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7강이 다 그렇듯, 이그렛 발렌티아 또한 남다른 환경에서 자라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뽐내왔다·
마탑주였던 아버지와 마도종가의 주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5살에 마나를 깨우쳤고 7살에 서클 마법에 입문했으며 15세에 그것에 대성했다·
타고난 속성을 불 심화로 파고든 것은 폭발·
화려하게 피어나는 불꽃이라 하여 염화 이그렛·
그녀의 이명이 결정 지어진 것은 그다지도 어린 나이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만했다·
스스로의 무력에 관한 확신으로 똘똘 뭉쳐있었으며 누구도 자신보다 뛰어날 수 없다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도 그랬다·
그녀는 공성병기가 아이들 장난감 수준으로 보일 끔찍한 마법을 자랑하며 대륙 7강에 올라섰다·
무력적으로 완벽하다·
어머니의 마도종가를 이어 발렌티아 후작이라는 직위까지 있다·
외모 또한 작은 체구를 떼어두고 본다면 특이한 매력으로 똘똘 뭉친 여인이었으니 인간적으로 참 완벽하다·
그런 그녀에게 있는 단 하나의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딸 결혼은 언제 하나요?”
이그렛은 사랑을 몰랐다·
이제 적령기를 훌쩍 넘겨 노처녀 소리나 듣는 나이임에도 여전히 그녀는 순결했다·
차라리 성직자로 여생을 살려고 저러는 건 아닐까 부모님이 심심찮게 의문을 표했다면 설명이 되겠는가·
이유는 하나였다·
“난 나보다 잘난 놈이랑 결혼할 거야· 그게 안 되면 수준 맞는 놈이어야 해·”
앞서 말했듯 무력 권력 그리고 외모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재녀가 바로 이그렛이었으니 여느 왕국의 왕자나 태자를 데려와도 본인 성에 차지 않는 것이었다·
카샤는 그런 와중에 나타난 남자였다·
출신을 모르는 용병으로 그저 죽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전장의 귀신·
서부 전쟁이 만든 가장 끔찍한 재앙·
걸어 다니는 죽음·
처음에는 개인적인 호기심이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간이기에 이런 시대에 몸뚱어리와 검 하나로 7강의 이름을 올리는지·
어떻게 수천의 총과 활을 든 군대를 홀로 멸살했다는 것인지·
“궁금하면 확인해야지· 안 그래?”
마침 그가 활동하던 체보르가 이그렛의 소속이었던 칼바란과 국경을 나란히 했던 게 이유였다·
이그렛은 그렇게 카샤와 만났다·
“아이야 전장이 아닌 집으로 가거라·”
“꺄악!”
엉덩이를 걷어차였다·
그는 주변 수백의 정예병들을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도륙 내는 와중에도 그리 여유를 부리며 이그렛을 기절시켰다·
아이처럼 보였던 그녀를 향한 온정 따위를 발휘한 것이라·
주변이 그리 평했고 그날 이그렛은 생각했다·
‘이 새끼 나 좋아하나?’
다시 말하길 이그렛은 남성은 몰랐다·
사랑을 몰랐고 연애를 몰랐다·
굳이 그 전장의 셀 수 없는 사람을 베어 죽이는 와중에도 자신만 살리는 이유를 호감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날 이후로 이그렛에게 카샤는 신경 쓰이는 놈이 되었다·
그런 싱숭생숭함이 속에 있는 와중 가족이 부추겼다·
“딸··· 이러다 우리 대가 끊겨 버려요?”
이젠 더 미룰 수 없으니 제발 결혼해달라는 애원·
상대는 누구라도 좋다며 무릎까지 꿇는 부모님 탓에 상대를 고를수록 카샤를 신경 쓰게 되는 게 아니던가·
‘그놈만큼 쎈 놈이 또 없긴 한데····’
하지만 막상 또 결혼 상대로 확정 짓자니 영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이 있어 그날부터 이그렛은 카샤를 여러 방면으로 시험했다·
그의 무력에 확신을 얻고 싶은 이유였다·
결론은 경이적이었다·
“염화님! 카샤가 2천의 궁병이 일점사 한 철시를 모두 막아내고 그들을 도륙냈답니다!”
강철 시위 수천 개를 막아내고 수성 군대를 전멸시켰단다·
“염화님! 카샤가 300의 기병 3천의 보병과 1천의 궁병 및 100의 화승총 부대가 뭉친 군대를 단신으로 뚫었답니다!”
거의 북부 소국의 전력이라 해도 좋을 병력을 단신으로 쓸었단다·
“염화님! 카샤가 500의 마법사단이 시전한 대붕괴 마법을 검으로 베었습니다!”
마법을 칼로 벴단다·
그쯤 되니 이그렛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 이 정도면 결혼할 만한가?’
솔직하게 말해 카샤 개인에 대한 호감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력만큼은 확실하니 결혼 상대로는 모자람이 없고 아이도 튼튼할 것이다·
바람 따위의 추문이 날 일도 없었다·
‘그놈 나 좋아하잖아?’
그뿐만 아니었다·
당시 전장에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말이 카샤가 소년병들만큼은 목숨을 살려 보내주는 일이 잦아졌다던가·
아이도 좋아하니 육아도 잘하리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음 특별히 받아주지 뭐·’
이그렛은 카샤의 마음을 받아주겠노라고 결심을 한 상태였다·
생각하니 속이 좀 편하다·
물론 주변에는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부끄러우니까·
“야 다음 카샤 전장에 나올 때 말해· 참전하게·”
“역시 염화님이십니다! 국가를 위해 직접 나서시겠다니!”
