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먹히는 고급 인력·
엘릭에게 월영은 그런 의미였다·
그들 개개인의 무력을 합해봐야 자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들의 과거가 썩 깨끗하지 않다곤 하나 그게 무에 문제겠는가·
엘릭은 솔직한 말로 이용할 수 있는 도구는 다 이용하는 것이 신상에도 그리고 마음가짐에도 이롭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더군다나 과거가 더럽기에 그들이 암살자였기에 더욱 구미가 당기기도 했다·
‘부인을 향한 암살 위협에 더욱 확실한 방어책이 될 테니·’
만약 아주 만약의 일이었다·
누군가가 티리아를 암살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이 없다면 이들만큼 그녀를 잘 지킬 수 있는 이가 또 없지 않겠는가·
오늘의 자리는 그리하여 만들어진 자리였다·
“부인 이들이 영지에 들일 기사요·”
엘릭은 포트먼의 저택으로 돌아와 티리아에게 월영을 소개했다·
월영은 모두 가죽 갑옷을 대충 걸쳐 입은 상태였다·
“마님을 뵙습니다·”
다날이 고개를 숙이자 티리아가 사뭇 놀란 기색으로 물어왔다·
“벌써 구하셨다니요· 그것도 다섯씩이나····”
부담스러운 걸까·
그녀의 태도에 작은 망설임이 깃들어 있었다·
아무렴 이해할 수 있는 태도였다·
‘한두 명 정도를 예상했겠지·’
예산 배분에 꽤 공을 들이는 여인이었으니 이런 과한 지출이 부담으로 다가오리라·
그에 엘릭은 말했다·
“돈은 적게 받아도 괜찮다고들 하는구려· 이들 모두가 자유 기사인데 슬슬 정착할 동네가 필요해졌다는 게 아니겠소·”
“···그렇습니까?”
그녀의 눈빛에 의심이 깃들었다·
엘릭은 다날의 허리춤으로 살기를 쏘았다·
뭐라도 해보라는 의미였고 다날은 그에 충실했다·
“인사드립니다! 서부에서 온 자유 기사 다이넌! 영주님과 마님께 충성을 다하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왔습니다!”
쿵!
무릎까지 꿇으며 외치는 모습은 누가 봐도 듬직한 기사였다·
체격이 마르긴 했으나 뭐 그 정도야 감수해줄 만하다·
아니 도리어 좋다·
체격까지 좋았다면 티리아의 의심이 짙어졌을 테니 말이다·
“···포트먼의 안주인이네·”
라고 말한 티리아가 다날을 살펴보다 흠칫했다·
눈이 좁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흐음’ 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덜컥 엘릭의 몸이 들썩였다·
“하하 왜 그러시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다·
공연히 콩닥콩닥 가슴이 뛰어대는 탓에 엘릭이 한껏 긴장하고 있자 티리아가 답을 건넸다·
“아닙니다· 그저 익숙한 얼굴인 듯하여·”
“으 응?”
홱! 엘릭의 고개가 다날을 향했다·
다날은 눈을 좌우로 흔들어대며 고개 대신 저었다·
꼭 오늘 처음 만나는 것이라 항변하는 듯한 모습·
뭔가 잘못되는 걸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아·”
티리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수도에서 치장을 도와줬던 그 사람 그 사람을 닮았군요·”
“앗차차아아앗!!!”
다날이 기합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착! 이마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찢어질 듯 긴 미소를 그려냈다·
“이거이거 들켜버렸군요!”
“으 음?”
“그 아이 다르시가 제 여동생입니다! 사실 영주님을 만난 것도 그 아이를 통한 것이었죠! 그렇지 않습니까 영주니이이임!!!”
과장된 목소리에 엘릭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휙휙 끄덕였다·
“마 맞네···!”
“여동생 덕에 이런 은인을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데 제가 여동생과 그리 닮았습니까?”
“음 큰 키와 이목구비가 조금····”
“하하핫! 예 어릴 적부터 다르시가 그 키 때문에 속상함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화장술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왔지요! 크으 귀족 나리들의 치장을 맡을 정도로 성공한 그 아이를 보니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습니다!”
엘릭은 그 순간 크게 감탄했다·
‘전문가는 역시 다르구나!’
거짓말의 전문가 변장의 전문가 변명의 전문가!
역시 암살자 다운 임기응변이었다·
엘릭의 속에 다날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은 더 올라가고 있었다·
“여하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쿵!
다날이 무릎을 꿇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쿠구궁!
뒤로 서 있던 부하들 역시 무릎 관절을 다 부술 듯 강하게 무릎을 처박았다·
엘릭과 티리아의 시선이 부딪쳤다·
엘릭은 싱긋 웃었다·
“믿음직스럽지 않소?”
“···예 참으로 믿음직스럽군요·”
미묘한 떨떠름함·
티리아는 이들이 썩 믿음직스럽지 못한 듯했다·
*
뭐가 됐든 결론적으로 영입은 성공했다·
월영의 계약은 서면으로 확정이 되었고 남은 것은 이 기사들의 서임식 그리고 그것을 위한 몇 가지 준비가 끝이었다·
“잘해주었네· 임기응변도 좋았고·”
엘릭은 기꺼이 월영을 치하했다·
다날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그에 응했다·
“다 어르신의 은혜 덕분이지요·”
“하하 내가 뭘 했다고 그러나·”
“그러게 말입니다·”
“음?”
