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티리아의 삶은 그녀가 지나온 어느 시기보다 행복했다·
구태여 견줄 수 있을 시기를 꼽아보자면 엘릭과 처음 만났던 날의 일인데 그조차도 최근의 만족감에 비하면 한끝 모자라다 싶을 정도였다·
이리 행복해도 되는 걸까·
불행에 삼켜져 살아온 삶은 누군가가 당연하게 생각할 행복조차 불안으로 받아들였다·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건 아닌지 의아함을 띄웠다·
그런 중에도 저택의 하루는 부지런히 흘러갔다·
티리아는 한가한 와중 몇몇 일 처리를 해내고 서재에 들르고 또 화단을 살피며 봄을 향한 기대감을 부추겼다·
와중 새로 생긴 설영 기사단의 기사들에게 부담스러운 호의도 받는 것은 덤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마님! 동생이 보내온 제국 파티시에의 다과입니다!”
기사단장 다이넌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며 외쳤다·
“드셔 주십시오!”
사양하면 자결이라도 할 기세라 티리아는 엉겁결에 다과를 받았다·
“잘 먹겠네·”
말하자 다이넌이 구원이라도 마주한 사람처럼 환한 미소를 띠웠다·
설마 우는 건가·
“존명!”
부담스러웠다·
고개를 끄덕인 티리아는 곧장 몸을 돌려 종종걸음으로 집무실로 향했다·
그래도 받은 것이니 먹어야겠다고 그리 생각하며 집무실의 문을 여니 신문을 보며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짓는 엘릭이 있었다·
무엇을 그리 고민하는 걸까·
생각하며 보니 과연·
“서부의 소식을 보고 계셨군요·”
“아 오셨소· 부인·”
“예·”
신문 1면에 난 기사는 그랬다·
『나자크의 마왕 제르디아 세레니티의 성자 하임베르크·
리디움 전선에서 격돌·』
7강이 부딪혔다·
언젠가 그가 일렀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듯했다·
*
에드워드는 EW의 회장실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안색은 불안이 가득했다·
“터졌다· 터졌어· 결국 터졌다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대형 사고가 발발했다·
제발 터지질 않길 바랐던 7강 간의 격돌이 현실이 되어버렸으니 이제 전쟁은 겉잡을 수 없는 형태로 가속되기 시작할 터였다·
차라리 천익을 지원해 동부로 전쟁의 불길을 돌려야 했나?
‘···아니·’
그건 너무 악수지·
보급을 떠나서 동부에 떡하니 웅크리고 있는 카샤를 생각하면 안 될 말이었다·
아무렴 서부 전장에서의 자살 방법 중 가장 끔찍한 게 카샤에게 시비 걸기 아니던가?
그가 일으킬 후폭풍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편이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최악 다음의 차악 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오···!”
머리를 쥐어뜯는 순간이었다·
“회장님 손님께서····”
“비서야 이거 어떡하냐· 응? 마왕님이랑 성자가 붙었다는데 이럼 우리 싹 다 나가리 아니야?”
에드워드는 곧장 비서의 멱살을 짤랑짤랑 잡아채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영감님 지분이 12%야· 최초 최고 투자자님이 지금 목숨이 경각에 달해 계시다고!”
“예 그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필 전쟁의 첫 단추를 풀어낸 게 1대 대주주 제르디아다·
그리고 상대가 하필 그 제르디아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하임베르크다·
명확한 열세인데 전장에서의 입장상 그를 지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대로 갔다간 EW의 지분 12%가 그대로 공중분해·
지금도 아슬아슬한 우호 지분 비율이 아예 꼴아 박혀 경영권에 위협을 받게 된다·
“난 망했어! 망했다고! 아아아아악!!!”
바닥에 주르륵 미끄러진 에드워드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비서의 경멸 어린 눈짓은 보이지도 않았다·
에드워드의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단 하나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일평생을 일궈온 회사의 경영권이 이대로 생판 모를 놈 손에 들어갈 수도 있는 위기다·
이제 막 개발에 들어간 신형 병기는 영영 세상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걸 만들겠다고 투자한 돈을 생각하니 눈깔이 다 뒤집어질 것 같다!
“방법! 방법을 찾아야 해!”
적어도 당장 나자크와 세레니티가 전면전을 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아니 그 전면전에서 나자크가 멸망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뭐가 있지? 그래 내 쪽에서도 전쟁을 일으키면····’
불가·
그 일은 전쟁을 더욱 격화시킬 뿐이다·
‘협상 제의를 한다면? 세레니티 쪽에 식량 지원····’
을 했다간 나중에 독이 되어 돌아오겠지·
이 또한 불가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뭐가 있을까·
에드워드의 영민한 두뇌가 부지런히 사고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난제는 없다·
그가 믿는 지론대로라면 분명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다·
그리 머리를 쥐어 싸매던 중 번뜩 스쳐 지나가는 얼굴이 있었다·
그의 고개가 홱 들렸다·
“어르신!”
