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곧 도착입니다·”
대륙 횡단 철도의 1등석 어딘가·
에드워드는 들려온 비서의 목소리에 그만 목이라도 매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아 내리기 싫다·’
‘으헤헤’ 영혼 없는 웃음을 흘리는 그의 얼굴은 창백하다·
몸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으며 목소리조차 풀이 죽어 있었다·
“그래 가야지····”
비척비척 그가 일어난 순간이었다·
“아 그리고·”
“또 뭔데?”
“위빈에서 함께 내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1등석에·”
흠칫 에드워드의 몸이 들썩였다·
시선이 비서를 향했다· 그는 조금 심각한 낯빛을 만들고 있었다·
“···제국 쪽입니다·”
“염병하네 진짜·”
에드워드는 혀를 차며 머리를 핑핑 굴렸다·
‘이 이상으로 상황이 복잡해지는 건 절대 사절이야·’
뭐가 됐든 직접 나서지 않을 수는 없다·
생각하며 움직이니 이미 몸은 좌석을 빠져나와 있는 상태다·
그렇게 막 문이 열리는 좌석을 보니 과연·
“오 금공이 여긴 어쩐 일로·”
휠체어를 끌고 나오는 사내 하나가 있었다·
그 옆에 중절모를 깊게 눌러 쓴 멀대같은 사내도 있었다·
에드워드는 표정 관리에 힘을 써야만 했다·
“이거 기막힌 우연입니다?”
“우연이라니 난 아니라고 보는데·”
엘버스 그레이엄 제국의 낭중지추가 요사스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에드워드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왜 저 인간이··· 아니 카샤의 친구이니 당연하겠지? 그렇다면 옆에서 있는 저자의 용건 탓에 함께 온 걸 테고·’
중절모를 눌러썼다곤 하나 저 멀대같은 사내의 하관만큼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아무렴 저 유명인사의 얼굴도 모른 채로 사업을 하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에드워드는 고개를 숙였다·
“···고귀한 피를 뵙습니다·”
황실의 역린 마히르의 3 황자가 이곳에 있었다·
목적이야 하나겠지·
‘나만 카샤를 생각한 게 아니란 거지·’
본격적으로 치닫기 시작한 서부의 전쟁·
승리를 원하는 이들이 움직인 것이다·
검귀라는 조커 카드를 얻기 위해·
*
포트먼 가의 분위기는 근래 어느 때보다도 어수선한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
그것도 로브에 금장이 둘린 상급 마법사가 이런 촌구석 영지에 방문했으니 오죽 사용인들이 긴장하고 있겠나·
그것 외에도 그랬다·
“도련님 만나러 오신 거 맞지?”
“되게 어려 보이던데? 거기다가 여자····”
“도련님 대체 어디서 뭘 하셨길래·”
“왜 그거 아냐? 떠돌이 시절에 만났던 연인이라거나····”
“세상에 그거 불류····”
쿵!
주먹이 벽을 두드렸다·
하녀들은 등장한 여인을 보고선 크게 기함했다·
“힉! 하녀장님?!”
“뭣하니? 어서들 일하러 가지 않고?”
엘릭에게야 푸근한 할머니지만 하녀들에겐 사신과도 같은 게 바로 하녀장 론다였다·
그녀가 엄한 목소리를 내자 하녀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를 떠나갔다·
“···이제 나오셔도 되어요· 마님·”
문 뒤에 서 있던 티리아는 하녀들이 다 떠나가자 겨우 방에 들어서 책상에 앉았다·
그녀를 보는 론다의 눈빛엔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었다·
‘도련님도 참 거기서 괜히 그렇게 나와서는·’
티리아가 마법사를 데려온 순간 엘릭은 곧장 마법사와 따로 나눌 대화가 있다며 응접실로 그녀를 데려가 버렸다·
손목까지 잡아채 끌고 가는 모습이 저택의 사용인들에게 다 보인 참이다·
즉 사용인들이 티리아가 덩그러니 남겨지는 광경을 보고야 말았단 말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나 달리 말해 저택의 기강을 해이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무릇 씹을 만한 소문 거리가 생겼다는 말은 주인을 향한 존중과 공포가 옅어졌다는 말이 아니던가?
이럴 때일수록 더욱 강하게 사용인들을 다그쳐야 하는데····
“마님?”
“···홀로 외출을 다녀왔더니 피곤해서·”
티리아가 그리할 수 없는 상태였다·
론다는 티리아가 처음 이 집안에 들어오고 난 이후부터 줄곧 그녀를 가장 가까이에서 봐온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는 것이다·
저 무표정한 얼굴이 가면임을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진짜 티리아 포트먼은 사실 아주 여린 소녀라는 것을·
하나 섣불리 위로를 건넬 수도 없었다·
그것이 티리아를 비참하게 하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가 벗고 싶지 않아 하는 가면을 들추는 일은 하인의 역할이 아니었다·
“일단 저는 손님 대접을 다녀올게요· 마님께서는····”
“잠시 이곳에서 쉬도록 하겠네· 가주께서 응접실을 나서실 즘 말해주게나·”
“네 다녀오겠습니다·”
달칵 문이 닫히며 티리아가 방 안에 덩그러니 남았다·
*
눕고 싶다·
의자에 몸을 웅크리던 티리아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하나 그리할 수 없는 이유는 오늘의 일과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접실에서의 일이 마무리되면 두 사람을 만나러 다시 내려가야 할 텐데 누워 있다간 머리가 부스스해지거나 옷에 주름이 지지 않겠는가·
이런 순간마저 안주인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돈단 말이다·
티리아는 마른세수를 했다·
암만해도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아 불편했고 속이 진정되지 않아 울렁거렸다·
숨을 길게 내뺐으나 그럴수록 진정은커녕 속의 불안감만 더 짙어지고 있었다·
-겨 결혼···! 요!
