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6 – #9 수도 (5)
아만은 당황스러웠다·
티리아와 마담이 사라지자마자 안색이 돌변하여 이리 불경하게 구는 꼴이라니 그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고 있었다·
‘분명 별 볼 일 없는 놈이라고 했는데?’
믿을 만한 이의 정보였다·
위빈 영지로 돌아온 티리아의 남편··· 그러니까 포트먼의 가주는 분명 귀족으로서의 교육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천둥벌거숭이라고·
거기에 뒷배랄 것도 없어 옆 영지에서 마수 사냥을 위한 기사를 불러오는 놈이라고·
한데 이 모습은 뭔가·
‘무슨····’
전혀 별볼일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본능은 언제나 이성보다 솔직한 법이다·
아만의 몸이 쩌저적 굳었다·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날카로워 좀처럼 제대로 된 반박을 말을 띄워 올릴 수 없었다·
그것은 님루드의 영식으로서 살아온 아만에게 너무 생경한 감각이었다·
낯선 것 낯선 상황 낯선 상대에게서 느끼는 낯선 두려움·
인간이라는 종의 습성이 그렇듯 아만은 그에 관성적인 반응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주제도 모르고 님루드에 반기를 드는가!”
역정이다·
페르딘에서 님루드는 그리해도 될 위상을 가진 가문이었다·
아무렴 그의 부친인 님루드 백작이 가진 인맥만 해도 이 왕국의 법 하나를 새로 세울 수 있을 정도가 아니던가·
어깨를 크게 펼치며 큰 소리로 외쳤으나 공허했다·
겁먹은 초식 동물이 아무리 몸을 불려봤자 맹수에겐 살집이 푸짐하게 오른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법이었다·
그걸 알 턱이 없는 아만의 외침은 발작적으로 이어졌다·
“고작 위빈 따위가 네놈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가! 뭐? 가르침? 교양? 네놈이 내게 그걸 따질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하나!!!”
삿대질까지 하며 이어지는 말의 종착지가 있었다·
“주제를 알란 말이다! 시골 한미한 영지의 남작이면 고개를 조아려라! 말본새를 그따위로····”
“프흐!”
엘릭의 입에서 헛웃음이 삐져나왔다·
아니 비웃음이었다·
“크흐흐····”
어깨까지 떨며 웃는데 그 기색이 참 이상했다·
“말본새 말본새라····”
턱을 쓸며 ‘음’하고 침음을 흘리는데 그의 시선은 아만에게 있지 않았다·
꼭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런 감상이 떠올랐고 실제로도 옳았다·
“웃어서 미안하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엘릭이 소파에 앉아 등을 기대었다·
아만은 그제야 그를 올려다보지 않게 되었다·
한데 조금도 안심하지 못했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무릎이 꿇릴 것만 같았다·
엘릭이 평소 억제하던 기운이 흘러나오며 자연스레 인 반응이었다·
“조금 옛날 일이오· 그러니까 16살의 가을이었나····”
엘릭이 문득 옛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땐 내가 참 철딱서니가 없었다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더했지· 게다가 지내던 곳이 영 사람 챙겨주는 것이랑은 거리가 먼 동네다 보니 성격도 아주 더러워지던 게 아니겠소?”
“뭔····”
“내가 말버릇이 참 험했소· 위아래 할 것 없이 죄다 욕이나 찍찍 싸지르고 다녔던 시기였는데··· 그때 나를 관리하던 이가 그랬다오·”
툭 툭 엘릭이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그의 얼굴에 그리움이 슬쩍 비치는 듯했다·
“말은 사람의 그릇이다· 그러니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던 말만큼은 정중하게 해보아라· 그럼 그만큼 너의 그릇이 커질 것이다·”
“····”
“그래서 그때부터 말투를 바꾸기 시작했소· 그땐 영감들 말투가 정중한 말투라고 생각해서 그걸 익히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습관이 되어 이리 무의식중에도 늙은이들 말투를 쓰게 되는 것 아니겠소?”
말하는 요지를 알 수 없었다·
아만은 그가 자신을 능멸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영 헤어 나올 수 없었다·
하여 무어라 입술을 달싹이려는 순간이었다·
“뭐 그 얘기야 차치하고 결국 겉으로는 정중한 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게 중요하겠지·”
그의 시선이 아만을 향했다·
무언가 직전보다 조금 더 붉어진 듯했다·
“한데 사람 근본이란 건 잘 바뀌지 않는 것 같소·”
라는 말이 귓가에 꽂힌 직후였다·
“가끔씩 성격이 새어 나와 버린단 말이오· 그 인간 말은 그리 신용할 게 못 되는 듯하오·”
휘릭―
하는 소리와 함께 아만이 보는 세상이 반대로 뒤집혔다·
쾅!
소리와 함께 충격이 머리를 강타한 이후에나 아만은 자신의 몸이 바닥에 꽂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억!”