“···아무것도 아닙니다·”
잘못 들은 건가·
엘릭은 귀를 후비며 말했다·
“일단 서임식 전까지 풀 플레이트를 장만해야겠지· 멀리 가진 않을 거고··· 그래 위빈에 갑옷을 제작할 줄 아는 장인이 한 분 계시니 그분을 찾아가 보지·”
엘릭은 말을 내뱉으면서도 묘하게 반가운 기분을 느꼈다·
대장간의 허먼 영감은 위빈의 마지막 기사 지그 경의 무구를 전담해서 맡아주던 사람이었다·
어릴 적의 엘릭은 시간이 날 때마다 그의 대장간에 들러 그가 만들어둔 갑주를 감상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었는데 문득 그 시기가 떠올라버린 게 아닌가·
-이놈아 갑옷 닳는다·
-뭐 어때서요? 나중에 내가 입을 갑옷 보는 건데·
-네가 입을 갑옷은 무슨 기사가 그리 쉬워 보이더냐?
-나는 할 수 있어요· 재능이 넘치니까!
-누가 그러던?
-스승님이!
-얼씨구 그 산적 놈이 뭘 안다구·
주로 툴툴대는 말만 하던 노인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허먼 만큼 자신을 어여삐 여겨줬던 사람이 또 드물었다·
-이거나 먹어라· 빵집 메른이 구워 주더구나·
-뭐야 소금빵? 이거 질리는데·
-주면 입 다물고 먹을 것이지 따지는 것도 많아!
엘릭은 그를 떠올리자 킥킥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듣기로는 아직 같은 자리에서 대장간을 하고 있댔지·
“그럼 출발하세나·”
엘릭은 곧장 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마차에 올라타 약 20분 정도·
밀밭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 조금 외곽지대로 빠져나오니 곧장 허름한 대장간이 보였다·
깡―!
깡―!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정겨웠다·
“저깁니까?”
다날이 미심쩍다는 듯 물었고 엘릭은 그에 곧장 답을 전했다·
“실력은 확실하네· 이 근방에서 영감보다 많은 갑주를 만든 사람이 또 없었거든·”
말하며 엘릭은 대장간 안에 들어섰다·
“허먼 영감!”
그러자 쇳소리가 멈췄다·
“으응?”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대장간 안에서 덩치가 산만한 노인 하나가 나왔다·
지저분한 수염과 검은 숯자국이 몸 곳곳에 묻어있는 구리빛 피부의 노인·
허먼 영감이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
“꼬맹이?”
“오랜만이오· 내 너무 늦게 찾아왔구려·”
“아니 그 꼬맹이가 맞나? 이리 와 봐라!”
허먼 영감은 와 보라고 말한 주제에 본인이 직접 다가와 엘릭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댔다·
엘릭은 껄껄 웃었다·
여전히 자신보다 키가 큰 허먼 영감 탓이었다·
이 정도면 2미터는 족히 넘을 수준이었다·
“내 키가 이렇게 많이 컸는데도 영감보단 작구려·”
“허어···!”
허먼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못난 놈이 이리 멀쩡히 살아서 돌아왔구나···!”
꼭 죽기라도 바라는 사람처럼 말함에도 눈빛에는 온정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그가 엘릭을 포옹했다·
“잘 돌아왔다· 잘 돌아왔어!”
엘릭은 문득 코끝이 시큰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정정해 보여서 다행이오·”
“그래 말투는 네가 더 영감님 같구나·”
“사정이 있어서 그렇소·”
“지랄도 풍년이다·”
기꺼운 재회였다·
*
허먼 영감의 대장간은 엘릭의 기억 속 그대로였다·
모루와 화로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업실과 식탁·
엘릭은 식탁에 앉으며 허먼에게 말했다·
“내가 이제 여기 영주가 됐소·”
“기사가 되겠다고 그리 난리를 치더니 결국 영주구나 그래·”
조금은 아쉬워해 주는 걸까·
엘릭은 지그시 웃었다·
“일이 그리되어 버린 걸 어찌하겠소· 대신이라고 해야 하나 이치들을 내 기사로 영입했소· 하여 갑옷을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영감을 찾았고·”
허먼의 시선이 월영을 향했다·
눈을 좁히며 그들의 체격을 살피던 영감은 조금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체격이 왜 저따구냐? 잘 뽑은 거 맞아?”
“···제가 이래 봬도 마나는 좀 씁디다?”
다날이 울컥해서 말했다·
허먼이 코웃음 쳤다·
“기사는 건강한 몸이 우선이지 어딜 마나에 기대려고 그래? 이놈아 저놈들 잘 뽑은 거 맞아?”
“맞으니 걱정일랑 마시오· 내 이래 봬도 사람 보는 눈은 조금 있다오·”
“네가 그렇다면 말리진 않겠는데····”
라고 말한 허먼 영감이 쩝쩝 입맛을 다시며 재차 월영을 살폈다·
그 순간이었다·
“할아버지! 저 왔····”
앳된 목소리가 대장간에 가득 울려 퍼졌다·
엘릭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그 순간 바짝 굳었다·
“어! 엘릭 형!”
“우리 손자 왔구나! 이놈아 기억나냐? 너 떠날 때 네 살이던 애가 저렇게 컸다·”
허먼의 손자 베론·
떠날 적 겨우 4살이었던 아이·
이제 15살·
정보가 입력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반가운 얼굴이었음에도 마냥 웃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사는 당연 건넬 수 없었다·
베론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카샤!!!
베론의 얼굴 위로 소년병이 겹치고 있었다·
“···야 이놈아 왜 그러고 있어?”
엘릭의 숨이 조금 가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