-그 가명을··· 쓰고 있을 것 같은··· 요·
-데 데려갈··· 요·
떠올리는 것은 수줍음이 가득해 보이던 소녀였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도록 뺨을 붉히는 것이 그 마음을 바로 보여주는 소녀였고 또한 엘릭을 마주하는 순간의 반응은 지독하리만치 맑았던 소녀였다·
그런 마음을 얼굴을 마주하니 계속 생각이 뻗치는 것이다·
묻지 않기로 약속하고도 엘릭의 지난 10년이 어땠을지·
자신과 떨어져 있던 그가 어떤 삶을 살고 누구를 만나왔는지·
알고 싶으면서도 무서웠다·
차마 듣기 싫은 말이 나올까 봐·
그 소녀와의 관계가 정말 생각했던 그대로의 관계일까 봐·
‘아····’
바보 같다·
홀로 마음 썩이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바보 같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한창때의 10년을 떠돌이로 살아온 그가 아닌가·
수많은 사람을 만났을 테고 수많은 인연을 쌓아왔을 텐데 그중 연심이라 할 만한 인연이 없었던 게 더 이상할 터다·
이리도 그런 사실이 아픈 이유는 기대했기 때문일 터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더욱 아프다는 말마따나 돌아와 너무 상냥했던 엘릭이 있었기에 그럴 터다·
이런 생각에 빠져서는 안 되는데·
마음을 다잡으려 했으나 생각이 계속 안 좋은 방향으로 뻗친다·
하필 만남의 순간 자신을 끌어당겨 품에 가두던 엘릭의 행동에는 어떤 저의가 깔려 있었을까·
자신의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나?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본능적인 마음이었을까?
아니 이걸 외도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가주·’
속으로 되뇐다·
불안감의 이유를 찾으려 하면 결국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저는····’
불안합니다·
당신이 떠날까봐·
그 소녀의 말처럼 함께 이곳을 떠날까봐·
또 홀로 남겨질까봐·
그것이 너무나도 불안합니다·
이리도 행복한 나날을 보낸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흐으····”
숨이 떨려 나왔다·
머리가 아팠다·
*
엘릭은 회상했다·
이그렛 발렌티아와의 몇 번에 걸친 전투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죽였어야 했는데·’
몇 번이고 생각해도 그랬다·
그저 아이인 줄 알고 기절만 시켰던 것이 패착이었다·
이후 전장에서 사사건건 방해를 해왔던 걸 생각해도·
오늘의 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죽였어야 했다·
안일한 동정심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었다·
엘릭은 그런 후회를 띄워 올리며 이그렛을 바라봤다·
달칵·
응접실의 분위기는 첨예하게 벼려져 있었다·
맞은 편에 앉아있는 이그렛은 로브를 눌러쓴 채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후회한들 늦었으니 앞으로를 생각하자·
먼저 알고 있던 그녀의 성정대로 곧장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마나의 고갈이겠지· 느껴지는 마나가 아직 완전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이유는?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7강의 충돌이 시작된 시점이니까·’
상황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최선책은 대화로 그녀를 물려내는 것이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나 그게 실패할 경우 차선책은 그녀를 이 시점에 몰래 죽이는 것이다·
시체는 다날에게 처리를 맡기면 된다·
그리고
‘차선책을 사용하려면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그녀가 이곳에 온 것을 또 누가 알고 있을까·
완벽한 실종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또 누구를 죽여야 할까·
답은 뻔했다·
‘금공·’
금공과 염화의 친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EW의 지분 10%가 그녀의 손아귀 안에 있으니 당연했다·
그런 만큼 자신의 위치가 발각된 것 또한 금공 때문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역시 그날 열차에서 금공을 확실히 처리해야 했을까·
‘···아니 열차 내에서 금공을 살해했다간 수사망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게 참으로 아프다·
엘릭은 지팡이를 꽉 쥐었다·
그리고 서슬 퍼런 살기를 공간에 가득 퍼뜨리며 물었다·
“왜 여기 왔소· 아직 그 얘기를 못 들었는데·”
그에 이그렛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붉었다· 머리칼도 눈동자도 옷도 그리고 피부도·
“으응····”
그녀가 엘릭의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부인이랑 잘 어울리더라·”
엘릭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겁박으로는 보이지 않는 또한 염화 이그렛의 입에선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부드러운 목소리라 그랬다·
“뭐라?”
“보기 좋았다고· 그냥····”
이그렛이 고개를 푹 숙였다·
“···계속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보기 좋아서· 응· 그래서·”
미친년인가?
엘릭은 상스러운 말을 떠올렸다·
그녀의 목적을 당최 알 수가 없었다·
호의인가 그도 아니면 겁박인가·
“그 말이나 하자고 왔소?”
엘릭의 속에 불편함이 한껏 차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