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테러에 관한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머나먼 동부 땅에 월영과 금공이 나타난 것도 그 혼란 가운데 잠적했던 카샤의 거취가 드러난 것도·
모든 사실이 아침 닭이 울기 전 페르딘 전체에 퍼진 것이다·
동부가 경악했다·
또한 전보를 통해 소식을 들은 서부 전장의 수뇌부조차 경악했다·
어찌 알았겠는가 그 흉악한 검귀가 촌 동네 귀족 도련님이었다니·
관련한 일로 온갖 집단의 정보망이 불을 뿜었다·
검귀 카샤를 영입하려는 세력과 배제하려는 세력의 물밑 전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 당사자인 카샤는 지금 에드워드 앞에 있었다·
“일단 상황은 이렇고 우리 어르신 신변이나 이쪽 동네 보호처리는 확실히 시작했습니다·”
에드워드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그가 자신을 찾아온 것은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부탁한 일은 정보의 수집과 배에 뚫린 구멍의 치료였다·
핏물을 줄줄 흘려대는 엘릭의 모습에 에드워드는 절로 소름이 끼쳐옴을 느꼈다·
비서가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배를 꿰매고 있건만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그저 깊게 가라앉은 무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하고만 있는다·
살이 떨리는 날카로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다·
전장에서 마주했던 그를 다시 한번 돌이키게 되는 모습이었다·
‘이야 잊고 있었네·’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검귀 카샤는 지팡이를 짚은 신사가 아니라 숨 막히는 살기를 흘려대는 괴물이었지·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끼는 와중이었다·
“수고했네· 위빈의 방어를 도운 일에는 깊은 감사를 표하지·”
“주주님을 향한 사랑입지요·”
“···다음 총회때는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군·”
에드워드는 빵긋 웃었다·
일단 1차 목표는 해결!
시원스러운 답에 그냥 바로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으나····
“한데 저희 할 이야기가 더 남아있지 않습니까?”
목적은 아직 다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이미 이뤄진 것 같지만·
“아시다시피 제 선에서 막을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월영이 움직였습죠· 제국 쪽에서 어르신을 향한 술수를 부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외람되오나 전쟁의 참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으실 듯합니다·”
협박조로 들리지 않게끔 에드워드는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왕국 측은 3 황자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곧 공식적인 발표가 날 테고요· 저희 동맹은 어르신의 요청이라면 기꺼이 위빈의 보호를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확고하게요·”
엘릭은 그제까지도 묵묵부답이었다·
와중 손에는 날이 죽은 단도를 꾹 쥐고 있었다·
손잡이 부분을 어루만지고 있는데 버릇이라도 되는 걸까·
그가 입을 연 것은 비서가 “다 됐습니다·” 하며 상처의 봉합을 마무리하고 붕대까지 감은 이후였다·
“···오늘 중으로 준비를 마치시게·”
화끈하기도 하셔라·
에드워드는 방긋 웃었다·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한껏 간드러지게 말해봤으나 역시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그늘진 카샤의 눈동자는 갓 뿜어져 나오는 핏물처럼 붉게 물들어있었다·
기저귀가 젖는 기분이었다·
*
포트먼의 저택은 간밤의 사고에 대한 수습을 어느 정도 마친 후였다·
여전히 어수선하긴 했으나 전날만큼 공포에 사로잡히진 않은 정도·
물론 수근거림은 더 늘어났다·
아무렴 그들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조간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들어온 상황인데 진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비단 소문뿐만 아니다·
돌아온 엘릭의 처참한 모습과 그의 몸 위로 새겨져 있던 흉측한 상처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형태로 진실을 새겨두고 있었다·
그에 걱정 어린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와중이었다·
“일들 안 하고 뭣하느냐!”
알디오의 호통이 홀을 강타했다·
화들짝 놀란 사용인들이 고개를 숙인 채 흩어졌다·
그런 후에야 알디오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표정은 한껏 일그러져있었다·
‘도련님····’
몰랐다· 그 작기만 하던 도련님이 10년 간 전쟁터에서 살아왔음을·
그저 어릴 적처럼 철없는 모습만 보이기에 잘 살아온 줄로 알았다·
아니 어쩌면 그리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가슴 한 켠이 시큰거리는 기분에 알디오의 얼굴 위로 그늘이 짙어졌다·
맞은편에서 한숨을 내쉬는 하녀장 또한 같은 기분인 듯했다·
‘대체 어디에 계신 겁니까!’
밤 중 돌연 사라진 엘릭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영영 떠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속에 한껏 차오르는 와중·
달칵―
문이 열렸다·
알디오와 하녀장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도련님!”
헐레벌떡 달려가 안색을 살피니 엘릭은 고요하게 웃고 있었다·
반가운 기분은 잠시였다·
그의 미소에서 느껴지는 그늘이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아 아닙니다· 그보다 몸은····”
“괜찮네· 알디오 짐을 좀 챙겨주겠나? 내 방으로 올라가면 침대 밑에 검 한자루가 있을 걸세· 그 밑바닥을 뜯으면 갑주가 있을 테고 장롱을 밀어보면 장구류 몇 가지도 있을 게야· 그것들만 챙겨주시게·”
“그 그게 무슨···!”
