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조간신문에 대서특필된 기사가 있었다·
『님루드 백작 엘버스 그레이엄 공자의 암살을 시도하다·』
바로 전날 있었던 님루드 백작의 비행에 관한 기사였다·
보통 암살도 아닌 무려 제국 공작가의 3남을 암살하려는 시도인 만큼 그 파급력이 오죽했겠는가·
나라 전체를 다 들썩이게 한 충격적인 소식이었고 그에 왕도의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있었다·
티리아도 마찬가지였다·
‘큰일이 날 뻔했구나·’
기사를 쭉 읽어내리니 엘버스의 암중 호위가 겨우 시도를 막았다는 단락이 보였다·
누구인지 몰라도 왕국 차원의 보상을 건네 마땅한 수준의 공적이었다·
‘전쟁이 날 뻔한 일을 막았으니····’
티리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여태껏 전쟁이 서부에 국한되어 있으리라 무심코 안심하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경각심을 가져야겠지·
만약 전쟁이 이곳까지 번진다면····
“부인 아침부터 뭘 그리 심각하게 보시오?”
엘릭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던가·
티리아는 고개를 들어 막 식당에 들어서는 엘릭을 바라봤다·
여전히 무릎이 불편한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모습이 괜한 걱정을 일게 한다·
혹여 적들의 군세가 위빈까지 파고든다면 어찌 될까·
제대로 달리지조차 못하는 그는 단번에 목이 베여 죽을 게 뻔했다·
그런 미래를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혀왔다·
절망감이 몸을 감싸는 것은 덤이었다·
티리아는 괜한 불안감을 꾹꾹 눌러내곤 그에게 신문을 내보였다·
“···조간신문을 보고 있었습니다·”
1면의 그 사건을 보여주자 그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뜨였다·
직후 그가 덜컥 헛웃음을 흘렸다·
“일이 이렇게 되는구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음 아무것도 아니오· 그저 이치들이랑 우리 관계가 조금 안 좋지 않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 영식과 있었던 일을 걱정했던 걸까·
그리 생각하니 하필 님루드 백작이 암살 시도의 주범이었던 것이 새삼 다행스레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은 역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동물인 걸까·
생각하는 순간 엘릭이 물어왔다·
“그래서 님루드 백작은 어찌 되는 것이오?”
“아마 강도 높은 조사가 있을 것입니다· 무려 그레이엄가를 건드리려 든 것이니 무사할 수는 없겠지요· 백작의 사형은 피할 수 없을 테고··· 잘하면 님루드가에 내려진 귀족위의 몰수까지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음 깔끔하구려·”
티리아는 고개를 기울였다·
왜인지 흡족해하는 기색이 의아한 까닭이다·
엘릭은 뒤늦게야 그런 눈치를 알아챈 것인지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크 큰 위기가 넘어간 것 아니오?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서도 기쁜 일이지·”
“그렇긴 합니다·”
“그보다 준비나 합시다· 오늘도 연회에 가야 하니·”
티리아는 그제까지도 잔류해있던 미심쩍음을 털어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 기획된 왕실 연회는 총 사흘·
뭐가 됐든 그동안은 참석이 필수적이니 사건을 핑계로 안 나갈 수는 없었다·
왕실 측에도 불참이 좋은 그림으로 비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인 입장까지 고려하면 이번 기회에 약화 되었던 왕권을 다시 틀어잡을 명분이 생긴 셈이니 크게 압박하려 들 수도 있을 터였다·
이제 막 귀족에 편입된 포트먼은 이런 사소한 점에서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다·
안 그래도 기반이 약한데 왕실의 눈총까지 받는다면 얼마나 고단하겠는가·
“아 그리고 말이오·”
“예?”
“어제 내 단장을 도와줬던 이들에게 이번 연회 내도록 도움을 받게 되었소· 오늘은 부인이 한 번 써보시구려· 실력이 꽤 출중하다오·”
문득 전날의 엘릭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콩깍지 탓인지 뭔지 어떤 모습이든 다 어여쁘게만 보이는 그였지만 전날의 꾸민 얼굴은 참 보기 흡족한 면이 있었다·
그에 그 일꾼들의 지분이 어느 정도 있을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티리아는 엘릭이 무언가를 권유해주는 일이 못내 기꺼웠다·
“알겠습니다·”
그리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나올 즘·
“어머 마님 너~무 고우시다~!”