“그건 아닌··· 아니 상관없나?”
뭐가 됐든 나중에 설명하면 될 일이라 생각하며 유유자적했다·
그게 문제였을까·
“카샤가 실종됐습니다! 사실상 전장을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는 전보가····”
“뭐 씨바아아아알?!”
카샤의 실종·
그것은 이그렛의 뒷골이 확 당기게 만드는 소식이었다·
“찾아! 찾으라고! 야! 금공 그 새끼 데려와아악!!!”
대체 왜 갑자기 실종이란 걸까·
자신이 있는 칼바란 근처 약소국에만 붙어있던 걸 보면 분명 근처에서 관심을 끌려고 했던 것 같은데·
혹시 너무 안 받아줘서 시무룩해진 건가?
잡으러 와주기를 바라는 건가?
엘릭으로서의 사정을 모르는 그녀는 문득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다·
어쩔 수 없지·
한 번만 온정을 발휘해 고백할 기회 정도는 줄 수밖에·
그런 마음으로 카샤를 찾아다니며 온 것이 오늘·
화르륵!
그녀를 감싼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이그렛은 사흘을 쉬지 않고 날아 위빈에 도착했다·
‘기다려라· 이 발칙한 새끼야·’
그녀의 입매가 삐뚜름하게 솟았다·
*
이그렛은 어릴 적 교양 수업의 일환으로 대륙 어느 지역에 어떤 왕국이 있고 또 어떤 영지가 있는지를 머릿속에 다 때려 박아 둔 일이 있었다·
그렇기에 찾아오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으나 다른쪽으로 하나 문제가 있었다·
‘마력 고갈··· 염병하네 진짜·’
사흘을 쉬지 않고 가속비행 했더니 마력이 다 소모됐다·
회복하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있어야 할 수준이다·
쯧 혀를 차며 이그렛은 붉은 로브를 머리끝까지 눌러썼다·
그리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와 존나 촌구석·”
절로 그런 감탄사가 튀어나올 정도의 그림으로 그린 듯한 촌구석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100년 전 제국 그것도 수도가 아닌 변경 지방이 이러지 않았을까 싶은 수준이라면 설명이 될까·
‘이런 곳에 짱박혀 있단 말이지·’
생각 없이 칼만 휘두르는 놈인 줄 알았더니 그래도 전략이란 걸 짤 줄은 아는 놈인 듯하다·
확실히 이런 촌동네라면 세간의 이목이 잘 끌리지 않을 터였다·
정체를 숨기기도 좋을 테고 그게 어딘가의 가문이라면 더욱이 그럴 터였다·
‘포트먼 가·’
에드워드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귀족 가겠지·
전장에서 보던 추레하고 덥수룩한 꼴을 생각해보면 마부나 나무꾼 따위의 잡역일 가능성이 꽤 높았다·
뭐 하는 가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쌍하기도 해라·
칼만 들었다 하면 수백 수천은 우습게 썰어대는 살인귀가 집안에 있는 줄 그들은 알까?
왜인지 사명감이 떠오른다·
생판 남이지만 포트먼 가를 구원해야 할 것만 같다는 사명감·
이그렛은 주홍빛 눈동자를 불태웠다·
그럼 이제 포트먼 가의 위치부터 찾아야겠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음? 오늘은 마님이 혼자 나오셨구먼·”
“그러게요· 평소엔 엘릭이랑 같이 나오더니·”
“엘릭이라니 이제 영주님이잖나·”
“에이 그 사고뭉치가 영주님 됐다고 새삼스럽게 호칭 바꾸는 게 더 어색하죠·”
정보가 이그렛의 귀에 꽂혔다·
마을 어귀의 웬 모자로 보이는 이들이 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쫓아가니 과연·
‘저 여자가 포트먼?’
윤기가 흐르는 흑색 털망토를 두른 여인이 웬 잡화점 앞에서 물건을 보고 있었다·
금발에 녹안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를 본 이그렛의 첫 감상은 그랬다·
‘존나 예쁘네· 저거 사람 맞아?’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미인·
살아생전 아름답다는 여인을 꽤 많이 만나 봤지만 그들이 화려하게 꾸민 모습보다도 저 여인의 수수함이 더 고혹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아니 신비로움? 청초함? 농염함?
모르겠다·
아름다움을 표하는 몇몇 수식어를 떠올려봤지만 하나로 표현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남편이 누구인진 몰라도 참 복 받은 사람이리라·
‘전생에 마왕이라도 잡았나?’
수천 년 전 마왕을 잡았다던 용사의 환생이 저 여인의 남편이라 해도 믿을 수준이다·
아니 감상은 여기까지 해야지·
이그렛은 넋을 놓고 있던 스스로를 질책하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섰다·
‘일단 저 여자를 따라가면 된다는 거잖아·’
그리하면 포트먼이 나올 터·
카샤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이보쇼·”
꽤 흥겨운 기분에 여인의 앞에선 이그렛이 말했다·
로브를 더욱 깊게 눌러 쓴 채였다·
“그쪽이 포트먼 마누라 맞아?”
여인의 시선이 이그렛을 향했다·
그렇게 근거리에서 눈이 마주한 순간이었다·
‘···뭐야·’
심장이 왜 이렇게 빨리 뛰어·
이그렛은 숨막히는 심장의 박동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