“부탁하네·”
엘릭의 말엔 거절할 수 없는 마력이 있었다·
그것은 왜인지 전 가주였던 호벤 포트먼의 위엄처럼도 느껴졌다·
하나 좀처럼 말을 따라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알디오는 망설였다·
엘릭은 쓰게 웃으며 뒤에서 훔쳐보고 있던 하녀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이 해주게· 지금 당장·”
흠칫 놀란 하녀들은 종종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 순간 하녀장이 물었다·
“도 도련님· 또 어딜 가시려구요? 네? 아직 영지가 이렇게 난리통인데····”
“마 맞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서 잠부터 주무십시오! 세상에 눈 밑이 이렇게 까매서··· 오늘 한 잠도 안 주무셨지요?”
알디오가 맞장구까지 쳤으나 엘릭은 요지부동이었다·
좀처럼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달리 표현해 어딘가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로도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으니 발만 동동 구르는 와중 하녀들이 짐을 다 챙겨 나왔다·
엘릭은 그걸 받더니 그대로 뒤돌았다·
안 된다·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
생각이 치밀어 알디오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마 마님은요!”
덜컥 엘릭의 걸음이 멎었다·
“마님이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떠나시더라도 마님에겐 말씀하셔야지요! 마님이 걱정하실····”
“그래서·”
“···예?”
“그래서 말없이 떠나는 것일세·”
슬쩍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 순간 알디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암만 생각해도 이런 촌구석에선 못 살아주겠다· 그러니 찾지 말아라· 그리 전해주시게·”
베일 듯 날카로운 말을 내뱉으면서도 엘릭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사람처럼 위태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다날과 설영 기사단은 저택 입구에 서 있었다·
엘릭이 대기시킨 까닭이다·
쿵쿵 심장이 미칠 듯이 뛰는 게 오늘이 제삿날인가 싶다·
차라리 죽일 거면 안 아프고 깔끔하게 죽여주길·
그런 마음까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다 단장· 오셔요!”
리키가 속삭였다·
다날은 바짝 굳어 정면을 바라봤다·
웬 짐을 어깨에 멘 채로 엘릭이 걸어오고 있었다·
단원들 사이에 공포가 전염되는 와중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엘릭이 멈춰서서 말했다·
“전날 밤의 일은 고맙네· 자네들에겐 큰 빚을 졌어·”
‘얼레?’
면책이 아닌가? 오늘 살아나가는 건가?
이대로 넘어갈 수····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한 가지만 더 부탁해도 되겠나?”
···있을 리가 없지·
에라이·
다날은 삐걱삐걱 웃으며 답했다·
“마 말씀하십쇼·”
“부인을 지켜주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다날은 그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꼭 영영 떠나가려는 사람의 말 같아서·
하나 함부로 묻기엔 두려운 마음이 먼저 있다·
다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우렁차게 답하는 것뿐이었다·
“예 옙!”
“고맙네· 자네들에겐 크게 보답하겠다 약조하지·”
엘릭은 그리 말하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택을 나섰다·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누구도 숨을 내쉴 수 없었다·
*
티리아는 쏟아지는 햇살이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머리가 징징 울렸다·
시야의 초점은 잘 잡히지 않았으며 사고 또한 뚝뚝 끊겨 몽롱함이 한가득했다·
그런 것들을 털어내고 나니 하녀가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하 하녀장님! 마님이 깨어나셨어요!”
우당탕탕!
소음이 이는 와중 티리아는 그제야 전날의 일을 떠올렸다·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곧장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보거라·”
“네 네!”
“가주는 어디 계시느냐· 저택으로는 돌아오셨느냐?”
“그 그게····”
하녀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삼켰다·
한껏 답답함이 치밀었다·
그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
탁자 위에 놓여있던 신문이 티리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그 속에 대문짝만하게 찍힌 엘릭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힉···!”
하녀가 헛숨을 삼키며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곧장 신문을 치우려 하기에 티리아는 낚아채듯 신문을 들었다·
『검귀 카샤 그의 정체는 동부의 젊은 귀족·』
1면에는 커다란 제목과 함께 기사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티리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숨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가주는 어디 있느냐·”
자연히 목소리는 살벌한 형태를 띠게 된다·
급한 마음에 인상 또한 찌푸려지고 있었다·
하녀의 몸이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언제나 누군가를 겁박하는 일이 천하다 생각했던 티리아였으나 이 순간은 그런 것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대답하거라!”
그녀는 드물게 큰 소리를 냈다·
하녀는 덜덜 떨며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그녀가 이르니
“떠 떠나셨····”
타닥!
티리아는 뒷말을 듣지도 않고 방을 뛰쳐 나갔다·
“마 마님!”
뒤늦게 달려온 하녀장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티리아는 신발도 갖춰 신지 않은 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구간으로 향해 말을 몰아 저택을 나섰다·