왜인지 여인치고는 키가 아주 큰·
거의 엘릭과 비슷한 키를 가진 가면 수준의 화장을 한 여인이 몸을 배배 꼬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두려운 마음이 치솟았으나 티리아는 애써 눌렀다·
엘릭이 소개해준 이들이니 수상한 이들은 아니리란 판단이었다·
“···잘 부탁하네·”
라고 말하며 자리에 앉는 티리아는 몰랐다·
그녀의 화장을 도맡은 이가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수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직 월영의 암살자 이젠 엘릭의 수족으로 부려지게 된 다날은 눈물을 애써 삼키며 자문했다·
‘내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너무나도 기구한 인생이었다·
*
확실히 단장을 맡았던 그 묘한 여인은 실력이 출중했다·
티리아는 작게 탄성을 흘렸다·
‘전문가는 역시 다르구나·’
기본적으로 전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치장이었다·
감색의 드레스도 땋아서 틀어 올린 머리도 옅은 색조 화장도 골자는 같았으나 그 세부적인 면에서 확실한 차이가 도드라졌다·
무어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세심함이 물씬 묻어난다·
그게 티리아의 속에 괜한 기대감을 떠오르게 했다·
전날처럼 엘릭이 칭찬을 건네 와 주지는 않을까·
그런 일을 상상하니 기분이 조금 더 좋아지고 있었다·
“수고했네· 내 가주께는 자네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르지·”
“그러실 필요까지는····”
“아닐세· 일을 했다면 응당 그에 걸맞는 값을 받아야지·”
여인의 표정이 요상하게 일그러졌다·
그에 의아해하던 티리아는 이내 그럴싸한 답을 낼 수 있었다·
‘귀족 중엔 이들을 천히 여겨 제값을 치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했지·’
아마 그런 취급을 받지 않아 안도한 게 아닐까·
티리아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신경 쓸 것 없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하하····”
“그럼 일들 보시게·”
그리 말하고 저택을 나서니 입구에 엘릭이 나와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엘릭의 눈이 크게 뜨였다·
티리아는 옅은 기대를 품고 그의 반응을 면밀히 살폈다·
눈동자가 잘게 떨리는 것이나 지팡이를 쥔 손등 위로 힘줄이 도드라지는 게 그제야 보였다·
쑥스러웠다·
“···저들의 솜씨가 아주 좋더군요·”
티리아는 잰걸음으로 다가가 엘릭을 올려다봤다·
엘릭은 입술을 한 차례 달싹이다 이내 더듬 말했다·
“오늘은 더욱 어여쁘시오·”
말하고 나서 흠칫 그가 몸을 떨었다·
티리아는 콩콩 가슴이 방정맞게 박동하는 것을 느꼈다·
행복이 차올라 찰박찰박 머릿속을 콕콕 찌르는 듯했다·
“···가주께서도 늠름하십니다·”
하고 말하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엘릭이 아직 서투른 에스코트를 해줬다·
티리아는 이 순간 여타 고민들이 모두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연회에 가봐야 구석에서 시간이나 떼우다 오겠지만 뭐 어떤가·
올해도 다른 귀족가와 인연을 못 만들게 된 듯하지만 또 어떤가·
오늘 하루 그와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그것이면 족한 것 아니겠나·
마차에 올라탄 티리아의 새끼 손가락은 아직 엘릭의 손끝에 걸려 있었다·
좁은 마차라 다행스러웠다·
*
왜 이다지도 열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엘릭은 제 손 끝에 걸려있는 티리아의 새끼 손가락에 온 신경이 몰리는 기분을 느꼈다·
너무 얇아 꺾으면 똑 떨어질 것 같은 손가락이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전전긍긍하게 되는데 엘릭이 그녀의 손을 꼭 쥐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였다·
스스로의 모습이 참 바보같다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또 뭘까·
아마 그녀가 문득 더 신경 쓰이기 시작한 까닭일 터다·
엘릭은 창밖을 바라보는 티리아를 연신 흘겼다·
보이는 것은 턱선과 귓불 목덜미가 끝이다·
아니 가지런히 뻗어있는 속눈썹도 얼핏 보였다·
그것이 묘하게 신경을 자극했다·
그녀의 표정이 가려져 있으니 괜한 상상력이 샘솟는 까닭이다·
지금 창밖을 바라보는 티리아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녀의 표정은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굳어 있을까·
높은 확률로 그렇겠지·
한데 이 새끼 손가락에 연신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엘릭은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상상해봤다·
음습한 스스로의 행태에 자괴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핑핑 돌아가는 머리는 이미 상상을 구체화하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 역시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엘릭은 그녀가 다른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예시가 될 게 없으니 영 곤란키만 하다·
마차는 그런 안타까움이 한창 짙어지던 중 왕성에 도착했다·
“가지요·”
이제야 티리아가 얼굴을 보여줬다·
예의 무표정이 안타까웠다·
그런 감정을 숨기고 그녀를 에스코트 하여 연회장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오늘은 소란스럽구려·”
왜 아니겠나·
전날 님루드 백작과 그런 사고가 있었던 참인데·
그리고
“다들 걱정해주어 고맙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이 자리에 있으며 암살 시도가 꽤 많았던 터라 익숙합니다·”
그 당사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회장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엘릭은 탄성이 다 나오는 기분을 느꼈다·
엘버스 그레이엄·
친구이긴 하지만 역시 보통 내기는 아니다·
‘신경을 끄던가 해야지·’
이런 공적인 자리에선 각자 어울리는 역할이 있는 법이다·
엘릭은 공연히 왕국 귀족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엘릭 포트먼이 귀족 사회에서 어떤 입지를 가졌는지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포트먼가의 인식을 이 이상 나쁘게 하는 것은 홀로 이 가문을 지켜온 티리아에게 폐가 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저기로 갑시다·”
“예·”
그렇게 티리아를 이끌고 전날 시간을 보냈던 구석으로 가려던 순간이었다·
“아! 저기 있군! 이보시오 포트먼 남작!”
멈칫 엘릭의 몸이 굳어버렸다·
삐걱삐걱 돌아간 고개가 목소리의 주인 엘버스를 향했다·
그는 새하얀 치아를 훤히 드러내며 웃는 얼굴로 외쳤다·
“저 포트먼 남작이 어제의 날 살렸습니다! 남작이 넘어지며 날 밀어냈는데 그 순간 우연히 암살자의 비수가 제가 있던 곳으로 날아든 게 아니겠습니까?”
저자가 미친건가?
엘릭의 사고가 마비되는 중 옆에서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지 않으셨는지·”
티리아의 목소리가 꽤 굳어있었다·
엘릭은 차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대신이라 해야 할까 다른 자신은 있었다·
“이보게 남작! 이리 오시게!”
엘버스 그레이엄·
죽는 게 소원이라면 도와줄 수 있을 듯하다·
아암 친구로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