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 마냥 넋 놓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엘버스가 어련히 불려놨겠거니 하고 넘겼던 재산이 EW의 주식이 되었다니·
그것도 6%의 지분이 되었다니·
하기야 10년간 벌어둔 게 있으니 작은 것도 이상하긴 했다·
그런 걸 제외하고서라도 너무 많은 돈이라는 게 문제지만 어쨌든·
“···그럼 얘기는 끝났군· 자네는 나가 있게!”
“옙!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에드워드가 무릎 꿇은 자세로 샤샤샥 뒤로 물러나 방을 나섰다·
저러다 무릎 관절이 갈릴 텐데··· 아니 저 인간 무릎을 신경 쓸 처지는 아닌가·
엘릭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런 건 미리 좀 말해주지 그랬나·”
엘버스를 향해 툴툴대니 그가 내뱉은 답을 그랬다·
“자네가 안 물어봤잖나·”
어련하실까 이 상황이 못내 재밌다는 듯 웃는 얼굴만 봐도 속내가 다 보인다·
확실히 재산을 맡겨두고 신경 쓰지 않았던 처지니 더 투덜대는 것도 우습다·
엘릭은 마음을 가다듬고 그제야 크레돈을 바라봤다·
“그래서 이제 이야기가 좀 되겠소?”
크레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릭의 집중력이 더해졌다·
대체 상황이 어찌 돌아가기에 황자인 그가 직접 이 한미한 동네까지 몸소 행차하셨는가·
의문이 어느 때보다 한껏 차올랐고
“제국이 갈라질 것입니다·”
그가 상상치도 못했던 형태의 답이 튀어나왔다·
*
크레돈은 꽤 긴 말을 이었다·
‘제국이 갈라진다’라는 결론에 닿기까지 꼭 필요한 인과 관계만을 설명했음에도 차가 다 식을 때까지 말이 끊이질 않을 정도였다·
엘릭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최대한 그의 말을 요약했다·
“그러니까 제국 내부에서 파벌 경쟁이 심해졌다· 그리고 두 파벌 중 하나가 이미 퇴역한 전대의 핵심 인사들이다· 갈등이 내전으로 이어지기 직전까지 왔다· 내가 이해한 게 맞소?”
“더없이 깔끔하게 이해했습니다·”
“황제는 무얼하고 있는 것이오?”
당연한 의문이었다·
평시도 아닌 전시다·
그것도 서부의 패권이 결정되기 직전이 바로 지금이다·
하나로 힘을 모아도 모자라지 않음을 그들도 알 터인데 어찌 내전을 계획한단 말인가·
이미 전쟁의 승리를 직감하고 그 이후를 노린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전쟁이 끄트머리까지 왔다곤 하나 그건 달리 말해 이제야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말이었다·
아무렴 7강이 본격적으로 전장에 서기 시작한 것이 지금이 아닌가·
이어질 전황은 불붙은 도화선과 같다·
심해지면 심해졌지 그 기세가 약해져 다시 대치 상태가 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단 말이다·
한데 이런 상황에서 내부를 조율해야 할 황제는 지금 대체 무얼하고 있는 것인가·
당연한 의문에 크레돈은 답했다·
“허수아비지요· 아버지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 말이었다·
엘릭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핑핑 돌아가는 사고가 있다· 10년간 전장을 겪으며 얻은 정보가 있었으며 몸에 새겨진 경험이 있고 이제껏 파악해온 전쟁의 인과가 있다·
그렇기에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상황 그가 이것을 계획했다?”
전대 황제이자 대륙 7강 중 하나·
이 서부 전쟁을 일으킨 괴인이자 마히르의 황제를 허수아비로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사내·
지금 제국의 분열을 생각한다면 범인은 그밖에 없었다·
답은 엘버스에게서 나왔다·
“정황상 그렇다는 것이지· 상황께서 대외적으로 모습을 비추지 않으신지가 10년이 훌쩍 넘으셨네· 아니 사실 전쟁 초기 이후 상황을 배알 한 사람이 누구도 없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상황이 왜 제국의 분열을 계획한단 말인가? 전쟁을 일으킨 게 그일진대 승전에 방해가 될 내전을 허락할 이유가 없지 않나·”
“가지치기 우리는 그리 생각하고 있네· 서부를 통일할 제국에 입맛에 맞지 않는 가신은 두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겠나?”
“그거야 이기고 나서의 일이지 지금 시점에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나?”