“···예?”
“어르신! 검귀 어르신한테 부탁하는 거야! 나자크 쪽에 가세해달라고 하면 된다고! 딱 이번 한 번만!”
에드워드의 얼굴 위로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애초에 이 서부 전장의 가속 원인이 바로 카샤의 실종인데!
그가 전장에 복귀하면 이 전면전은 끝이 날 텐데!
또 지긋지긋하게 반가운 눈치 싸움이 시작될 텐데!
“계속 전장에 있을 필요도 없어! 그냥 서부 어딘가에 카샤가 계속 존재했다는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거라는 심증만 있으면 돼! 그걸 위해 어르신을 딱 한 번만 불러오는 거지!”
“회 회자····”
“비서야! 바로 짐 챙기자! 우리 동부에 좀····”
“카샤가 동부에 있어?”
그 순간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드워드의 몸이 굳었다·
삐걱삐걱 고개가 출입구 쪽을 향했다·
허망한 소리가 입에서 삐져나온다·
“···얼레리·”
에드워드의 망막에 새겨지는 것은 온통 빨간 머리칼과 옷차림 주근깨 작은 체구였다·
희번뜩한 눈초리가 아주 따갑군·
저 누님이 왜 여기에 있을까·
비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이 왔다고 했잖습니까·”
에드워드의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염화 이그렛 그녀가 말했다·
“야 묻잖아· 카샤 그 새끼가 동부에 있냐고·”
“어어····”
“못 찾았다며?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음····”
어떻게 된 거긴·
‘좆됐네·’
에드워드는 삶이 미워졌다·
*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에드워드가 가진 본신의 전투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칼바란의 공성병기 염화 이그렛 발렌티아는 그 흉악함이 7강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이그렛은 에드워드에게 누님이었다·
그녀가 자신보다 몇 살이나 어린 29세의 나이임에도 존칭을 붙였다·
그리하지 않으면 그녀의 폭급한 성정에 어떤 화를 입을지 모르는 까닭이다·
한데 그런 그녀에게 하필 가장 들켜선 안 될 정보를 그것도 좁은 회장실 안에서·
“꺼억···!”
들켜버린 에드워드가 맞을 결말은 꽤 뻔한 구석이 있었다·
“어디냐?”
그녀가 으르렁대는 목소리로 물었다·
멱살이 틀어 잡힌 에드워드는 산소 결핍으로 사고력을 잃어갔다·
날뛰는 생존 본능에 이끌려 두 단어를 내뱉었다·
“위 위빈··· 포트먼가····”
“거기가 페르딘이었지? 그 새끼가 거기 숨어있었단 말이고? 어쩐지 안 보이더라·”
툭 그제야 이그렛이 멱살을 놓았다·
훅훅 숨을 내뱉으며 이성을 회복한 에드워드는 그제야 낭패 어린 심정을 느꼈다·
“누 누님! 잠시····”
하며 손을 뻗어보았지만 늦었다·
화르륵!
겁화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희번뜩하게 미소 지은 그녀가 곧장 창문을 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쨍그랑!
“죽었어 이 개새끼!!!”
그녀의 외침이 메아리친다·
허망하게 이그렛이 떠난 자리를 향해 손을 뻗던 에드워드는 생각했다·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여러 일에 관한 것이었다·
‘이대로 저 계집애가 위빈으로 가면?’
불같은 성격상 카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주변을 다 태워버리겠지·
그러고도 모자라 일대의 생명이 다 스러질 때까지 카샤에게 폭격을 날려댈 것이다·
물론 카샤가 지진 않을 터였다·
상처는 좀 입어도 어떻게든 이그렛을 제압하겠지·
‘아니 죽이려나?’
그쪽으로 무게추가 기운다·
고향 땅의 생활에 꽤 만족하고 있는 카샤다·
그곳의 기반을 다 태워 먹는 순간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진 카샤가 그녀를 살해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10%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죽을 수도 있단 말이다·
그뿐만 아니었다·
혹시 정말 혹시라도 정보의 출처를 카샤가 알게 되면····
“···아 엄마·”
나 어떡해·
에드워드이 안색이 새하얘졌다·
“비서야····”
“뭡니까·”
“저 계집애가 날아서 위빈까지 가는데 며칠이나 걸릴까?”
“서부 끝에서 끝까지 가는데 사흘이니까··· 여기서도 사흘 언저리로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래·”
비틀비틀 에드워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 위로 공허한 미소가 걸렸다·
“짐 싸· 지금 바로 출발하게·”
“쫓으시려는 겁니까?”
“그럼 여기서 죽을까? 아니다· 우리 같이 죽자· 자살이 더 편할 수도 있어·”
“···챙겨오겠습니다·”
비서가 빠르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에드워드는 울먹거리며 집무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기저귀가 어딨더라····’
사는 게 이렇게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