머리부터 바닥에 매다 꽂히니 고통이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생전 한번도 이런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아만에겐 너무 당혹스러운 통증이었다·
눈이 데굴데굴 구른다·
어찌하여 몸이 매다 꽂힌 것인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 중 그의 눈에 어느새 엘릭의 어깨에 걸쳐있는 지팡이가 보였다·
그제야 발목이 아리다·
지팡이로 발목을 후려쳐 쓰러트린 것이다·
“이 이게····”
“욕을 참는다는 게 참 어렵소·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을 사람 취급해줘야 하는 것 아니오? 나는 그런 인격자가 못 되는 것 같소·”
다시금 아만이 엘릭을 올려다보는 자세가 됐다·
아니 이전보다 더 비참한 양상이다·
아만은 바닥을 기며 그를 올려다봐야 했으니 말이다·
그 순간이었다·
“우리 눈높이는 이게 맞는 것 같소·”
엘릭이 서늘하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어딜 올려다 볼 생각을 하고 있소· 주제도 모르고·”
툭 아만의 이마에 엘릭의 지팡이가 닿았다·
모욕적이었다·
한데도 반항할 수 없었다·
엘릭의 분위기는 그만큼이나 아만이 알던 인간의 분위기와 다른 이질감을 품고 있었다·
그리도 두려운 아버지조차 그만큼 두렵진 않았다·
눈이 절로 내리깔린다·
하나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아만의 입은 덜덜 떨리는 중에도 말 하나를 더 내뱉고 있었다·
“네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뭐 어쩔 것이오·”
엘릭이 지팡이 끝으로 아만의 이마를 밀었다·
각도를 틀어 눈을 맞추는 것이었다·
그는 여전히 서늘했고 여유로웠으며 또한 포악했다·
“잘난 백작에게 쫄래쫄래 달려가서 혼내달라 투정이라도 부려보겠소? 아니면 기사를 고용해 결투라도 신청해보시겠소? 그도 아니면 뭐··· 직접 싸움이라도 해보시겠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방법이 꽤 마음에 드는구려· 이쪽으론 내가 일가견이 있다오· 살려는 드리지·”
대체 저 자신감의 근원이 뭘까·
저 덩치? 그리고 지팡이로 사람을 고꾸라트리는 힘?
뭐가 됐든 당장 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수치심에 벌벌 떠는 것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어찌 전장의 주인이라 일컬어지는 대륙의 7강과 한미한 동부 국가의 귀족 영식이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겠나·
신분이나 뒷배를 이용하는 것도 불가했다·
금공 에드워드라면 몰라도 검귀 카샤는 그런 것에 두려워할 사내가 아니었다·
서부에서 그를 아는 모든 이가 하나의 예외도 없이 평하길 그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포악한 성미를 가졌으며 그 누구보다 세속적 지위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속된 말로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칼부터 들이미는 미치광이였다·
“우리 사이에 할 말이 더 있을까 싶소· 사실 내가 바라는 것도 대화와는 거리가 머오·”
탁 탁·
지팡이로 아만의 머리를 두드리며 엘릭은 말했다·
“가보시오· 뭐든 열심히 머리를 굴려 이 모욕을 갚아줄 방법을 떠올려 보시오·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지· 당신은 하나만 명심하면 되오·”
그 순간
“끄헉···!”
아만의 목이 졸렸다·
살기를 유형화해 일으킨 현상이었으나 아만의 지식으로는 그런 걸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덜덜 전신이 떨리고 숨이 막힌다·
그에 공포심이 일기만 했다·
“내 부인에게 영향이 가는 일만 아니면 당신은 내게 당신이 원하는 모든 일을 시도해볼 수 있소·”
뇌리에 그 명제를 각인시키겠다는 듯 또박또박 건네는 말이었다·
실로 유효했다·
아만의 단련되지 않은 물렁한 정신력은 그 와중에도 눈물을 글썽이며 긍정을 토해내고 있었으니·
“끄흐으으····”
파들파들 떨며 아만이 양장점 문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엘릭은 구태여 잡지 않았다·
그저 그가 지나가는 길에 남는 물길을 바라봤다·
“꼭 달팽이 같구려· 기어가는 길에 체액을 흘려대는 꼬라지가·”
아만이 오줌을 지린 것이었다·
엘릭은 손까지 흔들며 그를 배웅했다·
“우리 연회 때 봅시다·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당신이 반격해오길 기다리겠소·”
달칵 양장점 문이 열린 순간 아만은 뒤도 안 돌아보고 허둥지둥 달려나갔다·
*
엘릭은 길게 숨을 내쉬며 아만이 떠난 문을 바라봤다·
‘이를 어쩐다·’
홧김에 질러버리긴 했지만 너무 심하게 굴었나 하는 생각이 일기도 했다·
하나 후회가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뭣하면 백작과 협상하면 될 일이지·’
아만 님루드의 말본새로 볼 때 그의 부친인 님루드 백작이 꽤 위세가 대단하다는 확신이 한 번 더 든다·
엘릭은 그런 이들의 공통점을 알았다·
대체로 그들은 자식의 체면보다 본인과 가문의 이득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가 원한다면 엘릭은 그를 위한 일검을 휘둘러주는 계약까지는 가능한 사람이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군·’
이왕 질러놓은 거 그때가 되어서야 방도를 생각해도 늦지 않다·
애초에 아만 님루드가 어떤 수를 써오든 두려울 일도 없었다·
그런 생각으로 티리아가 돌아오길 기다린 엘릭은 이후에나 아만 님루드가 왜 굳이 이곳까지 와 그녀에게 추파를 던진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위빈가에서 제 약혼 상대로 점찍어둔 분이셨습니다· 물론 그쪽의 거절이 있기도 했고 위빈의 상황도 좋지 않아 무산되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엘릭의 속에 있던 한 줌의 후회가 스러져버렸다·
“그랬소?”
엘릭은 기분이 아주 불쾌해졌다·
이 역시 스스로도 놀랄 의외의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