엘버스가 삐뚜름하게 웃었다·
본디 만사를 웃으며 흘려넘기는 그의 성정을 생각해볼 때 지금 그는 많이 화가 나 있었다·
“대~단하신 상황께서는 이길 자신이 있는 걸세· 제국을 절반으로 쪼갠 이후에도·”
엘버스가 낮게 웃으며 물었다·
“친구 상황의 다른 이름을 떠올려보시게·”
엘릭을 바로 답할 수 있었다·
관련된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있었다·
“···검제·”
지금의 일곱 강자가 있기 전 다섯 제왕이 있었다·
아직 기술의 발전이 없었던 만큼 순수한 개인의 무력으로만 제왕이라 일컬어졌던 괴물들·
그 괴물들을 모두 도륙 낸 것이 검제 엘하다크 마히르다·
유일한 생존자였던 것이 나자크의 마왕 제르디아·
언젠가 마제라 불리던 그가 상황에게 패배한 후로 스스로 제왕이라는 이름을 버린 것은 꽤 유명한 일화였다·
내전을 일으키고도 이기리란 것은 오만하기까지 한 자신감이었으나 마냥 오만이라 하기엔 그가 스스로 증명한 일이 꽤 많았다·
이미 늙은 전대의 강자라 한들 그 빛이 바래지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 7강의 우열을 매기며 그만을 논외로 치는 가장 큰 이유가 과거의 행적 때문이지 않던가·
전장에서 실제로 맞서 싸운 이가 없다는 것은 부차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여하튼 그런 이유에서 당신을 찾았습니다·”
크레돈이 입을 열었다·
“저희에게 힘이 필요합니다· 내전을 막고 그걸 넘어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엘릭의 미간이 좁아졌다·
“···상황과 반대편에 서려는 것이오?”
“조부님이 하려는 것은 폭정입니다· 조부님의 손에서 통일되는 제국의 미래는 조금도 밝지 않음은 이미 자명한 일이 아닙니까·”
반골 기질이다·
사실상 그리되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입장에서 굳이 스스로 기회를 걷어차는 모습이 특히 그랬다·
하기야 그래서 ‘역린’이 아니던가·
크레돈 마히르는 엘릭의 기억 속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질문에 섣불리 답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친구 자네의 평온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네· 하지만 전황이 좋지 않아· 미래도 밝지 않지· 상황께서 정말 서부를 통일한다면 다음은····”
동부일 것이라는 말일 터였다·
엘버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이 원하는 바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네에게만 도움을 청하려는 것이 아니네· 아마 전장의 양상이 뒤바뀔 걸세· 우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까·”
엘릭은 입을 다문 채로 그 이야기를 다 들었다·
여전히 답은 낼 수 없었다·
그리 망설임이 짙어지니 엘버스가 쓰게 웃었다·
“···갑작스러운 말이니 당장은 답을 바라지 않겠네· 하지만 고민 정도는 해주길 바라네·”
엘버스가 크레돈에게 말했다·
“전하 용건은 끝냈으니 돌아가시지요·”
크레돈은 자리에서 바로 떠나는 일이 아쉬워 보였으나 곧장 수긍했다·
부담을 더 지우지 않으려는 것일 터였다·
“···생각은 해보지·”
엘릭은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기분을 느끼며 유예를 말했다·
그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 에드워드가 앉아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였고 눈동자는 여전히 초롱초롱한 채였다·
“주주님 대화는 즐거우셨습니까?”
새색시처럼 다소곳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직전까지 심각함을 조금이나마 환기해주는 기분이었다·
하나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
“아직도 안 가고 뭐하나?”
“주주님이 계신 곳이 제가 있을 곳인 걸요·”
대체 이 태세전환 속도는 뭔지 싶었다·
주주라는 걸 알자마자 이리 저 자세로 오니 그 이중성에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치솟는 것이다·
이게 옳은 행동이라는 걸 알아도 그랬다·
차오르는 감정에 잠시 그를 내려다보던 엘릭은 이윽고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 자라면 제국 내전에 관해서도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텐데·’
금공 에드워드 와이트는 무력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특출난 사내였다·
정보전 또한 마찬가지다·
애초에 범 대륙적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인 만큼 그가 가진 정보의 양 질은 여타 국가 정보국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주주로서의 요청이라면·’
그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엘릭은 이내 그 일을 포기했다·
공연히 입을 놀려 오늘의 대화를 유출하는 것은 두 사람에게 못할 짓이었다·
“···자네도 일단은 가보시게·”
“주주님?”
“당장은 자네를 상대해줄 겨를이 없군·”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애초에 오늘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것도 문제에 크레돈과 엘버스가 가져온 정보가 너무 무거웠다·
슬며시 피로함을 띄우자 에드워드가 곧장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샤샤샥! 이번 역시 에드워드는 무릎을 꿇은 채로 움직이는 신기한 기술을 선보이며 사라졌다·
평소라면 헛웃음이라도 흘리며 혀를 찼겠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엘릭의 손은 또 품속의 날 죽은 단도를 매만지고 있었다·
응접실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고 그렇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가주?”
티리아가 온 것은 한 시간 정도가 더 흐른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