
뭐 지금 깊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고개를 턴 에드워드는 벨을 눌렀다·
“부르셨습니까?”
들어온 것은 앞서 엘릭과 티리아를 수행했던 수행인이었다·
승무원 역할을 하고 있으나 그는 에드워드의 직속 수행비서였다·
에드워드는 웃으며 말했다·
“갈아입을 속옷 좀 가져와·”
“···?”
“갈아입을 속옷· 팬티 말이야· 팬티·”
에드워드가 손으로 제 하반신을 가리켰다·
“나 지렸어·”
흥건해져 있었다·
카샤의 살기에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수행비서는 문득 경멸이 묻어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33세에 실금입니까?”
“상대가 상대잖아·”
“퇴사해도 됩니까?”
“안 돼·”
“휴가 가고 싶습니다·”
“싫어· 도망칠 거잖아·”
수행비서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에드워드는 여전한 웃는 얼굴로 말했다·
“빨리 가져와·”
비서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
‘흔들렸다·’
에드워드 와이트가 전장에 돌아오지 말라고 한 순간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만큼 마음이 뒤흔들렸다·
엘릭은 그 사실에 새삼 충격을 받았다·
‘떠나고 싶지 않다?’
위빈에 남아있고 싶다는 마음인가?
그래 고향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
이런 평화가 싫은 게 아니니 말이다·
그리 답을 냈음에도 엘릭은 좀처럼 시원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연신 속을 괴롭혔다·
엘릭은 혼란에 휩싸였다·
달칵―
와중 좌석으로 돌아와 문을 여니 티리아가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아니 멀미 때문인지 그리 멀쩡하게 보이진 않았다·
그녀가 원망스럽게 엘릭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딜 다녀오셨는지요·”
“잠시 사고가 정리되었다 해서 확인해보고 오는 길이오·”
“테러는 없을 것이라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턱 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직전까지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던 여러 생각들이 다 지워지는 감각이었다·
“내가 너무 속단한 듯하오· 미안하오· 그래도 잘 해결되었으니 다행이지 않소?”
그녀는 한껏 경계 어린 기색으로 몸을 굳히고 있었다·
엘릭은 멋쩍게 웃으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세 시간이면 도착할 듯하오·”
“돌아올 땐 마차를 이용하지요·”
“음 굳이?”
“····”
티리아의 눈빛에 깃든 원망이 짙어졌다·
공포도 보였다·
왜인지 그녀가 앙증맞게 보이는 기분인지라 엘릭은 묘한 감상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입으로 내뱉는 말은 그랬다·
“알겠소· 돌아갈 땐 여유롭게 마차로 가도록 합시다·”
“훌륭한 선택입니다·”
티리아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제와 평정을 가정하려 하지만 늦었다·
엘릭은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너무 많이 봐버렸다·
시선이 그녀를 쫓았다·
다시금 떠오르는 것은 에드워드 와이트의 제안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 당장 고민해 답을 줄 만한 사안은 아니니까·
엘릭은 답답함이 채 가시지 않는 상태로 그리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어 다시 깨어났을 땐 어느덧 창밖으로 수도의 전경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